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2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25화(525/675)
제 525화
흑승지옥에 들어온 지 여섯 시간.
몬스터 웨이브는 쉴 새 없이 진행되었고, 세운은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이곳은 애초에 혼자서 공략하는 던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쉬는 시간 따위는 허락하지 않았다.
길드 단위로 입장했으면 반반씩 나누어 휴식과 전투를 번갈아 진행했을 텐데, 혼자서는 그런 게 도저히 불가능했다.
‘하지만, 해 내야만 한다.’
디아블로 길드를 불러도 되지만, 그래서는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없다.
동료를 믿는 것이 중요한 건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동료를 믿고 성장을 멈출 수는 없다.
‘그리고, 할 수 있다.’
세운이 이전에 히든 던전을 공략하여 보상으로 받았던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곧이어 목걸이에 탐욕의 권능 특유의 보랏빛이 깃들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하르모니아의 목걸이 ]– 테베를 건설한 영웅, 카드모스의 아내가 가지고 있던 목걸이로서 평생 아름다움과 젊음을 누릴 수 있다고 전해진다.
하르모니아의 목걸이.
아름다움과 젊음을 유지해 주는 보물이지만, 세운의 사용법은 달랐다.
아름다움과 젊음 이전에, 그 힘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원초적인 능력. 생명력을 포함한 ‘힘’을 유지해 주는 능력을 발현하며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쿠궁!
“죄인은…….”
“벌을…….”
세운을 향해 다가오던 옥졸들이 무릎을 꿇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이성을 놓지 않고 공포에 저항하고 있었다.
설사 73층의 악마들이라 하더라도 공포의 권능에 저항할 수 있는 몬스터는 많지 않을 텐데.
역시, 이곳의 몬스터들은 강력했다.
“올 거면 한꺼번에 와. 귀찮게 조금씩 몰려오지 말고.”
서걱-
세운의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옥졸의 목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 * *
“죄인이여!”
옥졸과는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한 몬스터가 검은 끈을 몸에 칭칭 감은 채로 등장한다.
같은 옥왕이지만, 등활지옥에서 보았던 옥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쿵!
옥왕이 발을 구르자, 지면에서 새까만 노끈 수백 개가 튀어나와 세운을 노려온다.
세운이 검을 휘둘러 노끈을 잘라내자, 옥졸들이 빈틈을 노리고 뜨겁게 달구어진 창칼을 들고 달려온다.
‘이제야 끝인가.’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깃들게 하였던 목걸이는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
나름 히든 던전에서 얻어낸 A+급 장신구였는데.
사용한 이후 몇 시간이나 권능을 유지했으니,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오래 버텨주었다.
‘다행이네.’
방금의 공격으로 체내의 모든 기운을 소모했다.
그러자마자 세운은 새로운 권능을 사용하였다.
– 나태의 손아귀에 빠져듭니다.
– 일시적으로 체내의 모든 힘을 회복합니다.
나태의 권능은 강력하면서도 위험한 권능이다.
일단 사용하면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고, 그 시간이 지나게 되면 정신을 잃는다는 강력한 후유증이 존재했으니까.
하여 보스 몬스터가 나타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텼다.
그리고 지금.
다행히도 마지막 순간에, 웨이브의 끝을 알리며 옥왕이 등장하였다.
“벌을 받으라-!”
흑승지옥을 왕왕 울리는 우렁찬 외침을 뚫고, 세운이 옥왕을 향해 내달렸다.
장장 12시간에 달하는 전투의 마지막.
피로가 쌓인 탓인지, 이미 세운의 머릿속에는 계산이나 계획 같은 게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
저 옥왕을 쓰러트리는 것뿐이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혈랑검법의 삼 초식이 어쩐지 평소보다 더욱 날카롭게 적의 급소를 노린다.
발걸음은 민첩하게 옥왕의 밧줄을 피하고, 저도 모르게 발산한 파극암검의 초식이 옥왕을 짓누른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프로즌 템페스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옥왕의 존재 때문일까?
공포의 권능에 저항하며 힘겹게 발을 옮긴 옥졸들이 세운을 가로막았지만, 8서클의 얼음 마법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는다.
단전이 내뿜은 온 내공을 전신에 회전시키느라 혈관이 팽팽해지고, 서클은 심장을 터트릴 것처럼 빠르게 회전한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성흔에서 흘러나온 신성이 세운의 전신을 감싸며 광란의 힘을 발휘한다.
