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1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15화(515/675)
제 515화
스카베의 남문.
영주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단장과 함께 그곳에 도착한 세운이 사막 특유의 구불거리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새까만 줄이 새겨져 있었다.
사막의 그림자가 아닌, 아우터의 대군으로 이루어진 새까만 줄이.
“저 수가 보이나? 저 수를 상대로 수하를 한 명도 데려오지 않다니, 오만이었다.”
단장이 세운을 나무랐다.
예전, 모래폭풍으로부터 스카베를 지켜주었던 디아블로 길드.
그들이 더욱 강해진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단장의 눈에도 희망이 일었는데, 정작 세운은 그들을 모두 다른 성문으로 보내 버렸다.
물론, 다른 성벽으로도 몬스터들이 공격을 해 오고 있고 그 수가 엄청나다는 것도 사실이다.
스카베의 병사들로는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세운이 말한 아우터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적을 도와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혼자 오다니.’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본체는 남문이다.
저 모든 몬스터를 지휘하고 있는 괴물은 남문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길드원을 보내고 혼자서 이곳에 도착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단장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필요 없으니까 병사들이나 물려.”
“자네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데…….”
처음 보았을 때는 그나마 스카베의 병사 중에서도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사람과 대화하고 있는 건지, 벽에 대고 대화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세운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만병지함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표현이 옳았다.
스카베의 역사를 통틀어도 비교되지 않는 수의 적군과 모래폭풍이 봉인되어 있던 괴물의 해방.
이로 인해 이성이 무너진 단장의 정신을 차리게 하려면 직접 보여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말해도 제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모래폭풍에 들어 있던 게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힘은 아껴두는 게 좋겠지.’
지금의 세운은 쉼터마다 찾아내고 있는 아우터 정도야 문제없이 쓰러트릴 힘을 지니고 있었다.
모래폭풍에 어떤 아우터가 어떤 생명체를 잠식하고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은 하지 않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쓸데없는 힘의 소비는 줄여야 한다.
그리고 마나나 내공의 소모를 줄이고 저 대군을 쓸어 버릴 방법은 하나뿐이다.
‘탐욕의 권능.’
비록 강한 보구의 힘을 사용하면 반작용으로 인해 해당 무기를 다시 사용하기 어렵고, 육체적 부담이 일긴 해도 힘을 아끼기에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이 꺼내 든 것은 불사궁.
얼음으로 이루어진 활대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은의 활, 아르기로톡소스 ]– 올림포스의 십이 신 중 하나, 광명신 아폴론이 사용하던 태양의 힘이 담긴 은의 활.
신의 힘이 담긴 보구는 아무 무기에 적용할 수 없다.
뒤랑달이나 아펠리온처럼 미약하게나마 격이 담긴 무기가 아니라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깨져 버린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지금 세운의 손에 들린 활, 불사궁.
얼음으로 이루어진 이 활은 부서져도 새롭게 얼음을 만들어 내며 활대를 회복한다.
이 활이라면 일회성으로나마 신의 힘을 재현하는 게 가능했다.
우웅-
불사궁이 은색으로 물들었다.
아니, 분명 은색이기는 하지만 그 활대에서 흘러나오는 건 은빛이 아니라 태양처럼 따뜻한 햇살이었다.
“겨우 활 한 자루로 무엇을 한다는…….”
세운이 활을 꺼내 드는 것을 보고 고개를 내젓던 단장의 말이 멈추었다. 스카베에서 단장이라는 직위를 맡고 있는 강자 중 한 명으로서, 활대에 엄청난 힘이 깃들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이다.
스카베를 내리쬐는 강력한 햇살이 활대에 깃들어 은은한 햇살이 더욱 강해졌다.
햇살은 뜨거운 열기로 변해 불사궁의 시위에 붉디붉은 화살을 만들었다.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처럼 떨려대는 활대가 녹아내리며 물기가 맺혔지만, 새로운 얼음을 만들어 내며 신의 힘을 버텨냈다.
세운이 활시위에서 손을 놓는 순간.
피융-
붉은 화살이 허공을 향해 날았다.
“어, 어디로…….”
