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5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57화(557/675)
79층의 시련, 마해.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 곳이라 할 수 있는 게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곳은 마계의 모든 시련 중에서도 할 수 있는 곳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와아, 여기 지반 전부 이 석재로 돼 있어!”
“이거 잔뜩 캐가야겠다!”
“맘 같아서는 섬 하나 통째로 집어넣고 싶어!”
– 성좌, ‘거대한 새’가 이곳의 석재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며 계약자를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 성좌, ‘검은 새’가 조금 더 날카로운 건 없냐며 아쉬워합니다.
마해에 존재하는 수많은 섬.
그중에서는 마수만이 가득한 삭막한 섬도 있지만, 지금 쌍둥이 자매가 있는 곳처럼 귀중한 소재가 가득한 곳도 있었다.
특히나 마해는 마계 중에서도 히든 던전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곳이었으니, 디아블로 길드원 대부분 히든 던전 한두 개 정도는 찾아냈을 정도였다.
“진짜 와주셨네요?”
“저놈인가?”
“네, 귀중한 약재가 많아 보이는데 저거 때문에 채집을 못 하고 있었어요. 죄송하지만 저 혼자서는 상대하기 어려워 보여서요.”
“내가 처리하지.”
보랏빛 날개를 접으며 착지하는 세운을 향해 이하늘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세운은 도착하자마자 뒤랑달을 꺼내 들더니 그녀가 가리킨 마수에게 가차 없이 휘둘렀다.
서걱.
단 일격.
섬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마수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몸이 두 동강 난 채로 쓰러졌다.
“차라리 자잘한 몬스터가 많았으면 제가 어떻게 해 봤을 텐데.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아니다. 치료해 준 보답은 해야지.”
“지금 보니 저 마수의 꼬리도 약재로 쓸 수 있겠는데요? 다음에는 더 좋은 포션을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기대하지.”
말을 마치자마자 세운이 날개를 펼쳤다.
해리가 그 옆으로 다가와 비서처럼 다음 스케줄을 읊어주었다.
“제일 가까운 지원 요청은 청해 측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세운은 더 이상 디아블로와 청해를 차별하지 않았다.
물론 중요한 상황에서는 팔이 안으로 꺾이게 마련이겠지만, 급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최대한 균등하게 모두를 도울 생각이었다.
비록 처음부터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청해 역시 이제는 디아블로의 일원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제논을 위해서이긴 하지만 청해 길드원들 역시 자라탄 사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나.
“유서아와 강한철은?”
“마지막 팔한지옥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만,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잘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마스터, 이번에는 왜 길을 돌아가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해리는 그저 비서 역할을 하기 위해 세운을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탐색 분야에서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세운을 따라다니며 그 움직임과 방향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세운 역시 친절하게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직행으로 움직인다면, 저 섬을 지나야겠지?”
“네. 그래도 섬 하나만 공략하면 바로 이동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에 반해 돌아가게 되면 섬 세 개를 경유하게 됩니다.”
“섬의 숫자도 숫자지만, 크기를 봐봐.”
“크기는…… 바로 가는 곳이 비교도 안 되게 크긴 합니다. 하지만, 크기가 커도 거리상으로는 더 가깝지 않습니까?”
“바로 갈 수 있다면 그렇지. 하지만, 너도 느꼈을 텐데? 저렇게 큰 섬에 보통 어떤 시련이 있었는지.”
“……그렇군요.”
세운의 말뜻을 이해한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섬은 섬의 주인처럼 보이는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것처럼 직관적이고 간결한 시련이 있는 반면, 큰 섬은 달랐다.
여러 보물을 찾아내거나, 숨겨진 몬스터를 찾아내는 등,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귀찮은 시련이 대부분이었다.
시련을 무시하고 비행할 수도 있겠지만, 돌아다닐 곳이 많은 세운은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제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거지. 만약 너 혼자였다면 큰 섬을 통해 이동하는 게 빨랐을 거다.”
“저는 보스 몬스터 세 마리를 공략하는 게 더욱 오래 걸렸을 테니 말입니다.”
“무시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사람에 따라 특성이 다르다는 거지.”
세운은 해리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여정의 지침표와 오세의 권능에도 차이가 있었지만, 해리의 모습은 세운이 회귀 전에 겪은 탐험가의 일상과 비슷했으니까.
