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2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26화(526/675)
제 526화
“어머, 이제 일어났어요?”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아르카나의 목소리였다.
이하늘은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에 빈 물약 병이 놓여 있는 걸 보니 그녀가 따로 응급처치를 해 둔 모양이다.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된 거긴요, 제가 ‘운 좋게’ 늑대 씨를 발견한 거지. 그렇게 밖에서 자고 다니면 입 돌아간답니다~”
상황을 듣자 하니, 간단했다.
다른 길드원들이 시련을 탐사하던 중에 그녀 역시 호기심에 안 가 본 곳들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빠르게 시련을 오르고 있었는데, 73층을 통과하기 직전에 위에서 세운이 툭 떨어졌다고 한다.
‘튜리크가 힘써줬네.’
말 그대로 운 좋게 세운을 발견한 아르카나.
그녀의 대운(大運)이 어디까지인지는 정말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니, 이 경우는 내가 운 좋은 게 아닌가?’
잠깐 의혹이 돋았지만, 당장 고민할 요소는 아니다.
지금 세운의 머릿속은 방금까지 심상 세계에서 루인과 나누었던 대화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이참에 조금 쉬어요~ 무리하다가 병날라.”
“그러려고 했어.”
“아, 오랜만에 루인이랑 같이 좀 놀아도 될까요?”
거주지에 도착할 때마다 루인과 놀아주던 그녀였기에, 조금 찝찝하기는 해도 혹시나 싶어 성흔을 빛내보았지만.
우웅…….
“……나중에.”
“에이, 아쉬워라~”
루인은 명백하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성흔의 힘을 아예 차단당한 건 아니고, 전투가 아닌 상황에서 사사로이 모습을 드러내기는 싫은 모양이다.
“늑대 씨가 머무를 거면 저도 좀 있어야겠네요~”
“할 거라도 있어?”
“저도 늑대 씨 못지않게 바쁘답니다? 독자적인 성흔은 저도 처음 다뤄 보는 거거든요.”
그녀의 허벅지에서 기묘한 문양의 성흔이 빛났다.
불운. 아니, 악운(惡運)의 성흔이라는 표현이 더 가까워 보이는 성흔.
간단하게 보여도 세운이 보기에는 그 자체로 인과율에 간섭할 정도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성흔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성흔의 능력이 궁금하기도 했다.
철저한 악운이 닥친 상황에서의 전투에서 그 인과율을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그래서…….
“내가 좀 어울려줄 수도 있는데.”
“어머, 정말요?”
아르카나와 검을 맞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얼른 낫게 만들어야겠네요~”
* * *
세운이 디아블로의 거주지에 들어온 지 오 일 차.
슬슬 시련의 공략을 마치고 길드원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할 때쯤, 거주지의 중앙에서 거친 충돌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카앙!!
“역시 힘으로는 상대가 안 되네요~”
세운과 아르카나가 검과 낫을 맞대었다.
아르카나가 무기를 회수하지 못하도록 세운의 검이 낫의 교차점을 교묘하게 틀어막은 채로 그녀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더니 대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낫을 손에서 놓았다. 세운 역시 그녀를 쫓아 검을 회수하려 하였지만.
“히히히히-”
조커(Joker).
세운의 앞에는 그녀 대신 흑백의 조커가 낫을 부여잡고 있었다.
조커는 세운이 낫을 빼지 못하도록 하였던 움직임을 그대로 베껴와 되레 세운의 검을 꽉 붙잡은 채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흘려댔다.
그사이, 그녀가 꺼내 든 스페이드 카드가 날카로운 검으로 변하여 세운을 노려왔고.
스륵.
“히힛-?”
세운 역시 손에서 검을 놓은 채,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 내공을 통해 태을섬수공의 제사 초식, 연안대비(燕雁代飛)가 강화됩니다.
까앙!
세운의 손바닥이 제비처럼 빠르게 비상하여 검의 옆면을 내쳤다.
태극신공으로 강화된 장법은 파괴력보다 속도에 중점을 둔 쾌권(快拳)이지만, 검을 산산이 깨트렸다.
이어서 내지른 반대편 손바닥이 그녀의 움직임을 쫓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아르카나가 아니었다.
