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2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21화(521/675)
제 521화
아우터의 형체가 점점 스러져 갔다.
스카베의 모든 아우터를 흡수하여 크기를 키웠다지만, 이미 그 외피는 레비아탄의 꼬리 강타로 인해 으스러지기 직전.
거기에 파멸의 힘이 융화된 레비아탄의 극독이 녀석을 내부에서부터 소멸시키고 있었다.
“부서……트려야…….”
스러져 가는 아우터의 입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운이 푸른 비늘로 뒤덮인 손을 내밀어 녀석의 머리를 짚고 말했다.
“폐왕의 명령인가?”
녀석의 머리를 뒤덮고 있던 검은 갑각이 액체로 변하더니 세운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숙주가 죽은 것을 인지하고, 새로운 숙주를 잠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흐느꼈지만.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꾸르르륵-
세운의 비늘은 파멸의 힘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아우터 따위가 감히 잠식할 상대가 아닌 것이다.
결국 아우터는 세운을 잠식하는 걸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 숙주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그 숙주는 이미 레비아탄의 극독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었다.
아니, 사실 이미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아우터가 필사적으로 심장을 대신 움직이며 끊어진 생명줄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 폐왕의 명령이었나?”
후두둑.
녀석의 집게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본래 아우터가 사라지면 속의 숙주가 드러나는 게 정상이지만, 녀석의 숙주는 이미 독에 의해 괴멸되어 아우터와 같이 흩어졌다.
그런 녀석의 시커먼 동공이 세운을 향했다.
“폐왕…… 왕의…… 명령…….”
녀석이 자신의 힘만으로 모래폭풍을 뚫고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회귀 전의 녀석은 끝내 모래폭풍을 뚫지 못했으니까.
세운이 끼어들며 나비효과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녀석이 혼자 모래폭풍을 뚫는다는 건 전혀 별개의 이야기였다.
녀석이 모래폭풍을 빠져나올 가능성은 단 하나.
폐왕.
그의 간섭뿐이었다.
“이 모래사막을…….”
단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투 중간에 녀석이 뱉은 단어 중 하나인 ‘학습’.
이는 라일락에서 마주쳤던 폐왕이 언급한 단어이기도 했다.
“탑의 하층을- 부서트리자꾸나…….”
스스스-
아우터의 몸이 완전히 흩어졌다.
세운의 성흔이 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미약한 기류를 일으켜 스러진 아우터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역시, 폐왕의 짓이었나.’
어째서 저 괴물을 깨웠던 것일까?
세운이 탑의 운명을 더 바꾸기 전에 이전보다 더 빠르게 탑을 흔들어놓기 위함이었을까?
그게 폐왕의 진정한 목적이었다면, 다행이다. 그 계획은 방금 세운의 손에 산산조각이 났으니까.
하지만, 머릿속에 불안감이 끊이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가능성이 있을 것만 같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불길한 가능성을 떠올리려 애쓰고 있을 때, 세운의 피부에 자리를 잡은 푸른 비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나의 힘이 다 된 것 같구나.
아무리 레비아탄이 거대한 격을 가진 성좌라고는 하나, 강림과 빙의에는 엄청난 신성이 소모된다.
사실, 이렇게나마 빙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그렇기에, 세운은 그녀에게 순수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세운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전투의 시작에서 질투의 권능이 먹히지 않은 것?
그건 핑계일 뿐이다.
새로운 아우터를 상대했으면서, 모든 상황에서 새롭게 대처해야 할 상황에서 적을 쓰러트렸다고 맘 편히 등을 돌린 세운의 잘못이다.
그런 잘못을 메워주기 위해 그녀가 자신의 신성을 소모해서까지 세운을 도와준 것이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 은혜라니. 이제야 네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았을 뿐이란다.
갑옷과 전포. 팔과 몸통의 비늘이 서서히 사라져 간다.
루인이 몸에 깃든 신성을 집어삼키려 성흔을 빛내는 게 느껴졌지만, 억지로 성흔을 잠재웠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몰라도, 이 상황에서 그녀의 신성을 삼킬 수는 없었다.
– 아쉬운 게 있다면, 한동안 네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겠구나…….
이유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한 번에 급격하게 신성을 소모하였으니 그녀에게 큰 반작용이 들어설 것이다.
아마, 한동안 그 후유증을 치료하고 신성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 부디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려무나.
“다음에 뵙겠습니다.”
스르르-
세운의 몸을 뒤덮었던 레비아탄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
전신에 가득했던 레비아탄의 힘이 빠져나가며 순간적으로 허탈한 느낌이 드는 데 이어 복부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아우터에게 당했던 상처를 떠올리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보니.
‘……감사합니다. 레비아탄.’
세운의 복부는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아직 붉은 기운도 남아 있고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당장에라도 찢어질 것 같았지만, 이게 어디인가?
이미 사라져 버린 레비아탄의 시선을 떠올리며 세운이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던 중, 사라진 아우터의 존재 너머로 디아블로 길드가 세운을 향해 다가왔다.
“세운 씨! 괜찮으세요?”
“덕분에. 그보다 네 상처부터…….”
유서아의 상태는 말 그대로 상처투성이였다.
아우터가 낸 상처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와 공격을 견디지 못한 몸에서 일어난 반작용.
자잘한 상처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수많은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지금이야 모래가 덕지덕지 붙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당장 몸을 비틀거리는 것만 보아도 상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계약자의 성장 속도가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며 당황합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너무 급격한 성장 속도로 인해 신체가 견디지 못했던 거라며 자신의 잘못임을 인정합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수련의 단계를 몇 단계 앞당겨야겠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수정합니다.
