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3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39화(539/675)
제 539화
그 이후에도 ‘요리’는 계속되었다.
“과연, 이것도 할 수 있겠습니까? 기대하겠습니다. 요리사여!”
세계수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마계수에서 적의를 표하고 있던 열매를 수확하기도 하고, 지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가 부화만을 기다리고 있던 멸망의 징조를 쓰러트린다.
저 악마가 말하는 ‘그분’이 누군지는 몰라도, 식성 한 번 괴랄했다.
뭐, 물론.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의 주인이 상당한 미식가인 것 같다며 침을 꿀꺽 삼킵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그러지 말고 양도 많은데 딱 절반만 주면 안 되겠냐며 애원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엄지를 쪽쪽 빨아댑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보는 것이 괴롭다며 눈을 가리고 구석에 쭈그린 채로 흐느낍니다.
그 취향이 베엘제붑과는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자, 이제 대망의 마지막 코스 요리입니다! 그분을 위하여 최후까지 실력을 쥐어짜 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전장이 펼쳐졌다.
아귀도에 진입하고 나서 보아왔던 모든 존재가 살기를 한층 더 강하게 불태우며 세운을 노려보았다.
지금이 12번째 요리였으니, 거쳐온 11개 필드의 적을 모조리 불러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리가 상당히 먼 필드의 끝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고 있는 외눈박이 거인이나 거친 포효를 내지르고 있는 강력한 괴수 등.
마치 마계에서 알아주는 괴물을 모조리 모아둔 것만 같았다.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얼마나 요리할 것인가! 모두 자유입니다! 만족할 때까지 요리하시고 끝을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는 걸까?
악마의 말을 들어보니 이 시련의 정체는 이 모든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게 아닌 모양이다.
한 마리라도 잘 쓰러트리고 악마를 호출하면 그걸로 끝.
스스로의 수준을 명확하게 알고, 그 선에서 몬스터를 최대한 정리하기만 하면 되나 보다.
‘마지막이랬지.’
이에 세운은 생각하였다.
남아 있는 힘을 여기에 전부 투자해야겠다고.
요리가 모두 끝난 뒤에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최후의 수라고 할 수 있는 나태의 권능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만병지함에서 뒤랑달이 아닌 낫을 꺼내 들었다.
‘이거라면.’
영절겸(靈切鎌).
고창석에게 부탁하여 만들어 둔 낫이었다.
이 외에도 고창석은 마몬의 보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오로지 내구력에 집중한 여러 무기를 세운에게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영절겸을 처음 받아 들고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가 사용하던 신의 무기를 사용하여 그 내구력을 확인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신의 보구를 사용해 볼 생각이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티탄의 왕, 스퀴테 ]– 티탄의 왕, 크로노스의 낫. 태초의 신 가이아가 대지의 쇠붙이를 모아 원한의 샘에 담가 만든 것으로,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져 무엇이든 벨 수 있다고 전해진다.
태초의 신 가이아가 만든 무기.
현재 올림포스를 다스리고 있는 최고신 제우스를 포함하여 6명의 주신을 낳은 티탄의 왕, 크로노스의 무기.
그 힘을 부여받은 영절겸이 터질 것처럼 울어댔다.
‘그래도 이건 무리인가.’
신의 보구라고 하더라도 다 똑같은 게 아니다.
곡물의 신인 데메테르가 사용하던 낫과 티탄의 왕인 크로노스가 사용하던 낫의 격이 같을 수는 없다.
비록 데메테르의 낫을 버텨냈던 영절겸이라 하더라도 스퀴테의 힘을 온전히 버텨내기는 무리였다.
‘역시, 탐욕의 권능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그에 맞는 장비가 필요해.’
최소한 뒤랑달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펠리온조차도 신의 무기를 받아들일 때는 떨림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뒤랑달처럼 파괴 불가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불멸(不滅)의 힘을 지닌 보구 정도는 되어야 탐욕의 권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으리라.
물론, 그런 보구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는 세운도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진동으로 봤을 때, 고작해야 한 번이 한계다.’
무기의 떨림은 익숙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무기의 한계를 깨달은 세운이 곧바로 스퀴테의 본 힘을 끄집어냈다.
“크스슷.”
“배고파아-”
“캬오오오오!”
그사이, ‘재료’들 역시 세운에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꺼내 들었다.
공격할 틈 따위 기다려 주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세운의 공격은 이미 준비되었다.
남아 있는 모든 내공을 투자하여 하체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고, 서클을 팽팽하게 회전하여 무기를 최대한 안정시킨다.
이어서, 태초의 힘을 머금은 낫을 원형으로 휘두른다.
– 영절겸(靈切鎌)이 ‘스퀴테’에 잠든 태초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스퀴테’를 통해 찬란한 태초의 원한이 재현됩니다.
서걱.
작은 절삭음이 들려왔다.
수천의 몬스터가 아니라 낫으로 한 줄기의 볏줄기를 자르는 것처럼 가벼운 절삭음이.
그러나 그 결과는 세운의 상식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크아-”
“배가-”
“크슷-”
세운을 향해 다가오던 적들이 전부 반으로 갈라지며 생을 마감하였다.
하늘에 닿을 듯이 거대한 마계수도, 물리 공격으로는 절대 쓰러지지 않던 불사의 괴물도, 근엄하게 세운을 바라보며 자신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거인도.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상체와 하체로 나누어져 자신의 생을 마감하였다.
쿠구궁!!
