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1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19화(519/675)
제 519화
아프다.
너무 아프다.
배 속은 태양을 삼킨 것처럼 뜨거웠고, 그곳을 중심으로 가시가 자라듯이 잔혹한 고통이 퍼져나갔다.
사아아-
일순간 배 속의 열기가 조금씩 진정된다.
분명 이전에 비해 통증이 줄긴 했지만, 세운이 느끼는 감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만…….’
죽도록 고통스럽다.
아니,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어설프게 진정된 통증 때문에 죽지 않겠다는 희망과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괴로움이 동시에 떠오른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장 안 일어나고 뭐 하는 거냐며 당신을 타박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라며 협박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익숙한 감각이 느껴진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보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연이어서 메시지를 날려 보낼 성좌는 하나뿐이다.
아마 마몬이 바락바락 협박이라도 하고 있는 거겠지.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장 입을 벌리라고 강요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에게 창고의 보물을 선사합니다.
– 탐욕(眞)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지고의 영약, 엘릭서(Elixir) ]– 만병통치약, 또는 불사의 영약이라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회복 능력을 지니고 있는 최고의 포션.
과연 세운이 입을 벌렸을까?
입을 벌린 기억은 없지만,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느라 입이 절로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입술을 타고 들어온 청명한 기운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열기를 자랑하던 복부 부근에 청명한 기운이 몰려들더니 곧바로 체감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훅 떨어트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운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괴로워…….’
복부의 통증은 사라졌지만, 이 가시 같은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신나서 복부까지 푹푹 찔러대는 게, 차라리 태양을 삼켰던 것 같은 이전의 통증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엘릭서로도 치료되지 않는 당신의 몸 상태에 당황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에게 창고의 보물을 선사합니다.
– 탐욕(眞)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사막의 보배, 금룡옥혈보(金龍玉血寶) ]– 사막의 독지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알려진 영약으로써, 해독약으로는 천하에서 가장 뛰어나다 알려진 만병통치(萬病通治)의 영약.
이번에는 세운의 입가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열기라고는 해도 아까 전에 배 속을 뜨겁게 달구던 통증과는 전혀 달랐다.
몸속의 노폐물을 모두 불태우고 독기를 정화하는 성화(聖火)와도 같은 기분 좋은 열기.
하지만 그것으로도 세운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크윽…….”
몸속을 채워나가던 가시가 마몬이 하사한 해독제에 반발하여 더욱 큰 통증을 유발했다.
날카로운 쇠갈퀴로 혈관 하나하나를 벅벅 긁는 듯한 통증.
굳게 잠겨 있던 세운의 입이 열리고, 그 사이로 아득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이럴 리 없다며 당황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이 가진 최고의 해독제가 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입술을 질끈 깨뭅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오른손등에서부터 흘러나온 기운이 어떻게든 이 통증이 머리까지 올라가지 않도록 막아주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제발…….’
세운을 살리려는 도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세운이 느끼는 통증이 더더욱 심해진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멈추고 싶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다 자기 때문이라며 꼬리를 꽉 말아쥡니다.
이번 전투에서 아우터에게 질투의 권능은 통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레비아탄은 세운이 쓰러진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으로 뒤덮였다.
비록 성좌와 인간, 성좌와 플레이어의 관계라지만, 그녀에게 세운은 단순한 인간이나 플레이어가 아닌 ‘은인’이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때문에, 그녀는 결심하였다.
지금까지 흑해에서 회복한 신성을 전부 써 버리더라도, 세운을 살리겠다고 말이다.
* * *
서거거걱!
유서아의 몸이 아우터를 스쳐 지나가며 수백 개의 상처를 만들었다.
갑옷처럼 단단하게 굳은 아우터의 특성 때문인지 그 상처는 평소보다 더욱 얕았지만, 어차피 그녀의 주 공격원은 깊은 상처가 아닌 상처를 통해 흘러 들어가는 바알의 극독이었다.
하지만.
“카라라락!”
그녀의 극독은 전갈의 체내로 흘러 들어가지 못했다.
서문에서 수백의 아우터를 쓰러트렸던 극독이 이곳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부 비켜라.”
“분산!”
“네!”
– 플레이어 강한철이 ‘종전(終戰)’을 사용합니다.
콰아앙!!
