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3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32화(532/675)
제 532화
그렇게 도착한 76층의 시련, ‘마혈림(魔血林)’.
새빨간 풀과 나무가 가득한 정글형 지형이었다.
이곳의 식물 전부 마기를 머금고 자란 터라 하나하나가 몬스터나 다름없었고, 곳곳에서 마혈림에 적응한 마수들이 튀어나왔다.
“으아아악, 형님! 저 위험! 위험!”
“엄살은.”
“방금 저 풀이 입 벌렸잖습니까! 이빨이 무슨 호랑이보다 더하더만!”
“생각보다 약해. 안 죽어.”
콰직.
“바, 방금 마수 한 마리가 저기에 잡아 먹혔는데요?”
“……난 안 죽어.”
“으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혹시라도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게 아닐까 했던 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마계에 도달하여 탑을 오르고, 최근에는 규환지옥의 보스 몬스터마저 혼자도 잡았으면서도 겁은 그대로다.
덕분에 세운은 녀석의 목덜미를 붙잡고 마혈림 내부를 질질 끌고 다녀야만 했다.
적당히 길을 걷던 세운은 품에서 작은 종이 같은 걸 꺼내 들었다.
비명의 조각.
아니, 박정필이 반대편 외길에서 얻은 것을 합쳐 만들어 낸 완전한 ‘비명’.
“꺄아아아악!”
“흐꺄아아아악!”
“시끄러워.”
“노, 놀랬잖습니까!”
종이에 마나를 슬쩍 불어넣자마자 규환지옥에서 보았던 옥조의 부리처럼 쩍 벌어지더니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이 향하는 곳이 바로 대규환지옥.
세운이 회귀 전에 그곳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서 물어뜯어라!”
“크헝!”
그 순간, 주변의 수풀에서 머리 둘 달린 들개들이 튀어나와 세운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들개라고는 하나 어지간한 사람만 한 크기에, 근육은 황소처럼 두껍고, 흉흉하게 꿈틀거린다.
이놈들이 바로 수풀림의 마수들이었다.
‘이게 단점이란 말이지.’
비명이라는 이름의 길 안내 종이.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엄청난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에 존재감을 퍼트리는 탓에, 사용할 때마다 적의 기습을 감당해야만 했다.
“으아아아악, 사람 살려!”
비명을 내지르는 강한철의 머리를 찍어 누르고, 세운이 혈랑포효의 초식으로 사방에 검기를 흩날렸다. 그러고는 우측의 나무를 밟고 그 위로 달렸다.
누군가 오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이 매끈한 나무였지만, 세운의 보법은 나무의 허락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인간 놈, 어떻게!”
“그렇게 구린내를 풍겨대는데, 모를 수가 없지.”
하늘을 수북하게 가린 나뭇잎을 뚫고 오르자마자 뿔피리를 든 악마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방금 튀어나온 마수들을 다루는 악마.
그 미약한 인기척을 감지하자마자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해 찾아낸 적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숨어봤자, 은신 수준이 대단해 봤자, 이 정도 수준으로 여정의 지침표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봤자 인간…….”
악마의 몸이 부풀었다.
머리는 하마처럼 거대해지고, 왼손에는 사자의 손톱이 자라나고, 오른손은 뱀의 머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전신이 마수의 신체 부위로 변하여 덩치를 부풀렸다.
하지만, 악마가 그것들을 움직일 기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육 초식, 혈랑항연(血狼項撚)이 강화됩니다.
콰직!
“커억-”
붉은 기류가 일렁이는 세운의 검이 휘둘러지자마자 악마의 몸은 수백 마리의 늑대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잔혹하게 찢겼기 때문이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그 모습 위로, 사냥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 서열 38,856,120위의 악마, ‘페르푸스’를 쓰러트렸습니다.
– 쓰러트린 악마의 번호가 당신에게 이전됩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 정도 서열의 악마를 쓰러트렸다.
