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1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12화(512/675)
제 512화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끄우으으으윽!”
“끄우우욱!”
등활지옥은 팔열지옥 중에서도 열기가 가장 덜한 곳이었다.
아무리 팔열지옥에서 살아가는 벌레라 하더라도 세운이 일으킨 지옥의 불길에는 살아남지 못했다.
그 많던 벌레가 전부 불길에 휩싸여 사람을 닮은 비명을 내지르며 꿈틀거렸다.
딴에 등활지옥의 마물이라고 쉽게 죽지는 않았지만, 어찌 저항해 볼 틈도 없이 몸이 타들어 갔다.
단 하나의 존재만을 빼고 말이다.
“살아나라, 살아나라! 살아서 저 죄인을 짓눌러라!”
쿵, 쿵!
“끄으으아아악!”
지옥의 불길 속에서도 멀쩡하게 튀어나온 옥졸이 쇠몽둥이로 바닥을 힘차게 내려찍었다.
그 웅장한 외침이 등활지옥을 가득 채우며, 잿더미가 되어 흩날리던 벌레들을 다시 일으켰다.
벌레들이 괴로운 듯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살아나 세운에게 톱니처럼 겹겹이 쌓인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세운도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게 네 약점이었지.”
죽은 벌레를 되살리기 위해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순간.
그 순간이 회귀 전의 세운이 던전을 탈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옥졸의 빈틈이었다.
이전에는 빈틈을 알아보고도 녀석을 한 번에 무찌를 방법이 없어 공략을 포기하고 던전을 빠져나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오 초식, 혈랑중엽(血狼衆獵)이 강화됩니다.
콰직, 콰직!
세운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흘러나온 붉은 검기가 늑대의 모습이 되어 옥졸을 물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 수가 늘어났고, 그 거대하던 옥졸의 전신에 수십 마리의 늑대가 붙어 힘줄을 끊고 혈관을 터트렸다.
말 그대로 혈랑중엽.
피처럼 붉은 늑대 무리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천살(千殺)의 죄인은 벌을 받으라.”
그럼에도 옥졸은 멈추지 않았다.
검기로 이루어진 늑대들을 주렁주렁 단 채로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쇠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사방은 다시 살아난 벌레로 가득하고, 머리 위로는 쇠몽둥이가 내려오는 상황.
세운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공격뿐이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육 초식, 혈랑항연(血狼項撚)이 강화됩니다.
뚜둑!
검으로 무언가를 베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혈랑검법을 사용할 때 들려오는 무언가 뜯기는 듯한 난폭한 소리도 아니었다.
마치, 뼈가 꺾이는 듯한 굉음.
그 소리를 증명하듯.
“죄인…… 컥!”
옥졸의 머리가 반 바퀴, 아니, 한 바퀴에 가깝게 돌아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목덜미에 그려진 붉은 실선이 크게 벌어지더니 잘려 나간 머리를 들어 올리며 피 분수를 일으켰다.
“역시, 이런 전투에서는 혈랑검법이 제일 깔끔하단 말이지.”
세운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무공을 사용하지만 그중에서도 혈랑검법은 그 어떤 무공보다 손에 익었다.
지금처럼 새로운 초식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사용하는 초식임에도 수백 번 사용해 온 것처럼 검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어찌나 깔끔하게 휘둘렀는지, 목을 베었음에도 검에는 피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 폭식의 권능으로 ‘등활지옥(等活地獄)’ 전체를 지정하였습니다.
–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를 덮쳐옵니다!
옥졸을 포함하여 옥졸과 함께 죽어 나간 벌레들이 베엘제붑에게 삼켜졌다.
마계의 몬스터가 맛이 없다며 툴툴대던 베엘제붑도 이곳의 몬스터들은 입맛에 맞는지 요란한 메시지를 연신 쏟아냈다.
그러던 중.
“천살의 죄를 지은 자가 등활지옥의 심판을 거절한 죄.”
“십 주야의 형벌을 추가하겠다.”
“죄인은 등활지옥의 형벌을 받으라.”
방금 막 쓰러트린 옥졸과 똑같이 생긴 이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꾸으으으으윽-”
수백 마리. 아니, 천 마리가 넘어가는 벌레들을 동반한 채로.
새삼스럽게 회귀 전에 옥졸의 빈틈을 보고도 도망을 선택한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런 적들에게 둘러싸인다면 회귀 전의 세운은 쉬이 도망가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죄인은, 벌을 받으라.”
시야의 끝에서 또 다른 이가 나타났다.
평범한 옥졸과는 다르게 쇠몽둥이 대신 흉흉한 쇠갈퀴를 들고 있는 악마.
