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5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54화(554/675)
의외로 선공을 취한 건 세운이 아닌 자라탄이었다.
크게 벌어진 입. 뻥 뚫린 목구멍 안에서부터 새빨간 마해의 바닷물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
압도적인 수압.
아슬아슬하게 세운을 비켜나간 수압의 위력은 군도의 섬 하나를 꿰뚫어 바람구멍을 만들어 낼 지경이었다.
‘산성 브레스인가.’
게다가, 그것은 단순한 바닷물이 아니었다.
자라탄의 배 속에서 산성화된 바닷물.
사방으로 튄 물방울만 맞아도 산성으로 인해 갑옷과 피부가 녹아내렸다.
‘덩치치고는 빠른 공격이지만,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튜리크의 날개 덕분에 브레스를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사방으로 튀어대는 산성 물방울인데.
– 황탑의 묘리에 따라 ‘와이드 실드’가 더욱 견고해집니다.
그 역시 세운이 펼친 방어막에 막혔다.
저 자잘한 공격에 마나를 소모하기는 아까웠기에 일부러 8서클이 아닌 저서클의 방어 마법으로 물방울을 막아냈다.
세운이 날개를 접으며 자라탄의 머리로 급하강하였다.
“구우-”
거북이라고 하면 느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거북이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먹이를 사냥하는 순간, 거북이는 그 어떤 사냥꾼보다 민첩하게 머리를 내밀어 먹잇감을 짓씹는다.
그리고 그건 자라탄 역시 마찬가지였다.
콰직!
“빠르군.”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목을 뻗은 자라탄이 입을 닫았다.
움직임을 포착하자마자 몸을 회전시켜 피했음에도 보랏빛 깃털 몇 장이 녀석의 부리에 집혔다.
세운이 피하는 순간 자라탄 역시 세운의 움직임을 따라 머리를 돌린 탓이다.
“하지만, 제대로 피하기만 하면 바로 약점이 드러나지.”
세운의 바로 옆으로 자라탄의 거대한 동공이 보였다. 거북이 특유의 툭 튀어나온 동공이 데굴 굴러 세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운은 망설임 없이 그 눈동자를 향해 뒤랑달을 휘둘렀다.
가가각!
그 짧은 순간에 자라탄의 눈동자가 감겼다.
그래도 눈꺼풀은 다른 피부에 비해 연한 편일 텐데, 뒤랑달은 눈꺼풀에 생채기를 남기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세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켜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정확하게 방금 만들어 낸 생채기를 향해서.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서걱.
생채기가 크게 벌어지며 처음으로 자라탄의 피가 튀었다.
곧바로 몸을 연이어 회전시켜 다음 초식을 이어가려 했지만, 세운은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공격을 멈추고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구우우-”
등딱지에 자라난 나무 넝쿨 같은 것들이 채찍처럼 날아와 휘둘러졌다.
마법으로 불길을 일으켜 넝쿨을 태우려 했지만, 그것들은 바닷물로 축축하게 젖은 것들이라 쉽게 타오르지 않았다.
“마스터! 얼마나 걸리실 것 같습니까?”
“……이대로라면 꽤 걸리겠는데.”
“최대한 버티고 있지만, 발버둥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시간이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해리가 상황을 알려왔다.
세운 역시 빨리 끝내고 싶었지만, 자라탄과 몇 번의 합을 주고받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녀석을 빨리 쓰러트리기는 힘들겠다는 걸.
‘밖에서는 무리다.’
탐욕의 권능, 색욕의 권능, 나태의 권능 등,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를 고려해 봐도 녀석을 쓰러트리는 상상이 들지 않았다.
등딱지를 제외하고도 녀석의 가죽은 그만큼이나 단단했다.
최선을 다한다면 중상을 입힐 수 있겠지만, 그걸로 끝.
만약 중상을 입게 된다면 세운은 지칠 것이고, 자라탄 역시 생존본능을 느끼며 어떻게든 자리에서 이탈하려 할 것이다.