악어가죽을 뒤덮어 쓴 강한철이 주먹을 내지르자, 전갈의 좌우에서 사막의 모래알이 급격하게 치솟으며 악어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아룬의 꽃잎으로 만든 영약을 먹으며 더욱 강해진 힘 덕분에 악어의 형상은 전갈을 거침없이 물어뜯었지만.
“카라라라락!!”
녀석은 쓰러지지 않았다.
전신에 균열이 생긴 것을 보아 데미지는 받은 듯했지만, 비명을 내지름과 동시에 균열이 빠르게 아물었다.
“이놈은 대체…….”
“여태까지 상대해 온 아우터와 차원이 다릅니다!”
“마스터는?”
“외상은 어떻게든 치료하고 있지만, 이 독은 제가 어찌 할 수 있는 독이 아니에요.”
“그, 그럼 어떻게 합니까?”
“……죄송해요. 독이 급소로 퍼지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그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이하늘이 이를 악물었다.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걱정을 드러냈지만, 이 자리에서 이하늘만큼 침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디아블로 길드의 유일한 치료사이면서 길드장의 중독 하나 치료하지 못하다니. 수많은 포션을 만들어 내며 쌓아왔던 자신감이 전부 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은 진열을 물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안전지대로 대피해서 마스터의 회복에 집중하는 게…….”
“어차피 여기서 도망칠 곳은 없어요. 방법이라고는 스카베를 고기 방패 삼아 시간을 버는 것뿐인데, 그건 세운 씨도 원치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다들 이미 수백의 아우터를 막아내고 온 상태라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제대로 발휘한다고 해도 저 아우터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세운 씨는, 저런 적을 상대로…….’
유서아의 검이 힘을 잃어갔다.
지금까지 상대해 온 아우터와는 차원이 다른 무력.
아니, 새로운 강적을 상대해 온 건 일상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는 핑계일 뿐이다.
당장 등 뒤에서 의식을 잃고 피를 흘리고 있는 세운의 존재가 염려되어 정신을 차리기 힘들 뿐이다.
“역행-자를 쓰러트리고…… 탑을- 부서트리자꾸나…….”
디아블로 길드를 상대하고 있던 아우터가 귀찮다는 듯이 몸을 돌려 곧장 세운과 스카베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아!”
디아블로 길드가 전부 달라붙어 녀석의 움직임을 막아 세웠다.
최수창이 녀석의 다리를 작살로 묶고, 쌍둥이 자매가 거대한 벽을 꺼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쿵, 쿵, 쿵!
“크윽! 이 녀석, 힘이 무슨…….”
그런데도 아우터의 움직임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살의 밧줄이 녀석의 힘을 견디지 못한 채 끊어졌고, 벽은 집게질 한 방에 산산이 조각났다.
다만, 그들이 벌어준 시간 덕분에 강한철이 그 앞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을 사용합니다.
콰아앙!!
탑에 들어온 이후, 강한철이 가장 많이 사용하였던 기본기.
그런 만큼 그 어떤 공격보다도 탄탄하고 자신 있는 주먹이 바닥에 부딪히자 거대한 모래 벽이 솟아오르며 녀석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하나…….
“카라라라락-!!”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모래 벽을 뚫고 나오며 집게가 쪼개지고, 하부 갑각이 뚫리면서도 다리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강한철이 피하지 않고 두 팔을 들어 저항하였지만, 녀석의 집게가 강한철을 붙잡아 저 멀리 내동댕이쳤다.
“안 돼…….”
안 된다.
저 앞에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세운과 그를 치료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이하늘이 있었다.
세운을 잃는 순간, 모든 게 끝나 버린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살려야만 한다.
기이잉-
유서아의 머리에 이전과는 다른, 더욱 강하고 진한 빛을 내뿜는 바알의 왕관이 씌워졌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계약자의 아름다운 왕관에 감탄합니다.
아름답게 새겨진 정교한 문양에서 연한 붉은 빛이 일렁거리자, 그녀의 등 뒤로 반투명한 망토가 흘러내렸다.
그야말로 왕의 기세.
바알의 왕관을 벗겨낸 것이 아니라, 오직 그녀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고유한 모습이었다.
“안 돼!”
타앗!
그녀가 자리를 박차는 순간, 모두의 시야에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서걱!
