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3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33화(533/675)
제 533화
그 시각.
[ 히든 던전, ‘호호파지옥(虎虎婆地獄)’에 입장하였습니다. ]유서아와 강한철은 팔한지옥의 다섯 번째, 호호파지옥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르릉…….”
전신이 얼음으로 이루어진 호랑이가 혹한의 폭설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발톱은 보석처럼 아름다웠고, 송곳니는 다이아몬드처럼 날카로웠다.
빙옥호(氷獄虎)라 불리는 호호파지옥의 몬스터를 향해 유서아와 강한철의 합공이 닥쳤고.
째앵!
얼마 지나지 않아, 승부가 결정 나며 빙옥호의 몸이 유리처럼 부서졌다.
“후우…….”
“괜찮나.”
“움직이니까 좀 견딜 만해요.”
던전의 유형이나 까다로운 몬스터 등, 마계에 존재하는 평범한 몬스터나, 일반적인 던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난이도.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게 있다면, 당연하게도 팔한지옥의 지옥한설(地獄寒雪)이었다.
이제 겨우 다섯 번째 지옥인데, 고창석이 만들어 준 추위 저항 장비가 아니었다면 몬스터와 싸워보지도 못하고 얼음 동상이 되었으리라.
“여덟 번째 던전은 대체 어떤 곳이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추위 따위, 정신력으로 극복하면 그만이다.”
꽝!
강한철이 주먹을 쥐더니 가슴 앞에서 양 주먹을 부딪쳤다.
주먹을 타고 흐른 진동이 퍼져나가며 전신을 둘러싸고 있던 서리를 떨쳐 보냈다.
유서아도 이에 질세라 진각을 밟듯이 앞으로 발을 굴러 몸의 서리를 전부 날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쌍검을 들어 자세를 낮게 잡았다.
“또 와요.”
“알고 있다.”
“수는…… 당장 느껴지는 건 다섯 정도.”
빙옥호.
놈들이 무서운 이유는 방금과 같은 전면전의 강력함이 아니었다.
폭풍처럼 사납게 몰아치는 한설에 몸을 가리고, 수북하게 쌓인 눈에 발소리를 숨기고, 죽임이 아닌 처벌을 위하여 살기를 죽인 채로 죄인을 노려오는 몸짓.
그 기습이야말로, 빙옥호가 무서운 진짜 이유였다.
“걱정 마라.”
–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을 사용합니다.
강한철이 주먹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하반신을 뒤덮을 정도로 눈이 깊게 쌓여 있었지만, 그의 주먹은 쌓인 눈을 가뿐히 뚫고 들어가 지면에 박혔고.
쿠구구구!
거대한 지진을 일으켰다.
쌓인 눈 위로 파동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흩날리고, 이는 곧 눈사태가 되어 사방을 휩쓸었다.
“어흥!”
이런 상황에서, 제아무리 빙옥호라 하더라도 계속 몸을 숨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놈들은 기습을 포기한 채 눈사태를 뛰어넘어 유서아와 강한철을 덮쳐왔다.
“제 차례네요.”
이어서 유서아의 머리에 왕관이 씌워졌다.
그 뒤로 펄럭이는 망토가 완성되기도 전에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고, 달려들던 빙옥호들의 발이 바닥에도 닿기 전에.
–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일곱 번째 다리’를 사용합니다.
유서아의 공격이 빙옥호들을 휩쓸었다.
최근, 세운을 지키기 위한 아우터와의 전투에서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팔열지옥을 지키는 호랑이들이 그녀의 쌍검에 수백, 수천 개 얼음조각으로 변해 흩어졌다.
“얼른 가죠. 세운 씨가 기다리지 않게요.”
“내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다 대련을 신청하는 건 꽤 즐겁겠군.”
“그르릉…….”
둘의 앞으로 호호파지옥의 보스 몬스터, 한선문(寒線紋)의 폭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여정의 지침표 덕분에 대규환지옥의 끝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결국 갔어야 했던 건가?’
대규환지옥의 끝에 두 개의 열쇠 구멍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 네 방향 중에서 두 곳에 열쇠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닐까?
‘하나는 어떻게 되겠지만…….’
