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2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24화(524/675)
제 524화
[ 히든 던전, ‘깊은 마굴’을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 [ 히든 던전, ‘떠난 자의 둥지’를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 [ 네임드 몬스터, ‘속박의 테일러’을 처치하였습니다. ]…….
마창원.
이 거대한 수십, 수백 개의 동산에는 그와 맞먹는 양의 숨겨진 요소가 존재했다.
히든 던전은 물론 숨겨진 네임드 몬스터나 보물 등,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마창원을 넘어가는 그 시점까지도 하나를 발견하기 힘든 그것들을, 세운은 남김없이 파헤치고 있었다.
‘마계 공략은 문제없고.’
그렇게 73층의 시련을 쭉쭉 탐험하고 있던 세운이 품 안에서 유리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닥에는 황금빛 모래알이 깔려 있고, 흔들지 않았는데도 은은한 모래폭풍이 불고 있는 유리 속 세계.
살짝 힘을 주어 움직이니 모래알이 거칠게 일렁이며 회오리가 만들어졌다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솔직히 이렇게만 보자면 잘 만들어진 장난감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웅-
세운이 그 속으로 마나를 밀어 넣자, 유리구슬 내부의 소용돌이가 더욱 광포하게 휘몰아쳤다.
소용돌이가 수십 갈래로 늘어나고, 하늘도 사막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모래알로 가득 찼다.
유리구슬 내부가 모래알로 가득 차더니 ‘파바바바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여나 유리가 깨질까 싶어 마나 주입을 멈추고 나서야 난폭한 바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마나 주입으로는 안 된다.’
반응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유리구슬 내부에 한한다.
이 모래폭풍을 외부로 끌어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결국, 그 주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건데.’
스카베의 선조들이 사용했다는 마법.
스카베의 영주에게 돌아가 물어볼까 싶었지만, 이전에 세운이 쓰러트린 주술사를 마지막으로 스카베에 주술사의 줄은 끊겼다.
애초에 그때 그 주술사가 사용하던 주술도 본래의 주술이 아니라 오염되고 타락한 힘이라 하였으니, 되찾을 방법은 없었다.
‘그럼 내가 스스로 알아가는 수밖에.’
엘 아브르의 대도서관에는 주술에 대한 지식 역시 존재했다.
그중 엘 아브르의 것은 없었지만, 주술에 대해 탐구하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은 유리구슬을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일단은 팔열지옥을 뚫는 게 우선이다.’
여정의 지침표가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세운의 눈앞으로 여태까지 보아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풀잎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차가운 냉기와 날카로운 예기를 내뿜고 있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내밀면 몸을 꽁꽁 얼린 채로 조각내 주겠다는 듯이.
그런 풀잎 앞으로, 세운의 검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 내공을 통해 자하검결의 제이 초식, 화우선형(花雨扇形)이 강화됩니다.
화륵!
자색의 불꽃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갔다.
마창원을 상징하는 시꺼먼 풀잎이 힘을 잃고 타들어 가며, 그 내부에 숨겨진 통로가 보였다.
지옥보다 더한 지옥.
[ 히든 던전, ‘흑승지옥(黑繩地獄)’에 입장하였습니다. ]나락으로 통하는 듯이 시꺼먼 구멍이었다.
* * *
“이제 슬슬 넘어갈 때도 되지 않았나?”
“아직이에요. 단순히 시련을 빠르게 통과하는 것만으로는 강해질 수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잖아요?”
“……질 수 없지.”
유서아와 강한철이 72층의 시련, 마추소를 떠돌았다.
모든 플레이어가 이 악취 나고 위험한 늪지대를 떠나려 했는데, 이 둘만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 늪 하나하나를 맴돌았다.
“크아악!”
늪에서부터 튀어 올라 시뻘건 손톱을 휘두르는 악마.
하늘에서부터 독기 어린 깃털을 흘려보내며 먹잇감이 스러지길 기다리는 악마.
거대한 덩치로 늪지대를 짓밟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를 깔아뭉개려는 악마까지.