“네? 아, 별거 아니에요! 세운 씨에 비하면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아무것도 아니긴. 이하늘, 치료 좀 부탁해.”
“네. 서아 양, 이쪽으로 와요. 우선은 응급처치부터 하고 도시로 돌아가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해 드릴게요.”
“정말 괜찮은데…….”
“플레이어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미 과다출혈로 죽었을 상처에요. 잔말하지 말고 오세요. 다른 분들은 우선 상처 부위에 포션부터 붓고 계시구요.”
“네…….”
디아블로 길드의 부지휘관은 유서아였지만,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는 이하늘이 책임자나 다름없었다.
유서아라 하더라도 그녀의 말에 꼼짝 못 할 수밖에 없었다.
이하늘이 응급처치를 마치고는 세운에게 다가와 복부를 들춰보았다.
“……대단하네요. 그 큰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어요. 신경은 물론 장기까지 엉망이었는데.”
“네가 응급처치를 해 준 덕분이야.”
처음에는 가물가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떠올랐다.
세운이 쓰러지고 그녀가 다급하게 달려와 마르바스의 권능으로 상처가 악화되지 않게 붙잡고 있었던 것을.
하지만, 세운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제 실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외상도 외상이지만, 독은 도저히 제 손으로 건드릴 수가 없었어요.”
“네가 상처를 붙잡고 있었던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거야.”
“그래도요. 지금껏 너무 자만하고 있었나 봐요. 이 정도면 어떤 상처도, 어떤 독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정작 둘 중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어쩔 수 없지. 이번 아우터는 나도 예상치 못한 적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다음에는……. 다음에는 꼭,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그래.”
마음을 다시 다잡은 사람은 세운만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치료사답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이하늘. 아니, 그 뒤의 유서아를 포함하여 디아블로 길드 전체가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았다.
최근, 전투에서 위기를 겪지 않으며 다들 저도 모르게 스스로의 실력에 자만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건 엄연히 실력에 비례한 자신감이라 불릴 만했지만, 그들이 세운을 따르는 한 진정한 적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닌 아우터다.
실력을 더욱 키울 필요가 절실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운이 누군가의 존재를 떠올리며 유서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북문은?”
“아, 백현 씨는…….”
유서아가 헛웃음을 흘리며 이마를 긁적였다.
* * *
“다음. 281번째 실험입니다. 2mm, 터지십시오.”
“그어어어-!”
퍼어엉!
“꾸르르르륵-”
네 개의 팔로 아우터를 붙잡고 있던 언데드 한 마리가 우렁찬 폭음과 함께 터져나갔다.
튀겨나가는 피와 살점 사이로 검은 알갱이 같은 것들이 보였다.
이번 실험을 위해 백현이 미리 언데드의 몸에 수류탄처럼 심어둔 운석 알갱이였다.
이에 당한 아우터가 비명을 내지르며 스러져 갔다.
“하하, 훌륭합니다! 다음, 282번째! 1mm. 터지십시오!”
퍼엉!
“좋습니다! 다음, 283번째!”
퍼어엉!
“그렇군요. 운석으로 직접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건 1mm까지. 그 이상 작아지면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등의 간접 타격은 가능하지만, 물리적 타격은 입히기 힘들겠군요…….”
북문의 상태는 다른 곳들과 전혀 달랐다.
이곳의 아우터들은 이미 백현의 언데드에게 완전히 속박당한 상태였고, 그 상태로 백현의 실험에 동원되고 있었다.
실험실.
이 넓은 북문 전체가 그의 실험실이나 다름없는 실험이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펑, 펑!
퍼어엉!!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적응력이라니. 만약 이 힘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의 시체가 터져나가길 몇십 번.
이제 시체폭발을 이용한 실험을 마쳤는지, 다음은 폭발음 대신 ‘푹, 푹!’ 거리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아우터의 비명은 덤.
남문과 다르게 이곳의 아우터는 단단한 갑각이 아닌 이전에 보던 물컹한 형태였기에, 지금까지의 연구대로 아우터는 완벽하게 백현의 통제하에 들어와 있었다.
“신기하네요~ 방금 실험은 저도 응용할 수 있겠는데요?”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아, 혹시 괜찮으시면 도움을 빌려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도움 될 게 있나요?”
“계획한 실험은 아니지만,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습니다. 이전에 보여주신 링크(Link)의 활용성에 관련해서인데…….”
“못할 거 없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와 있던 아나까지 합세하며, 실험에 열이 올랐다.
덕분에 성벽 뒤에 숨어서 덜덜 떨고 있던 스카베의 거주민들도 하나둘 성벽 위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단 두 명이서 저 많은 괴물들을 막아낸 건가……?”
“아니, 처음에는 한 명이었잖아. 저기 새로 오신 분은 뒤에서 지켜보고만 계셨고.”
“한 명이서 저 괴물들을 막아낸…… 아니, 이건 막아냈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잖아…….”
이 경악스러운 장면에 모두가 입을 크게 벌리며 놀라워했다.
전투가 끝났으면 환호성이라도 내질렀을 텐데, 수많은 몬스터가 실험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환호성은커녕 괴물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잠시 후, 뒤늦게 북문에 다다른 세운과 유서아 역시 백현의 실험 장면을 보며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고 했죠?”
“이건 괜찮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얼른 다음 실험을 진행하자며 실험 차트를 넘깁니다.
순간, 만약에 회귀 전의 시대에서 백현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스스로 네크로맨시를 깨달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게 된 세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