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2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20화(520/675)
제 520화
‘시원해.’
복부의 뜨거운 통증이 사그라든다.
전신에 파도처럼 시원한 기운이 몰아치며 세운을 그토록 괴롭혔던 기운들을 몰아낸다.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이성이 조금씩 돌아오고, 주먹에 힘이 돌아온다.
– 정신이 드느냐? 나의 아이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지 않았는데도 시커먼 시야 안으로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레비아탄?”
풍성한 하늘색 머리칼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반투명한 비단옷이 하늘거린다.
심해보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그 색과는 반대로 무엇보다 따스하게 느껴진다.
흑해에서 보았던 질투의 마신, 레비아탄.
그녀의 모습이었다.
– 더 늦게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나의 아이야. 많이 아팠겠구나.
“그게 무슨…….”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의문이 들던 찰나, 세운의 머릿속으로 아우터와의 전투 장면이 떠올랐다.
분명 완벽하게 소멸시킨 줄 알았던 아우터에게서 날아온 공격.
아우터의 날카로운 습격 덕분인지, 방심 덕분인지 세운은 그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등을 찌른 독침이 복부를 뚫고 앞으로 튀어나올 정도의 치명상, 거기에 녀석의 꼬리에서 흘러나온 극독.
세운은 그로 인해 정신을 잃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단전이 부서지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내공을 운용하여 몸 상태를 회복할 상황이 아니었다.
심지어 파멸의 힘으로도 전갈의 독과 융화된 아우터를 몰아내기 힘든 상황이었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던 중.
‘레비아탄이 구해 준 건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 눈을 떠보거라, 나의 아이야.
레비아탄의 목소리에 세운이 천천히 눈꺼풀을 올렸다.
마치 수백 년 동안 눈을 감고 있기라도 했던 듯이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그나마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져나가는 기운. 레비아탄의 신성 덕분에 금세 눈을 뜰 수 있었다.
‘이 모습은…….’
눈을 뜨자마자 푸른 비늘로 뒤덮인 손등이 보인다.
비늘은 팔을 따라 쭉 이어져 세운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그나마 얼굴에는 비늘이 돋아나지 않았지만, 왼쪽 눈가 주위로 문신처럼 뱀의 비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형상은 세운의 육체뿐만 아니라 입고 있는 장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갑옷은 피부와 마찬가지로 뱀의 비늘로 뒤덮여 은은한 푸른빛을 흘려보냈고, 전포는 레비아탄의 허물처럼 반투명한 비단처럼 아름답게 펄럭였다.
레비아탄의 빙의(憑依).
뱀보다는 드래고니안(Dragonian)이라 불리는 용인종에 더욱 가까운 모습이었다.
‘상처는…….’
세운이 고개를 숙였다.
성좌가 몸에 빙의된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모든 상처가 치유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역시나, 낮아진 시야로 뻥 뚫린 복부가 보였다.
다만, 복부 위로 반투명한 막 같은 게 뒤덮여 상처를 보조하고 있었다.
‘뱀의 허물.’
그 허물 안에서 상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몸 전체가 회복된 건 아니다.
아직 몸속에는 파멸의 힘으로도 소멸하지 않은 극독이 퍼져 있었다.
머리를 제외한 전신에 퍼져나가 있을 정도.
세운이 인상을 쓰자, 곧바로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걱정하지 말려무나. 독은 나의 영역이기도 하니. 만약 해독이 불가능한 불가의 극독이라 하여도…….
전신의 혈관이 꿀렁이는 게 느껴졌다.
사방으로 퍼져나갔던 독액이 강제로 한데 모이며 세운은 손끝으로 몰려들었다.
독액과 융화된 아우터가 이에 거부하며 발악하려 하였으나, 레비아탄의 강제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 그저, 몸에서 빼내기만 하면 될 테니.
뚝.
결국, 손끝에 몰려든 극독이 검지를 통해 빠져나갔다.
그저 몇 방울 정도일 줄 알았는데, 바닥에 웅덩이가 생겨날 정도로 엄청난 영의 극독이 쏟아졌다.
극독은 아우터와 융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다시 세운의 몸속으로 파고들기 위해 꿈틀거렸지만.