그 모든 악마를 제 발로 찾아가서.
–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독니’를 사용합니다.
–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을 사용합니다.
쿠궁!!
쌍검으로 난자하고, 주먹으로 쳐부순다.
72층에 존재하는 모든 악마를 쓰러트리려는 듯이 나아가던 덕분에 둘의 서열은 이미 72층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제 제 서열이 더 높은데요?”
“시스템의 착오다. 조금 전의 악마는 누가 보아도 내가 먼저 쓰러트렸다.”
“시스템이 무엇보다 정확하다는 건 알고 있잖아요?”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우연찮게 또 자신의 계약자가 한 서열 위인 것 같다며 웃음을 흘립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이런 하급 서열 따위 한 번에 뒤집어 주겠다며 땅을 쾅쾅 내려칩니다.
이제 남은 곳은 얼마 없었다.
세운처럼 여정의 지침표나 회귀 전의 기억이 있지 않으니, 둘은 발길 닿는 모든 곳을 때려 부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검과 주먹을 휘두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가로막힌 길 앞으로, 차갑게 얼어붙은 늪지대 하나가 나타났다.
“끝이군.”
“더 나아갈 곳은 없어 보이네요.”
유서아, 서열 70,000,001위.
강한철, 서열 70,000,002위.
둘 다 72층에서 최고의 서열을 획득한 상태.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남을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어쩐지 익숙한 기운에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계약자에게 저 늪지대를 쳐보라 합니다.
유서아와 강한철의 성좌, 바알과 아가레스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되묻기도 전에, 강한철의 주먹이 늪지대에 내리꽂혔다.
콰앙!!
“……단단하군.”
가볍게 내지른 주먹이 아니었다. 아가레스의 명에 따라 격진의 힘을 실어 힘차게 내지른 주먹이었다.
72층에서 가장 강하다는 악마조차도 견디지 못한 그 주먹을, 서리 낀 늪지대가 버텨낸 것이다.
“그럼, 더 강하게 내려치는 수밖에.”
강한철의 머리에 악어의 가죽이 생겨나 어깨를 타고 오른팔로 내려가 주먹을 우둘투둘하게 뒤덮었다.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오른팔을 한껏 끌어당긴 강한철이 순간적으로 근육을 부풀리며 정권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절대 안 깨질 것 같았던 얼어붙은 늪지대가 단번에 박살이 났다.
주먹을 얼마나 강하게 내려친 것인지, 아가레스의 악어가죽으로 뒤덮인 강한철의 팔에서 ‘우득!’ 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직후, 무너지는 늪지대 안으로 스산한 푸른 빛의 문이 나타났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네!”
바알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유서아가 본능적으로 문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자마자 문의 주위로 서리가 끼이며 부서진 늪지대를 복구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유서아의 속도는 이미 인간의 그것을 벗어나 있었고.
푹!
문의 좁디좁은 틈새 사이로 그녀의 두 검이 박혀 들어갔다.
– 플레이어 유서아가 ‘팔한(八寒)의 일문’을 지배합니다.
푸른 문이 살아 있는 것처럼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입을 벌렸다.
그 안에서는 서리 요새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아니,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한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런데도 유서아는 몸을 내빼지 않았다.
“어서요!”
오히려 한기를 향해 몸을 밀어 넣었다.
이 앞이 얼마나 힘든 길일지는 불 보듯 뻔하지만, 지금까지 세운을 따라 탑을 오른 그녀였기에 알고 있었다.
힘든 길을 지날수록 사람은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비가 온 뒤에야 땅이 단단해진다는 것을.
“간다!”
쾅!
뒤에서 강한철이 땅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하게 도약하며 유서아와 함께 문 안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 히든 던전, ‘알부타지옥(頞浮陀地獄)’에 입장하였습니다. ]세운조차 찾아내지 못한 팔한지옥의 첫 번째.
알부타지옥이라 불리는 극한의 대지였다.
* * *
콰직!
