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9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96화(496/675)
제 496화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청, 그 범생이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대소집령을 내린 거냐고.”
엘 아브르의 심부에 위치한 넓은 원탁.
평범한 이는 접근조차 할 수 없고, 오로지 엘 아브르에서 인정한 대현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었다.
대현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행하며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필수 법칙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소집령.
대현자들은 일 년에 한 번 대소집령을 꺼낼 수 있고, 대현자들 모두는 이에 응해야 한다.
아무리 구속받기 싫어하는 대현자들이라 해도 엘 아브르에서 지원을 받는 이상 꼭 이행해야만 하는 법칙이었다.
“이야기 못 들었소?”
“몰라. 문 다 잠그고 연구하고 있는데, 밖에서 하도 문을 두들기면서 당장 대소집령에 참여 안 하면 지원 다 끊긴다길래 온 것뿐이야.”
“홍, 그대는 여전하구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생전 대소집령이라고는 있는지도 모르는 듯이 생활하던 양반이 갑자기.”
홍이라 불린 중년의 여인. 엘 아브르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아니, 탑을 통틀어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홍의 대현자. 그녀가 자신의 자리에 대충 걸터앉으며 입을 삐쭉거렸다.
이에 말을 받아주던 남성이 한숨을 내쉬며 이번 대소집령의 목적을 알려주었다.
“새로운 대현자에 관한 얘기요.”
“새로운 대현자? 이건 또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모르시오? 세운이라 하여, 최근 엘 아브르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인데.”
“가장 뜨거운? 무슨 소리야. 난 듣도 보도 못했는데.”
“그건 그대가 연구실에 들어가 귀를 닫고 있었으니 그런 거 아니오.”
“내가 귀를 닫으면 얼마나 닫았다고. 이번에는 억지로 끌려 나오느라 얼마 있지도 못 했구만!”
“얼마나 있었소?”
“이번에는 두 달? 아니, 석 달인가?”
“그러니 모르는 거 아니오. 그자가 이름을 떨친 게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으니.”
아니, 한 달이 되지 않았다는 표현도 그리 올바르지 않았다. 세운이라는 현자가 이름을 날린 건 고작 일 주. 그사이에 뽑아낸 논문만 하여도 수십 개가 넘어간다.
문제는 그 수십 개의 논문이 하나같이 A급 이상의 평가를 받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
그리고 범용성이 높아 다양한 현자들이 그 논문을 인용하고, 심지어는 대현자들 중 몇몇도 이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소식이 사라져 권태라도 온 줄 알았소만.’
어디서 저런 생각이 뿜어져 나오는지. 어떻게 저런 속도로 논문을 써 내려가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논문을 펼쳐대던 현자의 소식은 일주일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엘 아브르의 모든 현자가 그의 논문을 기다리며 소식을 물었지만, 그 이름이 다시 들려온 적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디아블로 길드라고 하는 곳의 이들이 들어와 명성을 크게 얻고 있지만, 세운의 위명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청의 대현자가 갑자기 그를 언급해 올 줄이야.’
청의 대현자가 대소집령을 선언하였다.
그 목적은 정세운 현자를 대현자로 승급시켜야 한다는 것.
그 덕분에 대현자들은 세운이라는 자가 지금까지 청의 대현자 밑에서 논문이나 연구를 도왔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한 달? 한 달이라고? 아니, 미친. 엘 아브르가 누구네 놀이터야?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대현자가 되겠다고?”
“너무 급작스럽긴 하다만, 대현자가 나이나 엘 아브르에 들어온 기간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지 않소.”
“아무리 그래도 한 달은 심했지! 그쯤이면 엘 아브르에서 뒷간이 어딘지도 헤맬 시긴데, 대현자는 무슨!”
“요즘은 그런 걸 보고 꼰대라고 한다오.”
“뭐? 화장실을 못 찾는 게 왜 꼰대야?”
“그게 아니라…… 하아, 아무것도 아니오.”
엘 아브르에서 대현자들이 꾸려진 지는 시간이 꽤 지났다.