옥졸들을 다스리는 악마, 옥사가 시뻘건 벌레들을 대동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등활지옥.
다시 생각해 보아도 말도 안 되는 난이도였다.
그럼에도 세운은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영원의 형벌을 받으라고 한 주제에, 추가는 무슨.”
“갈.”
세운의 검이 멈출 줄 모르고 움직였다.
* * *
“죄인을 잡으라.”
등활지옥의 끝.
오로지 지옥을 다스리는 자만이 앉을 수 있는 지옥의 옥좌 위에서 장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동을 왕왕 울리는 왕의 명령에 수많은 신하가 일제히 목청을 높였다.
“죄인을- 잡으라!!”
신하들. 즉, 등활지옥을 관리하고 있던 옥졸이나 옥사 등 수많은 악마가 세운을 향해 무기를 들어 올렸다.
당연하게도 녀석들이 다루는 벌레 역시 세운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옥졸 하나만 해도 세운이 직접 칼을 휘둘러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놈들인데, 그런 놈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청해가 공략하지 못했을 만했네.’
엘하임에서 가장 강력한 길드라는 타이틀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이 정도면 다음 쉼터에 도달한 길드 정도는 되어야 도전할 만하다.
아니, 솔직히 그걸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아홉 번째 쉼터에 존재하는 길드 중에서도 발할라 같은 최상위 길드가 아니라면 공략이 어려웠을 거다.
심지어 세운처럼 혼자서 등활지옥을 공략하려면 난이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 청탑의 묘리에 따라 ‘프로즌 템페스트’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다가오는 악마들을 보며 세운이 뒤랑달을 세게 말아 쥐었다.
‘8서클 마법을 담는 건 처음이지만…….’
어렵다고 언제까지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실전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연습할 때 몇 번 실패했다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시도해 보아야 한다.
‘결국, 방법은 같다.’
세운이 당장에라도 터져나갈 듯이 맹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는 냉기의 폭풍우를 억눌렀다.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청탑의 묘리를 한껏 발동하고, 마법도 일부러 청탑의 수류 마법을 선택하였다.
끼이이잉-
뒤랑달이 프로즌 템페스트를 받아들이며 거세게 진동하였다.
평범한 검이었다면 진동을 일으키기도 전에 터져나갔을 것이다.
오직 뒤랑달이기에 8서클 마법을 이렇게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공을 쓸 여유는 없다.’
내공은 떨려대는 검을 진정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이상 기교를 부렸다가는 무공을 사용하기는커녕 품 안의 프로즌 템페스트가 폭주할 위험이 있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자신의 식사를 위해 무리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에 감동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이겠다며 입을 크게 벌립니다.
베엘제붑의 메시지를 무시한 세운이 검을 높게 들었다.
지금 필요한 건 복잡한 무공의 초식이 아니라 단순한 내려 베기.
집중해야 할 건 뒤랑달에 담긴 채로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는 8서클 마법, 프로즌 템페스트다.
“죄인이여.”
“죄를 거부한 죄를 받으라.”
“죄인의 신분으로 옥왕의 앞에서 고개를 쳐든 죄를 받으라.”
“그대의 형벌은 영원할지니.”
“등활지옥의 망령이 되어라.”
앞에서 옥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지만, 세운의 귀에는 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전신의 감각이 뒤랑달에 몰려 있었던 탓이다.
수천 마리의 벌레가 산을 이루고, 옥졸들의 쇠몽둥이가 세운의 머리 위로 올라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옥사들이 쇠갈퀴를 앞으로 내지르고, 옥좌 위의 옥왕이 손을 내려 형벌을 선고하는 순간.
“루인.”
– 크릉!
세운이 눈을 뜬다.
오른손등에서 튀어나온 루인이 그대로 뒤랑달에 깃들며, 떨려대던 검신이 일순간 멈춘다.
그 후, 세운의 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올곧게 아래로 떨어졌다.
콰과과과과괏-!!!
격정의 한기를 품은 냉기의 폭풍우가 옥왕의 왕실을 반으로 갈랐다.
그사이에 뒤랑달을 닮은 수천 개의 얼음 칼날이 옥왕의 신하들을 난자한다.
벌레들은 이미 한기로 꽁꽁 얼어붙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되었고, 옥졸들은 전신에 수십 개의 구멍이 꿰뚫린 상태로 차갑게 얼어간다.
그 차가운 얼음 폭풍 속에서, 단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아라. 살아나라.”
쿵, 쿵!
옥왕이 주먹으로 옥좌를 내려친다.
