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0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09화(509/675)
제 509화
이곳은 마계의 입구.
아니, 그보다는 입구 앞 현관 정도가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본격적으로 마계라고 지칭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련에서 언급한 ‘번호’가 꼭 필요하니까.
그 때문일까?
이곳에는.
“크아아아악!”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케륵, 츳. 나약한. 놈들이.”
“시이잇-”
수많은 마수와 마족이 끝없이 태어나고, 싸우고, 죽으며 살벌한 지옥도(地獄道)를 보여주고 있었다.
수분기 하나 없이 재처럼 휘날리던 대지에는 녀석들의 피가 스며들어 늪처럼 눅눅해졌고, 그 위에 새로운 시체가 풀썩 쓰러져 깊게 빠져들었다.
죽고, 또 죽인다.
그 지옥 같은 과정이 반복되며 번호를 받아야만 진정한 마계의 ‘악마’로 인정받는 것이다.
– ‘다크 웨어 울프’를 포식하였습니다.
– ‘다크 리자드’를 포식하였습니다.
…….
– 양분을 흡수하여 근력이 0.1, 민첩이 0.1 상승합니다.
번호를 받지 못한 몬스터에게 제대로 된 이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기를 흡수한 탓에 털이나 피부가 검게 물들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전까지 마주쳐온 몬스터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도 맛은 다른 모양인지.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새로이 들어온 먹잇감들이 너무 텁텁하다며 냉수를 들이켭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의 몬스터들은 어쩜 이리 하나같이 맛이 없냐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폭식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베엘제붑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어차피 능력치도 별로 안 오르는데, 사용하지 말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군자는 먹잇감 앞에서 불평하지 않는다며 차분하게 텁텁한 식감을 음미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다 보니 텁텁한 식감 안에서 은은한 단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운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생각을 읽은 것인지 베엘제붑의 태도가 돌변하였다.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능력치가 오르는 게 어디인가?
어차피 지나가는 길에 몬스터를 정리하는 것쯤이야 간단하니, 별 어려움 없이 베엘제붑의 배를 불릴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피융-
“악마인가.”
한창 빠르게 허공을 비행하고 있던 세운에게 기다란 화살 하나가 쏘아졌다.
화살촉에 시꺼먼 액체가 번들거리는 보아 독이라도 묻혀 둔 모양이다.
깡!
가뿐하게 화살을 쳐낸 세운이 만병지함에서 아펠리온을 꺼내고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여정의 지침표 덕분에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쯤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날개를 완전히 접고 가속하자 창끝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서리가 날카롭게 뿜어져 나왔다.
– 내공을 통해 빙룡창법의 제삼 초식, 빙룡낙하(氷龍落下)가 강화됩니다.
세운이 평소에 사용하던 초식이었지만, 그 형태가 완전히 달라졌다.
창끝에서 흘러나온 빙룡의 수가 더 많아지고, 투명한 얼음 비늘은 더욱 섬세해졌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빙룡들.
최후에는 소룡들이 합쳐져 대룡의 형상을 이루더니.
“키으윽? 어째서 마입에 용이……!”
콰아아아앙-!!
세운에게 화살을 쏘아낸 악마를 꿰뚫었다.
아니, 빙룡의 형상으로 뒤바뀐 창끝은 악마를 꿰뚫는 게 아니라 형체도 남기지 않고 잔혹하게 짓이겼다.
얼음 가루가 흩어지고, 그 중심에서 아펠리온을 지지대 삼아 자리에서 일어난 세운이 주변에 생긴 얼음 지대를 둘러보며 만족했다.
‘이 정도인가.’
최근, 세운은 이십 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얻었다. 그와 함께 네 개의 심공을 합하여 합공 ‘태극신공’을 만들어 냈다.
그 덕분에 내공을 다스리는 능력이 발전하였고, 사용하는 무공들의 위력 또한 증가했다.
평소에 주로 사용하던 초식이었던 빙룡창법이 이리도 강력하게 변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 서열 99,999,052위의 악마, ‘뎃 포르체’를 쓰러트렸습니다.
– 쓰러트린 악마의 번호가 당신에게 이전됩니다.
– 시련의 통과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이대로 마입을 지나면 다음 시련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서열 99,999,052위의 악마.
세운이 기억하기로 마계에 존재하는 번호는 총 일억 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억 개에서 하나가 모자란 구천구백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
그 안에 들어가면 악마로서의 힘과 ‘이름’을 얻을 수 있다.