비록 76층의 악마라고 해도, 세운과의 전투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비명’의 효능에 매우 만족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혹시라도 길을 잘못 들으면 안 되니 비명 좀 팍팍 쓰라며 당신을 재촉합니다.
뭐, 비명의 효과에 만족하는 사람. 아니, 성좌가 하나 있긴 했다.
“형님, 저 진짜 그만 가면 안 됩니까? 저 진짜 바쁜데…….”
“어차피 너도 76층 공략해야 하잖아. 따지고 보면 내가 도와주는 거 아니야?”
“전 이런 식으로 공략 안 한단 말입니다아악!”
기습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비명을 듣고 저 멀리서 날아온 거대한 맹수형 악마가 두꺼운 나무를 부러트리며 돌진해 왔다.
그 위험들을 차근차근 무찌르며, 세운은 마침내 비명이 가리키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회귀 전에도 와본 적 있었던 곳인데.’
풀은 무성하나, 기묘하게도 나무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땅.
분명 무언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여정의 지침표를 포함하여 땅도 파보고, 몬스터도 잡아보았으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곳.
그곳에서 비명의 종이를 펼쳐보니.
“꺄아아아악!”
쿠구구궁!
지면이 흔들리며 대지가 쩌억 벌어졌다.
던전의 입구라기보다는 거대한 몬스터의 아가리에 가까운 형상.
[ 히든 던전,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을 발견하였습니다. ] [ 대규환지옥은 4인 이상으로만 진입이 가능한 던전입니다. ]“4인 이상이라…….”
혹시나 했는데,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대(大)규환지옥이라는 말처럼, 이번 던전은 이전 규환던전의 두 배에 달하는 인원을 요했다.
“혀, 형님. 이거 어차피 사람 불러야 하잖습니까? 어차피 부를 거 전 빼고 들어가 주시면…….”
“오른팔이라며.”
“맞긴 한데…… 흐윽.”
어지간하면 바쁜 길드원들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어쩔 수 없다.
박정필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두 명을 추가로 구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세운은 할 수 없이 길드챗에 지원 요청을 남겼고.
[ 해리 케인 :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마스터! ] [ 최수창 : 어디에 계십니까? ] [ 한아름 : 헐, 혈랑 오빠! 우리 거의 다 지었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면 안 돼? ] [ 한다운 : 우리 둘이 가면 딱이겠다! 근데 이거 마무리 좀 걸릴 거 같은데! ] [ 이하늘 : 마침 마혈림에서 약초 채집 중이었는데, 제가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다들 바빴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무수한 지원 응답이 들려왔다.
* * *
히든 던전 주위의 몬스터를 정리하다 보니 지원군이 곧 도착했다.
“마스터!”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해리.
거리가 제법 멀었던 것 같은데, 표범에 올라탄 채로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도착한 사람을 기다릴 이유도 없이, 해리의 등 뒤에서 또 한 명의 디아블로 길드원이 내렸다.
“최수창?”
“마침 같은 던전을 공략 중이어서 바로 따라왔습니다.”
“최수창 님이 제가 찾은 던전의 공략을 도와주고 계셨습니다. 수중 관련 던전이라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로써 히든 던전의 입장 조건인 4명이 전부 충족되었다.
길드챗에 마감을 올리니 다른 길드원들이 아쉬워하는 게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고 던전의 입구를 향했다.
쩍 벌어진 아가리가 던전의 입구치고는 영 불길했던 탓에 해리와 최수창이 망설이자 세운이 먼저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으악, 형니이이임!”
뒤에서 몰래 도망치려던 박정필을 붙잡은 채로 말이다.
[ 히든 던전,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에 입장하였습니다. ]대규환지옥.
이름 그대로 규환지옥에서 느꼈던 것 이상의 비명이 들려왔다.
“여기가 마스터께서 공략 중이라는 곳입니까? 과연, 제가 찾아냈던 던전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흑흑, 들어와 버렸어. 또 들어와 버렸다고…….”
