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3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37화(537/675)
제 537화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잠시 킁킁거리며 길 안내를 시작합니다.
세운은 여정의 지침표마저 끈 상태로 베엘제붑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다행히 채찍과 당근의 효과가 컸는지, 베엘제붑은 입에 음식을 한가득 문 채로도 착실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여기입니까?”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세운의 앞으로 거대한 모래 지옥이 펼쳐졌다.
주변의 뼛가루를 집어삼키며 소용돌이치는 그것의 모습은 마치 아귀의 아가리와도 닮아 있었다.
‘여정의 지침표도 절대 다가가지 말라고 했었던 곳인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꺼두었던 여정의 지침표를 활성화하자, 저곳은 위험하다며 위험 신호를 울려댔다.
여명의 지침표는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히든 던전이 숨어 있다면 미묘한 반응이라도 보내왔는데.
눈앞의 모래 지옥에 한해서는 그런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여정의 지침표를 믿고 발을 돌렸겠지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저곳이 분명하다고 외치며 잘 익은 닭 다리를 한입에 쏙 빼 먹습니다.
이번만은 여정의 지침표보다 베엘제붑의 말을 믿었다.
다른 마신도 아니고 베엘제붑이다.
그것도 먹을 것에 현혹당한 베엘제붑의 말이 거짓일 리가 없다.
타앗.
세운은 최상위 서열 악마조차 고개를 저으며 뒤돌았을 모래 지옥을 향해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등에서 보랏빛 날개도 펼치지 않은 채로 당당히 추락하는 그 모습은 불길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카하아아아아-”
모래 지옥에 다다르기 직전,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몬스터 하나가 튀어 올랐다.
몬스터의 정체 따위는 알 수 없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톱니바퀴처럼 박혀 있는 수천 개의 이빨과 심연처럼 어두운 목구멍.
그야말로 ‘아귀’라는 이름이 딱 어울려 보이는 몬스터였다.
세운은 허공에서 몸을 몇 바퀴나 회전시킨 뒤, 녀석을 향해 뒤랑달을 휘둘렀다.
– 내공을 통해 파극암검의 제이 초식, 낙천(落天)이 강화됩니다.
하늘이 떨어져 내리는 듯한 충격.
마계의 서열 높은 악마조차도, 어지간한 보스급 몬스터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는 그 공격을 아귀가 견뎌내었다.
이빨이 부서지고, 잇몸이 뭉개지면서도 세운을 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다물었다.
세운은 그런 녀석을 향해 몸을 한 바퀴 더 회전시켜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 내공을 통해 파극암검의 제사 초식, 붕천(崩天)이 강화됩니다.
콰득!
현재 세운이 사용할 수 있는 파극암검의 최고 초식이 놈의 아가리에 작렬했다.
수천 개. 아니, 만 개가 넘어가는 녀석의 이빨 중 절반가량이 으스러졌고, 잇몸이 움푹 들어가 핏물이 왈칵 뿜어나왔다.
그런데도 녀석은 세운을 삼키겠다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녀석을 향해, 세운은 미리 뒤랑달에 심어 두었던 마법을 터트렸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뒤랑달에서 터져 나온 지옥의 불길이 녀석을 덮쳤다.
다만, 그 순간, 심연처럼 어두운 녀석의 목구멍이 꿈틀거리며 주변의 공기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는 곧 세운에게까지 들이닥치며 뒤랑달에서 뿜어나온 지옥의 불길마저 집어삼켰다.
‘그래, 많이 굶주린 모양이지?’
지옥의 불길을 완전히 집어삼킨 녀석을 바라보며 세운이 만병지함에서 아펠리온을 꺼내 들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파괴신 시바의 삼지창. 세 갈래의 창끝은 각각 힘과 욕망, 행동과 지혜를 상징하고 있으며 그 위력은 창조신 브라흐마의 가호를 받던 세 악마의 도시를 한 방에 불태워 버렸을 정도라 일컬어진다.
탐욕의 권능을 사용하자마자 아펠리온에 깃드는 파괴신의 기운.
아펠레온은 감당키 힘들다는 듯이 덜덜 떨려왔다.
그 고통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라도, 세운은 곧바로 투창을 준비하였다.
“이것도 먹어봐라.”
쐐애액!
세운의 손에 들려 있던 아펠리온. 아니, 파괴신 시바의 삼지창이 심연을 향해 나아갔다.
아귀의 목구멍은 지옥의 불길을 삼킨 것처럼 트리슈라 역시 거침없이 집어삼켰고.
– 아켈레우스의 창, 아펠리온이 ‘트리슈라’에 잠든 파괴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트리슈라’를 통해 삼성궤열(三城潰裂)이 재현됩니다.
창조신 브라흐마의 가호를 받던 세 악마의 도시(三城)를 단 한 방에 불태워 버렸다는(潰裂) 시바의 전승이 재현되었다.
불룩!
트리슈라를 집어삼킨 목구멍이 한 차례 꿀렁였다.
심연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그것은 이내 녀석의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카하악-”
퍼어엉!!
결국, 파괴신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세운이 파극암검을 통해 차근차근 누적시킨 데미지와 심연 속에 빨려들어 간 지옥의 불길, 거기에 트리슈라의 힘이 중첩된 결과였다.
“저곳입니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입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가기 전에 방금 터진 음식을 주워 담는 것도 잊지 말라고 다급하게 외칩니다.
몬스터의 목구멍.
아니, 목구멍이었던 곳.
심연으로 가득한 그곳의 아래에서 불길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평소의 세운이었다면 곧바로 경계를 취하며 물러났었을 만한 기운.
