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2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29화(529/675)
제 529화
2인 진입 가능 던전.
흔하지는 않지만, 이런 던전을 처음 보는 건 아니다.
협동 던전이라거나 경쟁 던전 등. 탑에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유형의 던전이 존재했으니까.
‘그래도 팔열지옥에서 이런 메시지가 뜰 줄은 몰랐는데.’
첫 번째 던전이라면 몰라도 두 번째, 세 번째 던전은 모두 협동 던전이라 하여도 이상할 게 없는 던전이었다.
그런 던전들도 다 혼자서 공략이 가능했는데, 이제 와서 두 명이서만 도전할 수 있는 던전이라니?
세운이 히든 던전 앞에서 멈칫거리자 이를 알아챈 마신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사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사탄은 마신 중에서도 답지 않게 친구나 우애,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놈이라며 질색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그래도 가끔 마주할 때마다 먹을 거 챙겨주는 건 사탄뿐이었다며 작게 중얼거립니다.
일곱 마신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군대를 지니고 있다는 분노의 마신, 사탄.
그렇기에 마몬의 말이 더욱 이해되긴 했지만…….
‘시간 되는 사람이 있으려나.’
살짝 골치가 아팠다.
언제나 앞장서서 세운을 따라오는 유서아는 팔한지옥을 공략 중이고, 말없이 세운을 따라주던 강한철 역시 유서아와 활동 중이다.
이하늘은 최근 새로운 소재를 구하기 바쁘다고 들었고, 백현도 악마의 몸에 담긴 마기에 흥미를 느끼며 열심히 연구 중이다.
세운이 기억하기로 디아블로 길드원 대부분 마계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혹시나 하여 길드챗을 열어보니.
[ 한아름 : 저희 74층에 첨탑 좀 지으려고 하는데 도와주실 분? ] [ 한다운 : 도와주실 분! 보상은 나의 사랑! ] [ 한아름 : 에휴. 플러스 공적치! ] [ 해리 케인 : 히든 던전을 발견했는데 저 혼자서는 공략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시 주변에 지원 가능하신 분 계실까요? ] [ 제논 : 해리 님, 위치 좀 알려줄 수 있으십니까? 저희 길드는 공략에만 집중 중이니,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지원을 보내보겠습니다. ] [ 해리 케인 : 감사합니다. 방금 조명탄 쏘아 올렸습니다. ] [ 제논 : 아, 보입니다. 마침 제 주변이니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조명탄을 보고 몬스터가 몰려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 [ 해리 케인 : 감사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한창 바빠 보였다.
그렇다고 팔열지옥의 공략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세운도 길드챗에 글을 남길까 고민하던 찰나.
“형니이이이이임-!!”
세운이 지나쳐 온 협곡의 틈 바깥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보니 몬스터에게 쫓기고 있는 듯하다.
세운을 발견하고 부르는 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습관처럼 세운을 부르는 목소리.
평소 같았으면 고개를 저으며 무시했겠지만.
“어차피 인원수만 채우면 되겠지?”
세운이 눈을 번쩍이며 틈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틈을 빠져나가자마자 돌덩이처럼 커다란 악마가 박정필을 뭉개려는 듯 협곡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오는 게 보였다.
– 내공을 통해 파극암검의 제일 초식, 파천(破天)이 강화됩니다.
쩌엉!
“그웨에엑!”
그 거대하던 악마가 세운의 칼날에 중심부터 일그러지더니 이내 균열이 퍼져나가 산산이 조각나 부서졌다.
떨어지는 파편 사이에서 박정필이 세운을 향해 눈을 반짝거린다.
“형님, 구하러 와주셨습니까! 믿고 있었습니다아!”
그런 녀석을 향해, 세운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할 거 없지?”
“……넵? 아니, 저 좀 바쁜 거 같기도 하고…….”
변명 따위는 소용없었다.
* * *
[ 히든 던전, ‘규환지옥(叫喚地獄)’에 입장하였습니다. ]박정필의 자선 덕분에, 세운은 무사히 히든 던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팔열지옥 중 네 번째, 규환지옥.
세운도 이후의 지옥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규환(叫喚)이라는 이름으로 던전의 유형을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끼야아악!”
“끼야아아악!!”
“으아악, 형님! 이거 뭡니까!”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고막을 찌르는 괴음이 들려왔다.
마몬의 보물 덕분에 남들보다 청각이 좋은 세운이었기에 그 소리는 더욱 시끄럽게 느껴졌다.
‘시작부터 갈림길인가.’
온통 부글거리는 용암으로 가득 채워진 지형에 입구를 기준으로 좌우에 길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가 있었다.
세운은 괜히 협동 던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갈림길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던전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말이다.
하지만 고민은 금방이었다.
“박정필, 저쪽을 맡아라.”
“꺄아아아악!”
“네? 형님, 뭐라는 겁니까! 여기 너무 시끄럽슴다!”
“피하는 건 자신 있지? 일단 해 보다가 안 되면 도망쳐 있어. 내가 이쪽 공략 마치고 금방 그쪽으로 가줄 테니까.”
“꺄아아아악!!”
“아니, 형님! 안 들린다니까요? 귀청 찢어지겠네! 어떤 놈들이 이렇게 시끄럽…….”
덥썩.
“……어, 형님?”
세운이 동물을 잡듯이 박정필의 뒷덜미를 쥐어 들었다.
일순간 녀석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스쳤지만, 아쉽게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녀석의 불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이따 보자.”
휙!
“으아아악, 형니이이임!”
박정필은 시원하게 잘 날아가 정확하게 용암 사이의 외길에 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익숙하게 낙법을 펼치더니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녀석.
“형님, 형님! 형니이임!”
푸홧!
‘이런 구조인가.’