예상대로 돌아가는 경로의 작은 섬들은 전부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는 직관적인 시련이었다.
덕분에 조금 돌아가는 경로이긴 해도 막힘 없이 쭉쭉 나아가 금세 청해 길드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디아블로의 마스터가 오셨다!”
“감사합니다! 저희끼리는 수색에 한계가 있기에…….”
“무슨 일이지?”
세운의 도움 아래,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가 차근차근 마해를 정복해 나가고 있었다.
* * *
시간이 제법 흘렀다.
애초에 마해가 워낙 거대했던 탓에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던 탓이다.
“마스터, 고생하셨습니다.”
“너도 수고했다.”
그래도 목표한 바는 끝났다.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
두 곳에서 울려대는 도움 요청을 전부 해결해 냈고, 대부분의 인원은 거주지로 돌아가거나 시련에 남아 혹시 남은 게 있나 둘러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리의 말에 세운이 잠시 고민했다.
분명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세운은 79층에서 무려 10위라는 말도 안 되는 서열을 달성하였고, 사람들의 도움 요청도 전부 해결했다.
그런데도 세운이 망설이는 이유는 당연, 유서아와 강한철 때문이었다.
“둘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한 분들이란 거,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알지.”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어쩐지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해도 애초에 세운이 진입할 수 없는 곳이라 그런지 팔한지옥의 위치는 찾을 수 없었다.
‘가야 하나.’
해리의 말대로, 둘이라면 믿을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거주지에서 쉬고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타날 거다.
그러리란 걸 알고 있지만, 오늘은 어쩐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해리도 그것을 알고 묵묵하게 세운의 곁을 지키며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쿠구구-
우측의 섬에서 무언가 이변이 발생했다. 제법 거리가 떨어진 섬인데도 그 떨림이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
“가 보지.”
“네, 마스터.”
둘은 시선을 마주친 뒤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본래라면 힘을 아끼기 위해 착실하게 시련을 통과하며 이동했겠지만, 이번에는 본능적으로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느꼈다.
힘을 소모하더라도, 시스템과 마수들의 방해를 뚫고 이변이 일어난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한기.’
섬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지독한 한기가 느껴졌다.
아직 섬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한기라니.
정령력으로 이루어져 있어 어지간한 현상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튜리크의 날개조차 조금씩 서리가 쌓이고 있었다.
세운이라고 해서 79층의 모든 섬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한 한기를 지니고 있는 섬은 발견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세운은 저 이변의 정체에 대해 짐작 가는 게 있었다.
‘팔한지옥.’
여덟 번째 팔한지옥, 마하발특마지옥.
유서아와 강한철이 도전한 그곳이 저 섬과 연결되어 있었다.
팔한지옥을 정상적으로 공략하였다고 하기에는 이변이 심상치 않았다.
“마스터, 섬이…….”
한기로 인해 섬이 꽁꽁 얼어 혹한 지대가 되어 있었다.
섬 전체에 눈이 수북이 쌓이고, 중앙의 언덕은 빙산이 되었으며, 온화한 기후는 거친 폭설로 변화했다.
심지어는 섬 주변의 바다까지 얼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콰아앙-!!
섬의 중앙.
정확하게 말하자면 섬 중앙에 새로이 탄생한 빙산의 위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폭설이 한 차례 일렁이고 섬 전체로 눈사태가 번져나갔다.
‘몬스터인가?’
팔한지옥에서 보스 몬스터가 빠져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마스터, 이 이상은…….”
“대기해라.”
한기가 더욱 심해져 해리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때문에 세운은 해리를 남겨 두고 혼자서 섬으로 뛰어들었다.
한기는 세운조차도 버티기 힘들 지경이었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해 검을 미리 빼 들고 빙산에 다가간 세운은 곧 검을 도로 되돌려 넣을 수밖에 없었다.
빙산의 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나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유서아, 강한철?”
차원이 단절된 것처럼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그건 분명 둘의 기운이었다.
철장에 가로막힌 것처럼 희미하지만, 세운이 둘의 기운을 착각할 리 없었다.
여기서 선택해야 할 건 저기에 간섭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답은 의외의 곳에서 들려왔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고개를 젓습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지금 간섭하는 건 방해일 뿐이라고 단언합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동의합니다.