“믿겠습니다.”
하지만, 세운은 망설임 없이 그 기운을 향해 돌진하였다.
폭식의 권능을 통해 터져나간 몬스터의 시체가 삼켜지는 것을 지켜보며, 세운의 몸이 심연 아래로 사라졌다.
* * *
[ 77층의 숨겨진 시련, ‘아귀도(餓鬼道)’에 입장하였습니다. ]베엘제붑의 길 안내는 정확했다.
아귀도.
성공적으로 그곳에 도착한 세운은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숨겨진 시련?’
당연히 아귀도 역시 히든 던전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단순한 히든 던전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뒤이어 익숙한 형태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으니 말이다.
– 77층의 숨겨진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아귀도 <끝없는 허기>
– 끝없는 허기와 갈증이 당신을 덮칩니다.
– 허기가 사라질 때까지 ‘식사’를 마치십시오.
히든 던전이 아닌, 77층의 숨겨진 시련. 즉, 또 다른 시련.
이는 회귀 전을 포함하여 탑의 온 사방을 탐험하였던 세운조차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히든 던전 정도로 취급될 장소가 아니라는 건가.’
아마, 77층의 복층 정도로 취급되는 공간이 아닐까?
복층이라고 하니 조금 격이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탑에서 당당하게 층의 일부를 차지한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익숙한 냄새가 난다며 인상을 찌푸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급식은 맛도 없고 양도 제한적이라며 질색합니다.
베엘제붑이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아귀도에는 이미 도착했으니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시련의 설명으로는 부족했다.
아귀도에 들어왔지만, 달라진 건 없었고 눈에 보이는 건 공터뿐.
그러다.
꼬르륵-
세운의 배에서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공을 쌓기 시작한 이후로는 몸에 에너지를 유지하기가 수월해져 이렇게 소리가 날 정도로 배고픔이 느껴진 적은 거의 없었는데…….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순간적으로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납니다.
– 성좌, ‘암야의 올빼미’가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다며 싱긋 미소 짓습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자신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당신에게 동질감을 느낍니다.
“크흠.”
그래도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중이었는데, 언제나 세운을 지켜보고 있던 마신들이 틈을 놓치지 않고 비웃음을 날려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분 나쁜 건 역시 베엘제붑의 공감이었다.
‘시련 때문인가.’
끝없는 허기와 갈증을 느낀다는 시련의 메시지가 괜히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배 속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한 기분에, 입술은 수분이 날아가 바짝 말라간다. 허기가 얼마나 심한지 배가 아플 지경이다.
그때, 아무것도 없던 옆쪽에서 기척이 느껴짐과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새로운 손님이 오셨군요. 한창 요리가 진행 중이었기에 조금 늦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세운이 곧바로 자세를 다잡고 전신에 내공을 퍼트리며 뒤랑달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겨누었다.
“누구지?”
“이런, 이런. 그리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저 요리사일 뿐이니까요.”
“요리사?”
자세히 살펴본 녀석의 옷차림은 말 그대로 요리사의 그것이었다.
새하얀 요리복에 빨간 앞치마, 깔끔한 요리모와 오른손에 들린 식칼까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식칼에서 뚝뚝 흘러내리고 있는 선홍빛 혈액과 요리모 앞으로 툭 튀어나온 두 개의 뿔, 그리고 피처럼 시뻘건 피부 정도.
그의 모습은 ‘악마 요리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정석적인 모습이었다.
“그건 그렇고, 배고프시지 않습니까?”
이에 세운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눈앞의 요리사가 바로 이번 시련, ‘아귀도’의 안내역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고프군.”
“그럴 줄 알았습니다! 바로 식탁으로 안내해 드릴 테니 이쪽으로 오시죠!”
악마의 등에서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식탁. 뭔지는 몰라도, 그게 아귀도를 공략하는 진정한 필드임은 분명하다.
혹시나 베엘제붑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은 자신이 알고 있는 식당과 조금 달라 보인다고 말합니다.
베엘제붑도 이 요리사나 식탁의 존재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하지.’
비슷하기는 하겠지만, 이곳은 베엘제붑이 알고 있는 마계와 엄연히 다른 곳이다.
만약 이 마계가 마신들이 다스리던 마계를 복사해 온 유사 차원이라 할지라도 시스템에 의해 미묘한 차이점이 생기는 법이니까.
펄럭.
세운이 보랏빛 날개를 펼쳐 요리사의 뒤를 따라가며 베엘제붑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뭐가 다른 것 같습니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자신이 알던 곳이 급식소였다면 이곳은 식당 같다고 대답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식당도 평범한 식당이 아니라 훌륭한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며 침을 꿀꺽 삼킵니다.
베엘제붑이 생각하는 ‘미식’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세운으로서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곧 눈앞의 요리사가 날갯짓을 멈추더니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아귀도의 첫 번째 식탁!”
이동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비행 거리로 어딘가 도착했다기보다는, 그사이에 전혀 다른 공간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기분이다.
아마, 이것도 저 요리사가 한 짓이겠지.
세운이 시선을 내리자 평평한 나무 바닥 위로 수천, 수만의 몬스터들이 서로를 물고 뜯고 있었다.
“애피타이저(Appetizer). 즉, 전채 요리 구간입니다!”
전채 요리.
주로 코스 요리의 시작을 알리며 식욕을 돋우기 위해 나오는 요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요리사는 세운을 바라보며 말 그대로 악마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얼른 내려가서 마음껏 식사하시지요! 아, 물론. 누가 식객이 되고 누가 음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아귀도의 공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