콰직!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비록 몸속의 녀석을 잡기는 어려웠지만, 체외로 빠져나간 녀석을 소멸시키는 건 금방이었다.
– 크르릉.
성흔에서 루인의 울림이 들려오는 것을 보니 녀석도 저 독액이 심히 거슬렸나 보다.
하긴, 파멸의 힘으로도 독액을 해독하는 건 무리였고 급소를 보호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독액이 모두 빠져나가자 몸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정신이 맑아지자, 세운이 레비아탄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면서도 걱정이 일었다.
“이렇게나 완전한 형상의 빙의라면, 엄청난 양의 신성이 소모되지 않습니까?”
강림보다야 낫겠지만, 빙의 역시 엄청난 양의 신성이 필요하다.
성좌에게 신성이란 자신의 격을 유지하는 에너지와 같은 존재.
신성을 한 번에 과도하게 소모했다가는 그 존재가 가진 격의 가치가 영구적으로 낮아질 수도 있었다.
– 착한 아이로구나. 그 상처를 입고도 저보다 나를 먼저 걱정해 주다니. 하지만, 괜찮단다.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세운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너무나도 따뜻한, 어머니와도 같은 목소리는 그녀가 세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 이 신성 역시 네가 아니었다면 결코 모을 수 없었을 테니까.
레비아탄은 세운 덕분에 흑해에 다시 자리 잡아 자신의 신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세운에게 은혜를 갚고 있다지만,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본래 선신이라 하여도 아쉬울 게 없어지면 하등한 존재 따위는 잊게 마련이다. 그런데 레비아탄은 그 은혜를 결코 잊지 않았다.
이는 흑해에서 쫓겨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아래에 머물렀던 어인들을 챙겼던 그녀의 따뜻한 심성을 증명해 주었다.
– 그러니, 우선은 저 건방진 녀석부터 쓰러트리자꾸나.
고개를 들어 시야를 넓히니 새로운 전장이 눈에 들어왔다.
세운이 혼자서 싸우고 있던 고독한 전장에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모여 힘을 합치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는 유서아가 피를 토하면서까지 아우터를 막아내고 있었다.
“절대, 안 돼!”
“크-라-라-락-!!”
어떻게 해서든 아우터를 막아내기 위해.
아우터가 세운에게 다시 한번 독침을 들이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우연일까?
그런 세운과 유서아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만약, 디아블로 길드가 아우터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면.
유서아가 목숨을 걸고 아우터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빙의가 끝나고 독을 몰아내기도 전에 세운은 다시 한번 저 거대한 아우터에게 짓밟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은 조용하게 자신의 진심을 읊조렸다.
“고맙다. 유서아.”
“서아 씨!”
휘릭!
옆에서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최수창이 시기적절하게 작살을 던져 유서아를 휘감았다.
그녀가 아우터의 몸에서 벗어나는 순간, 세운의 뒤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이며 무언가의 형상을 만들었다.
뱀의 꼬리.
흑해에서 바다의 신인 트리톤을 말 그대로 압살하였던 레비아탄의 꼬리가 구현화 되며.
쾅!!
“카락- 크푸악-”
아우터를 강타했다.
처음 다뤄보는 꼬리를 어떻게 휘둘렀는지는 모르겠다.
세운의 의지에 따라 레비아탄의 신성이 꼬리의 형상을 이루었고, 그저 본능대로 휘둘렀을 뿐이다.
그렇게 구현화 된 꼬리가 워낙 거대했던 탓에 아우터의 전신이 짓눌리며 사막에 푹 틀어박혔다.
“이걸로는 부족하지.”
녀석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운이 꼬리를 다시 한번 휘둘렀다.
마치 흑해에서 트리톤이 레비아탄에게 당했을 때처럼.
쾅!
“크라락-”
심해처럼 차갑게.
쾅!
“크라-”
파도처럼 거칠게.
콰앙!!
“칵-”
아우터를 두들겼다.
거의 모든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던 갑각이 가루처럼 부스러지고, 온몸의 관절이 어그러진다.
