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5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58화(558/675)
상황의 전말은 이러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역시 자신의 계약자가 더 강하다며 다리를 으쓱입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헛소리에 콧김을 내뿜음 어이가 없어 합니다.
유서아와 강한철.
평소에는 따로 떨어져 시련을 공략하던 둘이 한 몸처럼 붙어 마계와 팔한지옥을 공략해 나가자 둘의 성좌인 바알과 아가레스의 대치 역시 평소보다 심해졌다.
자신의 계약자가 더 강하다는 자존심 대결은 마지막 팔한지옥에 들어 정점에 이르렀고.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확인하면 되지 않냐며 소리칩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나중에 무르기 없다며 당장 판을 구성합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다 늙어서 질질 짜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온다며 비웃습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드디어 저 허풍쟁이를 1위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때가 되었다며 비웃습니다.
둘은 본격적으로 판을 준비하였다.
그러고는 팔한지옥의 보상이었던 인장의 힘을 비틀어 자신들이 만든 판으로 유서아와 강한철을 이끌었다.
본래 불가능한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이곳은 마계. 다른 시련에 비해 마왕인 둘이 힘을 발휘하기 가장 최적화된 장소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그렇게 유서아와 강한철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덕분에 둘 다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결과가 좋아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둘 중 하나가 정말 죽을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게 아끼던 계약자를 게임의 말처럼 굴리다니.
새삼 둘이 ‘마왕’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 80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수라도(修羅道)
– 당신은 마계의 끝에서 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진정한 지옥, 아수라도(阿修羅道)에 도착하였습니다.
– 피할 곳은 없습니다.
– 처절한 전쟁터 속에서 살아남으십시오.
세운을 포함한 모두가 거주지에서의 휴식과 정비를 마치고 마계의 마지막 관문으로 진입하였다.
“제논 님한테 얘기는 들었지만, 생각 이상이네요.”
유서아가 표정을 굳혔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지금까지의 다른 시련과 달리 시련에 진입하자마자 그 처절한 전장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키히히힛! 죽어, 죽어, 죽어!”
“크아아아아악!”
푹, 푸욱.
“멍청한 놈.”
서걱-
“멍청한 건 너고.”
수라도.
시련의 설명에 적혀 있는 것처럼 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영원한 전쟁터.
아군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당장 눈앞에서 피와 살점이 끊임없이 튀고 있었고, 바닥은 본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붉고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플레이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는 것인지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가 전장과 동떨어진 언덕 위에 올라서 있다는 점이었다.
“이 언덕도 곧 무너질 겁니다.”
“벌써부터 시선이 느껴지네요. 싸우면서도 저희를 노리고 있는 게 보여요.”
“그럴 만하죠. 악마들 사이에서 인간은 손쉬운 사냥감 정도로 보일 테니 말입니다.”
배려라고는 해도 일시적일 뿐.
이 안전지대가 유지되는 건 삼 분도 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시련에 대해 파악하고 전쟁에 끼어들 준비를 해야만 한다.
시련의 설명에 적혀 있듯이, 피할 길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저희 청해 역시 끝까지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고 엘하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압도당할 만하네요.”
“네. 사실, 이 전장에서 귀환석을 제대로 쓰고 탈출한 것만 해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엘하임에서 가장 강력한 길드로 군림하던 엘하임도 넘지 못한 벽, 수라도.
디아블로 길드는 제논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의 전장은 그만큼이나 치열하고 처절해 보였다.
“마스터는…….”
“말했던 대로, 난 따로 움직이겠다.”
“알겠습니다.”
세운이 먼저 안전지대를 빠져나갔다.
다들 시련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목표인 것과는 다르게 세운의 이번 목적은 서열 10위 안에 들어가는 악마를 찾아내는 것.
수라도에는 시간제한이 있었기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저희는 그 시간제한 동안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역시 보는 시선 자체가 다르네요.”
“시간제한 안에 십 위권의 악마를 찾아낸다니. 저희와 같은 시련을 받은 게 맞나 싶습니다.”
“저희는 저희가 할 일만 잘하면 되겠죠.”