그 순간, 아우터의 다리에 작은 흠집이 생겨났다.
스카베 특유의 날카로운 모래바람에 당한 것처럼, 아주 작은 흠집이.
아우터가 이를 무시하고 다시 다리를 내밀었지만, 녀석의 앞발은 더 이상 보행이라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카르르륵?”
녀석의 앞발이 잘려 나갔다.
그 직후, 녀석의 주위로 붉은 모래폭풍이 일어났다.
콰과과과괏!
흠집 위에 새로운 흠집이 생겨난다.
그 흠집 위로 또 하나의 흠집이 새겨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알 하나가 낼 수 있는 건 작은 생채기일 뿐이지만, 그 모래알이 모여 거대한 모래폭풍이 만들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곧 재해(災害).
하나의 생명체 따위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災殃)이었다.
“카라라라락!”
또 하나의 자리가 잘리자, 녀석이 무게중심을 잃는다.
서걱!
갑각의 틈새로 흠집이 생겨나며, 신마저 중독시킬 마왕의 극독이 스며든다.
“카락, 카라락!”
녀석이 집게를 휘두르고 꼬리를 사방으로 찔러보았지만, 무기를 휘두른다고 모래폭풍을 잠재울 수는 없는 법.
결국 이동 불능 상태가 된 아우터는 쿵! 소리를 내며 자리에 쓰러졌다.
상처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지만, 모래폭풍에 의해 찢어지는 상처를 모두 회복할 수는 없었다.
사아아-
하지만, 재해라고 하더라도 무한할 수는 없는 법.
그토록 잔혹하던 모래폭풍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약해진 바람의 사이로 유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홍빛의 왕관 사이로 그보다 진한 색의 혈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곳만이 아니라 그녀의 몸 곳곳에서 흘러내린 혈액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몸으로 재해를 일으킨 대가.
붉은 폭풍을 일으켰지만, 인간의 몸은 자신이 일으킨 폭풍을 버티기도 어려울 정도로 연약했다.
그나마 그녀의 등 뒤로 생겨난 망토 덕분에 이 정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카라라락-”
폭풍이 멈추자마자 아우터가 상처를 빠르게 회복했다.
분명 운석으로 만들어진 검으로 전신을 난자했는데.
다른 아우터였다면 수백 개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고 해도 버티지 못했을 텐데.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드러낸. 아니, 잠재력을 초월해 낸 공격에도 녀석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서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절대 안 돼……!”
푹!
그녀의 쌍검이 아우터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조금 전까지의 공격으로 만들어 낸 틈새.
그 사이로, 그녀는 바알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고유의 권능을 흘려보냈다.
– 플레이어 유서아가 ‘##$#@’를 지배합니다.
아우터가 움직임을 멈췄다. 결코 멈추지 못할 것 같았던 녀석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이 앞은, 절대!”
그녀의 코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전신에서 피가 어찌나 많이 흘러내렸는지, 그녀가 서 있는 전갈의 정수리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부릅뜬 눈에서조차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검을 쥔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절대, 안 돼!”
“크-라-라-락-!!”
그녀도 알고 있다.
당장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우터의 움직임을 멈추는 것뿐이라는 걸.
그리고 이대로 자신이 쓰러지면, 결국 자신이 벌어둔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걸.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세운의 뒤를, 아니, 세운의 곁을 걷기로 했으면서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기기기긱-
아우터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녹슨 기계를 억지로 가동하듯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유서아의 입에서 선혈이 한 움큼 빠져나오고, 왕관과 망토가 점점 희미해졌다.
‘세운 씨…….’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환영일까?
세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언제나처럼 냉정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고맙다. 유서아.”
“세운 씨!”
휘릭!
뒤편에서 날아온 밧줄이 유서아의 몸을 휘감았다.
최수창의 작살에 달린 밧줄.
검을 쥘 힘조차 남지 않아, 쌍검을 남긴 채로 그녀의 몸이 밧줄에 끌려 허공을 비행했다.
그렇게 정신을 잃기 직전, 그녀는 볼 수 있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플레이어 ‘정세운’의 몸에 빙의합니다.
콰아앙-!!
세운의 뒤에서 나타난 거대한 뱀의 꼬리가 아우터를 짓누르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