방금 세운이 짓이겨 버린 악마도 세운이 워낙 강력했기에 한 방에 절명해 버리고 말았지만, 번호를 받은 악마답게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에 걸맞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뭐, 원래 문제는 지금부터지.’
조금 귀찮을 뿐이지, 마입에서 악마를 사냥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지금부터 마입을 통과하기 전까지다.
이곳은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
마계에 존재하는 마수와 마족들은 번호를 지닌 인간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는다.
오히려 번호를 지니고 있는 다른 마수나 마족보다 더 만만하게 보며 그 목숨을 노려온다.
플레이어는 그 수많은 도전자를 막아내며 마입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게 바로 71층의 시련이 가진 참된 난이도였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그래도 번호가 달려 있어서인지 씹을 맛은 있는 것 같다며 먹잇감을 질겅질겅 씹어댑니다.
이걸로 71층의 통과 조건은 달성했다.
세운이라면 번호를 노리는 마수와 마족들에게 방해받을 틈 없이 날개를 펼치고 마입에 진입하는 순간 다음 층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수는 없지.’
71층 같은 곳을 가볍게 통과할 수는 없었다.
당장 번호가 달린 악마에게 폭식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 이상의 능력치를 얻을 수 있다.
히든 던전 같은 건 없어도, 번호 달린 몬스터 전부가 영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서클도 얼른 채워야 하고.’
세운의 경지는 현재 8서클 유저 수준.
즉, 이제야 막 8서클에 도달한 수준이다.
카탈락카스의 드래곤 하트를 사용하여 9서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 서클을 가득 채울 필요가 있었다.
수준이 수준이니만큼 그동안 아무리 눈을 감고 마나를 받아들여도 여덟 번째 서클은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백 년이 지나도 전부 채우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지경.
그런 세운에게 폭식의 권능으로 얻는 마나는 무엇보다 소중했다.
‘신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까.’
최근 포세이돈에게 들은 올림포스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좀 있으면 흑익의 길드장을 만나 루시퍼와 끝장도 봐야 할 테고, 마계의 끝자락에는 ‘분노의 신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최대한 빨리 신과 대적할 만큼 힘을 키워야 한다.
성흔도 성흔이지만, 9서클에 도달한다면 충분히 반신에 준하는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콰직, 콰직!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역시 질보다는 양이 최고라며 입 안 가득한 먹잇감에 만족합니다.
세운의 눈에 띈 악마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그래도 나름 번호까지 획득한 마계의 악마들이고, 그중에는 이 마입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내며 슬슬 본격적으로 마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놈들도 있었는데.
8서클에 이십 갑자에 이르는 경지에 오른 세운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 서열 99,992,779위의 악마, ‘가벨캬르’를 쓰러트렸습니다.
– 서열 99,988,931위의 악마, ‘델체’를 쓰러트렸습니다.
…….
– 쓰러트린 악마의 번호가 당신에게 이전됩니다.
그럴 때마다 세운의 서열이 슬금슬금 높아졌다.
그래봐야 마계에 진입하기도 전이라 악마들의 서열이 다 고만고만했지만, 보이는 족족 악마를 쓰러트리고 있으니 가만히 있다가 서열이 밀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생겨났다.
‘다 와 간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형지물 따위 존재하지 않던 마입의 외곽에 처음으로 눈에 띄는 무언가가 드러났다.
작은 언덕. 아니, 작은 산에 가까운 크기의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산이 미묘하게 꿈틀거리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찾았다.’
회귀 전의 세운이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중심을 피해 외곽 중에서도 최외곽으로 숨어서 이동하다 마주친 괴물.
데들리 슬라임.
슬라임이라고는 하지만, 놈은 액체로 이루어진 몬스터가 아니었다. 수백, 수천. 혹은 그 이상의 몬스터가 한데 뒤섞여 만들어진 몬스터다.
세운조차도 녀석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확실한 건 녀석이 71층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라는 거였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눈을 반짝입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맛과 양을 동시에 사로잡을 만한 먹잇감이라며 한껏 기대합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큰 것 같네.’
멀리서 보아도 작은 산이 떠오를 정도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몬스터였다.
“끄워어어어!”
“카아아악!”
“끼이이이익…….”
녀석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몬스터들이 각기 다른 비명을 내질렀다.
