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3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38화(538/675)
제 538화
아귀도에서의 식사.
식사라고는 해도 세운에게는 똑같은 전투일 뿐이었지만, 이곳의 몬스터들은 그야말로 식사라는 단어에 딱 어울리게 생긴 놈들 뿐이었다.
“배고파아아아.”
“씹을 거. 삼킬 거. 마실 거!”
닿는 거라면 뭐든지 집어삼키는 슬라임이나, 신체의 90%가 거대한 입으로 이루어진 몬스터.
얼굴은 물론이고 전신에 수십 개의 입이 있는 거인이나, 거대한 혓바닥을 촉수처럼 휘둘러대는 놈도 있었다.
아귀도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괴물들.
세운이 그 전장. 아니, 식탁 위에 올라서자 요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채는 가벼운 몸풀기입니다! 여러분의 허기도 중요하지만, 아무쪼록 그분께 올라갈 요리이니 최고의 요리로 부탁드립니다!”
“요리?”
곧바로 뒤랑달을 휘두르려던 세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일반적인 사냥터처럼 무난하게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공략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들어보니 느낌이 조금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뒤이어 괴물들의 울부짖음과 함께 요리사의 추가 주문이 들려왔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그분은 전채로 수프 요리를 선호하시니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따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탑의 92층까지 등반하여 만마전을 찾아내고, 탑에서 수백 개의 히든 던전을 찾아내 공략하였던 세운이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더라도 요리사의 말이 이번 시련의 중요한 힌트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수프라.’
눈앞에는 몬스터뿐.
이곳에서 갑자기 전채 요리니, 수프니, 도통 알 수 없는 설명들 뿐이었지만.
‘그런 건가.’
세운은 그 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세운의 곁에서는 항상 그와 비슷한 요구를 해 오는 성좌가 붙어 있었으니 말이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은 테이블이 아니라 주방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빨리도 알아채네.’
잠시 고민해 보았다.
어떻게 해야 여기서 ‘수프’를 요리할 수 있는지.
답은 금방 나왔다.
이런 종류의 요리는 아귀도에 오기 직전, 베엘제붑에게 요리를 해 줬던 것과 비슷한 셈이니까.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씨 블라스트 (Sea Blaster) ]– 거대한 대양의 해일을 불러일으켜 시야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는 청탑의 순수 수류계 마법 중 최고의 공격 마법.
청탑의 수류계 마법은 전투 마법사에게 그리 선호되는 마법이 아니었다.
극강의 수압을 일으켜 쏘아내는 등의 방법이 있긴 하지만, 수류 마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원소 마법을 통틀어 공격력이 제일 약한 편이었으니까.
때문에 청탑의 마법사들은 순수 수류계 마법 대신 얼음을 이용하는 빙계 마법을 사용한다.
적을 얼리거나 날카로운 얼음으로 찌르기도 하고, 거대한 얼음으로 짓누르는 등.
수류 마법은 빙계 마법의 강함에 밀려 대부분 응용 마법이나 생활계 마법으로 밀려난 실정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마법만은 달랐다.
콰아아아아-!
세운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해일이 터져 나왔다.
파도 따위가 아니다. 말 그대로 해일.
해안가를 휩쓸고, 마을을 무너트리고, 섬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해일이다.
“물-!”
“갈증, 갈증-”
“마실- 크웨에에엑!”
그 해일이 식탁 위의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끝없는 갈증을 느끼던 녀석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해일을 받아들였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콰과과곽!!
씨 블라스트.
그 위력은 지금까지 알려진 수류 마법의 단점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모든 것은 집어삼키는 해일은 물리력으로 손꼽힌다는 황탑의 바위 마법을 뛰어넘었고, 차가운 바닷물은 극강의 원소력을 자랑한다는 헬 파이어도 꺼트릴 기세였다.
“퀘에에에엑!”
“배, 콰륵. 배가, 꽈르르륵.”
해일에 닿는 순간, 몬스터의 전신이 골절된다.
해일에 삼켜지는 순간, 해일 내부의 수압에 의해 전신의 골격이 일그러진다.
저 거대한 해일 속에서, 몬스터들은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잔혹하게 찢어지고 으스러졌다.
마법을 사용한 세운조차 놀랄 정도의 위력.
‘지형만 갖춰지면 최고의 마법이겠는데.’
식탁이라고는 하나, 이곳은 몬스터의 이탈을 막기 위해 그 끝에 벽 같은 테두리가 둘려 있었다.
이런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일렁이는 해일은 그 어떤 마법보다 강력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의 모든 몬스터가 목숨을 잃었다.
워낙 강대한 마법을 사용한 덕분에 마나 서클이 허전하게 느껴졌지만, 세운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상공의 요리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수프. 이 정도면 충분한가?”
그런 세운을 바라보며, 붉은 피부의 요리사가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대답하였다.
“쏘 퍼펙트! 완벽합니다!!”
* * *
세운의 예상은 완벽하게 적중하였다.
아귀도의 시련은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진다.
첫째, 사용자의 허기를 채우는 것. 즉, 시련의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는 것이다.
둘째, 저 악마가 말하는 ‘그분’의 허기를 위한 요리를 완성하는 것.
첫 번째는 필수 조건이지만, 두 번째는 일종의 선택 사항이었다.
그리고 세운은 철저하게 요리사의 요구를 맞추어 아귀도의 시련을 공략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샐러드입니다! 텃밭으로 안내해 드릴 테니 싱싱한 작물들을 최대한 잘 손질해 주시면 됩니다!”
필드가 완전히 달라졌다.
식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닥이 푸석한 흙으로 변하더니 그 위로 수백 가지의 식물들이 자라났다.
식물 손질.