“히히히힛-”
전신이 과할 만큼 알록달록한 조커가 웃음을 흘렸다.
세운의 장법에 오른쪽 어깨가 뒤틀려 등 뒤로 넘어갔음에도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듯 보였다.
“그거 알아요?”
조커의 꺾인 팔.
어깨가 과도하게 꺾인 탓인지 관절이 부러지며 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왔다.
상처에서 튀어나온 핏방울은 조준이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저번 시련에서 알아낸 건데, 제 조커에도 ‘성흔’을 찍어 둘 수 있더라구요~”
“큭.”
세운의 동공을 향해 날아왔다.
급히 눈을 감은 덕분에 눈에 핏방울이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눈이 감긴 틈을 타 아르카나의 공격이 쇄도했다.
불운, 또는 악운.
그녀의 성흔은 전투가 일어나는 중에도 사소하게 인과율을 비틀었다.
발을 옮길 때 하필 그 자리에 단단한 돌부리가 튀어나와 움직임을 방해한다든지, 만병지함에서 꺼내던 무기가 어딘가에 걸려 멈칫거린다든지, 그도 아니면 지금처럼 핏물이 눈동자에 튄다든지.
그 사소한 불운이 모여들어, 전투의 판도를 뒤바꾸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불운만으로 전투가 뒤집히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검술이라면, 저도 밀리지 않는답니다?”
그녀의 힘은 불운의 힘만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저 성흔은 세운을 만난 이후에 생겨난 힘이었다.
그전까지 하이 랭커로 군림한 적이 있었던 그녀의 순수한 무력은 운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세운과 대적할 정도였다.
‘클로버 제이(Clover J).’
본래는 클럽이라 불리는 이 카드의 제이에 담긴 인물은 바로, 원탁의 기사 중 한 명, 랜슬롯 듀 라크.
호수의 기사라고도 불리는 검사였다.
까앙!!
마치 세운이 마몬의 보구를 사용한 것과 비슷하게, 그녀의 몸에 랜슬롯의 힘이 서려 있었다.
카드는 랜슬롯의 무기라고 알려진 보구, 아론다이트로 바뀌어 세운이 꺼내 든 아펠리온과 충돌했다.
방금의 공격을 막은 게 뒤랑달이나 아펠리온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강한 일격.
그사이, 세운의 뒤와 옆에서 괴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히히히-”
“히히히힛!”
흑백과 컬러. 두 조커가 세운을 향해 대낫을 휘둘렀다.
튀어 오른 핏방울에 눈이 감기고, 전방에서는 아나의 강력한 검격이, 뒤와 왼쪽으로는 조커의 공격이, 심지어 하나 남은 빈틈인 오른쪽으로 발을 뻗자, 전투로 움푹 파인 지면이 빠른 움직임을 방해했다.
순간적으로 균형이 무너지는 찰나.
세운이 이 순간을 위해 캐스팅을 끝내두었던 마법을 발현하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안티 매직 쉘(Anti Magic Shell) ]– 주변의 마나에 간섭하여 시전자의 수준 아래의 마법적 현상을 깨트리고 금지시키는 대항 마법.
치칫-
그녀가 사용하는 카드 마법들.
아니, 그것들은 이미 변형되고 변형되어 마법이라 불릴 만한 기술이 아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건 마나를 응용하여 만들어 낸 현상이었다.
주변의 마나를 강제로 흔들어 내면 그 현상들 모두 흩어지는 법이다.
“히히…….”
두 조커가 옅은 웃음만을 남긴 채 사라져 가고.
“8서클의 마검사라, 스스로도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녀가 들고 있던 아론다이트가 본래의 모습인 카드로 돌아가 펄럭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바로 창을 앞으로 내질렀지만, 그녀는 이미 훌쩍 뛰어 자리를 비운 후였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고.”
불운의 성흔.
아직 완벽하지만, 그 불운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 그 약점을 파악하는 여정의 지침표조차도 아직까지 그녀의 약점이나 빈틈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공략 불가의 대상은 아니었다.
최악의 변수만을 고려한 전투.
그리고 운에 기대지 않는 압도적인 힘이라면 충분히 그녀를 공략할 수 있었다.
세운이 성흔을 검붉게 빛내며 본격적으로 전투를 이어가려던 순간.
