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1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10화(510/675)
제 510화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더 빠르게, 더 날카롭게 움직이라며 당신을 재촉합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지금의 당신이라면 더 많은 신성도 받아들일 수 있다며 속도에 겁먹지 말라고 종용합니다.
“네!”
서거거걱-!!
“키에에엑-”
유서아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주변의 몬스터가 빗살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쌍검은 몬스터를 스치며 급소를 베어낸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움직임을 제어하기 이전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으로도 멀미가 일어 구토를 내뱉을 만한 속도.
몬스터들은 바람처럼 빠른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잔영에 손을 내뻗으며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그렇다고 신성을 함부로 낭비하면 안 된다고 조언합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신성을 제어하지 못하면 독니는 무뎌지고, 기껏 정제한 독은 바닥으로 흘러내릴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그녀의 쌍검에 흐르던 맹독은 예전처럼 뚝뚝 흘러내리지 않았다.
쌍검의 검날에 딱딱하게 굳은 채로 검을 더욱 날카롭게 벼르고, 먹잇감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먹잇감이 눈앞에 도달하는 순간.
콰직!
그 어떤 맹독보다도 진하게 응축된 극독이 먹잇감의 상처를 파고들었다.
아룬의 꽃잎으로 만든 영약을 마신 후, 그녀는 단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신성의 양이 커진 것만 아니라 신성을 다루는 능력 역시 엄청나게 상승했다.
이는 그저 영약의 힘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영약을 마신 후, 남은 시간 동안 그 누구보다 열심히 바알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신성을 다루는 법을 깨달은 결과였다.
‘강하다.’
유서아가 마기로 인해 앞발이 철퇴처럼 두껍게 변한 곰의 겨드랑이를 베어내며 생각했다.
아직 본격적인 마계라 할 수 없는 만큼 이제 막 마기를 받아들인 몬스터들일 뿐인데, 70층 이전에 마주쳤던 몬스터의 무력과는 극심하게 차이 났다.
심지어 서열이 붙은 악마들은 바알의 극독으로도 바로 쓰러지지 않아 심장에 직접 쌍검을 박아넣고 극독을 주입해야 할 지경이었다.
쿠궁!
– 서열 95,881,124위의 악마, ‘젠 안달키’를 쓰러트렸습니다.
– 쓰러트린 악마의 번호가 당신에게 이전됩니다.
제법 높은 서열의 악마를 쓰러트렸지만, 유서아는 만족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운은 그녀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대지가 덜덜 떨려왔다.
아니, 떨리는 수준을 넘어 한순간 불쑥 치솟으며 그녀의 발이 허공에 붕 떠 버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폭음의 정체를 금방 알 수 있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계약자의 힘에 만족합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역시 힘이 최고라며 땅을 쿵쿵 울려댑니다.
강한철.
그 역시 아룬의 꽃잎으로 만든 영약을 받아먹고 아가레스에게 신성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그 방식은 지금 유서아가 익히고 있는 법과 정반대.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저편의 무식함에 고개를 젓습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머리를 쓰는 건 힘이 부족한 놈들이나 그런 거라며 저편을 비웃습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머리가 무식하니 몸이 고생하는 것뿐이라며 독니를 드러냅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이참에 서열 정리를 다시 해야 하지 않겠냐며 두 눈을 번뜩입니다.
유서아가 신성을 섬세하게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다면, 강한철은 힘을 한순간에 터트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힘의 낭비가 엄청난 방법이긴 하지만.
“켁! 케힉!”
“그어어어어억-”
“카학!”
당장 무너진 지반 사이로 떨어져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만약 강한철이 지닌 신성을 한꺼번에 터트리는 법을 익힌다면, 주먹 한 방으로 성 하나를 무너트리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리라.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질 수 없다며 더욱 빠르게 검을 휘두르라며 닦달합니다.
“네!”