푹.
“벌을…….”
옥왕의 머리에 세운의 검이 꽂혔다.
일순간 흐릿해진 옥왕의 눈동자.
그럼에도 옥왕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 몸을 싸매고 있던 검은 노끈들이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세운을 노려왔지만.
콰과과광-!!!!
그보다 세운의 검 끝에서 마법이 발현되는 게 더욱 빨랐다.
제아무리 흑승지옥의 보스 몬스터, 옥왕이라 하여도 머릿속에서 터지는 8서클 마법을 버티지는 못했다.
[ 히든 던전, ‘흑승지옥(黑繩地獄)’을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개인 공적치가 1,000,000point 상승합니다. ] [ ‘찢어진 분노의 경전(2)’을 획득하였습니다. ]이미 등활지옥을 공략해 보았기에, 흑승지옥의 보상 역시 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경전 외에도 공략자에게 주어지는 보물상자를 대충 수습한 후.
“튜리크.”
– 응!
“미안하지만, 나 좀 데려다줄래?”
– 응, 나만 믿어! 어디로 데려다줄까?
세운은 보랏빛 날개를 펼치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몸이 지쳐서라고 하기엔 어쩐지 슬픈 눈빛이었다.
“집으로.”
– 응!
흑승지옥이 무너지고, 보랏빛 날개는 세운을 73층의 끝으로 인도해 주었다.
그리고 그사이, 전투가 끝났는데도 어쩐지 붉게 물들어 있던 성흔에서는.
– 크르르…….
루인의 뜻 모를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 *
꾸륵-
꾸르르륵-
기분 나쁜 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왔다.
전신이 무겁고 욱신거렸지만, 이 소리만큼은 참을 수 없었기에 세운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어째서…….”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로 시꺼먼 액체가 보였다.
망설일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지만, 허리춤에 있어야 할 뒤랑달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도 아우터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성흔을 활성화하며 녀석을 짓밟았다.
콰직!
“꾸우우-”
세운에게 밟힌 아우터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뭉개졌다.
다만, 평소와 다른 기묘한 감각에 정신을 차려보니 성흔이 빛을 발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멸의 힘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아우터가 무너지다니?
게다가, 아우터의 상태 역시 평소에 알던 것과 달랐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애써 정신을 차린 세운은 곧 사방을 가득 채운 존재에 섬뜩하고 말았다.
“꾸르르륵-”
“꾸륵.”
“꾸르륵.”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심지어는 양옆까지. 어디를 보아도 아우터가 가득했다.
도망칠 공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꿈인가?’
세운은 이전에 벨페고르를 만나러 갔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벨페고르의 집사라 할 수 있는 악마가 세운에게 악몽을 떠올리게 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던 세운은 유일하게 아우터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하늘을 바라보며 어쩐지 익숙함을 느꼈다.
“붉은 하늘?”
피가 뚝뚝 떨어지듯이 축축하고 스산해 보이는 붉은 하늘.
분명 본적이 있었다.
탑의 열 번째 쉼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운의 심상 세계 내에서 구현된 열 번째 쉼터의 모습이었다.
“꾸르륵-”
그러거나 말거나, 아우터들은 세운을 향해 다가왔다.
자신들을 죽이고 이곳에 내던진 세운에게 복수하려는 것처럼 서서히.
서클을 움직여 보려 하였지만, 체내에서는 일말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안 돼!”
“끄르르르르-”
뻥 뚫린 하늘에서 보랏빛 날개의 소녀가 날아들었다.
튜리크.
그녀가 나타나자 세운의 주위를 에워싼 아우터들이 중력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쭈그러들었다.
이어서 몸을 벌벌 떨더니 튜리크를 중심으로 멀어져 갔다.
이게 바로 공포의 정령으로서 그녀가 지닌 순수한 공포의 힘이었다.
“주인,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모르겠어! 나 그래도 주인이 부탁한 건 끝까지 지켰어!”
“내가 부탁한 거?”
“집에 데려다주라고 했잖아?”
기억이 흐릿했다.
분명 마지막 기억이…… 흑승지옥에서 전투를 이어갔던 거 같긴 한데.
‘피로가 생각보다 많이 쌓여 있었나.’