“맞습니다. 괜히 걱정시켜서 디아블로의 마스터를 불러내는 일만 안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절대 안 그럴 거예요.”
“같은 생각입니다.”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세운이 발걸음을 돌리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세운이 찾아낸 악마와의 전투도 돕고 싶었지만, 그들도 그게 무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무리는 할 필요 없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뿐이다.
“이제 시작이네요.”
“계획대로 움직이겠습니다.”
“네. 다운아, 아름아. 준비는 됐지?”
“응! 이미 준비 끝났어!”
“조금만 버텨줘! 최대한 빨리해 볼게!”
“거주지에서 몇 번이나 예행 연습해 봤으니까 걱정 없어!”
“부탁할게. 이번 시련의 핵심은 너희니까.”
“알고 있지!”
“우리만 믿어!”
미리 계획한 대로, 쌍둥이 자매를 중심으로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가 진을 쳤다.
마침 시간이 다 되었는지 언덕이 무너져 내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라도의 악마들이 고개를 돌렸다.
“참느라 죽는 줄 알았네.”
“오래간만에 부드러운 살결 좀 갈라보겠는걸?”
“그래, 네놈들의 딱딱한 가죽을 질겅질겅 씹는 것도 질린 참이지.”
일대의 악마들이 전부 디아블로와 청해를 노렸다.
수라도.
이곳에 바글거리는 악마들 전부가 적인 만큼, 혼자서는 통과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시련이었다.
회귀 전의 세운도 다른 길드의 공략에 붙어 여정의 지침표를 최대한 활용하며 가까스로 통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사람들은 악마들이 지금까지 상대해 온 평범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제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스켈!”
뿌우우우-
제논의 외침과 함께 아공간에서 그의 파트너인 백경, 스켈이 힘차게 물을 내뿜었다.
가까이 다가오던 악마들이 갑작스러운 물세례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라탄은 아직 길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꺼내지 못했지만, 물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판을 깔기는 충분했다.
“이쪽은 내가 맡지.”
–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을 사용합니다.
콰아앙!!
제논의 반대편에서는 강한철의 주먹이 지면을 찍었다.
팔한지옥을 마치고 아가레스를 대면해 직접 신성을 하사받은 그의 주먹은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 힘은!”
“이, 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을!”
“크헉!”
지면이 흔들리는 수준을 넘어 뒤틀리고 있었다.
당장 인간의 살결을 취할 생각에 빠르게 다가오던 악마들이 뒤틀리는 지면 사이에 끼어 몸이 찢어지고 으깨졌다.
다른 방향 역시 마찬가지.
더욱 강해진 유서아가 선두에 서서 악마들을 휩쓰는 동시에 아군을 지휘하고, 백현이 언데드 대군을 소환하여 악마들과 대치했다.
압도적인 격차.
이 정도라면 악마들이 겁을 먹을 만도 한데, 수라도의 악마들에게는 ‘생존 본능’이 결핍되어 있었다.
“크하하하! 이거다. 바로 이거다!”
“간만에 살 떨리는 전투구만!”
“더 발악해 보거라! 좀 더!”
“수라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구나!”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가 활약하자 악마들이 더욱 신나서 날뛰었다.
그들 모두가 스스로의 의지로 수라도에 들어온 악마들. 전장에 도취되어 미쳐 버린 악마들이었다.
그런 악마들에게는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난입이 오히려 큰 기쁨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백현 님! 좌측에 지원 좀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한철 님, 위치 사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나설 기회는 나중에도 충분할 겁니다.”
“……그러지.”
해리는 적들을 견제하는 와중에도 착실하게 전장 전체를 컨트롤하고 있었다.
예전에도 훌륭했지만, 그의 지휘는 이전보다 더욱 발전해 있었다.
그것을 느끼는 건 해리만이 아니었다. 디아블로와 청해의 모두가 해리의 지휘를 따르며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효과가 있다.’
해리의 얼굴에 자신감을 깃들었다.
79층, 마해에서 세운을 따라다니는 동안 그는 ‘길’을 익힐 수 있었다.
