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5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53화(553/675)
“용케도 찾아냈군. 아무리 큰 놈이라고 해도 드넓은 마해에서 이놈을 찾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하하, 디아블로의 마스터 덕분에 수색 범위가 절반이나 줄었습니다. 그리고 바다는 저희 청해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운과 제논의 앞에는 거대한 섬이 존재했다.
섬에는 붉은 수림이 무성했고, 그 중앙에는 섬 전체에 뿌리내린 거대한 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나무의 가지에는 날개 달린 마수들이 쉬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는 네발 달린 마수들이 야생의 순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수의 수가 유난히 많은 것만 빼면 다른 곳과 별다를 게 없는 섬.
다만, 단 하나 이상한 게 있다면 그 섬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라탄.’
탑의 마계에 존재하는 대악마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80층이 아닌 79층에 내려와 있는 서열 10위의 악마.
대악마라는 이름과 달리 태평한 성격으로 마해를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는 마해 유일의 움직이는 섬, 자라탄.
바로 그 녀석이었다.
“사실, 기껏 찾아낸 자라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길드원 한 명은 소집령을 거부하고 남아 있게 해 두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현명한 판단이지.”
세운의 소집령을 거부하고 한 명을 남겨 둔 게 마음에 걸려 사과를 하고 있나 본데, 세운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제논의 판단 덕분에 자라탄을 찾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으니까.
여정의 지침표라고 하여도 마해를 헤엄치고 다니는 자라탄을 발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테니 말이다.
“백경으로 자라탄을 유인하고 있는 건가?”
“백경에게는 신비라는 힘이 있습니다. 큰 힘은 아니고 신묘한 분위기를 풍겨 시선을 이끄는 능력인데, 자라탄에게도 통하더군요.”
“전보다 훨씬 성장한 것 같은데.”
“하하, 디아블로 길드 덕분입니다. 디아블로에게 종속되니 디아블로의 버프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디아블로 길드는 공적치로 채울 수 있는 강화 수치를 모두 채워 둔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길드전을 통해 길드의 격을 몇 단계나 올려 두었다.
그 수치는 엘하임에서 1위로서 군림하고 있던 청해를 아득하게 뛰어넘을 지경이었으니 그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색욕의 권능도 도움이 됐겠지.’
색욕의 권능을 얻었을 때, ‘색욕의 신성을 이어받아 육성과 관계된 행동과 스킬, 시스템에 추가 보정이 이루어집니다.’라는 메시지가 함께 떠올랐었다.
이는 경험치가 빠르게 상승하는 간단한 효과도 있겠지만, 백경의 성장 속도를 높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 성좌, ‘암야의 올빼미’가 하얀 고래가 쑥쑥 커가는 모습에 뿌듯해합니다.
백경의 빠른 성장 속도에는 이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뿌우우우-
망망대해라 부를 만큼 텅 비어 있던 수평선 위로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해의 섬들은 대부분 일정 간격을 띄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대부분인데, 저곳은 조금 달랐다.
‘군도(群島).’
크고 작은 섬이 무리를 이루듯이 가까이 포진해 있었다.
백경이 자라탄을 유인하고 있는 곳은 바로 그 군도의 중앙이었다.
제논이 굳이 자라탄을 이곳까지 유인한 이유는 간단했다.
“인원은 미리 말씀드린 대로 분배되었습니다. 다행히 디아블로가 전부 모인 덕분에 포위망을 완벽하게 다잡았습니다.”
“뒤쪽 바다는?”
“당연히 저희 청해가 포위망을 좁혀올 겁니다. 솔직히 자라탄이 도망치고자 한다면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충분하다.”
판은 깔렸다. 회귀 전에는 그 격의 차이를 감히 우러러보지 못하고 ‘섬’으로만 생각했던 자라탄을 상대할 판이.
얼마 지나지 않아 군도의 끝에 도달한 백경이 바닷물을 분수같이 뿜어내며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알려왔다.
“전투 시작은…….”
“내가 하지.”
세운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본래는 신호탄처럼 마법을 쏘아 올리는 방식을 사용했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 있었다.
세운이 주먹을 쥐자 성흔이 평소의 검붉은 빛이 아니라 사탄이 내뿜던 주황빛 신성을 뿜어내며 세운을 포함한 디아블로와 청해의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 사탄의 전장에 분노의 함성이 울려 퍼집니다.
분노의 권능이 개전의 신호를 알렸다.
–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자라탄에 대한 적의가 대폭 늘어납니다.
–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에게 ‘도전자’의 권능이 깃듭니다.
도전자.
사탄이 신성을 다하고 사라질 무렵, 세운을 지칭하였던 단어였다.
즉, 저 메시지는 세운이 가진 성흔의 힘이 길드원에게 깃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세운이 권능을 발현하자, 그 성능이 역력히 드러났다.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 모두의 몸에서 미약하게나마 광란의 기운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파멸의 힘을 사용하면, 더 이상 운석으로 만든 장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겠어.’
운석으로 만든 장비는 파멸의 권능이나 정령의 힘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외적으로 아우터와 대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아쉬운 점 역시 있었다.
바로 가공의 한계.
고창석이 공들여 장비를 강화하고 있었지만, 운석으로 만든 장비에는 한계가 있었다.
탑의 79층까지 올라온 지금, 장비의 효율이 너무 떨어져 아우터를 상대할 때 말고는 모두가 다른 장비를 착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파멸의 힘을 퍼트릴 수 있는 지금이라면, 길드원들 역시 운석으로 만든 장비라는 한계를 넘어 더욱 강하게 아우터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합니다. 이게 디아블로의 마스터가 이번에 새로 얻은 힘입니까?”
