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1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13화(513/675)
제 513화
세운의 특별 전담관, 튜닝.
그가 특별 전담관으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마주 보고 선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세운 플레이어님.”
“오랜만입니다.”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가 네 번째 쉼터였으니 말입니다.”
네 번째 쉼터, 지하 벙커 데지트.
아니, 세운의 활약으로 인해 지하 벙커에서 빠져나와 ‘시작의 성, 호펜’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린 쉼터.
쉼터의 형태 자체를 바꾸며 세운은 튜닝에게로 호출받아 관리소로부터 ‘신성(新星)’의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덩달아 후보자라는 이름을 받으며 보상으로 받아낸 상좌들의 통신 차단은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 중이었다.
당장 귀찮을 만한 일이 생길 때마다 마신들을 제외한 성좌들의 통신은 전부 차단하였으니 말이다.
최근에 다른 성좌들의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포인트도 그렇지.’
아우터를 쓰러트릴 때마다 얻기로 하였던 공적치의 양은 엄청났다.
덕분에 이번에 엘하임에서 아우터를 쓰러트렸을 때도 상당한 양의 공적치를 얻게 되어 별다른 부담 없이 경매장을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돌려 말하는 건 좋아하지 않으실 테니, 바로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사태도 급하니 말이죠.”
“좋습니다. 그래도 자리는 좀 옮겨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아…….”
튜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막 공략을 마친 탓에 던전 전체가 흔들리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곧 던전에서 튕겨 나가 72층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 대화를 나누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등활지옥을 공략하시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럼, 제 방으로 이동하시죠.”
무너져 가는 던전의 빈틈 사이로 시스템 특유의 푸른 물결이 일렁인다. 물결은 곧 하얗게 변질되더니, 정사각형의 모습으로 굳어간다.
이전에 튜닝과 대면했을 때 보았던 방이다.
여전히 심플해 보이는 작은 책상.
튜닝이 먼저 자리에 앉자, 세운 역시 거리낄 것 없이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9서클 마법을 검에 담아 휘두른 직후였기에 조금 지친 상태지만,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것 좀 드시겠습니까?”
“이건?”
“포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등활지옥을 공략하시고 지치셨을 텐데 무리하게 불러냈으니 이 정도는 드려야죠.”
포션이라고 설명했지만, 겉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차에 가까워 보였다. 향기에서 독 향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자.
– 특수 관리자의 회복제를 복용하였습니다.
– 체력이 모두 회복됩니다.
– 마나가 모두 회복됩니다.
– 내공이 모두 회복됩니다.
…….
그 어떤 회복 물약보다도 뛰어난 성능이 즉시 발현되었다.
무리하게 움직인 근육들이 순식간에 진정되고, 텅 비어가던 서클이 한가득 차올랐다. 내공 역시 마찬가지.
그뿐만 아니라, 무리를 하며 지쳤던 정신력까지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관리자에게 제공되는 피로 회복제 같은 겁니다. 본래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면 안 되지만, 이 공간은 저만의 독립된 공간이니 문제없습니다.”
역시 관리자는 관리자라는 걸까?
혹시나 싶어 한 모금 더 들이켜며 회복제의 레시피를 알아내려 하였지만, 이는 세운조차도 확인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탑의 상식 밖으로 만들어진 관리소만의 회복제인 모양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운이 잔을 내려놓자마자 부드러웠던 튜닝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튜닝이 갑자기 자신을 호출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 혹시 올림포스와 관련된 일로 얘기를 나누려는 걸까?
아니, 관리소에서 거기까지 간섭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아우터인가.’
관리소는 세운을 무언가의 ‘후계자’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그 임무는 탑에 존재하는 아우터를 무찌르는 것.
튜닝이 자신을 찾아와 말할 만한 건 그와 관련된 내용밖에 없지 않을까 싶었고, 그 예상은 뒤에 이어진 튜닝의 말로 증명되었다.
“후보자이신 정세운 플레이어님에게 지명이 하달되었습니다.”
“지명?”
“탑의 두 번째 쉼터. 모래 도시 스카베가 위험합니다.”
후보자에게 하달된 지명과 스카베의 위험.
두 단어가 들려오는 순간, 세운의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스카베의 모래사막에 결계처럼 펼쳐져 있던 거대한 모래폭풍과 그 앞에서 괴물의 동상에게 기도하고 있던 주술사. 그리고 영주의 성 지하에 그려 있던 벽화.
“모래폭풍이 풀린 겁니까?”
“그걸 어떻게…….”
“그럼 폭풍 속에 봉인되어 있던 아우터도 풀려났겠군요.”
“……맞습니다. 얼마 전 정세운 플레이어님이 마주쳤던 ‘폐왕’이라는 남자의 움직임이 수상하여 찾아보다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찾아봤으면 봉인이 풀리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모래폭풍의 주변은 관리소의 모니터로도 감시가 어려운 곳입니다. 변명으로 들리시겠지만, 그나마 스카베까지 지켜보고 있던 덕분에 모래폭풍이 풀리자마자 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세운의 머리가 팽팽하게 굴러갔다.
모래폭풍에 봉인되어 있던 아우터의 정체는 확실히 모르지만, 엄청나게 강력한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단순히 봉인이 풀려난 것도 아니고 폐왕이 연관되어 있다 하니,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긴,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만약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면 아무리 하층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세운의 귀까지 들려왔을 거다.
이 시점에 갑자기 모래폭풍이 풀리는 이변이 일어났다면, 폐왕이라는 자가 무언가 수를 취한 게 분명했다.
“또 하나. 아우터가 나타난 곳은 어째서인지 감시가 원활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자세하게는 알 수 없으나, 그 수가 상당합니다.”