그 힘은 단순히 길을 찾아가는 것만 아니라 지금처럼 전장에서의 길을 찾아내는 것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아름아, 다운아! 아직이니?”
“이제 거의 다 끝났어!”
“조금만 더!”
하지만 위치를 사수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자유롭게 위치를 바꾸며 적의 틈을 찌르고 나아간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 텐데.
강한 적이 몰려와도, 균형이 무너져도 한 자리를 지킨다는 건 고난에 가까웠다.
“수라도에서 자리를 지키려고 하다니. 아직 이곳을 이해를 못 한 모양이군.”
“이제 막 지옥에 발을 들였으니 그럴 수밖에.”
“그렇다면 수라도의 쓴맛을 보여줘야겠지.”
이곳의 악마들은 전투에 미쳐 있을 뿐이지, 멍청이가 아니었다.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가 제자리를 사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악마들이 본격적으로 전략을 꾸리기 시작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하였던가?
일순간 전투를 멈추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하나의 군대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악마들을 상대로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디아블로와 청해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똘똘 뭉쳐서 서로가 서로의 등을 지켜주었다.
“으하하하하! 저걸 지키려는 것이겠지! 그 희망부터 으스러뜨려 주마!”
“위로 날아옵니다!”
악마들은 단순히 전략만으로 압박해 오는 게 아니었다.
디아블로와 청해가 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목적지를 향해 거대한 악마 하나가 날아왔다.
대체 어떻게 비행을 하는 건지 모르겠을 만큼 거대한 덩치의 악마.
딱히 공격을 하지 않아도 저 덩치로 추락하면 지금까지 계획했던 게 전부 무산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디아블로에는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한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죠~”
“으하하하핫! 그 가냘픈 몸으로 이 몸을 막을 수 있겠느냐!”
아르카나가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펼쳤다.
카드 한 장이 스르르 사라지더니, 반대로 허공에 거대한 막이, 아니, 거대한 카드 한 장이 생겨났다.
“이런 얇은 방어막 따위, 네놈과 함께 짓뭉개 주마!”
콰앙!!
엄청난 충돌음.
하지만, 악마의 몸이 디아블로를 짓뭉개는 일은 없었다.
아르카나가 펼친 카드는 물리력을 무시하다시피 하며 악마의 추락을 완벽하게 방어하였고.
“이럴 수…….”
“잘 가세요~”
서걱.
그녀의 낫질이 거대한 악마의 몸을 두 동강 내었다.
“더 몰려옵니다!”
“저건 또 뭐야…….”
“하하, 슬슬 막기 버겁겠는데.”
워낙 큰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터라, 일대 악마들의 시선이 모조리 집중되기 시작했다.
악마들과 마수들, 심지어 서열이 꽤 높아 보이는 용의 모습을 한 괴물이 이곳을 향해 입을 벌리며 브레스를 모으고 있었다.
수성전의 최대 단점.
바로 지속되는 장거리 공격을 막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악마들은 그 점을 깨닫고 무작정 들이받기를 멈추고 장거리 공격으로 디아블로와 청해의 체력을 깎아 먹고 있었다.
여기에 저 브레스마저 적중당하면 정말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순간.
“끝!”
“완성이다아아!”
중앙에서 들려온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일대에 거대한 풍압이 일었다.
거대한 새가 날갯짓이라도 한 것처럼 거센 풍압.
그 풍압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은 악마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그 자리에는 거대한 성채 하나가 솟아나 있었다.
– 플레이어 한아름이 ‘내성’을 구축합니다.
– 플레이어 한다운이 ‘외성’을 구축합니다.
– 두 플레이어의 힘이 시너지를 이룹니다.
– 두 플레이어의 건축물에 ‘말파스’와 ‘할파스’의 신성이 깃듭니다.
이것이 바로 디아블로와 청해의 본 계획이었다.
수라도라는 적진 한가운데에 자신들의 성을 구축하는 것.
그렇게 수라도의 한가운데에.
– 수라도에 고유 건축물, ‘마왕 성’이 지어집니다.
수라도라는 지형에 딱 어울리는 검은 성채가 떡하니 자리 잡았다.
제 55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