이전보다 더욱 단단해진 외피는 이전보다 더욱 강한 방어력을 자랑했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오히려 유연했던 과거의 모습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다.
푹, 푹.
“카라락-”
그러면서도 녀석은 반격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세운이 꼬리를 들어 올리는 틈을 타 녀석의 꼬리가 세운의 꼬리를 힘차게 들쑤셨다.
세운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독액이 과할 정도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세운은 피하지 않았다.
녀석의 독액 따위 가뿐히 무시한 채.
쾅!
“크룩-”
그저 다시 한번 꼬리를 휘두를 뿐이었다.
– 처음엔 해독하지 못했지만, 이미 한 번 경험한 독 따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단다.
처음처럼 독을 몸 밖으로 추출할 필요도 없었다.
아우터가 흘려보낸 독은 꼬리를 타고 흐르며 세운의 몸에 닿기도 전에 해독되어 레비아탄의 힘에 융화되었다.
“카라라라락-!!”
녀석이 처음으로 세운의 꼬리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다.
거대한 집게를 치켜들고, 꼬리를 지렛대 삼아 있는 힘껏 괴성을 내지른다.
주위를 살펴보니 사막의 모래알을 타고 흘러든 검은 액체가 녀석의 몸에 흡수되고 있었다.
“마스터! 저희도 지원을……!”
“아니.”
보아하니 사막에 존재하는 모든 아우터가 숙주를 포기하고 이 우두머리에게 깃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만큼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세운의 전투에 합류하려 하였지만, 세운은 고개를 저었다.
이는 오히려 스카베에 쳐들어온 아우터를 일순에 처리할 기회였다.
“카락- 역행자와…… 탑을 부수어라…….”
기괴한 비명 사이로 녀석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사막의 모든 아우터가 흡수되며, 녀석의 덩치가 몇 배는 더 크게 불어났다.
그럴수록 세운이 뻗어낸 꼬리가 점차 밀려났다.
이제 자신의 힘이 더 강해졌다고 생각한 녀석이 지렛대처럼 빳빳하게 세워 공격을 버텨내고 있던 꼬리를 빼내고 세운의 몸통을 향해 뻗으려던 찰나, 세운의 눈동자가 갈라졌다.
뱀의 그것처럼 세로로 늘어진 동공이 포식자의 그것처럼 아우터를 향했다.
– 시기의 눈초리가 ‘##$#@’을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질투의 권능, 시기의 눈초리.
본래는 새로운 형태로 변한 아우터에게 통하지 않던 힘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 시기의 눈초리가 ‘##$#@’의 힘을 질투합니다.
– 미지의 기운을 앗아옵니다.
– 미지의 기운을 앗아옵니다.
…….
세운에게 빙의하며 본래의 힘에 가까워진 질투의 권능은 아우터가 지닌 미지의 기운을 여지없이 앗아왔다.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딱딱하게 굳은 아우터의 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쭉쭉 흘러나왔다.
그와 반대로, 세운의 꼬리는 더욱 선명해지며 그 크기를 불려 나갔다.
“카라- 락-”
녀석도 그걸 인지했는지 어떻게든 힘이 더 남아 있을 때 세운을 공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개구리가 발악하듯, 쥐새끼가 이빨을 드러내듯이 힘겹게 움직였지만, 당연하게도 소동물의 발악은 포식자의 앞에서 재롱에 불과했다.
푹.
“칵-”
녀석의 등에 뱀의 꼬리가 창처럼 꽂혔다.
이내 꼬리가 불룩거리며 뱀의 독니처럼 흉흉하게 녀석의 몸에 독을 불어넣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녀석은 아우터.
거기다가 본체는 독을 다루는 생물이다.
그만큼 독에 대해서 엄청난 저항력을 가지고 있겠지만.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세운은 녀석에게 배운 걸 그대로 응용하였다.
녀석이 전갈의 극독에 아우터를 섞어 보내 세운을 중독시킨 것처럼, 세운 역시 레비아탄의 극독에 파멸의 힘을 실어 보냈다.
“크라라라락-!”
녀석의 몸속으로 파멸의 힘이 깃든 극독이 퍼져나가며, 전신의 관절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