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4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47화(547/675)
“마스터, 설마 저곳입니까?”
“그래.”
“마스터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만…….”
붉은 소용돌이. 그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분명 바다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이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주변의 어떤 것도 소용돌이에 빨려들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저 고고하게 자기 모습을 지키며 소용돌이치고 있을 뿐이었다.
“몬스터도 없고, 생각보다 안전하긴 하네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디아블로의 함선을 뒤집겠다고 덤벼오던 몬스터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덕분에 디아블로의 함선은 유유히 소용돌이의 앞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혹시나 몰라 세운이 정보를 확인하자, 곧바로 아비지옥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 히든 던전, ‘아비지옥(阿鼻地獄)’을 발견하였습니다. ] [ 아비지옥은 오직 혼자서만 진입이 가능한 던전입니다. ]“혼자?”
시작부터 세운의 계획이 틀어졌다.
마지막 팔열지옥의 최소 진입 인원수는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32명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길드원들을 소집하여 여기까지 데려온 것인데, 오직 혼자서만 진입할 수 있는 던전이라니.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쉬익!
“경전?”
세운의 품에서 일곱 장의 찢어진 경전이 빠져나갔다.
그것들은 이내 소용돌이를 향해 날아가더니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아래에 잠기며 소용돌이를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바로 뒤이어 다수의 메시지가 세운의 눈앞에 떠올랐다.
– 지금부터 공략이 끝나기 전까지 아비지옥의 입구가 활성화됩니다.
– 활성화된 아비지옥의 입구는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 아비지옥의 도전자를 괴롭힙니다.
– 아비지옥의 첫 번째 도전자를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는 아비규환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콰-아아앗!
아무것도 빨아들이지 않고 그저 붉은 바다의 외곽에서 고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소용돌이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다들 꽉 잡아!”
“바람도 소용돌이 쪽으로 빨아당겨지고 있어! 노라도 저어야겠는데?”
마해 특유의 잠잠한 해류가 소용돌이를 향해 난폭하게 일렁였다.
그나마 세운이 사용한 마몬의 보구 ‘테세우스의 배’ 덕분에 버티고는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배가 갈릴 판이다.
“빨려 들어가는 건……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 플레이어 최수창이 ‘새벽의 밀물’을 사용합니다.
최수창이 권능을 사용하자 배의 아래쪽에서 바닷물이 뿜어져 나오며 배를 소용돌이의 바깥으로 밀어냈다.
평소에는 이 정도 위력이 아니었지만, 바다라는 지형에서 그의 힘은 평소의 배 이상 늘어났다.
“죄송하지만, 이 상태로는 전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앞을 부탁드립니다.”
“저것들은 또 뭐냐고!”
잠잠하기만 하던 소용돌이의 주변이 혼돈으로 물들었다.
소용돌이를 멀리하던 몬스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왔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소용돌이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멈칫하면서도 디아블로의 함선에 대한 적대심만큼은 잊지 않았다.
그 난장판 속에서,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부 도망가십시오.”
“네? 마스터, 그 말은…….”
“어차피 일인 입장입니다. 계획이 틀어났으니, 우선 전부 멀리 떨어져 있으시면 됩니다. 팔열지옥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지만, 마스터. 시스템 알림에 따르면 저것들을 두면 마스터의 공략이…….”
“괜찮다.”
세운이 함선의 갑판에서 뛰어오르더니 보랏빛 날개를 펼치며 소용돌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굳이 날개를 펄럭일 필요도 없이, 해류를 포함하여 대류 역시 허공의 모든 것을 소용돌이 속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 현 시간부로 아비지옥에 빨려 들어가는 모든 플레이어에게는 강력한 물리력이 작용합니다. ]세운이 사라지자 아비지옥의 입구는 더욱 맹렬하게 소용돌이쳤다.
디아블로의 함선 역시 최수창이 권능을 발현하고 있음에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수준.
그 증거로, 몬스터들 역시 갑작스러운 해류를 견디지 못하고 그 중앙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 살아 있는 몬스터는 아비지옥에 들어가 도전자와 대적하게 됩니다. ]그 시스템 메시지를 이해한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쓰러트립시다.”
“엥? 무슨 말이야! 형님이 도망치라고 했다고!”
“저희 모두 마스터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아닙니까? 직접적인 도움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마스터에게 방해가 되는 것들을 줄일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에에엑?”
박정필이 앞으로 나와 비명을 질렀지만, 다른 이들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세운에게 방해나 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세운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이곳까지 따라왔다.
그런데 인제 와서 도망치라고?
그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지.”
“좋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다들 전투 준비!”
“으아악, 미쳤다고! 다들! 형님이 가랬잖아!”
“오빠, 닥치고 뭐라도 해!”
“으아아아악!”
시스템 메시지는 정직했다.
디아블로 길드의 공격에 당해 죽은 몬스터는 소용돌이에 빨려드는 순간 산산이 갈려 나갔지만, 살아 있는 몬스터는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그 속으로 흡수되었다.
몬스터를 살려 보낼수록 세운의 공략 난이도는 올라가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몬스터의 생명줄을 끊어놓겠습니다!”
“한 마리도 살려 보내지 말자고!”