아무리 마계라고 하여도 생존본능은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본능이니까.
‘어떻게만 안으로 들어간다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생각해도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키는 방향만 보아도 자라탄의 약점은 속이다.
속에서 직접 공격을 때려 박는다면 단숨에 제대로 된 치명타를 먹일 수 있을 거다.
“구우우우-”
마침 세운을 노리고 다가오는 자라탄의 입.
세운은 마법으로 자라탄의 눈까지 속이며 재빠르게 그 속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어차피 자라탄에게 이빨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 거대한 부리만 통과하면 끝이다.
입 안에 날카로운 촉수 같은 게 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움직였지만, 세운은 다급하게 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까앙!!
눈앞에 자라탄의 부리가 닫히며 뒤랑달이 끼었다.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검을 쥐고 있던 세운의 손목에까지 그 얼얼한 충격이 그대로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자라탄의 부리에 몸이 두 동강 났으리라.
‘빠르다.’
엄청난 속도.
그뿐만이 아니다.
자라탄은 세운의 속셈을 눈치챈 것처럼 그 이후로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구우우우-!”
자라탄이 다시 한번 포효했다.
포효하는 중에는 풍압 때문에 입에 다가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단순한 포효가 아닌, 공격이었다.
자라탄의 포효와 함께 일대의 바다가 일렁거리더니 해일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젠장…….”
“유지! 다리를 놓치면 안 됩니다!”
“조금만 더!”
자라탄의 다리를 잡고 있는 이들이 힘들어짐과 동시에, 세운에게도 해일이 덮쳐오며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뻘건 마해의 바닷물은 세운의 시야를 완벽하게 막았고, 그 사이에서.
푸홧!
– 황탑의 묘리에 따라 ‘그레이트 실드’가 더욱 견고해집니다.
자라탄의 브레스가 날아들었다.
시야가 가려지자마자 위기감을 느끼고 미리 마법을 캐스팅하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이대로라면 기회가 와도 조금 애매한데.’
세운도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게 아니었다.
솔직히 불안하긴 하지만, 예상이 맞다면 이제 곧 딱 한 번의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
그 순간, 자라탄이 입을 벌리고 있거나 입을 벌리게 해야 하는데, 세운 혼자로는 기회를 포착하기가 조금 애매했다.
그때.
“뭐 하고 있나.”
콰앙!!
어마어마한 충격파와 함께 자라탄의 고개가 크게 들렸다.
머리에 악어가죽을 뒤덮은 채로 주먹을 내뻗은 강한철이 세운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다리는?”
“아르카나가 대신 맡아주고 있다.”
마치 세운의 계획을 읽기라도 한 듯한 타이밍.
역시 아르카나라고 해야 할까?
디아블로 길드에서 누구보다도 탑에 대한 경험이 높고, 마해조차도 이미 공략해 보았을 그녀였기에 예측이 조금 더 쉬웠으리라.
“잘 왔다.”
이제 슬슬 때가 되었다.
길드챗을 확인한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몰아붙여.”
“그러지.”
파앙!
세운과 강한철이 자라탄을 밀어붙였다.
그 강한철의 공격을 정타로 맞았음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내린 자라탄이 다시금 반격을 시작했다.
등딱지의 빈틈에서 폭포수처럼 솟아 나온 바닷물이 둘을 방해하고, 나무 기둥처럼 두꺼운 넝쿨이 뱀처럼 활개 친다.
자라탄은 더 이상 입을 벌리지 않았지만, 머리를 둔기처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슬슬…….’
다만, 이대로 소모전을 펼치면 유리한 건 자라탄이다.
저 괴물을 상대하려면 계속해서 내공과 마나를 소모해야 했기에, 이대로 힘이 빠지면 제대로 된 일격을 날리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드디어 신호가 들려왔다.
“형니이이임!!”
자라탄의 등딱지 위. 아니, 그보다 더 위.
자라탄의 등 전체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 높게 솟아 있는 거대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갑수(龜殼樹). 자라탄의 등딱지 위에 숨겨진 히든 던전이 있는 곳이지.’
