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3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34화(534/675)
제 534화
실험체일 뿐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과학자가 실험 쥐에게 정을 붙여서야 되겠는가?
본디 과학자라면 자신을 위해, 또 인류를 위해 감정을 죽이고 객관적으로, 또한 논리적으로 실험에 임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세운은 백현의 말투에서 미묘한 변화를 느꼈다.
‘원래 저런 성격이었던가?’
아니다. 튜토리얼에서 처음 대화했을 때의 백현은 저러지 않았다.
세운에게 네크로맨시를 배운 이후 그 누구보다 소중히 언데드를 다루었던 게 바로 백현이었다.
실험을 하고, 시체 폭발을 사용하면서도 ‘존중’만은 잃지 않았었다.
‘변했다.’
과학자가 실험 쥐에게 정을 붙여서야 되겠는가?
과학자가 실험 쥐를 사랑하면 되겠는가?
안 된다.
과학자라면 그러한 감정들을 죽이고 엄격하게 실험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자신을 위해, 인류를 위해 소중한 생명을 잃어 가는 실험 쥐에게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비도덕적이고, 허락도 묻지 않고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이지만, 그 감정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 감정을 잃는다면, 그건 더 이상 과학자가 아니다.
괴물.
실험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며 남은 예비 실험 쥐들을 장난식으로 죽여대는 괴물에 불과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네? 혹시 바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실험 대신, 오랜만에 대련 한번 어떻습니까.”
세운이 검집에서 뒤랑달을 꺼내 들었다.
백현을 위해서라도 그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이해시켜 주고 싶지만, 여기서 말로 그를 이해시킬 자신은 없었다.
와닿지 않는 설득은 오히려 당사자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니.
그리고 세운은 언제나 말보다 행동으로 상대를 이해시키는 데 더욱 익숙했다.
“대련이라…… 그렇군요.”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망설이는 듯이 보였지만, 대련을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곧바로 권능을 발하여 아공간을 열더니, 자신의 군세를 뿜어내며 전투를 준비하였다.
“세운 씨와의 첫 대련이 떠오르는군요. 오래되긴 했지만, 배운 게 정말 많았습니다.”
세운이 과거를 회상하였다.
당시에 세운이 백현에게 대련을 신청했던 이유는, 그가 너무 언데드에게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네크로맨서가 언데드에게 매몰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의 발전을 포기하면 안 된다.
네크로맨서는 소환수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력 역시 키워나가야만 한다.
자신이 있어야 언데드 군단이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보호 수단은 물론 흑마법을 통해 군단을 지휘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과거의 세운은 그것을 위해 백현과의 대련을 진행하였다.
“그어어어어-”
백현의 언데드가 맹렬하게 울부짖었다.
그 수가 워낙 많아 단순히 울부짖는 것만으로도 땅이 덜덜 떨려오는 기분이었다.
정식 대련이라면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언데드 군단을 정렬하는 것부터가 형평성에 어긋나겠지만, 그는 네크로맨서이지 않는가?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를 꺼내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치, 세운이 뒤랑달을 꺼내 들고 단전의 내공을 전신에 순환시킨 후, 마나 서클을 회전시켜 예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백현의 모든 준비가 끝나자.
“준비는 끝났습니까?”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타앗!
세운이 자리를 박찼다.
아니, 박차려고 하였다.
문제는 평소와 달리 이번 대련의 선공은 세운이 아니라 백현의 차지였다는 점이다.
퍼석.
“그어어어!”
바닥을 뚫고 수십 개의 손아귀가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운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휘적였고, 그중 하나가 세운의 바짓자락을 잡는 데 성공했다.
‘언제?’
기척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마몬의 보물이 적용된 세운의 감각으로도 기척을 느끼지 못하다니.
당황하는 순간, 전투 시작 이전에 백현의 좀비들이 울부짖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이걸 준비해 둔 건가.’
그때 백현의 언데드는 광포하게 울부짖으며 세운의 청각을 차단하였다.
발을 구르며 지면을 뒤흔들어 지하의 진동을 감추었다.
애초에 그 언데드들은 전부 백현의 지휘하에 놓여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행동을 보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세운이 재빠르게 뒤랑달을 휘둘러 좀비의 손목을 자르는 순간, 백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시체 폭발.”
퍼엉!!
지하의 좀비들이 폭사하였다.
애초에 지하에서 상대를 붙잡고 폭발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그 폭발력은 일반적인 좀비의 배에 달했다.
살점과 흙더미가 수류탄의 파편처럼 세운을 노려왔다.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나는 순간, 그 위로 세운이 먼지를 뚫고 날아올랐다.
‘위험할 뻔했어.’
생각도 못 한 선제공격.
백현의 시체 폭발을 인지하고 곧장 점프하지 않았으면 타격을 입을 뻔했다.
그리고, 백현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까아아아-”
미리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비행형 언데드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세운을 노려왔다.
박쥐, 새, 스펙터 등, 날 수 있는 놈들이라면 전부 모여 세운을 노리고 있었다.
문제는 이곳이 상공이라는 점.
일반적으로 상공에 떠오른 이들은 더 이상 몸을 피할 수가 없으니 적의 공격에 꼼짝없이 노출되고 만다.
하지만, 상대는 세운이다.
– 백탑의 묘리에 따라 ‘턴 언데드’의 속성력이 상승합니다.
세운의 몸에서 하얀빛이 뿜어나왔다.
턴 언데드, 부정한 존재를 쓰러트리는 힘.