그동안 대현자의 수가 조금 줄어든 적은 있어도, 늘어난 적은 없었다.
두각을 드러낸 현자가 있긴 했지만 이미 고인물이 되어 버린 대현자들이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건만.’
홍의 대현자를 상대하고 있던 남자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대현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대현자에 비하면 사상이 깨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가 정신을 차려봤자 새로운 대현자를 받아들려면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도 몇 차례나 대현자들을 설득해 보았지만, 기껏 해 봐야 1/4 정도가 마지못해 찬성했을 뿐이다.
당장 눈앞에서 씩씩거리는 홍의 대현자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유망 있는 젊은이지만, 아직은 무리겠지.’
그도 세운의 논문은 이미 몇 차례나 읽어보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엘 아브르의 경직을 풀고, 활기를 불어넣어 줄 만한 훌륭한 논문들.
그야말로 깨어 있는 논문이었다.
다만, 아직은 부족하다.
대현자들을 설득하기에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차라리 일 년. 아니, 반년만 더 기다렸다면 어찌 손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청의 대현자가 너무 급했다.
만개해야 할 꽃이 이제 막 봉우리를 드러날 때 급하게 꺾어 버린 셈이다.
실제로, 이제 다 모여가는 대현자들의 반응이 대체로 좋지 않았다.
모든 대화를 들을 수는 없지만, ‘애송이’나 ‘새파랗게 어린놈’, ‘코흘리개’ 같은 단어들이 들리는 것을 보니 분위기가 좋지 않음은 분명하다.
“이제 전부 모인 것 같으니 청의 대현자를 호출하겠습니다.”
대소집령에서는 주최자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게 관례였다.
의견을 결정할 때 사용하는 의사봉을 두들기자, 그 즉시 문이 열리며 청의 대현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뒤에 이번 대소집령의 중심인 이를 데리고 말이다.
“저 봐, 딱 봐도 새파랗게 어린놈을.”
“허어, 청의 대현자도 눈이 멀었군. 보아하니 연구를 도움받아서 콩깍지라도 씐 모양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현자라는 사람이 저런 어린놈을 데리고 오는 게 말이 되는가? 대소집령도 문제일세. 바빠 죽겠는데 강제 소집령이라니. 조만간 어떻게 수정하든가 해야지.”
과연, 대현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청의 대현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당당하게 다가와 주최자의 자리에 앉았다.
원탁의 자리는 어디까지나 대현자들을 위한 자리였던 터라, 세운은 청의 대현자 뒤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섰다.
“지금부터 대소집령에 의한 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주최자인 청의 대현자가 발언을 시작하겠습니다.”
원탁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들 불만이 많다고는 하여도, 이 자리의 모두가 대현자인 만큼 기본을 아는 자들이었다.
불평을 터트릴 때는 터트리더라도, 지금은 절차를 행하는 게 우선이었다.
“청의 대현자, 몰 아르기닌일세.”
우선은 간단한 자기소개.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고여 버릴 대로 고여 버린 이 자리에서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청의 대현자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미리 전해 들은 대로 이번 대소집령의 목적은 새로운 대현자의 발탁에 관한 내용이라네.”
“후보는 정세운 현자, 맞습니까?”
“그렇다네.”
지금 입을 열 수 있는 것은 주최자인 청의 대현자와 사회를 맞고 있는 녹의 대현자뿐이다.
다들 벌써부터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애써 입을 다물고 먹이를 노리는 하이애나처럼 눈을 반짝였다.
“정세운 현자를 대현자로 추천하는 근거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우선 정세운 현자는 대현자에 도달하기 위한 자격을 모두 충당하였네. 그가 펼친 A급 이상의 논문의 수만 하여도 수십 개가 넘어가지.”
청의 대현자가 자신 있게 세운의 이력을 소개하였다.
다만, 원탁의 대현자들은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손을 연신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지 못해 안달이었다.
녹의 대현자는 이중 막내나 다름없었기에, 청의 대현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조금 이른 타이밍에 다른 대현자에게 발언권을 넘겨주었다.