“성벽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모래폭풍이 풀리자마자 정세운 플레이어님에게 즉시 달려온 것입니다. 이후의 정보는 알지 못합니다만, 아직 성벽에 당도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상당한 숫자의 아우터.
게다가 아우터의 특성상 봉인이 풀리자마자 주변의 야생 몬스터를 잠식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를 더욱 늘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보상이라면 이미 생각해 두었습니다. 우선 공적치부터 얘기하자면…….”
“바로 이동시켜 주십시오.”
“……네?”
“한시가 급한 상황이잖습니까?”
다른 상황이라면 보상부터 철저하게 캐물었을 세운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우터와 관련된 일에서 시간을 끌 여유는 없었다.
당연히 예전처럼 보상부터 조율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던 튜닝이 의외의 대답에 입을 뻐끔거렸다.
“보상은 그쪽을 믿도록 하겠습니다. 명색이 제 전담관이시니.”
“아, 아, 물론입니다! 절대 부족하다 느끼지 않으실 만큼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럼 바로.”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스카베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튜닝이 그렇게 말한 즉시 하얀 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과거에 보았던 황금빛 모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세운은 후보자로 임명되며 아우터를 처리하기 위하여 층을 마음대로 횡단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기에 페널티 없이 아래층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정세운 플레이어님.”
튜닝이 허리를 깊게 숙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하얀 방이 완전히 무너졌다.
* * *
“얼른 움직여라! 얼른!”
“다, 단장님! 저희가 빠지면 내성은 누가 지킵니까!”
“상황을 못 들었나? 지금 내성 같은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성벽을 막지 못하면 전부 끝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모래폭풍도 훌륭히 막아왔는데, 어째서…….”
“설명할 시간은 없다! 당장 성벽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명령 불복종으로 최고 형벌에 처하겠다! 이는 영주님의 명이기도 하다!”
스카베로 이동되자마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갑옷과 창이 부딪치며 철컥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을 보니 병사들이 한창 움직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성벽이 아니네.’
곧바로 성벽으로 이동시켜 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세운이 소환된 곳은 스카베의 최중심.
그것도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알려진 스카베의 내성이었다.
“……자네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전에 영주의 호출을 받고 내성에 출입했을 때 보았던 남자다.
‘단장이라고 했었나.’
당장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일면식도 있고, 지금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은 사람이었기에 세운은 곧바로 그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상황은?”
“상황이라니, 설마 우리를 돕기 위해 찾아온 건가?”
“설명이라도 필요한가? 한시가 급한 상황일 텐데.”
“……자네라면 믿을 수 있겠지. 이번 사태가 터지자마자 영주님도 자네 얘기를 꺼냈었으니.”
단장이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가져와 펼쳐보았다.
스카베를 포함하여 사막의 지리가 제법 상세하게 그려진 지도였는데, 그곳에는 이미 검은색으로 적군의 진형이나 방향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남문이다. 모래폭풍에 갇혀 있던 괴물이 그곳을 향해 직진 중이다.”
“한 마리가 아닐 텐데?”
“어떻게 알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거대한 괴물의 주위로 수백 마리의 새끼들이 오고 있다. 아니, 새끼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그것들 전부 어지간한 사막의 괴물들보다 강해 보였으니.”
여기까지는 튜닝에게 들은 정보와 비슷했다.
하지만, 세운은 아우터의 특수성을 놓치지 않았다.
아우터라면 본능적으로 사막의 몬스터들을 잠식하여 수를 늘리는 걸 최우선 했을 가능성이 컸다.
“다른 쪽 성벽은 안전한가?”
“아니다. 남문에 비하면 낫겠지만, 그곳들에도 사막의 괴물들이 다가오고 있다. 모래폭풍의 괴물과 마찬가지로 검은 무언가를 뒤집어쓴 채로.”
“역시.”
세운의 예상이 맞았다.
이렇게 되면 세운이 가야 할 곳은 당연하게도 모래폭풍에 봉인되어 있었던 아우터가 다가오고 있는 남문.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쪽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
‘이들로는 막아낼 수 없다.’
평범한 몬스터라면 몰라도, 아우터에게 잠식당한 몬스터는 이곳의 병사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기껏 해 봐야 진로를 방해하는 게 고작일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병사들마저 아우터에게 잠식당해 순식간에 성벽이 무너질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세운 혼자서 스카베의 네 성벽을 모두 방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염치없지만, 이번에도 부탁할 수 있겠나? 영주님께서도 분명 큰 보상을 내리실 거다.”
“보상은 당연한 거고, 성벽 지키고 있다는 병사들 전부 물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자네가 괴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알아. 하지만, 너희가 있어봤자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 병사들을 무시하는…….”
“무시가 아니다. 아우터에게 잠식당한 몬스터를 보고 짐작하지 않았나? 저것들은 생명체를 잠식하며 수를 늘려간다. 너희들이 잠식당하면 더 귀찮아질 뿐이야.”
“그렇다고 해도 수비를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하라고 한 적 없어.”
세운이 길드창을 열었다.
한 길드의 수장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권한.
[ 소집 명령 ]“스카베는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
세운이 소집 명령을 실행하는 순간, 하늘에서 붉은빛이 쏘아졌다.
붉은빛은 곧 아래로 곧장 떨어지며, 가장 먼저 한 명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까지도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지 그녀가 들고 있는 쌍검에 악마들의 피가 새까맣게 묻어 있었다.
“세운 씨, 무슨 일인가요?”
분명 그녀도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을 텐데, 소집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을 보니 전투마저 포기하고 소집 명령에 응한 것이 분명하다.
그다음으로도 디아블로 길드원은 물론 디아블로의 소속이 되어 버린 청해 길드의 인원까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중요한 건 늦을지언정 한 명도 소집 명령에 거부한 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소집의 목적을 하달할 때였다.
“아우터를 상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