“바로 시작하지.”
“좋습니다. 그럼 바로…….”
제논이 창을 꺼내 들었다.
자라탄 역시 자신이 포위당했음을 깨달았는지, 바다 아래에 잠겨 있던 머리를 치켜들며 포효하였다.
등딱지 위의 수림이 들썩거리며 온갖 마수들이 경비견처럼 뛰쳐나오고, 흔들리는 거대수 위에서 날개 달린 마수들이 무수한 잎사귀처럼 떨쳐 나왔다.
“자라탄 사냥을 시작하겠습니다.”
* * *
“구우우우우-”
자라탄의 포효는 웅장했다.
범종이 울리는 것처럼, 뿔 나팔을 부는 것처럼 낮은 중저음이 군도에 퍼져나갔고 하늘에 미약하게 끼어 있던 잔 구름마저 걷혔다.
잔잔하던 파도에는 연신 파도가 일렁이고 해양의 마수들이 놀라 도망친다.
이 모두가 자라탄의 포효 하나로 일어난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인 것도 아니고, 그저 고개를 들어 포효를 내지른 것만으로 말이다.
“모두 계획대로 움직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라탄이 도망치지 못 하게 하는 것!”
“그리고 마스터가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이번 자라탄 사냥의 본 계획이었다.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가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다지만, 저 자라탄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나마 제논이나 유서아, 강한철 같은 이들은 어떻게든 타격을 줄 수 있겠지만, 그걸로는 자라탄을 쓰러트릴 수 없다.
자라탄을 쓰러트릴 수 있는 힘을 가진 건 오직 한 명.
세운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 작전이었다.
“몸을 돌린다!”
“다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 플레이어 최수창이 ‘크라켄의 사냥’을 사용합니다.
촤르륵!
최수창의 작살이 섬, 아니, 자라탄의 몸 밖으로 튀어나온 네 개의 다리 중 하나를 묶었다.
여기에 사람들이 달라붙어 작살을 잡아당기며 자라탄의 다리를 고정하였다.
“자라탄을 상대할 날이 오다니. 디아블로의 마스터를 따라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청해 길드의 마스터, 제논이 창을 치켜들자 그 움직임에 따라 용오름이 치솟았다.
마법이 아닌, 지휘.
그가 테이밍한 해양 몬스터들이 바닷속에서 온 힘을 다해 용오름을 일으키고 있었다.
“치는 맛이 있겠군.”
콰앙!!
강한철이 광배근을 활짝 벌리더니 자라탄의 다리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자라탄의 다리가 뒤로 밀쳐짐과 동시에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에 퍼져나가 마해가 크게 울렁거렸다.
“세운 씨와 같은 전장에서 싸우는 건 오랜만이네요.”
유서아가 바다 위를 달리며 자라탄의 다리에 수백 개의 검흔을 남겼다.
비록 가죽을 간신히 파고들어 갈 정도로 얕은 검흔이었지만, 그 모든 검흔을 통해 바알의 극독이 파고들었다.
바알의 극독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구현할 수 있는 독으로는 다리를 마비시키는 정도겠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이렇게 자라탄의 네 다리를 모두 봉쇄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마수들이 다가옵니다!”
“지킵시다!”
자라탄의 등딱지 위에 살고 있던 마수들이 자라탄을 지키기 위해 이빨을 드러냈다.
세운과 제논 역시 이 사태를 짐작했기에 마수를 상대하기 위한 병력 역시 미리 배분해 두었다.
게다가.
“물량전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만티, 군단을 이끌어 주시겠습니까?”
“어흥-!”
이쪽에는 백현이 있었다.
말 그대로 ‘군단’으로 불릴 정도의 언데드가 튀어나와 자라탄의 마수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만티코어는 선봉에 서서 언데드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장수처럼 다가오는 마수들을 휩쓸었다.
“고스트 브레스.”
사아아-
그사이, 백현은 흑마법을 완성하였다.
사자의 숨결로 적을 마비시키는 고스트 브레스를 시작으로, 각종 흑마법이 군단을 강화하고 적군을 무너트린다.
“수중 몬스터 포착! 청해도 전투 돌입합니다!”
“잠수!”
마수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자라탄의 배 딱지에 붙어 있던 해양 몬스터들 역시 바다 아래에서 숨죽인 채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에는 수중 전투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청해 길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움직이는 섬이라 불릴 정도로 거대한 자라탄이 고작 인간의 계략에 갇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구우우우우-”
그사이, 세운은 자라탄의 정면으로 이동해 뒤랑달을 빼 들었다.
세운이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이라는 것을 느낀 자라탄이 강인한 턱을 벌리며 날카로운 부리를 한껏 드러냈다.
“오랜만이네.”
세운이 과거를 회상하였다.
녀석의 등딱지 위에 있는 히든 던전을 탐험하던 모험가로서의 시절을.
하지만, 지금은 히든 던전이 아니라 자라탄 그 자체를 토벌하려 하였다.
우우웅-
길드의 능력을 강화하는 분노의 신성.
그 힘은 비단 세운 아래의 길드원들만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었다.
길드의 주축이자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세운 역시 분노의 힘에 영향을 받았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성흔의 힘.
그 힘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귀찮다’라는 느낌이 가득하던 녀석의 포효가.
“구우우우우웅-!!”
동급의 맹수를 만난 것처럼 살의에 가득 차 한없이 적대적인 울음소리로 변모하였다.
제 55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