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2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27화(527/675)
제 527화
결국, 유서아와 강한철이 팔한지옥에서 얻어온 인장의 사용처는 알아내지 못했다.
세운도 팔한지옥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으니까.
다만, 팔열지옥의 증표를 다 모으면 사탄의 신전을 찾아낼 수 있는 만큼 팔한지옥의 인장 역시 그와 비슷한 보상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얼른 대련부터 하지. 몸이 근질거리던 참…….”
찰싹!
“근질거리기는 무슨, 앉아요! 왼팔에 괴사가 일어나던 거, 자각하고 있어요? 뼛속까지 얼어 있었다구요.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잠시 후, 때맞춰 등장한 이하늘 덕분에 유서아와 강한철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치료가 끝난 줄 알고 곧장 세운에게 대련을 신청하던 강한철이 이하늘의 손바닥에 자리로 돌아갔고, 그것을 본 유서아도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숙녀는 원래 바쁜 법이랍니다~”
강한철과 달리, 아르카나는 대련을 자주 요구하진 않았다.
덕분에 시간이 붕 뜬 세운은 거주지의 공터로 나와 품에서 유리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스카베의 모래폭풍이 깃든 유리구슬.
아우터마저 봉인하였던 모래폭풍을 구현할 방법을 찾을 타이밍이다.
우웅-
파바바밧!
“역시 마나로는 안 되네.”
마나를 응축하여 밀도 높은 마나를 밀어 넣기도 하고, 마나를 실처럼 세밀하게 미워 넣어 컨트롤해 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유리구슬 안의 모래폭풍은 여전히 유리구슬 안에서만 휘몰아칠 뿐 밖으로는 모래알 하나 빠져나오지 않았다.
내공을 밀어 넣기도 해 보았지만, 유리구슬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역시 주술인가.’
엘하임의 대도서관에는 마법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주술도 기록되어 있었다.
대현자 중에서는 주술을 연구하여 그 자리까지 올라간 이도 존재했을 정도다.
세운도 그의 연구를 도우며 다양한 지식을 얻었으니 고대 스카베의 주술을 재현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먼저 오크족의 주술부터.’
세운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주술에 관한 모든 지식을 사용하였다.
몬스터가 사용하는 주술부터 시작해 엘 아브르의 대현자가 사용하던 최신식 주술까지 걸어보면서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이면 그 주술을 응용하여 스카베의 주술을 재현해 내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뭐지?”
통하지 않았다.
그 어떤 주술도 유리구슬 내부의 모래폭풍을 끌어내지 못했다.
성흔의 신성을 담아보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에 손가락을 튕겨 충격도 줘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
솔직히,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탐욕의 권능이라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는데.’
마몬의 보물창고에도 주술과 관련된 보물들이 있었다.
혼자의 힘으로 되지 않자 바로 마몬의 보구를 사용하여 다양한 주술품을 사용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저건 대체 뭔데 반응이 없냐며 인상을 찌푸립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답답해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저런 쓰레기, 자기가 부숴주겠다며 이쪽으로 집어 던지라고 외칩니다.
‘그건 안 되지.’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표정을 바꾸더니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십니다.
세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할 생각은 아니다. 그저, 아까운 것뿐이다.
‘여기에 사용할 게 아니었는데.’
세운이 아공간 주머니를 통해 작은 보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회색의 보석.
데스힐을 떠날 무렵, 데스힐의 네 사제가 찾아와 만들어 주었던 보석이었다.
그 효과는 이미 스러진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것.
단 한 번뿐이지만,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누는 힘이 깃든 보석이다.
‘어쩔 수 없지.’
본래는 다른 히든 던전이나 쉼터에서 사용하려 했던 보석이다.
죽은 자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나게 큰 이점이었으니까.
당장 생각나는 곳 중에서 어느 곳에 사용해야 좋을지 기대가 되는 물품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용하게 돼 버렸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 유리구슬의 모래폭풍을 끌어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없었다.