아가레스와의 신경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유서아에게 쏟아내는 바알이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크게 대답하며 바알의 말을 따랐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좋은 스승이 바로 바알이었으니까.
언제까지고 세운에게 검술이나 경신법을 알려달라며 붙어 있을 수는 없을 노릇이다.
최근 들어서는 세운도 자신의 힘에 적응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대련을 줄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절대 뒤처지지 않을 거예요.’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가 빠르게 마계의 서열을 쟁취하고 있었다.
* * *
– 서열 89,998,799위의 악마, ‘아포카리 베베눕스’를 쓰러트렸습니다.
– 쓰러트린 악마의 번호가 당신에게 이전됩니다.
‘89,998,799위라…….’
비록 끝자락이긴 하지만, 맨 앞자리가 달라져 있었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71층에 존재하는 몬스터 중에서 앞자리가 8인 몬스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시스템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이 점을 인정하여 세운에게 추가 공적치를 제공했다.
당연하게도, 이다음은 폭식의 권능을 사용할 차례였다.
– ‘아포카리 베베눕스’를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과연, 쓰러트린 보람이 있는 능력치 상승량이었다.
어지간한 악마를 집어삼켜도 소수점의 능력치가 오를까 말까 한 수준이었는데, 모든 능력치를 제대로 올려주다니.
‘하긴, 서열이 저렇게 찍혀 있어도 실질적인 서열은 그 이상이었을 테니.’
서열을 올리기 위해서는 해당 서열의 악마를 죽이거나, 자신보다 앞에 존재하던 악마가 죽고 공석이 유지되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로, 저 아포카리 베베눕스라는 데들리 슬라임은 더 나아가지 않고 이 자리에서 만족한 채 71층을 배회했다.
아마 실제로 이곳에서 서열을 올린 건 절반쯤이고, 나머지는 오랜 시간 이곳에서 서열을 유지하며 앞의 공석으로 인해 서열이 조금씩 올랐던 게 아닐까 싶었다.
저 힘을 가지고 72층으로 넘어갔으면 더 높은 서열을 얻을 수 있었겠지.
‘이제 가 볼까.’
더 이상 악마들을 사냥해도 이 이상으로 서열을 올릴 수는 없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해도 71층에 히든 던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더 머물 이유가 사라졌으니, 세운은 튜리크의 날개를 펼치며 마계의 입구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톡톡 터지는 오색 캔디를 씹어먹는 것만 같다며 먹잇감의 맛을 충분히 음미합니다.
입구를 찾아내는 건 금방이었다.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비행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평평한 지평선 대신 마계의 입구를 알리는 거대한 문이 보였기 때문이다.
문이라고는 하여도 중심이 뻥 뚫린 반구 모양의 돌덩이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크르르르- 온다-”
“잡아라, 잡아라!”
“캬하하하하핫!”
“이번엔 내 차례다!”
진정한 마계의 입구 앞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나의 군대로 보아도 될 법한 수의 몬스터들은 휴전을 맺은 것처럼 전쟁을 멈추고 있다가, 세운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이에나들.’
72층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몬스터든 플레이어든 결국 저 석문을 넘어야만 한다.
저놈들은 그걸 알고 석문 앞에서 진을 치고 서열을 획득한 플레이어를 노렸다.
솔직히 세운이라면 저들을 무시하고 날아가 석문을 통과할 수도 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상다리가 부러지겠다며 엄청난 양의 먹잇감에 환호합니다.
하지만 몬스터가 이렇게나 몰려 있는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저 정도 양이라면 못 해도 능력치 몇 개는 올릴 수 있어 보인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디스페어 오브 윈드(Despair of wind) ]– 절망의 바람을 소환하여 범위 내의 모든 적을 휩쓸어 버리는 녹탑의 최대 범위 마법.
강력한 8서클 마법 중에서도 가장 넓은 범위를 지닌 공격 마법, 디스페어 오브 윈드.
