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5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59화(559/675)
– 수라도에 고유 건축물, ‘마왕 성’이 지어집니다.
‘잘 해결됐나 보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세운은 80층의 시작 지점에서부터 꽤 멀리 이동했다.
그런데도 저 뒤에서 말파스와 할파스 특유의 신성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쌍둥이 자매와 시련 내에 건축물을 만든 게 여러 번이라 헷갈릴 수가 없었다.
‘시련에 건축물을 세우고 다녔던 걸 이렇게 응용하다니.’
이번 계획은 세운이 세운 게 아니었다.
쌍둥이 자매가 직접 자원하였고, 그녀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보고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여 결정된 일이었다.
마왕 성.
이는 단순히 수성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었다.
내성은 말파스의 힘이 깃들어 쉼터로써 작용하고, 외성은 죽음의 새라고도 불리며 전쟁과 축성을 주관하는 할파스의 힘이 깃들어 악마들을 막아낼 힘을 제공했다.
이로써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는 마왕성의 보조로 외성에서 안전하게 적을 막아내거나, 내성에서의 휴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마왕 성이 완성된 이상, 이곳은 이제 위험한 시련이 아닌 안전한 사냥터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이 시점에서 디아블로와 청해의 80층 시련은 끝이 난 것과 다름없다.
‘몇 명은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강한철이나 유서아, 백현 등, 저마다 수련이나 재료 수집 등, 다른 이유긴 해도 그들은 마왕 성에서 안전하게 시련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세운과 마찬가지로 강한 악마를 찾아다닐 가능성이 크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대악마를 수색해 볼까.’
세운이 더욱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혹시나 마왕 성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위험에 처할 경우를 대비해 속도를 조절하며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마왕 성이 완성된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서, 서열 10위라니.”
“서열 10위라면 자라탄이 아니던가!”
“그 자라탄을 쓰러트린 건가?”
악마들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서열을 알 수 있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눈에는 10위라는 세운의 압도적인 서열 역시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망가느냐?
아니다.
이곳의 악마들은 모두 자선해서 수라도에 들어온 전쟁광(戰爭狂).
“우선 떨어트려라!”
“그 자라탄을 어떻게 쓰러트렸는지 우리에게도 보여다오!”
“10위의 인간이라니! 10위의 서열을 획득할 기회나 다름없다!”
10위라는 세운의 서열을 확인하고도 싸우고 싶어 안달 난 악마들이 존재했다.
물론, 객관적으로 자신에게는 무리라고 판단하는 악마들 역시 적지 않았다.
“잡았다!”
세운의 앞으로 그물망 같은 게 생겨났다.
아래의 악마 하나가 지느러미처럼 생긴 손을 길게 늘여 만들어 낸 신체였는데.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서걱.
“크아아악!”
고작 그것으로 세운의 움직임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 외에도 무턱대고 브레스나 마법, 화살을 쏘아내거나 무식하게 몸통을 날려대는 등, 악마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운의 진로를 방해했지만, 그럴 때마다 놈들의 몸이 갈려 나갈 뿐이었다.
‘여정의 지침표도 불확실한데.’
지금 세운이 찾고 있는 건 서열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악마였다.
하지만, 세운은 현재 그들의 이름도, 모습도 알지 못한다.
정보가 없다시피 하니 여정의 지침표도 제대로 된 목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마신들이 알까 싶어 물어보기도 하였지만.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이곳의 악마들은 더 이상 진짜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만약 진짜라고 하더라도 그런 하급 악마들의 이름까지 외우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창고 세 번째 칸 둘째 줄 여섯 번째 란에 진열된 보물이 뭐냐고 묻습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고민도 하지 않고 ‘연금술의 오의, 에메랄드 타블렛’을 외칩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까마귀의 수하를 동정합니다.
마신들도 이곳의 악마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수하를 그렇게 아끼는 사탄조차도 모르는 분위기였으니 말 다 했다.
‘그렇다면…….’
세운이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세워 둔 계획들을 떠올렸다.
그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이것이다.
이곳은 수라도.
만약 대악마 중에서도 수라도의 이념에 어울리는 전쟁광이 존재한다면.
“상대해 주지.”
악마들을 쓰러트리며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저쪽에서 먼저 나타날 것이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화르륵!
세운의 불꽃이 수라도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 * *
“아리옥 님, 수라도에 새로운 자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수라도.