말했듯이 회귀 전의 세운은 자라탄의 등 위에서 히든 던전을 공략한 적이 있었다.
그 누구도 공략하지 못한 던전이지만, 세운은 기어코 그 던전의 끝에 도달했고, 히든 던전의 끝에서 ‘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귀갑수의 핵.’
말 그대로 저 거대한 나무의 핵.
그것을 제외하고는 주위에 마땅한 보상이 보이지 않았기에, 세운은 조심스럽게 그 핵을 뜯어냈었다.
그리고 그 이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뜯겠습니다아아아!”
귀갑수의 뿌리는 자라탄의 등딱지 전체에 퍼져 있고, 심지어 그 잔뿌리는 등딱지를 뚫고 들어가 자라탄의 몸에 붙어 있었다.
일종의 기생수나 마찬가지.
그러한 귀갑수는 핵이 뜯어지는 순간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모든 섬유를 수축하게 되고.
뚝.
“구우–”
순간적으로 전신이 마비된 것처럼 자라탄의 몸이 굳고 만다.
회귀 전의 세운은 그게 핵을 빼앗고 도망치는 시간을 벌어주는 배려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그 사용법이 전혀 달랐다.
“강한철, 벌려!”
“알겠다.”
강한철이 그 즉시 뛰어올라 자라탄의 머리에 붙었다.
그러고는 이 상황을 예측하기라도 한 듯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자라탄의 부리 사이에 두 손을 끼워 넣고 괴력을 발휘한다.
드드득!
– 성좌, ‘악마를 탄 노인’이 거북이의 입 따위 찢어 버리라며 광포하게 웃습니다.
자라탄의 입가가 서서히 벌어진다.
그사이, 세운은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태양의 축복, 갈라틴 ]– 원탁의 일원이며 기사단의 리더로서도 칭송받던 위대한 태양의 기사, 가웨인 경이 사용하던 검.
뒤랑달에 탐욕의 권능이 깃든다.
갈라틴의 영향으로 흐리기만 하던 마해의 하늘에서 눈 부신 태양 빛이 흘러나온다.
– 색욕의 양막이 당신을 뒤덮습니다.
– 색욕의 양막이 분열합니다.
색욕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분신체가 세운과 똑같은 자세로 검을 치켜든다.
하지만, 그 검에서 일렁이는 기운은 전혀 달랐다.
지옥의 불길을 소환하는 헬 파이어. 그리고 절망의 바람을 소환하여 모든 적을 휩쓴다는 디스페어 오브 윈드.
각각 불과 바람의 마법이 검에 담긴다.
그사이.
쩌억!
강한철이 오로지 순수한 근력만으로 자라탄의 입을 벌린다.
산을 으깰 정도로 강한 치악력을 가진 자라탄.
게다가 지금은 귀갑수의 잔뿌리로 근육이 강제로 수축되어 입이 엄청난 힘으로 잠겨 있었을 텐데, 강한철은 오직 힘만으로 그것들을 전부 찢어 벌렸다.
“고맙다.”
그래도 힘에 부치는지 미약하게 팔을 떨고 있는 강한철을 지나치며 자라탄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입 안에는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날카로운 촉수가 있었지만, 그것들 모두 귀갑수의 잔뿌리에 의해 바짝 수축되어 있었다.
세운은 덤덤하게 그 위에서 마지막 자세를 취하며, 이내 분신체와 함께 태양의 검을 휘둘렀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 백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속성력이 상승합니다.
– 수많은 묘리가 합쳐지며 인피니티 서클(Infinity circle)이 발현합니다.
– 인피니티 서클에 의해 두 마법이 융합되어 더욱 강력한 성능을 발휘합니다.
그렇게 자라탄의 목구멍을 통해.
콰르르륵!!
지옥의 불길, 아니, 그보다 뜨거운 겁화(劫火)의 폭풍이 자라탄의 몸속에 불어닥쳤다.
제 5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