스카베의 모래사막에서 아우터를 상대하고도 하루밖에 쉬지 않았다.
아니, 그 하루도 온전한 휴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상태로 바로 73층을 공략하고 흑승지옥에 들어왔다.
멀쩡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상태로 마신의 빙의까지 견뎌낸 몸이 멀쩡했을 리가 없었다.
명백한 무리.
다만, 그렇다고 해도 심상 세계로 들어온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예전에 들어왔던 건 청의 대현자가 만든 마법진과 마법석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심상 세계는 절대로 이렇게 가벼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피곤하다고, 또는 깊게 잠이 들었다고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네. 주인, 어떻게 온 거야?”
보아하니 튜리크도 아는 게 없는 모양.
들어온 이유나 방법을 모르면 나가는 방법도 알 수 없기에,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점점 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상황을 판단하려 애쓰려는 중.
콰직!
튜리크로부터 물러나고 있던 아우터가 대차게 뜯겨나갔다.
특유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허공을 비상하더니,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크르르…….”
그 뒤로 보이는 건 검붉은 늑대 한 마리.
심상 세계에서 루인과 마주쳤던 게 엘하임 때였으니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사이에 크기가 몰라보게 커져 있었다.
적어도 그때의 두세 배 이상.
방금 집어삼킨 아우터만 해도 시야를 다 가릴 정도였는데, 그런 아우터를 한입에 집어삼킨 것만 해도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루인.”
“주인이시여.”
세운과 루인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세운은 알 수 있었다.
루인이 자신을 이 심상 세계로 불러들인 거라고.
“할 말이 있나?”
“크르르…….”
대답 대신 들려오는 낮은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에 섞여든 루인의 힘이 세운의 어깨를 짓눌렀다.
루인에게서 풍겨오는 공포의 권능으로 인해 심장이 서늘해지고, 광란의 권능으로 인해 주먹이 꽉 쥐어졌다.
마지막으로 파멸의 권능은 지속적으로 세운의 위태로운 무언가를 자극하는 것만 같았다.
“루인, 왜 그래! 하지 마!”
그때, 튜리크가 세운의 앞을 막아섰다.
그래도 그녀 덕분에 루인이 풍기는 힘이 조금은 약해져 견디기가 편해졌다.
이내 한동안 대치가 이어지더니, 루인이 기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말을 시작했다.
“나는 그대의 공포이자, 광란이자, 파멸이다.”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인은 세운의 성흔에서 태어난 자아인 만큼, 성흔이 가진 힘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대는 그 누구보다도 공포를 잘 알고 있었고, 광란에 심취할 수 있었으며, 파멸을 마주해 본 자였기에.”
루인이 앞발을 앞으로 내밀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튜리크가 중간을 막아섰음에도 기세가 막히지 않아 세운을 더욱 강하게 짓눌렀다.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였다.”
루인은 비록 세운의 성흔에서 태어났지만, 세운에게 조건 없는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그저 한동안 세운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루인의 으르릉거림이 커지고, 그에 따라 중간을 막아선 튜리크의 어깨가 떨려왔다.
그녀도 슬슬 루인의 기세를 막는 게 힘든 것 같았다.
“점점 약해지고 있는 그대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지금 루인이 말하는 건 물리적인 약화가 아니었다.
성흔에서 태어난 자아라고는 해도, 성흔 역시 세운의 일부.
세운은 루인이 말하는 약화가 정신적인 무언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대는 정말 내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가?”
만약, 루인이 세운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성흔이 사라지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루인이 세운의 자아를 장악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 이전에, 세운은 이제는 깨질 것처럼 아파오는 머리에서 손을 떼고 루인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내걸었다.
“주인, 위험해!”
“괜찮아.”
자신을 지켜주던 튜리크를 다독이며, 또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천근을 매단 듯이 무거운 팔을 강제로 들어 올려 으르릉거리는 루인의 코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네 주인이다.”
증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운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루인과 눈을 마주치며, 굳건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읊조렸다.
“내가, 네 주인이다.”
그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루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조금 더 수그리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루인은 아직까지 세운의 말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부디 내가 저 거인을 집어삼키기 전에, 그대의 힘을 증명하길 바란다. 나의…….”
콰직!
“주인이시여.”
루인이 고개를 돌려 또 한 마리의 아우터를 찢어발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세운의 시야가 빠르게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