이곳에는 최외곽을 빙 둘러 열 개의 성이 존재했다.
오랜 시간 수라도에서 전쟁을 거치며 천장이 다 날아가 이름뿐인 성.
솔직히 외관만 보아서는 성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이곳을 성이라 부르는 이유는 성에 거주하고 있는 악마 때문이었다.
“새로운 자라. 네가 직접 와서 보고할 정도면, 제법 날뛰고 있는 모양인데?”
대악마.
서열 10위까지의 악마를 지칭하는 말이다.
바로 그 대악마들이 머물며 수라도를 내려보는 곳이 바로 이 성채였다.
예외로 자라탄이 10위의 서열을 차지한 이후로는 10번째 성채를 11번째 악마가 차지하고 있지만, 대악마 중 11위를 인정해 주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새로 들어온 인간입니다.”
“인간?”
“네. 벌써 저희 구역의 악마 수백을 쓰러트렸습니다. 기세로 보았을 때 이곳까지 도달할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하, 인간이 성채까지 도달한다니. 웃기지도 않네.”
“게다가, 저 인간이 10위의 서열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10위?”
옆집 강아지 얘기를 듣듯이 실실 웃고 있던 아리옥의 표정이 일순간에 팍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게 아리옥의 서열은 11위.
자신이 지금 전장에서 날뛰고 있는 저 인간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닌가?
“저 인간이 자라탄을 쓰러트렸다는 말이냐?”
“마해의 일은 저희도 관측할 수 없다는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지. 알고 있지. 알고 있지만, 인간 따위가 자라탄을 쓰러트렸다니…….”
잠시 턱을 쓰다듬던 아리옥이 서서히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악마의 미소.
건방진 인간 따위가 자신의 전장 위에서 활개 치고 있다며 났던 짜증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있었다.
“출정한다.”
“저 인간에게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크크, 당연하지. 이 아리옥 님께서 정식으로 10위를 쟁취할 기회지 않은가?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는데 밟아 터트리지 않으면 바보지.”
“아리옥 님, 인간이라고는 하나 자라탄을 쓰러트리고 온 인간입니다. 주의하시는 게…….”
아리옥의 표정이 다시 한번 찌푸려졌다. 그러고는 앞에서 보고하던 악마의 어깨를 힘으로 찍어 눌렀다.
서열 10위에는 들지 않는다고는 해도 그는 엄연히 수라도의 성채를 차지한 대악마 중 하나.
그 힘은 평범한 악마와 비교 불가한 수준이었다.
“지금 인간 따위에게 겁먹어 숨어 있으라는 뜻이냐?”
“……아닙니다. 그저, 저 정도로 활개 치고 있으면 아리옥 님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대악마가 찾아올 겁니다.”
“가만히 앉아서 떡이나 주워 먹어라?”
“그렇습니다. 가만히만 계셔도 인간은 쓰러질 테고, 공석이 된 10위에는 자연스레 아리옥 님의 차지가 될 겁니다. 굳이 힘을 낭비하실 필요 없다는…….”
쿠궁!
아리옥의 손에 더 강한 힘이 들어갔다.
보고 중이던 악마의 몸이 무너졌고, 그의 발이 돌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아리옥은 상체를 숙여 악마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살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그 인간에게 지기라도 할 것 같은 거냐?”
“……자라탄이 어떻게 10위가 되었는지 아시잖습니까. 이전에 10위의 자리에 있던 대악마가 찾아가 짓밟으려 하였다가 되레 당하고 그 자리를 물려준 게 자라탄입니다.”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으냐?”
“비록 10위라지만, 만약 자라탄이 수라도에서 싸울 의지가 있었다면 더 높은 서열을 차지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 자라탄을 쓰러트린 인간입니다. 위험합니다.”
“하! 이 멍청한 놈이.”
아리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분한 눈빛으로 저 멀리, 수라도의 외곽을 바라보았다.
“그 인간이 진짜 자라탄을 쓰러트렸다고 생각하나? 인간답게 온갖 꼼수를 이용했겠지. 자라탄도 문제가 있었을 거고. 애초에 인간 따위가 자라탄을 쓰러트렸다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10위에 올랐다고 한들 저 대악마 놈들이 날 인정해 줄 것 같나?”
“인정하지 않아도 아리옥 님이 10위에 오르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쾅!