“세운 씨-!”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디아블로의 부길드 마스터, 유서아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원래 제일 먼저 도착해 있을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다른 길드원들이 도착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유서아가 이제야 나타났다.
게다가, 멀리서 보아도 그녀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괜찮아?”
“네? 아, 이거요?”
세운이 손을 내저어 아르카나와의 전투를 끊어내고는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날카로운 쌍검을 제외하고는 착용한 장비 모두가 깨지고, 부서져 있었다.
걸음이 조금 위태롭다 싶었는데 왼쪽 다리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럭저럭 버틸 만해요. 처음에는 하늘 씨가 만들어진 포션으로 치료했는데, 나중에는 그것도 어려워졌거든요.”
심지어 그녀의 뒤를 따라오던 강한철의 모습은 더했다.
방어구는 온데간데없이 너덜거리는 장비 파편으로 하체만 간신히 가리고 있었는데, 드러난 맨살이 모두 파랗게 질려 있었다.
심지어 몇몇 부위는 이미 괴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저 정도면 한 발자국을 옮기는 것만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텐데, 정작 강한철은 무덤덤한 얼굴로 걸어와 세운을 내려보고 있었다.
“대련이군. 나도 참가하지.”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어쩌다 보니 한철 씨랑 같은 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했거든요.”
유서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시작했다.
아직 거주지에 이하늘이 도착하지 않았기에, 임시로 세운이 회복 마법을 사용하여 둘의 동상을 치료해 주었다.
다만, 설명을 듣던 세운은 저도 모르게 회복 마법을 멈추고 놀라고 말았다.
“팔한지옥?”
“네, 첫 번째가 알부타지옥이었고, 83층에서 찾아낸 게 니라부타지옥이었어요. 이름이 좀 어렵죠?”
세운도 익히 알고 이는 던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세운이 지금 공략하고 있는 던전들이 바로 팔열지옥이었으니까.
팔한지옥이라면 팔열지옥에 정확하게 대척되는 던전이었다.
‘나도 못 찾은 곳들인데?’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해 마계의 온 구역을 탐험하였던 회귀 전에도, 압도적인 힘으로 거리낌 없이 마계를 돌아다니던 지금도 말이다.
회귀 전의 기억을 토대로 팔열지옥은 찾아냈지만, 팔한지옥만은 찾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마계라고 하여도 팔한지옥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히든 던전을 탐색계도 아닌 유서아와 강한철이 찾아내다니.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우쭐거립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자신의 발아래에 감출 수 있는 곳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부합니다.
보아하니 두 마왕이 무언가 도움을 준 모양이다.
‘성좌의 도움이 있어야만 찾을 수 있는 곳인가?’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모른 척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팔한지옥에는 먹을 게 별로 없다며 휘파람을 불어댑니다.
마신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추측이 맞았나 보다.
마몬이나 베엘제붑은 몰라도 레비아탄은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아마 그녀의 힘이 회복되었다면…….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팔열지옥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일이라며 당신을 걱정합니다.
라는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진척은 있었어?”
“네!”
일단은 급한 대로 동상으로 괴사하고 있는 부분을 전부 치료해 주었다.
그래도 세세한 치료는 이하늘에게 받는 게 훨씬 좋을 테니 강한철의 대련은 뒤로 미뤄 두었다.
고창석이 오면 장비도 전부 새로 받아야 할 테고 말이다.
이어서 세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유서아가 허리춤의 검을 꺼내 들었다.
장검과 단검의 중앙.
흔히들 숏 소드라 불리는 검이었는데, 평소에 그녀가 사용하던 검과 크기가 비슷했다.
무엇보다 푸른 검날에서 흘러나오는 살벌한 냉기는 그게 평범한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니라부타지옥에서 얻은 검이에요. 지옥한빙이라는 소재도 얻어서, 할아버지가 오시면 제작을 의뢰하려구요!”
“좋네.”
확인해 보니 S+급의 무기였다.
팔한지옥의 냉기를 머금은 무기라는데, 냉기를 극도로 정제하여 극상의 예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모양이다.
“아, 그리고 이것도.”
이어서 그녀가 꺼낸 건 두 개의 인장이었다.
그것들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세운이 얻은 것과는 다르지만, 이것들 역시 팔한지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증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