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0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08화(508/675)
제 508화
“……정말 여긴가요?”
데스힐 때와 마찬가지로, 엘하임 역시 71층에 올라간다고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엘하임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지 중에서 71층으로 향하는 가지를 찾아내야만 71층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 가지들 모두가 하루를 꼬박 이동해야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길기 때문에 많은 플레이어가 71층으로 향하는 가지를 찾으러 엘하임을 헤매지만.
“71층으로 향하는 가지 중에서 가장 빠른 길입니다. 믿고 와주시면 됩니다.”
이곳에는 세운만이 아니라 청해 길드가 있었다.
비록 세운이 회귀하기 전, 끝까지 다음 쉼터에 도달하지 못했다고는 해도 그들은 엘하임의 최고 격으로 군림하고 있는 길드.
71층으로 향하는 가지쯤이야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형니이이이임!”
“약한 척하지 마라.”
“약한 척이 아니라, 이거 진짜 무섭다구요!”
가지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당연하게도, 이곳에서 떨어지고 멀쩡하게 돌아온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때문에 보통은 서로 밧줄을 묶거나 안전 장비를 착용하여 가지를 타는 것이 보통이지만,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는 아니었다.
“엄살은.”
“아, 그럴 거면 뒤에서 따라와! 앞에서 진짜!”
“니들은 간땡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왔냐!”
청해 길드는 워낙 반복된 가지 등반 경험 탓에 장비의 도움 없이 가지를 오르는 중이었고, 디아블로 길드는 실력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몬스터도 없는 평범한 가지 등반에서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떨어지더라도 동료가 구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덕분에 두 길드는 안전 장비 하나 없이 누구보다 빠르게 가지를 오르는 중이었다.
“에휴, 그것도 병이다. 병. 안 비킬 거면 밟고 간다?”
“꾸엑!”
결국 앞에서 네발로 가지를 타고 기어가던 박정필이 쌍둥이 자매에게 밟혔다.
뒤이어 따라오는 사람들도 한숨을 내쉬곤 박정필을 폴짝 뛰어넘었다.
“형니이이이임!”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낄낄대며 자신의 계약자를 비웃습니다.
뒤에서 세운을 부르는 소리가 애타게 들려왔지만, 세운은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저래 보여도 박정필은 이 중에서 유서아와 비견될 정도로 움직임이 뛰어나다.
‘겁이 많아서 그렇지.’
당장 네발로 기고 있어도, 뒤처지게 되면 혼자 남는 게 무서워서라도 누구보다 빠르게 따라올 것이 분명하다.
“음, 갈림길이네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여기서부터는 저희도 모릅니다. 이쪽부터 자라난 가지들은 하루살이들이라 날마다 경로가 바뀝니다.”
“네? 그럼 어떻게…….”
그렇게 가지를 따라 올라가던 중, 일직선이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지 끝부분에서 무수한 잔가지가 쭉쭉 뻗어나 있었다.
딱 봐도 방금 자란 것처럼 파릇파릇해 보인다.
유서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제논은 문제없다는 투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였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결국 71층으로 향하는 가지는 물관부터가 다르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물과 관련된 문제는 저희 청해의 전문입니다.”
“이쪽으로.”
“네? 잠깐, 그렇게 아무렇게나 이동하다가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가지가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와라.”
“따라오세요. 길을 찾는 건 세운 씨가 전문이거든요.”
“아…….”
제논이 무언가 장비를 꺼내려다 말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세운이 보여준 힘을 생각해 보자면 못 믿을 것도 없었지만, 아무래도 불안함이 남아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혈랑 오빠! 여기 가지들 좀 뜯어가면 안 돼? 재질이 좀 다른 것 같은데!”
“허허. 나도 관심이 좀 생기는구먼, 그래. 잘 말려서 다듬으면 쓸 만한 소재가 될 것 같아.”
“다들 조심하세요. 혹시 떨어지더라도 백현 씨가 비행 형 언데드를 대기시켜 뒀으니 침착하게 대처하시구요.”
디아블로 길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운의 뒤를 따랐다.
따라오라는 세운의 말을 의심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 모습에 제논이 꺼내려던 장비를 집어넣고는 뒤에서 자신을 따라 머뭇거리던 청해 길드원들을 이끌었다.
“저희도 따라가겠습니다.”
“마스터! 괜찮겠습니까? 저희라도 물관을 확인하고 가는 게…….”
“저들을 따르기로 하였잖습니까?”
“……알겠습니다.”
잔가지는 구름 너머로 연결되어 있었다.
애초에 엘하임 자체가 구름을 뚫고 자랄 정도로 거대한 나무였는데, 이곳은 구름 위의 구름을 뚫을 정도로 높았다.
그리고 보이는 건.
“……저거, 뭔가요?”
“구름?”
“제 눈에는 구름처럼 안 보이는데.”
“내가 봐도 그렇긴 하네.”
새하얗기만 하던 구름 위, 시커멓게 죽은 땅이 떠올라 있었다.
그 위의 하늘은 여태까지 보았던 푸른 하늘이 아니라 밤낮이 바뀐 것처럼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구름 하나를 뚫고 올라왔을 뿐인데,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나저나 대단하십니다. 정말 71층으로 향하는 길을 이렇게 바로 찾아내시다니 말입니다.”
세운은 가지의 가장 앞에 가만히 서서 죽은 대지를 바라보았다.
아홉 번째 쉼터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71~80층까지의 시련. 그 모두는 하나의 거대한 테마로 묶여 있었다.
