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4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44화(544/675)
제 544화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뜨거운 용암을 시원하게 들이켭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더부룩하던 배 속이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며 시원해합니다.
당연하게도, 대초열지옥은 세운에 의해 성공적으로 공략되었다.
보스 몬스터는 확실히 강력했지만, 나태의 권능까지 사용하여 화산 내부로 8서클 수류 마법 ‘씨 블라스트’를 쏟는 세운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세운은 보스 몬스터를 확실히 끝내기 위해 북해검결까지 곁들였으니, 제아무리 강한 몬스터라 하더라도 상극의 속성 앞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마스터, 고생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저희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내가 보호해 줬어도 버티지 못했을 거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격려의 의미가 아니었다. 디아블로 길드에 대한 세운의 솔직한 평가였다.
엘하임에서 1위 길드로 알아주던 청해 길드조차도 제논 정도가 아니었다면 세운을 뒤따라오기 힘들어했을 테니까.
그렇게 대초열지옥을 마무리하던 중, 베엘제붑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자신의 옆에서 건방지게 콩고물을 기다리고 있는 멧돼지를 걷어찹니다.
‘멧돼지?’
멧돼지라고 분명 폭식의 마수가 아니던가?
분명 폭식의 권능에 삼켜지고, 그로 인한 능력치 상승과 권능의 강화까지 이루어졌는데, 그가 살아 있다는 뜻인가?
여러 의문을 떠올리고 있는 세운에게 베엘제붑의 답변이 들려왔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격을 대부분 삼켰지만, 존재를 완전히 삼킨 건 아니라며 애완동물에 대한 자애를 선보입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그래도 다음에 또 그러면 심장까지 전부 씹어먹어 주겠다며 멧돼지를 노려봅니다.
식사를 만끽하고 있는 베엘제붑의 옆에서 낑낑대며 굶고 있을 폭식의 마수를 생각하니 괜히 안쓰러웠다.
베엘제붑의 뒤끝이 금방 끝날 것 같지도 않았고…….
차라리 다른 몬스터들처럼 바로 집어삼켜지는 게 더 편하지 않았을까? 아니, 똥 밭을 굴러도 이승이라고 하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드디어 마지막 하나만 남으셨군요.”
“그러게. 미안하지만, 길드원들을 좀 소집해야겠어.”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들 마스터를 위해서라면 발 벗고 달려올 테니 말입니다.”
“최대한 여유 되는 사람만 알아봐 줘. 시간이 안 맞으면 내가 맞추면 되니까.”
디아블로 길드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유서아와 강한철은 세운과 마찬가지로 팔한지옥을 공략하기 위해 바삐 돌아다녔고, 고창석이나 이하늘은 재료를 수집하고 저마다 물건을 제작하기 바쁘다.
백현은 아직까지 실험실에서 집중 중이고, 아르카나는 기본적으로 개인 성향이 강해 시련은 혼자 공략하는 편이다.
물론, 이 전부가 세운이 부탁하면 망설임 없이 달려와 주겠지만 그들의 일까지 방해하기는 싫었다.
“우선은 78층부터 끝내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해산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누구라도 연락해. 팔열지옥을 도와준 보상은 하러 갈 테니까.”
“도왔다고는 해도 실질적으로 마스터 혼자 공략하신 거나 다름없으시잖습니까.”
“아니라니까. 아무튼, 모두한테 그렇게 전달해 줘.”
“알겠습니다.”
[ 히든 던전, ‘대초열지옥(大焦熱地獄)’을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개인 공적치가 1,000,000point 상승합니다. ] [ ‘찢어진 분노의 경전(7)’을 획득하였습니다. ]* * *
78층의 시련 역시 다른 악마의 ‘서열’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마계라는 험난한 지형에서 미리 적응하고 숨어서 플레이어를 노리는 악마들을 쓰러트리기는 쉽지 않았지만, 세운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허허, 고맙네. 저 소재가 너무 탐났는데 저놈이 너무 방해되어서 곤란하던 참이었다네.”
“어르신이 빨리 올라가셔야 저도 부탁을 할 수 있으니까요.”
“허허, 로브 말인가? 총 32개가 필요하다 했으니, 한동안 바느질만 해야겠구먼. 걱정하지 말게, 최근에 똘똘한 조수를 구한 참이니.”
들어보니 최근 청해의 길드원 중 몇 명이 고창석의 아래에서 제작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이 로브처럼 천 종류의 장비를 전문으로 만드는 장인이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요즘은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네. 허허, 여기에서 제자를 받아들이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지만 말일세.”
“실력이 있으시니까요.”
“탑에 들어온 날짜로만 따지면 내가 후배이긴 하지만, 허허.”
세운은 고창석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도우며 시련을 마무리했다.
이건 단순히 봉사활동이 아니었다.
투자.
79층에서 도전해야 할 마지막 팔열지옥의 진입 시간을 앞당기기 위한 투자에 가까웠다.
이대로 길드 거주지에 돌아가 봤자 개인 수련밖에 할 게 없고, 그것보다는 차라리 시련에서 경험치나 공적치를 쌓는 게 이득이었으니 말이다.
“형님, 감사합니다! 아, 진짜 형님만 믿고 있었다니까요?”
“시끄러워. 니가 제일 마지막이니까.”
“저 괴물들을 제가 어떻게 이깁니까!”
“제곡조도 쓰러트렸잖아?”
