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9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97화(497/675)
제 497화
대현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나가 모여드는 것을 보고 엄청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7서클 마스터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 7서클도 저 나이대에 불가능한 경지였기에 충분히 놀라고 있었는데.
“8서클 마법사라니!”
“청의 대현자와 같은 수준 아닌가?”
“마법사가 인간의 몸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저런 젊은 청년이 어찌…….”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재능도 정도가 있지, 저 나이대에 8서클에 올랐다면 인간의 몸으로 불가능하다 알려진 9서클에도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면 충분히 근거가 되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어떤가?”
“그, 그렇습니다.”
“그렇다는군.”
청의 대현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운이 천천히 마법을 풀었다.
자세를 다잡을 수 있도록 중력을 서서히 돌려놓았지만, 대현자 중 몇몇은 입을 벌리고 놀라느라 중심을 잡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한동안의 침묵.
솔직히, 8서클 마법사가 나타났는데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당장 청의 마법사만 하더라도 8서클에 도달하는 순간 대현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세운도 대현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대현자 중 절반 이상이 세운을 인정하고 있을 때, 험상궂은 얼굴을 한 대현자 하나가 고개를 털며 정신을 차리고는 즉시 반박에 나섰다.
“그래봤자 같은 마법사 아니오! 대현자는 한 분야에서 가장 높은 업적을 올린 마법사에게 주어지는 자리 아니오!”
“그렇네.”
“그렇다면 그 현자가 청의 대현자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오?”
“아직은 아니지.”
“아직……? 아, 아무튼! 청의 대현자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마법의 수준으로 대현자의 오르는 건 무리요!”
그의 말에 대현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럴싸한 반박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는 8서클 마법사다.
같은 분야에서 두 대현자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은 맞지만, 마법도 한 종류가 있는 게 아니다.
청의 대현자가 무속성 마법이나 수속성 마법에 정통한 만큼, 세운이 다른 속성에 두각을 드러낸다면 충분히 해당 분야의 대현자로 선발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엘 아브르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놈을 받자니. 그럼 세간에서 강하다는 자들은 전부 대현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요?”
“말했다시피, 정세운 현자는 이미 논문을 통해 자격을 증명하였네.”
“대현자의 자리는 단순히 논문 좀 써놓고 실력이 있다고 올라올 수 있는 자가 아니오!”
남자가 머리를 재빠르게 회전시키며 반박을 길게 이어갔다.
언뜻 말이 되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생각하면 근거가 부족한 궤변이라는 사실을 대현자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대현자 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원금에 미쳐서는…….”
사실, 대현자들이 고인 물이 되어 가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연구비라는 명목으로 대현자들에게 들어오는 지원금 때문이었다.
대현자가 되면 현자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금액의 지원금이 들어오는데, 기본적으로 그 지원금은 모든 대현자에게 공평하게 나뉘어 지급된다.
그런데 대현자가 늘어난다면?
당연히 나눌 사람이 많아져 한 명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이 적어지게 마련이다.
말은 하지 않아도, 다들 내심 그런 생각에 대현자 선발을 더욱 까다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다들 입을 다문 채 남자의 발언을 듣고만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임이 분명하다.
“그럼, 마법이 아니라면 되는 겐가?”
“그건 무슨 말이오!”
“모르나 보군. 우리 정세운 현자는 비단 마법에만 정통한 것이 아니라네. 재의 대현자님, 괜찮으시다면 정세운 현자의 실력을 봐주시겠습니까?”
청의 대현자가 원탁의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재의 대현자.
비쩍 말라 보이는 노인이었지만, 엘 아브르의 그 누구보다도 체술에 정통한 대현자였다.
“흘흘, 흥미롭구먼. 비무를 신청하는 겐가?”
“정세운 현자,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기대되는구먼. 그렇다 하더라도 이 좁은 곳에서 마법사가 힘을 쓰긴 어려울 텐데.”
“마법은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설마, 체술로 나와 맞붙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흘흘, 이거 기대되는구먼. 정말 기대 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아, 그럼 저희가 바로 연무장을 준비하도록 하겠습…….”
“필요 없네. 비무 대회도 아니고, 실력을 보기에는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대답에 망설임이 없어. 아주 마음에 드는 젊은이야. 흘흘, 이리 오게.”
세운이 재의 대현자를 따라 원탁의 옆으로 향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직사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어, 원탁 말고도 복도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었다.
비무를 위한 곳은 아니지만, 둘은 그곳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자세를 잡았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대현자와 현자의 비무.
그러나 말리는 사람은커녕 원탁의 모든 대현자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가까이서 보고 싶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앞까지 다가오는 이들도 있었다.
“무기는 어쩌겠나? 나야 빈손이 편해도 자네는 무기를 사용할 것 같은데.”
“저도 맨손으로 가겠습니다.”
“흘흘, 하기야. 자네처럼 모든 무기를 구사할 정도라면, 체술도 만만치 않겠지.”
노인은 세운의 자세를 보자마자 세운의 전투 스타일을 훤히 파악하였다.
과연, 대현자에 어울리는 관찰력.
모두의 기대가 집중되는 순간, 사회자를 맡은 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시작합니다!’라고 외치는 순간.
타앗!
세운과 재의 대현자. 두 명이 서로를 스쳐 가 반대편에 섰다.
“……음?”
“뭐야?”
“봤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섯 합.”
“다섯 합?”
“다섯 합을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비무는 끝난 모양이군.”
“벌써 끝났다고? 그냥 한 번 스쳤는데?”
“본래 고수끼리의 승부는 찰나에 결정되는 법이다. 게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함이지 않은가?”
“그래도…….”
대현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너무나도 끝나버린 비무.