규환지옥과 다르게, 이곳은 외길이 아니었다. 외길은커녕 사방으로 수십, 수백 개의 길이 구불구불하게 뻗어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대규환지옥의 특색을 알 수 있었다.
‘미로형 던전인가.’
어떤 방식인지 대충 이해된다.
네 명이서 사방으로 퍼져나가 대규환지옥의 길을 찾아내라는 협동미션 같은데, 세운은 딱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따라와.”
“네! 마스터.”
“알겠습니다.”
“진짭니까? 야호! 제가 뒤따라가는 건 또 기가 막히게 잘하잖습니까!”
여정의 지침표.
세운의 고유 스킬은 이런 미로형 던전에서 가장 큰 빛을 발한다.
굳이 네 명이서 찢어질 필요 없이 여정의 지침표만 따라가면 대규환지옥의 끝이 보일 터.
“마스터! 이 바로 앞에 함정이 있습니다.”
“함정?”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최수창이 작살을 이용하여 전방의 길을 가리켰다.
그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물줄기가 작살을 따라 앞으로 뻗어나갔고, 해리가 가리킨 길목에 다다른 순간.
콰르륵!
치이이익-
용암이 화산처럼 분화하며 물줄기를 증발시켰다.
던전의 끝을 찾는 데 집중하느라 주변에는 관심을 덜 쏟고 있었는데, 해리가 그 틈을 메워주었다.
“꺄아아악!”
“헤에에에에에-”
대규환지옥 역시 몬스터가 존재했다.
규환지옥에서 보았던 옥조는 하늘을 가득 채웠고, 지상에는 혓바닥을 길게 늘어트린 옥졸들이 시뻘건 철퇴를 들고 있었다
미로의 특성상 길도 좁고, 사방에 용암이 득실거리는 상황.
확실히 규환지옥보다 난이도가 늘어난 게 느껴졌지만.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프로즌 템페스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선두에 선 건 세운.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보스 몬스터도 아닌 일반 몬스터가 세운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게 아무리 대규환지옥의 몬스터라 하더라도 말이다.
꽈드득!
사방에서 득실거리는 용암의 열기에도 가라앉지 않는 냉기가 놈들을 덮쳤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냉기에 당황하며 옥조가 추락하고, 옥졸들이 무릎을 꿇는 사이.
푸욱!
“처리 끝냈습니다.”
최수창의 작살이 날아와 차갑게 얼어붙은 옥졸들을 양옆의 용암에 집어 던졌다.
덕분에 깨끗하게 치워진 앞길을 향해 내달릴 수 있었다.
“열기가 장난 아니군요.”
“팔열지옥이라 했습니까? 과연…….”
“나도 죽을 뻔했다니까? 아오, 내가 말해 줬나? 형님과 함께 규환지옥을 극복한 나 박정필의 찬란한 이야기를!”
세운이 내색하지 않는다고 팔열지옥이 덜 더운 게 아니었다.
유서아와 강한철이 공략 중인 팔한지옥이 그렇듯이, 이곳 역시 엄청난 열기를 상시 내뿜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입구에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익고 허파가 타들어 갈 정도로.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게 아니었다.
박정필이야 워낙 많은 도구를 들고 다녔기에 열기에 저항력이 있는 도구들을 사용하여 규환지옥을 극복한 모양이지만, 이번에 새로 참가한 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 저희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슈르륵.
둘은 이미 세운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았다.
최수창이 포르네우스의 권능을 빌어 몸에 냉수를 두르고, 해리 역시 그의 도움을 빌렸다.
열기가 워낙 강력했던 터라 냉수가 빠르게 증발하고 있었지만,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보였다.
“그럼, 최대한 빨리 가지.”
그런 둘을 바라보며, 세운이 속도를 더욱 올렸다.
이제, 팔열지옥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