이어서 입구와 길 사이에 용암이 분수처럼 치솟으며 길이 막혔다.
뭐, 그래봤자 용암 따위로는 세운을 막을 수 없을 터.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은 반대편의 길로 몸을 움직였다.
푸홧!
반대쪽 길에 발을 올리자마자 박정필 때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용암이 치솟으며 입구로 향하는 길을 막아섰다.
‘저놈이라면 알아서 버티겠지.’
세운이라고 박정필의 죽음으로 몰아넣으려고 그렇게 던져둔 게 아니다.
맨날 약한 척을 하고는 있어도, 녀석 역시 어엿한 디아블로 길드원이다.
길드의 도움을 받은 적도 많지만, 혼자의 힘으로도 시련을 공략하며 이 74층의 시련까지 도달한 플레이어라는 거다.
게다가 회피나 생존에 관해서는 디아블로에서 최고 수준이라 판단하였으니 저렇게 던져둘 수 있었던 것이다.
“꺄아아아악!”
그리고, 길에 들어오고서야 비명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옥조(獄鳥)인가.”
지옥에서 나타난다는 새.
죽은 자의 영혼을 쪼아 죄를 살피고 고통을 선사한다는 지옥의 괴조였다.
부리는 그 어떤 칼날보다 날카로웠고, 그 위로 수십 개의 눈알이 박혀 있다.
날개는 세 개가 달려 있는데, 그중 하나는 완전히 썩어 문드러진 깃털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꺅, 꺄아악!”
“꺄아아악!”
그것들은 마치 사람과 닮은 비명을 지르며 세운을 습격해 왔다.
좁은 길목 양옆으로는 바위마저 녹이는 용암이 끓고 있는 상황.
그 제한된 길목에서 지옥의 괴조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그 대상이 세운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사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서거거걱!
날아오던 다섯 마리의 옥조가 수십 조각으로 갈라졌다.
새까만 깃털이 지옥의 저주를 머금은 채 사방을 가득 채웠지만, 바람 마법을 사용하여 가뿐하게 날려 보냈다.
“꺄아아아악!”
그런데도 녀석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잘린 몸에서 깃털이 뿜어지더니 전보다 더욱 기괴해진 모습으로 세운에게 날아들었다.
길을 따라 앞으로 나갈수록 옥조의 습격은 더욱 맹렬해졌다. 그럴수록 세운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모습이 작게 떠올랐다.
‘……괜찮으려나?’
규환지옥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았던 탓이다.
* * *
“으아아아악!”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낄낄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박정필의 머리 위로 옥조의 발톱이 스쳐 지나간다.
앞으로 몸을 두 바퀴 구르자마자 양옆으로 또 다른 옥조가 날카로운 부리를 드러내고 날아든다.
급박하게 뛰어올라 공격을 피했지만.
“꺄아아아악!”
“흐꺄아아아!”
공중에 뛰어오른 것은 실수였다.
중력에 거스를 수 없는 사람의 몸으로는 공중에서 옥조의 공격을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면에서 옥조와 얼굴을 마주한 박정필이 옥조와 비슷할 정도의 데시벨로 비명을 내질렀고.
콰직!
옥조가 날카로운 부리를 다무는 순간.
펑!
“찌익!”
그 사이에서 회색 쥐 한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숨이 넘어갈 듯이 웃음을 터트립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역시 생쥐 꼴이 가장 잘 어울린다며 손가락질합니다.
“찌익! 찍, 찍찍찍! 찌직!”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불만 가져봤자 어쩔 수 없다며 당신을 비웃습니다.
동물화.
서열 6위의 마왕, 발레포르가 지닌 권능 중 하나였다.
사실 서열 6위나 되는 마왕의 권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나약해 보이는 힘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방금 막 인간의 형상으로 되돌아온 박정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다른 놈들은 지진도 일으키고, 독도 쓰고, 시체도 일으키는데! 난 겨우 이게 뭐냐고오!”
“꺄아아악!”
이번에도 몸을 굴려 또 한 마리의 공격을 피해 낸다.
“그리고 동물화면 좀! 곰 어깨랑 늑대 손톱 해 가지고 멋있게 공격하고!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고! 이러면 어디 좀 덧나냐고!”
새로운 공격을 간신히 피해 낸 박정필의 몸이 옆으로 기운다. 옥조의 공격을 완전히 피해지 못한 탓에 날개에 부딪혀 균형이 깨지고 만 것이다.
이대로 넘어지기만 해도 용암에 전신이 녹아내리는 위험한 상황.
박정필이 두 팔을 날개로 바꾸어 힘차게 펄렁인다.
파닥파닥!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의 배꼽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날개라고 해봤자 닭의 날개.
팔이 떨어져 나가라 날갯짓을 해 보았으나, 허공을 비행하기는커녕 간신히 균형을 되찾고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정도가 전부였다.
애초에 발레포르의 동물화는 공격용이 아니었다.
쥐나 닭, 물고기, 양이나 염소 등, 포식자보다는 피식자에 속하는 동물로만 변할 수 있는 무척이나 소극적인 권능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박정필의 도주 회피 능력은 눈에 띄게 증가했지만 말이다.
“나도 좀 멋있게 싸우고 싶단 말입니다아!!”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낄낄거리며 저기 옥조 깃털이나 몇 개 털어보라 말합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머리에 꽂으면 딱 어울려 보인다며 그 모습을 상상합니다.
보이는 옥조를 전부 사냥하며 나아가는 세운과 달리, 박정필은 오직 회피에 일관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보니 옥조의 수는 점점 늘어 수십 마리로 불어났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옥조들끼리 자기가 먼저 공격하겠다며 싸움이 일어날 지경.
그 사이에서.
“으아아아악, 형니이이임!”
박정필의 비명이 외로이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