간단한 요구 같았지만, 당연하게도 이곳의 식물들은 전부 범상치 않은 것들이었다.
“치시시시식-”
“우우우우.”
초록색의 촉수를 꿈틀거리는 풀이나 톱니 같은 이빨이 달린 이파리, 맹수의 아가리처럼 입을 벌리고 먹잇감을 노리는 식물까지.
마수들마저 피해 간다는 마계의 살인 식물들이 주변에 가득 피어나 있었다.
‘샐러드라.’
코스 요리에는 나라나 식당, 요리사에 따라 다양한 순서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도 전채 요리 다음에 바로 샐러드라니, 세운이 생각하던 순서와는 달랐지만 무슨 상관인가?
전채 요리 다음으로 샐러드를 먹는 게 그분이라는 놈의 식성일 텐데.
철컥.
세운은 그저 그 시련을 공략해 나갈 뿐이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오 초식, 혈랑중엽(血狼衆獵)이 강화됩니다.
식물 손질.
즉, 샐러드 요리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마침 조금 전의 요리에서 마나를 꽤 많이 사용하였으니, 이번엔 서클을 회전하여 마나를 회복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서걱.
“크기는 이 정도로 적당한가?”
“그분께서는 요리사의 개성을 존중하십니다! 크게 자르시든, 작게 사르시든 상관없었습니다. 당신만의 방식대로 손질하시면 됩니다!”
“그거 마음에 드네.”
혹시나 사이즈라도 맞춰야 하나 걱정했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니 다행이었다.
요리사의 허락에 따라, 세운이 마음껏 검을 휘둘렀다.
그 어떤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단순한 칼질이지만, 태극신공으로 내공을 순환시키고 호접활공으로 전장을 뛰어다니는 세운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어째서 권능을 쓰지 않느냐며 울상을 짓습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입에 거미줄이 생기겠다며 글썽거립니다.
베엘제붑에게는 미안하지만, 시련의 추가 조건을 위해서는 몬스터의 시체를 남겨 두어야 했다.
폭식의 권능을 사용했다가는 기껏 요리를 해 둔 것들이 전부 사라져 버릴 테니까.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다음은 생선 요리입니다!”
텃밭의 모든 식물을 베어내자, 순식간에 전장이 뒤바뀌었다.
푸석한 흙바닥이 사라지고, 주변이 마계 특유의 붉은 바다로 변했다.
파닥!
수면 위로 튀어 오른 물고기에게는 물고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수면 아래로는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이번 조건은?”
“뭐든 상관없습니다! 말했다시피, 그분은 요리사의 개성을 존중하십니다! 아, 그래도 제 경험상으로 말씀드리자면…….”
요리사가 입꼬리를 잡아당겼다. 그 표정에는 ‘과연 이것도 가능할까?’라는 듯이 심술궂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얼마 전에 전기로 구워진 생선 통구이를 드셨는데, 그걸 특히나 좋아하셨던 것 같기는 합니다.”
“그렇군.”
세운의 그 대답과 함께, 새빨간 바다 위로 한동안 번개가 쉬지 않고 번쩍였다.
* * *
이후에도 전장은 계속 바뀌었고, 세운의 요리는 계속되었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메인 코스입니다! 메인은 특별하게 두 코스로 구분되어 있으며, 첫 번째는 가볍게 조류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다음 전장은 깎아지르는 듯이 높은 절벽.
거대한 새는 물론이고, 조류라는 말이 전혀 안 어울리는 와이번 등의 비행 생물 역시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다음은 메인 중의 메인! 원하시는 대로 육류 요리를 만들어 내시면 됩니다!”
다음은 드넓은 핏빛 초원.
지금까지 마계를 통과하면서 보아온 마수들을 전부 모아둔 듯한 곳이었다.
그중에서는 세운조차 처음 보는 마수도 존재했고, 당연하게도 세운은 그곳의 모든 몬스터를 사냥, 아니, 요리하였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역시 괜히 왔다며 울먹거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리도 맛있는 음식들을 눈앞에 두고 먹여주지 않다니, 이건 고문이라며 칭얼댑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뱃가죽에 등에 붙은 것 같다며 엄지손가락을 빨아댑니다.
베엘제붑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지만, 가뿐하게 무시했다.
베엘제붑이야 나중에 상을 거하게 차려주면 그만이다. 지금은 그보다 아귀도를 공략하는 게 우선이다.
‘다음은 어떤 식으로 요리하지?’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세운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세운조차도 처음 공략해 보는 곳. 그것도 히든 던전이 아닌 숨겨진 층이라 할 수 있는 히든 시련이었다.
지금이야 모험보다 전투를 더 중점에 두고 있지만, 세운은 애초에 뼛속까지 모험가였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공략을 해 나가는 건 세운의 천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정말 놀랍습니다! 저 이래로 이렇게나 훌륭한 요리사는 처음 봅니다!”
“최고의 메인은 저 녀석이 좋겠네.”
“무오오오오!”
요리사가 메인 요리의 마지막에 준비해 둔 것은 소였다.
산처럼 거대한 덩치에, 몸에는 강철처럼 두꺼운 근육이 넘실거리고 두 눈은 마기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역시, 코스 요리의 메인은 소고기가 아니겠는가?
화륵.
세운의 손바닥 위로 지옥의 불길이 치솟았다.
“레어? 미디움? 웰던?”
요리사는 이조차 세운에게 맡겼다.
“불 조절에는 자신 없는데.”
아마,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웰던이 되지 않을까?
메인 요리를 완성하고, 디저트 요리로 넘어간 세운을 보며 상공의 요리사가 입이 째질 듯이 미소 지었다.
“이거, 간만에 그분을 만족시킬 코스 요리가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