세운이 가진 만능열쇠의 단점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 만능열쇠는 무조건 문을 열어주거나 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하나의 잠금을 해체해 주는 열쇠다.
즉, 이렇게 두 개 이상의 잠금을 동시에 풀어야 하는 종류의 문에서는 한계가 발생한다.
“마스터, 이곳에서 쉬고 계시겠습니까? 제가 얼른 찾아오겠습니다.”
“아니, 우선은 다 같이…….”
던전의 끝에 도착한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리려던 찰나.
짤랑.
“……?”
뒤쪽에서 차가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뭔가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박정필이 바닥에 떨어트린 무언가를 주섬주섬 주워 들고 있었다.
“형님. 열쇠 그거, 혹시 이겁니까?”
“뭐야. 네가 그걸 왜 들고 있어?”
“아까 오다가 형님이 쓰러트린 옥졸이 가지고 있던 거 슬쩍 했는뎁쇼.”
“슬쩍……?”
이곳에서 쓰러트린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들고 있는 장비나 도구 역시 마찬가지.
게다가 세운은 항상 쓰러트린 몬스터에게 폭식의 권능을 사용해 왔고, 남은 장비 같은 건 없다시피 했는데.
‘그 와중에 저걸 챙겼다고?’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옥졸이 열쇠를 들고 있다는 건 세운조차 알지 못했고, 그걸 훔치더라도 본체가 죽으면 열쇠도 사라지는 게 이곳의 특성이었다니까.
다만, 박정필에는 그 당연한 이치마저도 어기는 권능이 하나 있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낄낄거립니다.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
서열 6위의 마왕이자 도적의 공작이라고도 불리는 자, 발레포르.
그가 가진 권능이었다.
“대단합니다. 정필 님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니…….”
“이번 건 서아 씨에게도 꼭 보고해야겠습니다. 드디어 정필 씨의 존재 이유를 밝힐 수가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것들이 뭐라는 거야!”
“잘했다.”
“크헤헿,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 이게 바로 형님의 진정한 오른팔! 저 박정필의 솜씨 아니겠습니까!”
노리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박정필은 벌써 두 번 연속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새삼 녀석을 대규환지옥까지 끌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컥-
녀석이 구해 온 열쇠와 세운이 꺼낸 만능열쇠. 두 열쇠를 끼워 한 번에 돌리자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그렇다고 문이 바로 열리지는 않았다.
“이거 좀.”
“네, 제가 잡고 있겠습니다.”
해리에게 열쇠를 맡기고, 세운이 문을 밀었다.
열쇠는 어디까지나 잠금을 풀 뿐, 문을 여는 건 근력으로 직접 밀어야만 하는 구조였다.
최수창이 그걸 알아차리고 도와주려 하였으나, 상황은 이미 해결되었다.
쿠궁!
세운의 힘만으로 문이 거칠게 열리고, 그 안으로 대규환지옥의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다.
“제가 보조하겠습니다.”
“저도…… 음, 그러고 보니 마스터 빼고는 전투 스타일이 전부 보조 스타일에 가깝군요.”
“괜찮아. 그게 더 편하니까.”
“꺄아아아아악-!”
“흐꺄아아악!”
“시끄럽다, 박정필.”
세 사람. 아니, 박정필은 저 구석에 숨어다녔으니 두 사람의 도움 덕분에 전투는 수월하게 흘러갔다.
굳이 마신들의 권능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보스 몬스터가 쓰러지고.
[ 히든 던전,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을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개인 공적치가 1,000,000point 상승합니다. ] [ ‘찢어진 분노의 경전(5)’을 획득하였습니다. ]대규환지옥의 공략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 * *
“마스터, 정말 괜찮습니까? 혹여나 저희 때문에 일찍 귀환하시는 거라면…….”
“아냐. 나도 쉬려고 했어.”
“저희라면 정말 괜찮습니다. 아니, 저희도 더 돌아다니다 가려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수창 님?”
“어…… 네.”
“아니, 진짜라니까.”
사실, 마음 같아서는 세운도 그러고 싶다.
76층의 시련과 대규환지옥.