그러자 얼음 동상이 되었던 병사들이 덜덜 떨려댄다. 얼음 동상에 금이 일고, 죽음의 순리에서 강제로 깨어난다.
“살아서, 천살의 죄인을 벌하라.”
빠직!
세운의 코앞에서 쇠몽둥이를 휘두르다가 얼음 동상이 되어 버린 선두의 옥졸이 깨어났다.
차갑게 얼어 버린 피부가 뜯겨 나가든 말든, 눈꺼풀이 떨어져라 눈을 뜨고 쇠몽둥이에 힘을 준다.
하지만, 세운은 이미 그의 앞에 존재하지 않았다.
“졸이건, 왕이건. 약점은 같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냉기의 폭풍우 사이에서 세운이 튀어나왔다.
그런 세운의 손에는 8서클 마법을 담느라 무리한 뒤랑달 대신 아킬레우스의 창, 아펠리온이 들려 있었다.
그것도 마몬의 보구가 깃든 모습으로 말이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반란의 최후, 롱고미니아드 ]– 캄라 언덕의 전투에서 아서왕이 반란을 일으킨 아들 모드레드를 꿰뚫을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왕의 창.
세운이 괜히 보스 몬스터를 앞에 두고 자잘한 몬스터를 상대했던 게 아니었다.
옥졸이 벌레들을 되살릴 때 빈틈이 생겨나듯이.
옥사가 옥졸을 되살릴 때 빈틈이 생겨나듯이.
옥왕 역시 자신의 신하를 되살릴 때 유일한 빈틈이 생겨난다.
여정의 지침표가 있는 이상. 아니, 여정의 지침표가 없더라도 세운에게는 적의 약점과 빈틈을 찾아내는 지혜와 경험이 있었다.
– 아킬레우스의 창, 아펠리온이 ‘롱고미니아드’에 잠든 왕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롱고미니아드’를 통해 진정한 왕이 재현됩니다.
푸욱!
옥왕의 심장에 박힌 롱고미니아드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아가 왕좌를 꿰뚫었다.
그 순간에도, 옥왕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숨이 죽어감과 함께 죽어가는 신하들에게 장엄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명령한다.
“죄인을…… 벌하라.”
그리고 그건, 옥왕의 유언이 되었다.
쿠궁!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옥왕의 시체에서 건질 건 없어 보였기에, 옥왕을 포함한 왕실의 몬스터를 전부 베엘제붑의 입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던전의 보상은 바로 지금부터였으니까.
‘뭐가 있으려나.’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주변을 빠르게 둘러봅니다.
등활지옥은 회귀 전의 세운도 공략하지 못했던 던전이다.
어떤 보상이 있는지 모르기에 한껏 기대되었는데,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옥왕이 앉아 있던 왕좌.
아펠리온에게 꿰뚫리며 갈라진 틈새 사이로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다.
‘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왕좌를 완전히 무너트렸다.
그러자 왕좌 안에 감춰 있던 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보석함이었는데,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숨겨진 보상인가.’
제아무리 견고한 자물쇠라도 세운이 지닌 만능열쇠에 저항할 수는 없는 법.
세운은 우선 보석함을 챙겨 넣고 주변을 넓게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옥왕의 이름에 어울리는 거대한 보물상자가 저 끝에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수많은 금은보화와 각종 소재, 장비들이 가득했다.
보상을 전부 수습하자마자 어김없이 공략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 올랐다.
– 히든 던전, ‘등활지옥(等活地獄)’을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개인 공적치가 1,000,000point 상승합니다.
– ‘찢어진 분노의 경전(1)’을 획득하였습니다.
세운의 손에 짙은 주황색의 종이가 들렸다.
두루마리의 일부로 보였는데, 딱 보아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그런 쓰레기는 제쳐두고 방금 얻은 보물에 관해 얘기해 보자며 속삭입니다.
쓰레기?
그럴 리가. 이는 세운이 등활지옥을 공략하는 결정적인 이유라 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었다.
‘이걸 여덟 개 모으는 거겠지.’
확실하지는 않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회귀 전에 얻은 정보들을 생각해 봤을 때 이 경전을 여덟 개 모으면 분노의 신전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세운이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한 마지막 칠대 마신.
분노의 마신, 사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걸로 목표는 달성했다.
바로 던전에서 나가 다음 시련의 팔열지옥을 찾아 나서려던 세운이 일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무너지기 시작한 등활지옥의 끝에서 수상한 문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탑의 시스템에 간섭하여 저런 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였다.
탑의 관리자.
그리고 세운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만한 관리자 역시 하나뿐이었다.
“튜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