– 성좌, ‘암야의 올빼미’가 원래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라며 미소를 짓습니다.
마신들이 하나같이 일관되게 세운의 간섭을 반대하였다.
그들이 어째서 이 상황을 이해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이번 사태의 원인이 팔한지옥이니 마신들과 연결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세운이 움직임을 멈췄다.
콰아앙!!
그러는 사이에도 빙산 너머의 차원에서 끊임없이 느껴지는 충격.
그 사이로 한기가 끊임없이 퍼져나가 바다를 얼려 나갔고, 곧 주변의 섬까지 얼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그러다 문득, 저 안에서 유서아와 강한철 외에도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지만,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두 개의 기운.
사탄을 마주쳤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강대한 기운.
‘설마…….’
세운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두 성좌가 떠올랐다.
서열 1위의 마왕이자 지옥의 대군주 ‘바알’.
서열 2위의 마왕이자 지옥의 대공작 ‘아가레스’.
‘분명, 팔한지옥에서도 경전과 비슷한 것들이 있었지.’
세운은 거주지에서 유서아가 보여주었던 두 개의 인장을 떠올렸다.
찢어진 경전 여덟 개가 모여 분노의 신전으로 인도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인장들 역시 여덟 개가 모여 두 마왕에게 인도됐다는 것일까?
세운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편에서 들려오던 폭음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하여튼 성질도 더럽다며 두 마왕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만약 누군가 자신에게 최강의 보물이 있다고 하면 어쩔 거냐고 묻습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말도 안 되는 허세 따위는 자신의 보물로 철저하게 짓밟아 주겠다며 단언합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거 보라며 어깨를 으쓱입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스스스-
두 차원을 가르고 있던 얼음장이 무너지며, 그 사이로 두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세운이 날개를 펼쳐 서리를 털어냈다.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덕분에 폭설 속에서도 둘을 재빠르게 받아낼 수 있었다.
“아…… 세운 씨.”
“…….”
유서아와 강한철. 둘의 상태는 대충 보기에도 심각했다.
전신이 동상으로 푸르게, 아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추위로 인해 터진 살결, 거기에 방금까지 벌인 격렬한 전투로 인한 상처에서 나온 피 역시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세운은 그 상처를 통해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해 냈다.
“둘이 싸운 건가?”
“시련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조금 격한 대련을 벌였을 뿐이다.”
세운의 예상이 적중했다.
둘은 여덟 개의 인장을 통해 두 마왕을 만났고, 그 시련으로 서로 싸울 것을 명 받은 것이다.
세운이 둘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히고 치료 마법을 준비하며 물었다.
“결과는?”
“그게…….”
“무승부다.”
“마지막에 승부가 나긴 했는데, 둘 다 몸이 굳어서 쓰러지지 않았거든요. 결국…… 승패를 구분하지 못하고 끝났어요.”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누가 보아도 자신의 계약자가 이겼다며 독니를 드러냅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눈이 삐었냐며, 어이가 없어 합니다.
세운조차도 견디기 힘든 한기 속에서 팔한지옥을 모두 통과한 것을 넘어, 둘이 대련을 벌였다니.
그것도 마지막 순간에는 몸이 딱딱하게 굳어 힘이 빠졌음에도 쓰러지지 못할 때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집념이었다.
“결과는?”
마지막으로 들려온 세운의 질문에, 유서아가 꽁꽁 언 얼굴로 힘겹게 미소 지었다.
“저희 둘 다 승리했다고…… 보상을 받았어요.”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한기 덕분에 무승부라도 받아 간 줄 알고 있으라고 아가레스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누가 할 말이냐며 난폭하게 땅을 울립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어쨌든 자신의 계약자가 승리에 더 가까우니 합당한 보상을 내리겠다고 선언합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비겁한 변명이라며 완벽한 승리를 거둔 자신의 계약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선사합니다.
시스템마저 허용한 두 마왕의 자존심.
그렇게 내려진 ‘보상’으로 유서아와 강한철의 성흔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을 뿜어냈다.
“수고했다.”
세운이 서리진 유서아의 머리 위로 손을 얹자, 그녀는 한기마저 잊고 행복한 미소로 단잠에 빠져들었다.
제 55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