심지어 세운이나 재의 대현자, 둘 중 누구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때, 먼저 입을 연 건 재의 대현자였다.
“흘흘, 내가 졌네. 천 년이 넘어가는 기운을 지닌 젊은이를 이 노인네가 어떻게 이기나.”
“져, 졌다고 하셨습니까? 어르신?”
“음? 다 보지 않았나. 다섯 합 중 세 합에서 밀려났네. 길어져 봤자 내가 졌겠지. 덕분에 이곳 역시 우물 속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네.”
“우물이라니, 설마 엘 아브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엘 아브르고 뭐고, 조금 더 깊은 우물에 불과하지. 본래 깊은 우물일수록 고이기 쉬운 법이네.”
“우물…….”
“보게, 저런 젊은이도 있지 않나? 첫 합을 부딪쳤을 때에는 눈앞에 있는 게 사람이 아닌 용이 아닌가 착각했을 정도라네.”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재의 대현자.
8서클 마법사의 등장에 어안이 벙벙하던 대현자들이 또 한 번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8서클에 오른 마법사가 마법 하나 사용하지 않은 채 체술만으로 재의 대현자를 상대하다니.
그러거나 말거나, 재의 대현자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세운의 앞으로 청의 대현자가 걸어 나왔다.
“보다시피 정세운 현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네. 솔직히, 이것뿐이 아니지. 논문을 본 이라면 알겠지만, 이자의 재능은 이게 다가 아니라네.”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의 대현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심지어는 조금 전까지 청의 대현자의 말에 힘차게 반박하던 대현자 역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미 세운이 대현자로 선발된 건 기정사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새로운 대현자에게 어떤 색(色)을 붙여줄지.
색이라 함은 대충 어울리는 색을 붙여주는 게 아니라, 해당 대현자의 특성에 맞게 가장 합당한 색을 붙여주는 게 관례다.
색 그 자체의 뜻으로 붙여줄 때도 있고, 대현자가 상징하는 색, 사용하는 힘, 성향 등, 모든 것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그리고 청의 대현자는 이미 세운에게 어울리는 색을 정해 두었다.
“나는 우리 정세운 현자에게 적(赤)의 색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네만, 혹시 불만인 자가 계신가?”
당연하게도, 대현자 중 그 누구도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 * *
세운이 적의 대현자로 진급한 이후, 엘 아브르는 한창 세운에 관한 얘기로 떠들썩했다.
“들었어?”
“요즘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최단기 대현자에, 최연소 대현자에. 대체 최초 타이틀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멋지지 않아?”
엘 아브르에 대현자가 나온 게 워낙 오랜만이라 화재가 이는 건 당연했다.
무엇보다 대현자의 정체가 최근에 엘 아브르를 뜨겁게 달구었던 정세운 현자라는 사실과 그 앞에 붙은 여러 수식어 등, 다양한 것들이 세운의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게다가 적의 색을 받으셨다면서?”
“적의 대현자라니. 다른 대현자님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 계셨다고?”
“슬쩍 둘러보니까, 동의 대현자님 쪽은 충격이 장난 아니시더라고.”
“동의 대현자님이라면, 적의 색을 물려받겠다고 하시다가 실패하셨던 분이지?”
“맞아. 적의 색이 평범한 색이 아니니까.”
청의 대현자가 제안하여 세운에게 붙여 둔 색, 적(赤).
이는 대현자들이 가지는 수많은 색 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다.
적의 색은 대현자 중에서도 가장 가장 인물에게 하사되는 색이기 때문이었다.
재의 대현자가 이에 가장 유력했으나, 청의 대현자를 포함하여 각 분야에 호각을 이루는 자가 많아 적의 색 자체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그런 색을, 이번에 새로 임명된 대현자가 받아 간 것이다.
특히나 그 누구보다 이 일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당연, 엘 아브르에 들어와 있던 디아블로 길드원들이었다.
“역시 우리 길드장이라니까?”
“믿고 있었습니다!”
“이 주 동안 소식이 없길래 걱정했는데, 이걸 준비하고 계셨나 봅니다.”
“대현자가 되었으면 저희를 받아줄 수 있지 않습니까? 한 번 찾아가 볼까요?”
“음, 제가 연락을 넣어봤는데 아직 바쁘신가 보더라구요.”
“아쉽군요. 기왕이면 길드장 밑에서 배우고 싶은데.”
“그게 아니더라도 이곳에는 배울 게 많잖아요? 일단은 당장 익힐 수 있는 것들부터 배워 가자구요.”
“네. 좀 있으면 대도서관의 출입도 허용해 준다니,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운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세운이 대현자가 된 게 기쁜 만큼, 그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엘 아브르의 지식을 누구보다 열심히 찾아 나섰다.
유서아를 제외한 몇몇은 이미 엘 아브르에서도 신동으로 이름이 알려졌을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후…….”
적의 대현자라는 이름을 얻은 세운이 눈을 떴다.
새로이 얻은 여덟 번째 서클과 태극의 단전을 가다듬은 것인데, 아직 익숙하지도 않고 힘의 크기가 워낙 컸던 터라 한 번 돌보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렸다.
‘준비는 끝났다.’
솔직히, 생각하던 것 이상의 수확을 얻었다.
8서클에 도달한 것만 하여도 충분히 만족할 수준인데, 거기에 태극신공이라는 합공과 엄청난 양의 내공을 얻었으니.
재의 대현자와의 비무에서 늘어난 내공의 힘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 진정한 목표를 이룰 때가 되었다.
‘아우터.’
세운이 대현자실을 빠져나가 엘 아브르의 위로 움직였다.
엘 아브르의 최심부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으니, 괜히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엘 아브르의 관리인이자 세운을 최심부로 안내해 줄 안내인, 아엔을 찾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