“……황의 대현자님?”
“아니, 지금 엘 아브르에서 대현자의 자격에 도달한 현자의 수가 어디 한둘입니까? 어떻게 겨우 그거 가지고 대현자를 논하는 겁니까!”
발언권을 받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폭발적으로 말을 쏟아내는 황의 대현자.
그의 속 시원한 발언에 주변의 대현자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자격만 도달했다고 이제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병아리를 대현자로 받아주면, 엘 아브르의 회원 모두가 대현자가 되었을 겁니다!”
“옳소! 그렇게 쉽게 대현자의 자리에 올랐다가는 엘 아브르의 위계가 순식간에 무너질 거요.”
분위기가 순식간에 안 좋게 돌아가자, 이를 지켜보던 대현자 하나가 조심스레 말을 열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벽을 치고 있을 거요. 엘 아브르에 마지막으로 대현자가 임명된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고 있는 거요?”
“아니, 우리가 무슨 싫어서 그럽니까! 자격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요즘 것들은 자기가 다 대단한 줄 아는데, 살펴보면 다들 실속이 없어! 나 때만 하더라도 그 수준으로 대현자를 꿈꾸고 있으면 스승께 뒤통수를 처맞았어!”
결국, 이곳은 다수결의 원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반대 의견을 지닌 대현자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찬성 측이 의견을 펼치기가 힘들었다.
특히 이번 후보인 세운은 엘 아브르에 들어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약점이 너무 컸기에 그 경우가 더했다.
“……그럼, 다시 청의 대현자님. 방금의 반박을 근거가 있으십니까?”
사회를 보고 있는 녹의 대현자의 눈에서 어쩐지 피로감이 느껴졌다.
이제야 막 얘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표정이 안 좋을 법도 한데, 청의 대현자는 별 관심 없다는 투로 말을 이어갔다.
“근거라. 물론입니다.”
“알려주시겠습니까?”
“지금 말해 봤자 다들 믿지 않을 테니, 직접 보여주는 게 편할 걸세. 자네, 보여주겠나?”
“네.”
직접 보여주겠느냐는 청의 대현자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웅-
세운의 서클이 회전하며 주변의 마나를 끌어모았다.
이곳의 대현자 대부분이 마나에 민감한 이들이었기에, 세운이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을 깨닫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감히 대현자들의 앞에서 마법을 사용하려는 겐가!”
“어딜 건방지게!”
“다들 앉으시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전부 책임질 테니.”
“그대가 어떻게 책임진단 말이오!”
“만약 문제가 생기든. 그게 아니더라도 그대들이 인정 못 할 정도의 일이라면, 내 대현자의 자리에서 떠나겠소.”
“크흠…….”
대현자의 자리를 벗어던지겠다니.
이는 결코 쉽지 않은 발언이었다.
무엇보다 청의 대현자는 그 누구보다 대현자라는 자리에 열중하며 수많은 논문을 써 내려갔던 자가 아니었던가?
그 덕분에 대현자들의 반응은 조금은 수그러들었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자리에 앉지 못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이 무슨…….”
“이 거대한 마나의 흐름은 설마…….”
세운의 서클이 돌아가며, 방 안의 마나가 통째로 세운의 서클에 반응하였다.
그리고 세운이 쭉 뻗은 손바닥이 아래로 뒤집히는 순간, 방 전체에 이변이 일어났다.
“리버스 그래비티.”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리버스 그래비티(Reverse Gravity) ]–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힘 중 하나라 알려진 중력(重力)을 뒤바꾸는 대마법사의 상위 마법.
“어, 어엇?”
대현자들의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무중력 상태에 당황한 이들이 팔을 허우적대며 균형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유일하게 청의 대현자, 몰 아르기닌만이 그 모습을 재미난다는 듯이 바라보며 무중력을 즐기고 있었다.
“정세운 현자는 저와 같은 8서클의 마법사입니다.”
청의 대현자의 말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대현자들이 놀람을 참지 못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