파삭.
세운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회색의 보석이 으스러지며 모래처럼 흩어졌다.
이내 흩어진 보석이 인영의 형상을 그리더니 세운의 의지에 따라 유리구슬의 주변을 휘감았다.
– 데스힐의 초혼석(招魂石)이 대상을 지정합니다.
– 초혼석이 영혼의 흔적을 찾아냅니다.
초혼석의 사용 조건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원하는 인물이 죽은 장소에서 그 영혼을 불러오는 것.
두 번째는 그 인물의 시체를 찾아내 영혼을 불러오는 것.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지금과 같이 사물에 초혼석을 사용하여 그 사물에 깃든 영혼의 흔적을 찾아 올라가 영혼을 불러오는 것이다.
‘간단하게 들려도 원하는 영혼과 대화하기는 어렵지.’
초혼석의 단점이라 하자면, 영혼을 특정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첫 번째 방법을 사용할 시, 해당 장소에서 죽은 수많은 영혼 중 가장 흔적이 뚜렷한 영혼이 나타나고.
두 번째 방법은 세 번째 방법의 사용법과 겹쳐 그 인물을 죽인 영혼이나 아끼던 영혼이 나타날 수도 있다.
특히나 세 번째 방법은 사물의 흔적을 찾아 올라가는 것이라 세 방법 중에서도 원하는 영혼을 특정하기가 가장 어렵다.
‘하지만, 방법은 이것뿐이다.’
주술사가 사용하던 유리구슬이라면 주술사를 제외한 인물이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했을 터.
부디 이 유리구슬에 남은 영혼의 흔적이 모래폭풍을 불러낸 주술사이길 바라며, 세운은 차분하게 초혼석이 영혼을 불러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초혼석이 영혼의 흔적을 찾아내었습니다.
– 초혼석이 영혼을 불러옵니다.
회색 가루가 몰려들어 인영의 형상을 취했다.
과연, 세운의 바람대로 스카베의 주술사가 나타날까?
가루가 응집되어 완벽한 형태를 이루기 직전, 영혼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리듯이 세운에게 전해졌다.
“아아…….”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
어쩐지, 아직 다 응집되지 않은 회색 가루의 얼굴 부근에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덜덜 떨려오는 영혼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위대한 존재…… 수호신께서 마침내 안식을 되찾으셨구려…….”
영혼은 스카베의 현 복장과 비슷하게 얼굴에 두건을 두르고 있었고, 거친 재질의 로브로 눈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가리고 있었다.
그 눈마저도 로브와 두건에 그늘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로브에는 정체 모를 동물의 이빨이나 손발톱, 각양각색의 보석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손에 들린 지팡이는 모래를 끊임없이 흘려댔다.
굳이 그 모습이 아니더라도, 방금 내뱉은 문장만으로 세운은 알 수 있었다.
이자가, 자신이 원하던 스카베의 주술사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협에게 스카베의 축복이 느껴지오. 분명 그대가, 저희 수호신의 안식을 되찾아 주셨겠구려.”
“아우터. 열사의 괴물이라면, 제가 쓰러트렸습니다.”
“그곳의 선조로서…… 아니, 후세에 죄를 미룬 죄인으로서 대협에게 깊은 감사와 사죄의 인사를 드리는 것을 허락해 주시오…….”
영혼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허리를 숙이는 데 이어 무릎을 굽히더니 세운에게 절을 바쳤다.
과도한 표현에 괜히 민망했지만, 여기서 사양하는 건 오히려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세운은 그가 충분히 감정을 쏟아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기억하기로 초혼석의 지속시간은 그리 짧지 않았으니까.
“정말, 정말 감사하오…….”
그는 엎드린 채로 연신 감사 인사를 중얼거리고, 땅에 회색 가루가 조금 쌓일 정도가 된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제 본론을 꺼낼 타이밍이다.
“모래폭풍을 불러내는 방법을 알려주시길 원합니다.”