그 찬란한 기운에 언데드들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날개가 타들어 가고, 피부가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벗겨져 간다.
그때, 백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크 베일(Dark veil).”
그와 동시에 전장에 퍼져나가는 검은 안개.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던 안개는 상공까지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 어둠이 어찌나 극심한지 세운의 몸에서 뿜어나오던 빛마저 집어삼켰다.
“까아아-”
턴 언데드의 힘이 약해지자, 멀어져 가던 언데드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진해 왔다.
그리고 백현의 마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버로드(Overload).”
네크로맨서의 대표 마법 중 하나. 자신의 언데드를 일시적으로 과부하시켜 신체 능력을 끌어 올리는 마법이다.
세운에게 다가오던 언데드들이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근육이 불룩거리더니 더욱 맹렬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일반 수식이 아냐.’
오버로드는 이전에 백현과의 대련에서 세운이 고스트 브레스와 함께 알려주었던 흑마법이었다.
때문에 세운도 오버로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오버로드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버로드는 어디까지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언데드라는 특성에 맞게 한계 직전까지 몸을 과부화하는 흑마법.
하지만, 지금 백현이 사용하는 오버로드는 언데드를 한계 이상으로 몸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한계를 넘어 언데드를 붕괴시키는 대신,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올리도록 수식을 변경하였다.
“고스트 브레스.”
바로 이어서 세운에게 배운 두 번째 흑마법까지 사용하는 백현.
사자의 숨결이 세운에게 덮쳐오며 몸을 마비시켰다.
그야말로 완벽한 연계.
백현의 옆으로 스펙터 하나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니, 이번 마법 역시 언데드를 촉매로 하여 효과를 증폭한 모양이다.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세운의 성흔이 빛을 발했다.
사자의 숨결이 몸을 딱딱하게 굳혔지만, 광란의 힘으로 강해진 신체 능력은 마비를 강제로 일그러트리고.
타앗!
허공답보의 묘리가 합쳐진 세운의 합공, ‘호접활공’은 허공을 박차고 자세를 다잡고 검에 힘을 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사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팽이처럼 회전하는 세운의 몸.
뒤랑달이 포효하듯이 뿜어내는 검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 언데드 무리를 덮쳤다.
“하하, 역시 강하십니다. 나름 철저하게 준비한 한 수였는데 말입니다.”
세운이 떨어지는 언데드를 짓밟으며 백현에게로 도약하였다.
당연하게도 수십 마리의 언데드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전신이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 스켈레톤.
이에 세운이 어느새 새로 사용한 마법, 샤이닝 블레이드를 손에 쥐고 가차 없이 휘둘렀다.
“갸갸갸갸!”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 마리의 스켈레톤이 산산조각 난다.
수십 마리. 아니, 백 마리가 넘어가는 스켈레톤도 세운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느새 시야가 스켈레톤의 조각으로 가득 덮였을 때쯤에, 다시 한번 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 프리즘(Bone prison).”
허공에 퍼져 있던 수천 개의 뼛조각이 세운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스켈레톤의 뼈를 이용하여 감옥을 만드는 단순한 흑마법이라도 네크로맨서의 힘에 따라 그 힘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우웅-
이에 세운 역시 더욱 강한 힘을 찾았다.
샤이닝 블레이드를 쥐는 게 아니라, 그 마법의 본질을 뒤랑달에 담았다.
마법과 무공의 조화.
그 강대한 힘을, 광란의 힘으로 강해진 육체로 맹렬하게 휘둘렀다.
“갸갸갹-”
세운을 조여오던 뼈 감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운은 이에 그치지 않고 뒤랑달에 새로운 마법을 담았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샤이닝 샤워(Shining Shower) ]– 유성우와도 같은 빛의 결정체를 떨어트려 부정한 존재를 섬멸하는 위대한 기적을 일으킨다.
샤이닝 샤워.
본래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어야 했을 찬란한 유성우가.
쿠우우우-!!
세운의 일검을 따라 전방으로 퍼져나갔다.
8서클의 마법이 응집되고, 범위를 줄여 검격에 따라 움직여 그 위력을 높이니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거기다 상대는 언데드.
빛 속성의 8서클 마법에 버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쿠와아아악-!”
그 공격을 막아 백현의 앞에 나선 건 사하의 포식자.
스카베의 수성전에서 세운이 죽이고 백현이 새롭게 일으킨 거대한 악어 괴물이었다.
백현이 사용한 마법에 의해 전신에 검은 베일을 두르고, 악어가죽을 딱딱하게 경화시킨 녀석이 온몸으로 세운의 공격을 막아섰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말도 안 나오는군요.”
상대가 나빴다.
백현은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는 디아블로 길드에서도 최고라 불릴 수 있지만, 일대일의 전투에서는 최고라 할 수 없다.
아무리 언데드를 소모하여 발목을 잡는다고 하여도, 그의 방식으로는 세운은 물론 강한철이나 유서아 같은 강자를 붙잡기 힘들었다.
“쿠와- 악-”
사하의 포식자의 몸에 깨져나갔다.
백현이 다급하게 본 아머로 몸을 둘러 샤이닝 샤워를 막아보았으나, 그는 이내 전투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사하의 포식자의 몸이 증발하듯이 사라지자마자, 그 사이로 세운이 튀어나와 검을 내지른 탓이다.
푸욱!
이내 검 끝이 살을 헤집는 섬뜩한 감각이 뒤랑달을 타고 세운의 손에 느껴졌다.
이는 백현의 몸을 뚫고 느껴진 감각이 아니었다.
“그르릉…….”
“……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