이는 단순히 생명체에게만 나타난 일이 아니었다. 세운이 서 있던 대지까지 절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진 몬스터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태초의 신이자 대지의 신이었던 가이아의 무기가 만들어 낸 흔적은 그렇게 전장의 모든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이럴 수가……!”
상공에서 이를 지켜보던 요리사가 몸을 벌벌 떨었다.
공포와 환희, 그리고 희열.
세 가지 감정에 몸부림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정말이지…… 최고의 만찬이었습니다!!”
이번 요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모든 몬스터를 두 갈래로 손질하여 한데 모아 뒤섞어 만들어 낸…….
그래, 비빔밥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 * *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십시오, 요리사님.”
세운을 대하는 악마의 태도는 더없이 정중해졌다.
그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굽신거리며 세운을 의자로 안내하였다.
대체 왜 이곳에 의자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을 만큼 뜬금없는 위치였으나, 세운은 곧 그 의자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바로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요리사님이 만드신 요리를 정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방의 시야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스퀴테로 인해 망가진 대지가 깔끔하게 사라지고, 평평한 나무 바닥이 펼쳐진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드넓은 나무 바닥이 지평선에 닿을 듯이 뻗어나가고 나서야 세운은 이것이 ‘식탁’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전채 요리부터.”
그 드넓은 식탁 위로, 마찬가지로 수프가 가득 담긴 거대한 접시가 나타났다.
아니, 저걸 수프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수많은 몬스터를 강한 수압으로 짓누르고 뒤섞어 만들어 낸 죽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옆의 악마에게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음식인 듯했다.
“두 번째 샐러드와.”
그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세운의 검격으로 깔끔하게 썰려진 식물계 몬스터들.
“이와 어울려 먹을 간단한 메인.”
조류, 아니, 와이번 같은 괴물도 뒤섞여 있으니 조류보다는 비행 형 몬스터의 시체라고도 할 수 있는 전기구이 요리 등.
악마의 지휘에 따라 식탁 위로 여러 개의 요리가 일사불란하게 정렬되었다.
요리라고는 하나 세운이 보기에는 전부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은 비주얼.
원래라면 베엘제붑이 환장하며 나타났겠지만, 세운이 폭식의 권능을 사용해 주지 않을 것을 알고 눈, 코, 입을 가리고 있는지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이번 요리사님이 모든 실력을 쥐어짜내 만들어 주신 궁극의 메인 요리.”
쿠구구구.
식탁이 떨려오며, 그 가운데 자리로 거대한 접시가 내려왔다.
접시에는 반으로 갈라진 몬스터뿐만 아니라 몬스터를 삼켰던 대지까지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이걸 전부 먹는다고?’
그게 가능한 일일까?
세운이 알기로 이 정도의 식사가 가능할 것 같은 존재는 단 하나였다.
폭식의 마신, 베엘제붑.
그렇다면 이 식탁의 주인 역시 베엘제붑과 비슷한 격을 지니고 있다는 말일까?
아무리 숨겨진 시련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존재가 눈앞에 강림하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세운의 옆에 선 붉은 악마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주인을 불렀다.
“들어오십시오. 위대한 폭식이시여.”
쿠궁!
웅장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만 들어보아도 지금 입장하는 자의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운은 그 발소리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폭식?’
세운이 알고 있는 폭식은 단 하나였다.
폭식의 마신, 베엘제붑.
하지만, 베엘제붑도 이곳은 자신의 식당과 다른 곳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시련에만 따로 폭식의 이명을 지닌 보스 몬스터 같은 게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아무리 탑의 시련이라 하더라도 칠대 죄악 중 하나인 폭식의 이명을 구현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아주 훌륭한 냄새로다!”
혼잡하던 세운의 머릿속을 깨끗이 날려 버릴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지평선을 뚫고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기둥처럼 두꺼워 보이는 어금니.
곧이어 드러난 갈색의 털은 하나하나가 사람 몸통보다 두꺼울 정도였고, 그 수세미처럼 억센 털이 전신에 자라나 있었다.
“아주 훌륭한 요리사를 구한 모양이로다!”
“그렇습니다. 이번 코스는 제 평생 보아온 요리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폭식이라 불린 그것에게는 식기를 들 만한 손가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식기 따위는 필요 없이 당장에라도 식탁 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겠다는 것처럼 거대한 머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두꺼운 코는 만찬의 냄새를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며 씰룩이고, 툭 튀어나온 입에서는 진득한 침이 쉴 새 없이 뚝뚝 흘러내렸다.
“과연, 정말이로다! 모든 음식이 훌륭하지만, 특히 이 중앙! 메인은 내가 주워 먹어 본 음식 중에서도 최고라 할 수 있구나!”
쿵!
식탁 위로 머리를 내려놓은 아귀도의 주인이 동공을 바쁘게 움직였다.
열두 개의 음식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침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대단한 자로구나! 마계에 이런 실력자가 존재하다니! 믿기지 않도다!”
연신 쏟아지는 칭찬 세례.
그런데도 세운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저 두꺼운 어금니와 벌렁거리는 콧구멍, 거친 털가죽까지. 아주 오래전에, 비록 아주 잠깐이지만 세운은 저 녀석을 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멧돼지?”
회귀 전, 만마전의 창고에 들어섰을 때, 창고의 천장을 부수며 튀어나온 아우터.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아우터의 숙주라고 할 수 있었던 멧돼지.
과거의 세운에게 폭식의 권능을 안겨주었던 바로 그 ‘폭식의 마수’가 쉴 새 없이 코를 벌렁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