몸을 굴리듯이 이동하고 있는 데들리 슬라임의 특성상, 바닥에 깔리기 직전 어떻게든 도망가기 위해 손을 휘젓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바닥에 짓눌린 후에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뼈와 관절이 으스러진 채로 반대쪽에서 떠올랐다.
‘의지만 있었으면 진작에 마계의 중심부로 향했을 놈이지.’
데들리 슬라임에게 의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먹고, 움직일 뿐.
마수나 마족들의 투쟁 본능이 워낙 강해 저렇게 이지 없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도전자가 끊임없이 몰려든다.
그 덕분에 녀석은 외곽에서 가만히 굴러다니는 것만으로도 높은 서열과 전투력을 얻을 수 있었다.
“잘 가져가마.”
그리고 그 서열과 전투력이 바로 세운이 탐내는 것이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이 망설임 없이 마법을 쏘아냈다.
지옥의 불길이 담긴 불덩이. 그 뜨거운 열기가 세상 한가롭게 마입을 굴러다니던 데들리 슬라임의 전신을 뒤덮었다.
“꺄아아아악!”
“크아아악!”
“끄르르르륵!”
지옥의 불길은 닿은 대상을 잿더미로 만들기 전까지는 꺼지지 않는다. 제아무리 거대한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지옥의 불길에 전신이 뒤덮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녀석이 불을 끄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굴렀지만, 불길은 결코 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파아아…….”
데들리 슬라임이 우뚝 멈춰서더니, 머리가 웅웅 울릴 정도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바로 데들리 슬라임의 진짜 목소리.
그 직후, 녀석은 세운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국!
“끼야아아악!”
“쿠아아악-”
지옥의 불길로 뒤덮여 불덩이가 된 데들리 슬라임. 산만 한 녀석이 빠르게 굴러오는 모습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아무리 헬 파이어라 하더라도 녀석의 표피를 뒤덮은 몬스터를 걷어내는 데도 한참이 걸릴 것이다.
이렇다 할 공격기는 없지만, 저 거대한 덩치로 굴러오는 것부터가 최고의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녀석을 보며, 세운이 검을 쥐어 잡았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확인할 수 있지.”
내공이 이렇게나 늘었음에도 엘하임의 사냥터에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차마 사용하지 못했던 무공을 사용해 보기 위해 차분하게 검을 휘둘렀다.
태극신공으로 인해 극심한 파극(破極)의 기운으로 뒤바뀐 내공에 뒤랑달에 전달되어 검날을 검게 물들였다.
스르릉-
세운이 그 상태로 검을 들어 올려 상단세에 가까운 자세를 취한 뒤 검 손잡이가 으스러질 듯이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뒤랑달과 함께 마계의 하늘이 먹을 푼 것처럼 시꺼멓게 암전되었다.
그 상태로 세운이 검 끝을 아래로 향하자.
– 내공을 통해 파극암검의 제사 초식, 붕천(崩天)이 강화됩니다.
쿠르릉-!!
검게 물들었던 하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산산이 조각난 유리 조각처럼 부서진 하늘은 비처럼 쏟아져 세운에게 굴러오던 데들리 슬라임에게 내리꽂혔다.
“아파……!!”
데들리 슬라임은 하늘 조각이 꽂힌 표피를 벗겨내고 다시금 몸을 굴리려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푹, 푸북!
하늘에서는 수십, 수백, 수천 개의 검은 조각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데들리 슬라임의 몸을 꿰뚫고, 더 이상 구를 수 없도록 주변의 대지에 박혀 장애물을 형성하였다.
“아파, 아파, 아파아아아……!”
그렇게 한 꺼풀.
또 한 꺼풀.
검은 조각이 박힐 때마다 데들리 슬라임의 몸이 점차 벗겨졌다.
벗겨지고, 또 벗겨지고. 데들리 슬라임의 표면이 완전히 걷어지고 가장 깊은 곳에서 새까만 구체에 파문이 일었다.
“아파, 그만, 나랑 합치자……!”
저 구체가 바로 데들리 슬라임의 본체.
구체에서 일어난 파문은 곧 파도처럼 크게 일렁이며 맹수의 아가리처럼 세운을 집어삼키려 하였지만.
“단, 흡수되는 건 너다.”
그전에 새까맣게 변한 세운의 검 끝이 녀석의 핵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