태풍이 아니다.
저토록 거대하게 휘몰아치고 있는데도, 세운이 만들어 낸 바람은 폐허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스산한 울림만을 흘려대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내 번호……?”
“케에에…….”
“도, 도망.”
“비켜! 비켜, 비켜어어어억!”
그 바람을 지켜본 몬스터들의 동공에 절망이 깃들었다.
위기감을 깨닫고 도망이라도 치면 다행.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삶의 의지를 잃고 손을 축 늘어트렸다.
하지만, 도망치거나 도망을 포기하거나 그 결과는 같았다. 세운의 마법은 석문 앞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평등하게 뒤덮었기 때문이다.
– 폭식의 권능으로 ‘석문 앞 마입(魔入)’ 전체를 지정하였습니다.
–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를 덮쳐옵니다!
콰득, 콰득!
폭식의 어금니는 절망의 바람에 휩싸여 죽은 몬스터를 씹어 나갔다.
닿기만 해도 피부가 벌어지고 폐가 팽창하여 풍선처럼 터져가는 상황에서 바로 옆의 동료가 잡아 먹히는 상황이라니.
그 공포스러운 상황에 세운이 가진 공포의 힘까지 힘을 발하자, 몬스터들은 공포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었다.
“카악, 카아아악-!”
개중에는 이미 높은 서열을 지니고 숨어 있던 몬스터나 바람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 덕에 목숨을 붙인 몬스터도 있었지만.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서걱.
그런 녀석들에게는 어김없이 세운의 검이 찾아왔다.
절망의 바람 속에서 유유히 날아들어 목숨을 갈취하는 세운의 모습은 사신과 다를 바 없었다.
‘생각보다 힘드네.’
디스페어 오브 윈드.
대범위 마법답게 소모되는 마나의 양이 엄청났다.
그걸 석문 앞 모든 몬스터를 죽일 때까지 유지했으니, 아무리 인피니티 서클을 지닌 세운이라 하여도 8서클 유저 수준인 지금으로는 꽤나 버거웠다.
세운은 폭식의 어금니로 인해 텅 비어 버린 석문을 유유히 통과하였다.
– 71층의 시련 ‘마입(魔入)’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히든 퀘스트 ‘움직이는 산’ 완료.
– 히든 퀘스트 ‘약육강식’ 완료.
…….
– 총 누적 공적치 5,805,000point
– 축하드립니다! 71층의 시련을 랭킹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다음 72층으로 넘어가기 직전, 세운이 고개를 숙여 손끝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쉬었다 가야 하나.’
71층의 마기를 한껏 들이켠 탓에 손끝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생명에 지장이 가지는 않지만, 마기를 많이 들이마실수록 체내의 기운이 난폭해지고 이성이 마기로 물들게 된다.
‘아니지.’
회귀 전의 기억으로 거주지를 향하려던 세운이 잠시 레비아탄의 말을 떠올랐다.
마기라고 하여도 결국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실제로 수준이 높은 악마들은 마기를 흡수하면서도 이지를 잃지 않고 더욱 강한 힘을 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차분하게 눈을 감고 단전을 움직였다.
태극의 힘을 담게 된 단전이 체내의 마기를 끌어모아 한데 담았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흐뭇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더도 없이 난폭한 기운인 마기.
그것들이 단전에 담기자마자 아랫배에서 쿡쿡 쑤시는 듯한 통증이 일었지만, 태극신공의 묘리는 마기마저 받아들였다.
어차피 모든 기운은 하나의 기운으로부터 시작되는 법.
마기를 현재 세운이 가진 기운 중 가장 가까운 기운인 파극심공의 기운과 동화시켜, 이윽고 순수한 내공으로 돌이켰다.
‘된다.’
손끝의 검은 기운이 사라졌다.
이 방식이라면 마기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물론, 다른 곳보다도 빠르게 내공을 모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 외의 깨달음에 세운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