“아아, 그렇구려. 위대한 존재마저 타락시킨 역수를 쓰러트린 분이시니, 그 힘이라면 대협에게도 도움이 될 터이니…….”
영혼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구슬을 어루만졌다.
그 즉시 유리구슬 내부의 모래폭풍이 반응하며 거칠게 일렁였다.
“이는 본래 스카베의 주술사 중에서도 대주에게만 내려오는 비기이지만, 위대한 존재의 안식을 도와주신 은인에 대한 보답으로는 오히려 부족할 터이니…….”
영혼의 손이 유리구슬에서 멀어졌다.
그러자 그 안의 모래폭풍이 영혼의 손길을 따라오며 자연스럽게 유리 표면을 뚫고 나왔다.
세운이 마나를 불어넣었을 때처럼 유리구슬의 표면에 부딪히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애초에 유리 벽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모래폭풍이 영혼의 손 위에서 애완동물처럼 애교를 부린다.
“이는 저희의 선조께서 깨달으신 힘이 피를 타고 내려온 혈족의 힘이오. 그러니 반응하지 않을 수밖에.”
그제서야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족의 힘. 즉, 해당하는 사용자의 피를 내려받지 않은 이상 사용할 수 없는 힘.
그러니 세운이 아무리 다양한 지식을 사용하여 모래폭풍을 끄집어내려 하여도 끄집을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위대한 존재를 막아내기 위해, 당시 존재하던 모든 주술사가 혼을 바쳐 크기를 불렸던 것이라오.”
설명을 듣던 세운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혈족의 힘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라면, 이렇게 사용법을 듣는다고 하여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초혼석까지 사용했는데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하다니.
아쉬워하며 힘을 포기하려던 찰나.
“그러니, 소인을 포함한 모든 이의 혼을 그대에게 바치려 하오.”
“혼을?”
“어차피 잔재만 남은 힘이오. 하지만, ‘자격’으로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오.”
영혼이 입고 있던 옷자락이 흩어지더니 세운의 성흔을 향해 깃들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던 모래폭풍 역시 조금씩, 조금씩 그 흐름을 따라 세운을 향해 다가왔다.
“괜찮겠습니까? 혼을 받친다는 건, 영원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저희가 후대에 미뤄 둔 죄를 해결하시고, 찬란한 태양의 도시를 지켜주신 은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영혼이 모두 세운의 성흔에 깃들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고민하던 모래폭풍 역시 그 움직임을 따라 세운의 성흔에 스며들었다.
– 성흔에 ‘자 칼스 빌 아 세루’의 영혼이 깃들었습니다.
– 성흔에 주술사의 힘이 스며들었습니다.
주술사의 영혼.
그는 세운이 모래폭풍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행동한 것뿐이겠지만, 세운이 느끼기는 달랐다.
그의 영혼에는 엄청난 높이의 ‘격’이 깃들어 있었다.
그 영혼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세운의 격이 몇 단계는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나 강한 사람이었다는 건가.’
세운이 오른손을 강하게 쥐었다.
성흔이 빛을 발하며, 방금 막 들어왔던 모래폭풍이 다시금 존재를 내비쳤다.
아무리 달래고 채찍질해도 유리구슬 안에 꼼짝없이 숨어 있던 모래폭풍이 세운의 의지에 따라 나타나 맹렬하게 회전하였다.
다만, 휘몰아치는 모래알 중 단 하나도 세운의 손바닥에 부딪히지 않았다.
모래폭풍은 이미 세운을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게 스카베의 모래폭풍.’
화아악-!
세운의 의지에 따라 모래폭풍이 크기를 키워갔다.
순식간에 세운의 키를 넘어서더니 어지간한 건물의 크기를 따라잡고, 이에도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불어나 하늘을 집어삼키는 모래폭풍.
아우터마저 봉인시켰던 스카베의 바로 그 모래폭풍.
– 성흔에 수괴(囚怪)의 모래폭풍이 잠듭니다.
그것이, 세운의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