화살이 향한 곳은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지평선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허공.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쭉쭉 뻗어나간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지 않고 하늘 높은지 모르고 솟구치더니, 이내 스카베를 내리쬐고 있는 태양에 맞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 불사궁이 ‘아르기로톡소스’에 잠든 태양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아르기로톡소스’를 통해 따사로운 햇살이 재현됩니다.
따사로운 햇살.
그 따뜻한 이름처럼 스카베를 내리쬐고 있던 햇살이 날카로운 화살로 변모하여 지평선에 몰아쳤다.
푸북!
푸부부부북!!
“꾸르르르륵-”
시력이 안 좋은 자라면 보이지도 않을 먼 지평선에서 괴이한 비명이 들려왔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양의 화살. 말 그대로 따사로운 햇살 그 자체가 아우터의 몸을 꿰뚫었다.
– 크르릉…….
비록 신의 무기라도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떡없이 회복하여 몸을 다시 일으키는 놈들이었지만.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세운의 활에는 이미 루인이 들어가 있었다.
파멸의 힘이 깃든 화살은 아우터의 몸체를 여지없이 불태웠고, 시꺼먼 연기가 퍼져나가 지평선 위를 뒤덮었다.
“이제 알아먹었겠지? 병사들을 물러라.”
“……알겠다.”
“다, 단장님.”
“빈말할 것 없다. 방금 보지 않았느냐? 우리는 방해가 될 뿐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성벽에게도 전달하라. 모든 병사는 성벽으로부터 후퇴한다.”
“……알겠습니다.”
이성을 되찾은 단장이 세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봉화로 향했다.
성벽의 옆에서 봉화가 피워지더니 새까만 연기를 피워대며 스카베의 모든 성벽에 ‘후퇴’라는 신호를 전달하였다.
다른 성벽의 병사들은 이곳에서 세운의 무력을 보지 못했으니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어찌 됐건 명령이니 따를 것이다.
단장은 후퇴 명령을 전달한 뒤 세운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자네의 힘은 알겠네. 자네가 오만이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저 괴물을 상대하겠다고 생각한 게 오만이었던 것도 알겠다. 하지만,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게 있다.”
“뭐지?”
“어째서 북문을 포기한 거지?”
이전에도 말했듯이, 스카베에는 네 개의 성문이 존재한다.
북문이라면 현재 닥쳐오고 있는 모래폭풍의 괴물과 정 반대편에 있는 곳.
하지만, 그렇다고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성벽에 비하면 못 미치겠지만, 그곳에도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미안하다. 아무리 자네의 수하들이라 해도 모든 성벽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적의 수가 가장 적은 북문을 버리는 게 최선이겠지…….”
단장이 질문을 철회했다.
방금 그 장면을 보고서 어찌 세운을 탓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은인들이 다시 한번 자신들을 구해 주기 위해 나타났는데,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 말을 듣고 있던 세운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라니, 북문은…….”
“북문에도 보냈다. 봤을 텐데?”
북문에 사람을 보냈다니?
그럴 리가.
분명 붉은 갑옷을 입은 이들이 동문으로 향하고, 푸른 갑옷을 입은 이들이 서문을 향했다.
북문으로는 아무도…….
“설마, 그자를 말하는 건가?”
단장의 머릿속에 백색의 가운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떠올랐다.
전투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남자. 깔끔해 보이는 안경에 하얀 가운을 입은 모습이 전사보다는 성직자에 더 어울리는 모습의 남자가 북문으로 향하긴 했다.
그런 단장의 질문에 세운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 고작 그 하나를 북문에 보냈다는 건가? 네 방향 중에 적의 수가 가장 적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걱정할 것 없다.”
세운이 단호하게 읊조렸다.
일 대 일이라면 몰라도, 디아블로에서 일 대 다 전투로 그를 따라올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유서아나 강한철조차도 이런 류의 전투에서는 그를 따라오지 못할 거다.
“동문도, 서문도, 북문도. 그리고 이 남문도 전부 지켜줄 테니.”
카- 라라라라라락!
아우터가 타들어 가며 검은 연기가 이글거리던 지평선에서 괴이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듣기만 하여도 등골이 오싹하게 느껴지는 굉음.
분명, 이게 모래폭풍 속에 갇혀 있던 괴물의 정체이리라.
* * *
“벼, 병사들이!”
“어째서 내려오는 겁니까! 당장 저 끝에서 몬스터들이 달려오고 있는데!”