크기가 워낙 넓었던 탓에 시간이 제법 걸리긴 했지만, 세운에게 그리 어려운 난이도는 아니었기에 체력도 멀쩡하다.
그러니 바로 다음 시련에서 여섯 번째 팔열지옥을 찾아내고 싶지만.
‘그곳도 협동 던전일 가능성이 크니까.’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미 앞선 두 던전 역시 협동 던전이었다.
앞으로의 던전도 최소 2명. 아니, 감으로는 그 이상으로 늘어날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차라리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속도를 맞추는 게 낫다.’
77층에 먼저 올라가서 히든 던전을 찾아냈는데 같이 도전할 사람이 부족하다면?
거기서 꼼짝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될 뿐이다. 주변의 히든 던전을 찾아다니거나 하며 시간을 때우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럴 바에는 거주지에서 다른 길드원들과 등반 속도를 맞추는 게 낫다고 생각한 세운이었다.
‘장비 여벌도 좀 만들어 두고.’
협동 던전이 늘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열기에 저항력을 가진 장비도 필요하다.
세운이 항상 옆에 붙어 열기를 식혀 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허허, 재료만 있으면 언제든 환영이라네.”
“재료는 여기 있으니 얼마든지 쓰셔도 됩니다. 다음 쉼터에 들르면 경매장에 있는 재료도 다 쓸어오죠.”
“오, 이건 또 새로운 소재구먼! 좋아, 어디 한 번 힘 내보지!”
고창석은 제련을 하느라 아직 76층에도 오르지 않은 상태다. 조금 미안하긴 해도, 장비 제작을 부탁해 두었다.
다들 시련 공략에 한창이다 보니 거주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개인 수련이나 할까.’
심지어는 아르카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모래폭풍의 컨트롤이나 새로운 8서클 마법의 확인, 무공의 다음 초식 등.
수련할 건 많았으니 평소 훈련장으로 자주 사용하던 공터로 움직였다.
하지만, 공터에는 세운보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하하, 좋습니다! 그대로 연쇄 폭발입니다!”
“그어-”
펑!
퍼엉!
퍼어엉!!
짧은 비명과 함께 터져나가는 좀비들.
수류탄처럼 터지는 좀비는 살점에 미세한 운석 알갱이들이 박혀 있어 아우터를 상대하기에 좋아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다음.”
“시-일험 번호. 사백-사오 번.”
“실험 번호. 사배-케에에에엑!”
“최선을 다해 서로 싸우십시오.”
“알겠습-니다.”
“케에에에에에엑!”
다음은 두 키메라의 전투였다.
한쪽은 평범한 손톱 대신 운석으로 만든 톱니 같은 게 박혀 있었고, 다른 한쪽은 머리부터 시작해 척추를 따라 운석이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 외에도 다음 실험을 기다리는 언데드가 줄을 서서 대기 중이었다.
실험에 얼마나 열중하고 있는 것인지, 세운이 먼저 옆에 다가와 인기척을 낸 후에야 백현은 세운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실험 중이었습니까?”
“네, 스카베에서 실험한 결과도 확인하고 실전 가능성도 재확인 중입니다. 아직 실험작들인데, 보여드리기 부끄럽군요.”
부끄럽다니.
백현의 언데드는 절대 어디 가서 부끄럽다는 소리를 들을 것들이 아니었다.
솔직히 네크로맨서로서의 실력만 보자면 회귀 전후를 통틀어 보아온 모든 플레이어 중에서도 최고라고 부를 수준이다.
“아,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제 언데드 좀 확인해 주셔도 되겠습니까?”
“확인이라면?”
“하하, 평소에 하듯이 싸워주시면 됩니다.”
백현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뒤에 서 있던 언데드들이 정렬을 맞춰 세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선호되는 일은 아니었다.
“제압하는 식으로 대하면 확실한 실험이 되지 않을 겁니다.”
미완성작이라고는 했지만, 세운이 보기에는 여기 있는 언데드 전부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될 정도로 훌륭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백현의 반응은 달랐다.
“네? 아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봐주지 마시고 팍팍 쓰러트리면 됩니다.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아깝지 않습니까?”
“하하, 아깝다니…….”
백현이 줄지어 선 언데드를 둘러보더니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실험체일 뿐이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