디아블로 길드가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소용돌이는 외길이 아니었다.
함선의 반대편에는 빨려 들어가는 몬스터가 적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함선으로 몬스터를 막을 수 있는 범위는 기껏해야 사방 중 하나.
그리고 그중 하나에.
“어머, 따라와 보길 잘했네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카드에 앉은 채로 턱을 괴고 있었다.
여유롭게 다리를 살랑거리고,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지은 미소를 활짝 펼친 카드 다발로 가렸다.
“역시 전 운이 좋다니까요?”
그녀가 던진 카드 다발이 잔혹한 무기로 변해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몬스터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 * *
[ 히든 던전, ‘아비지옥(阿鼻地獄)’에 입장하였습니다. ]‘여기가, 팔열지옥의 마지막.’
소용돌이의 한 중심에 들어왔지만, 해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해류는커녕 바다에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에는 미약한 물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피부에 와닿는 뜨거운 열풍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너무 어두운데.’
세운의 눈이라면 어지간히 어두운 공간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사물의 형체 정도는 분간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딛고 있는 바닥조차 보이지 않아, 지금 제대로 바닥에 서 있는 게 맞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 백탑의 묘리에 따라 ‘라이트’의 속성력이 상승합니다.
파앗!
‘……뭐지?’
시야를 구분하기 위해 마법으로 불빛을 일으켰지만, 빛은 생성되지 않았다.
여전히 캄캄한 어둠만이 가득하다.
마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건가 했는데, 예상외로 서클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주인가?’
혹시나 해 스스로에게 정화 마법을 걸어보았다.
그 외에도 각종 치료 마법을 사용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세운의 마법은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발동되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치, 모든 감각이 차단당한 기분.
그나마 살아 있던 촉각마저 슬슬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에 세운이 뒤랑달을 집어 들어 주변의 상황에 대처하려 하였지만.
‘……이것도 안 되나.’
뒤랑달을 아무리 휘둘러도 닿는 건 없었다.
심지어 바닥을 향해 내려찍어 보아도 지면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검이 아래로 쑥 빠져들어 갔다.
‘그렇군. 이게 아비지옥.’
상황은 금방 인지되었다.
제게 저주 같은 게 걸린 게 아니라, 아비지옥의 특징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촉각마저 점점 줄어들어 오감이 차단되는 이곳에서 세운은 무엇을 해야 할까?
결론은 금방 나왔다. 손을 뻗어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사다리 비슷한 것이 잡혔기 때문이다.
검을 휘둘렀을 때는 분명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래로 내려가라는 건가.’
머리 위로 손을 올려도 손잡이는 잡히지 않았다. 오로지 아래로 향하는 손잡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다만, 아래로 향하는 사다리라고는 하나 지면 위에 똑바로 선 상태였기에 여기서 아래로 어떻게 내려가나 했는데.
척.
사다리를 잡고 발을 내리자, 기묘하게도 단단한 지면 대신 사다리가 발에 걸렸다.
마치 유령처럼 발이 지면을 뚫고 들어간 기분이었다.
‘마신들의 메시지도 차단되었다.’
시야가 가려지고, 청각이 막혔기 때문에 세운이 메시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평소에는 귀찮아하던 메시지가 완전히 사라지니 조금 쓸쓸한 감각이 들었다.
세운은 잡념을 치우듯이 고개를 저으며 무작정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저벅, 저벅.
그렇게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니…….
“그오…….”
쿵!
“큭.”
아비지옥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등에서 거대한 충격이 느껴졌다.
연이어 그 충격은 더욱 강해지며 등에서 날카로운 통증까지 느껴졌다.
오감이 차단당한 줄 알았는데, 통증만은 본래 그대로, 아니, 본래 이상으로 강하게 느껴졌다.
“그오오…….”
다시 한번 들려오는 미약한 울음소리.
세운이 사다리를 한 손으로 잡고 몸을 돌려 뒤랑달을 잡아 전방으로 휘둘렀다.
당연하게도 감각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굳이 감각으로 표현하자면 육감이라고 해야 할까.
직감에 가까운 감각에 의지하여 휘두른 검에 미약한 저항이 느껴졌다.
‘쓰러트렸나.’
몬스터가 베이는 소리도, 몬스터가 쓰러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공격이 이어지지 않았기에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세운은 어차피 보이지도 않으니 눈을 감은 채로 자세를 돌려 다시 사다리를 내려갔다.
하지만, 얼마 내려가지 않아.
콰직!
“젠장…….”
종아리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다른 감각이 차단된 상황이라 그런지 작은 상처임에도 고통은 평소보다 더욱 크게 느껴졌다.
‘분명 지면도 존재하지 않는 곳인데.’
혹시나 하여 사다리에서 발을 떼고 주변을 디뎌보았지만, 이곳에는 사다리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체 모를 몬스터들은 멀쩡하게 다가와 세운을 공격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은 멀쩡한 지면 위에 서서 감각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도 불합리한 상황이었지만, 세운은 덤덤하게 뒤랑달을 쥔 채로 육감을 끌어 올렸다.
여기서 불합리함을 탓해 봤자 제자리에 멈춰 설 뿐이다.
세운이 해야 할 일은.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서걱.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제 54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