스카베의 시민들이 병사들을 붙잡았다.
북문에는 그나마 쳐들어 오는 몬스터의 수가 가장 적다고 하여 그나마 안심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들을 지켜줘야 할 병사들이 성벽에서 내려오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하지만, 병사들은 단호했다.
“저기, 검은 연기 보이십니까?”
“저게 뭐라고…….”
“저희 단장님께서 보내신 후퇴 명령입니다.”
“차, 착각이겠지요! 저것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병력을 후퇴하라는 게 어떻게 제대로 된 명령입니까!”
“방금 전령이 도착해 다시 한번 명령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전원 성벽에서 물러날 것. 확실한 단장님의 명령입니다.”
“그럼 성벽은 어찌합니까! 설마, 스카베를 포기하고 도망가시려는 생각이십니까!”
병사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스카베를 포기한다니.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시민들만이 아니라 병사들에게도 스카베는 태어난 곳이자, 죽을 곳이다.
스카베를 지키기 위해 병사가 된 그들로서 이곳을 버리고 도망간다는 건 상상도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화를 내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그들은 이를 악물며 차분하게 대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닙니다. 그저…….”
병사들이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전령은 후퇴하라는 말과 함께 한마디를 더 전달했다.
‘은인을 믿어라.’
모든 병사가 물러난 성벽의 위에는 단 한 명,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아직까지 전령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저 한 명을 믿고 성벽에서 전부 내려오라니, 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명령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단장을 믿었다.
다만, 위급할 시에 언제든지 달려가 지원할 수 있도록 성벽 바로 아래에서 무기를 꼬나쥐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북문의 모든 시선이 집중될 무렵.
성벽 위에 선 남자, 백현이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대단하군요. 이렇게 많은 아우터는 처음 봅니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확실히 엄청난 숫자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혼자서 저 많은 아우터를 상대한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네 성문 중에서도 가장 수가 적다고는 해도, 혼자서 천 마리가 넘어가는 적을, 그것도 아우터에게 잠식당한 적을 상대하라니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다만, 이건 세운의 명령이 아니었다.
상황을 전해 듣자마자 백현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자선한 일이었다.
“정말 기대됩니다!”
백현의 앞에 거대한 아공간이 열렸다.
칠흑처럼 시꺼먼 그곳에서는 지독한 악취와 더불어 검붉은 액체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곧이어 백현이 지휘하듯이 손을 흔들자, 아공간 내부에서 수백, 수천 구의 시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시체부터 몸 이곳저곳이 개조된 시체에,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흉포하게 조합된 키메라까지. 엘하임을 넘어가며 그가 연구하고 실험하며 만들어 낸 언데드의 결정체.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드디어 새 군단장의 첫 전쟁이 시작된다며 기대감을 한껏 드러냅니다.
그 모든 시체가 백현의 손동작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사하의 포식자가 몸을 일으키며 선두에 자리를 잡고, 하늘에는 수백의 언데드가 날갯짓하며 굉음을 질러댔다.
“저 정도 수라면 충분히 실험할 수 있겠습니다! 운석을 조사하면서도 막상 실제로 아우터를 상대할 일이 없어 실험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종류도, 형태도 가지각색이었지만 그 모든 언데드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몸에 박혀 있는 운석 조각.
운석으로 만들어 낸 칼날이 손톱 대신 박혀 있는 언데드도 있었고, 송곳니 대신 운석 조각이 박혀 있는 언데드도, 심지어는 이마에 운석이 뿔처럼 박혀 있는 언데드도 있었다.
외부뿐만 아니라 심장에 운석을 박아넣거나 신경계에 척수를 박아넣는 등의 언데드 역시 존재했다.
“자, 갑시다!”
“그어어어어-!”
수백, 수천의 언데드가 동시에 울부짖었다.
주인의 명령에 답하기 위해, 군단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위해.
적의 숫자가 얼마나 많건, 적이 어떤 모습이건, 적이 얼마나 강력하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움직일 뿐이다.
모든 것은, 군단장을 위하여.
“이곳이 바로, 그대들의 실험장(實驗場)입니다!”
서열 4위의 마왕, 가미긴.
그의 31번째 예비 군단장.
아니, 이제는 완벽하게 인정받아 온전한 31번째 군단장이 되어 버린 백현의 첫 전쟁이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