세운이 있던 자리 위로 불꽃이 이글거리는 도끼가 떨어졌다.
도끼면을 쳐내 경로를 비튼 세운이 도끼를 타고 올라가 그대로 도끼의 주인, 옥졸의 머리를 잘라냈다.
“흑승지옥에 들어온 죄인이여…….”
머리가 잘렸음에도 옥졸은 바로 죽지 않았다.
머리를 잃고 쓰러지던 몸통이 바닥을 짚더니, 팔이 쑤욱 빠지며 세운의 아래에서 화염으로 이루어진 사슬이 솟아올랐다.
‘……또.’
촤륵!
하나는 피해 냈지만, 하나는 피할 수 없었다.
이미 한 놈을 죽이고 자세를 다잡고 있었다고는 해도, 전투에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더 신중해야 한다.’
세운이 이전의 전투를 떠올랐다.
세운은 지금까지 수많은 적을 상대해 오면서 적을 쓰러트리면 그 적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빠르게 상황을 둘러보며 재판단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주로 일대 다수의 전투를 벌이다 보니 자연스레 생겨난 버릇이었다.
지금까지는 그 버릇이 상황을 유리하게 다잡아 주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버릇이 방심으로 이어져 세운을 위협하고 있었다.
“흑승지옥에 다다른 죄인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하나.”
발목이 묶인 세운의 주위로 네 명의 옥졸이 달려왔다.
그들은 모두 뜨겁게 달구어진 창을 들고 사방에서 세운을 찔러왔다.
– 내공을 통해 북해검결의 제일 초식, 북해동절(北海冬節)이 강화됩니다.
당장 발목에 묶인 사슬을 떨쳐낼 수도 없었기에, 세운은 자리를 이탈하는 대신 급격하게 자세를 낮추며 몸을 회전시켰다.
퍼져나간 검기가 지독한 한기를 뿜어내며 옥졸들의 무릎을 잘라냈다.
채앵!
그 틈을 이용해 한기가 일렁이는 뒤랑달로 불꽃의 사슬을 끊어냈다.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그 면 하나하나를 뜨겁게 익혀 주겠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아쿠아 스톰’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아아앗!
북해검결의 초식과 아쿠아 스톰의 융합.
차디찬 북해의 파도가 사방으로 몰아치며 네 옥졸을 얼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세운이 다시 한번 몸을 회전시키며 네 옥졸의 목을 한순간에 베어냈다.
‘아직 부족해.’
고작 네 옥졸을 상대로 고전해서는 안 된다.
더욱 빠르게, 더욱 강하게, 더욱 효율적이게. 그리고 더욱 압도적으로 적을 쓰러트려야만 한다.
다행히도, 이곳에는 세운의 생각을 실현할 적들이 얼마든지 많이 존재했다.
“흑승지옥에.”
“다다른.”
“죄인이여.”
사방에서 수십, 수백의 옥졸이 세운을 향해 다가온다.
팔열지옥은 전부 던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지만, 그 공략법이 전부 달랐다.
첫 번째 등활지옥이 던전을 탐험하여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반적인 던전의 형식이었다면, 흑승지옥은 뜨겁게 달궈진 무기를 들고 끊임없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일종의 디펜스형 던전이었다.
“그대의 죄를.”
“달게.”
“받으라.”
남은 시간과 마나, 내공의 양을 확인한 세운이 무기를 바꿔 들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게 공략하라고 만들어 낸 던전이 맞는 걸까?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난이도다.
70층 대의 플레이어는커녕, 80층 대의 플레이어도 길드 단위가 아니라면 절대 공략하지 못했을 난이도다.
하지만, 세운은 여전히 굳게 다짐한 표정으로 무기를 바꿔 들었다.
“그러든지.”
지금 세운의 눈에 이들은 옥졸이 아닌 새까만 갑옷으로 무장한 아우터로 보이고 있었다.
우웅!
오른손등이 붉게 타오르며 세운의 몸이 지옥 불처럼 뜨겁게 달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