“아, 그거. 다시 해 봤는데 어렵더라구요. 분명 심장을 노렸는데 웬 방광 같은 게 손에 잡혀서 얼마나 놀랐는데!”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스스로 몬스터의 오줌을 덮어쓰는 꼴이 기가 막혔다며 깔깔거립니다.
“거주지에 가서 백현 씨나 이하늘한테 해부학 좀 배워놔. 기본적인 것만 배워도 몬스터의 급소 파악에 도움이 되니까.”
“으악, 공부 싫어어어!”
“그럼 나랑 대련하면서 몸으로 배우든지.”
“배우겠습니다. 공부 만세!”
– 78층의 시련 ‘마호초(魔瑚礁)’를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그렇게 박정필을 시련의 끝에 던져넣는 것으로, 세운 역시 78층의 시련을 끝낼 수 있었다.
* * *
“허허, 나름대로 역작에 가까운 놈들이었는데. 형체도 안 남았구먼.”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제대로 못 만들어 준 내가 미안하지.”
거주지에 도착한 세운은 가장 먼저 고창석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미 세운이 부탁한 열기 저항 로브를 만드는 중이었는데, 세운은 그런 그에게 부서진 장비의 파편을 내밀었다.
고창석이 세운의 부탁으로 오로지 내구력에만 집중하여 만들어 준 두 개의 장비.
방패인 영방간과 낫인 영절겸.
그래도 신의 무기인 데메테르의 무기까지 버텼기에 괜찮을 줄 알았지만, 결국 더 높은 격을 지닌 무구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깨져나간 장비들이다.
“크흠, 이거 곤란하구먼. 재료도 그렇지만, 아직 내 실력으로는 그 이상의 내구력을 발현한 자신이 없다네.”
–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아쉬워합니다.
–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당신이 버틸 정도의 장비를 만들려면 최소한 ‘격’이 담긴 소재가 필요하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설사 격이 담긴 소재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대장장이 역시 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며 계약자를 바라봅니다.
–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자신의 계약자는 분명 훌륭하지만, 격을 품기에는 아직까지 갈 길이 남았다며 이마를 짚습니다.
“……허허, 그렇다고 하시는구먼.”
결론적으로, 고창석의 힘으로도 무리.
아니, 격이 담긴 소재라면 세운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시련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구하려면, 적어도 90층 대에는 가야 그나마 구할 만했다.
“아닙니다. 부서지긴 했지만,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도 비슷한 내구력을 지닌 걸로는 다시 만들어 줄 수 있네. 어떤가?”
“부탁드립니다.”
“허허, 알겠네. 다만, 만들 것이 밀린 탓에 이번에는 시간이 조금 걸릴 걸세.”
하지만, 그럼에도 세운은 아쉬워하지 않고 다시 한번 장비 제작을 부탁했다.
부서지긴 했어도, 한 번이나마 신의 무구가 지닌 힘을 받아낸 장비들이다.
고창석의 장비를 일회성으로 사용하는 건 미안하지만, 지금의 세운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제가 도울 건 없겠습니까?”
“저기, 만들어 둔 로브가 있으니 인챈트 좀 걸어주겠나? 테는 이미 잡아놨다네.”
“네.”
놀랍게도 고창석이 만들어 둔 로브에는 세운이 열기 저항을 인챈트할 때 사용하던 마법진이 그려 있었다.
마법사가 아닌지라 인챈트에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조만간 마나석을 이용해 스스로 인챈트까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새삼 놀라운 솜씨다.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은 만들어진 로브들에 인챈트를 끝낸 후, 다음 장소로 발을 옮겼다.
그곳에는 해리가 유서아를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세운의 공지 사항을 전달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됐지?”
“어쭙잖게 다른 일을 하다가 모이는 것보다는 마스터와 함께 출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32명, 전부 채웠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다.”
“당연한 일입니다. 마스터. 마스터께서는 길드 마스터라는 직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길드원을 지휘하는 것은 마스터의 권한입니다.”
세운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굳이 이렇게 의견을 묻지 않아도 길드 마스터의 권한이라 할 수 있는 ‘소집’을 실행하면 공적치를 소모하여 길드원을 즉시 소환할 수도 있다.
다만, 세운은 아직 마스터라는 자리가 썩 와닿지 않았다. 회귀 전과 후 모두 세운은 혼자가 더욱 편했으니까.
길드에 정을 붙이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되었으니, 마스터라는 자리가 어색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 제논 님이 의논할 게 있다고 마스터의 스케쥴을 물었습니다.”
“지금 거주지에 있나?”
“네, 혹시 지금 시간이 괜찮으시면…….”
“바로 가지.”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거주지는 통합되었다. 덕분에 거주지 공간 또한 상당히 넓어졌다.
여유롭게 이동하다 보니 청해 특유의 푸른색의 거점이 나타났다.
미리 길드챗으로 연락받은 제논이 배웅을 나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디아블로의 마스터.”
“무슨 일이지?”
“하하, 급한 성격은 여전하시군요. 다름 아니라, 다음 시련에 대해 의논할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 시련이라면…….”
세운이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마계의 79층. 80층과 비교하더라도 마계에서 가장 넓은 필드를 지닌 곳이었다.
그 지형을 떠올려보니, 청해 길드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맞습니다. 79층의 시련, 마해(魔海).”
마해. 마계에서 가장 드넓은 대양.
물과 관련된 곳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청해 길드에게 가장 어울리는 시련이었다.
제논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 시련에 관한 제안을 했다.
“그곳에서, 자라탄을 공략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