‘마계.’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미간을 찌푸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저곳의 먹잇감들은 아래보다 맛이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몬스터가 있다 하더라도 저곳의 것들은 그 힘이 분명히 다르다.
마기를 흡수한 몬스터들은 본래보다 더욱 사납고 난폭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적인 능력 자체가 월등히 증폭되니까.
‘잔가지가 무너지는 것도 저것 때문이지.’
잔가지가 괜히 하루마다 무너지고 새로 자라는 게 아니다.
마계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마기는 엘하임의 잔가지를 중독시키고, 엘하임은 끝도 없이 성장한다.
그게 반복되며 71층으로 향하는 길목이 이리도 위험해진 것이다.
“들어가지.”
“네, 세운 씨.”
가지를 오르기 전에 출발식은 이미 마쳤기에, 별다른 인사 없이 세운이 죽은 대지 위로 발을 올렸다.
스으으-
특유의 마기가 일렁거리며 피부를 따끔따끔 찔러왔다.
* * *
71층에 올라오자 보이는 것은 넓게 펼쳐진 척박한 대지였다.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주변에는 작은 잡초 하나 피어나 있지 않았고, 발로 밟는 곳마다 흙이 재처럼 으스러졌다.
그야말로 죽은 대지.
지형지물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 정도면 네 번째 쉼터 때보다 더하지 않습니까?”
“그 지하 벙커 말하는 거지? 하긴, 거기도 멸망에 다다른 곳이었는데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 71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마입(魔入)
– 당신은 진득한 마기가 넘실거리고 사나운 마수와 마족들이 가득한 악마의 세계, 마계에 첫발을 내밀었습니다.
– 하지만, 이곳은 그저 입구일 뿐. 진정한 마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마땅한 자격이 필요합니다.
–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강자존 약자멸(强者存 弱者滅)의 세계, 마계에서 당신의 번호(番號)를 획득하십시오.
앞으로 조금 나아가자 71층의 시련에 대한 정보가 떠 올랐다.
회귀 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내용이었기에 세운은 곧바로 손짓하여 넘겼지만, 다른 이들은 마냥 신비한 눈빛으로 그 내용을 읽고 있었다.
“번호?”
“마계의 존재에게 부여되는 번호입니다. 번호를 받은 자만이 진짜 마계의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저희보고 마족이 되어서 시련을 오르라는 겁니까?”
“그렇게도 볼 수 있겠죠. 조금 더 나아가면 마수와 마족들이 보일 테니, 놈들을 사냥하며 나아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번호가 생기는 겁니까?”
“아닙니다. 번호는 오로지 번호를 지니고 있는 자를 죽여야만 빼앗을 수 있습니다.”
세운이 입을 열지 않아도 먼저 마계를 수차례나 탐험해 보았던 제논이 친절하게 시련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디아블로 길드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제논이 신이라도 난 것처럼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조금 나아가다 보니.
“으, 여기 공기도 기분 나쁘네요. 뭔가 진득한 것 같은 기분.”
“마기(魔氣)입니다. 오래 들이쉬면 체내의 기운이 난폭해지고 심하면 정신이 오염되는 일도 있으니 시련을 마칠 때마다 거주지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 겁니다.”
감각이 예민한 이들은 벌써 마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는 71층부터 80층까지의 시련을 오르며 플레이어가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 중 하나였다.
실제로 시련을 오르는 중에 마기에 잠식되어 시련의 몬스터 중 하나가 되어 버린 플레이어가 존재하기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익숙해지면 포근하게 느껴질 거라며 마기를 만끽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마기는 단순히 배척할 게 아니라, 적절하게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며 조언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척박한 대지를 바라보며 식욕이 감퇴함을 느낍니다.
그 와중에 세운의 성좌들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생기 넘치는 반응을 보였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비록 탑에 귀속되어 버린 시점에서 마계는 마신들이 기억하는 고향과는 다르겠지만, 느껴지는 기운만은 고향의 그것과 비슷할 테니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각자 번호를 획득하고 다음 층으로 이동한다.”
세운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본래 71층의 몬스터들은 마기를 흡수한 만큼 지금까지 마주쳐 왔던 몬스터들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혼자서 다니다가는 강력한 마수들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기기에 십상이다. 세운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본래는 단체로 행동하는 게 훨씬 안전하겠지만, 디아블로의 여러분이라면 각자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분들의 무력은 71층에서 위협을 느낄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음, 알겠어요. 그럼 일단 개인행동을 하되, 아름이나 다운이처럼 전투가 주력이 아닌 사람들은 한 쌍을 이루어서 다니도록 할게요.”
“응, 언니!”
디아블로 길드라면 고작 마계의 입구에서 위협을 느낄 수준이 아니었다. 청해 길드 역시 마찬가지.
이미 몇 번이고 71층을 지나쳐 온 그들이었기에, 이곳 정도는 눈 감고도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남은 건 방향.
나무나 바위, 산 등. 그 어떠한 기준점도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냐는 것인데…….
‘저쪽인가.’
세운이 가진 여정의 지침표는 이미 그 방향을 지목하고 있었다.
목표는 마계의 입구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몬스터.
끝자리 번호의 몬스터들이 치고받고 싸우며 번호가 수시로 뒤바뀌는 이곳에서, 고고하게 자신의 번호를 지키고 있는 최강의 몬스터.
‘데들리 슬라임.’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당신의 목표를 알아차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그 정도면 꽤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될 것 같다며 입맛을 다십니다.
녀석을 사냥하기 위해 세운이 보랏빛 날개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