아리옥이 안 그래도 다 무너져 가는 성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튼튼한 성채지만, 그의 주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 스스로 그 인간을 쳐 죽이고, 진정한 10위의 좌에 오르겠다. 그러면 그 건방진 대악마 놈들도 이 아리옥 님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겠지.”
아리옥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등에서 날개가 활짝 펴지고, 날카로운 뿔에선 당장에라도 전투에 돌입할 것처럼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 아리옥 님께서 진정한 대악마로 거듭날 둘도 없는 기회다.”
아리옥이 성채에서 날아올랐다.
뒤의 악마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강하구나, 인간이여!”
까앙!
대검을 든 악마가 세운의 검격을 받아쳤다.
흘려들어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100위 안에 드는 강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악마.
과연, 그래도 나름 100위 안에 들어오니 공격을 받아낼 정도는 되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찾는 건 100위 따위가 아니라서.”
“100위라니! 이 몸이 바로 98위의 악마, 츠바겔이다!”
“100위나 98위나.”
대악마가 도착하기 전까지 세운의 목표는 체력을 최대한 적게 소모하며 악마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98위 정도면 높은 수준이긴 해도, 그 정도로 세운의 목표를 바꿀 수는 없었다.
깡, 깡, 깡!
“본 힘을 보여보아라! 힘을 아낀다면 이 츠바겔을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럴까?”
세운이 뒤랑달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래도 98위는 98위라는 건지, 저 거대한 대검을 잘도 다루며 세운의 공격을 최대한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일순간, 악마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대검을 빠르게 휘둘러 세운의 뒤랑달을 쳐냈다.
챙-
세운의 손에서 떨어져 하늘에 떠오른 뒤랑달.
“오만하구나, 인간아! 그 오만함 덕분에 이 츠바겔이 영광스러운 대악마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어!”
뒤랑달을 쳐낸 자세 그대로 검을 내리긋는 악마.
그는 자신의 실력이 좋아 세운의 검을 떨어트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애초에 만병지함을 지니고 있는 세운에게 뒤랑달을 놓친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뒤랑달을 놓친 것 자체가 계획된 일이었다.
저 악마가 방심하며 큰 일격을 날리기를 바라며 계획된 일.
툭.
“큿!”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빈손이었는데, 어느새 세운의 손에 생겨난 창, 아펠리온이 악마의 대검을 내려쳐 녀석의 균형을 뒤흔들었다.
여기서 아펠리온까지 손에서 놓고 만병지함에서 꺼낸 단검으로 악마의 목을 노리는 세운.
“어림없다!”
하나, 녀석도 괜히 98위의 악마가 아니었다.
아래로 그어진 대검이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살아 있는 것처럼 휘어지며 도리어 세운의 빈틈을 노려왔다.
그때, 세운의 성흔이 베엘제붑의 신성 특유의 노란빛을 내뿜었다.
– 폭식의 권능으로 ‘츠바겔’을 지정하였습니다.
–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를 덮칩니다.
콰득!
폭식의 어금니가 악마의 대검을 악물었다.
회심의 일격을 봉쇄당한 악마가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는 사이.
서걱.
세운의 단검이 녀석의 심장을 찔렀다.
왼쪽 가슴의 심장이 아닌, 갈비뼈보다 더욱 아래에 있는 녀석의 진정한 심장을 말이다.
“어, 어떻게 내 심장을…….”
세운에겐 여정의 지침표가 있으니, 공격을 몇 번 나눈 것만으로도 녀석의 급소를 찾는 것 정도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계획대로 큰 체력의 소모 없이 98위의 악마를 무찌른 세운.
‘슬슬 때가 됐는데.’
무찌른 악마의 수가 벌써 일천을 넘어간다.
그중에는 방금 무찌른 츠바겔처럼 제법 서열이 높은 악마들 역시 여럿 존재했다.
이 정도면 세운에게 관심이 생기든, 적개심이 생기든 모습을 드러낼 법도 한데.
그런 세운의 예상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네놈이냐. 자라탄을 무찔렀다는 서열 10위의 인간이.”
“늦었군.”
딱 보아도 지금까지 상대해 온 악마들과는 기세 자체가 다르게 느껴지는 녀석.
대악마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대였다.
저 위에서 세운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하강해 오는 녀석을 바라보며 세운이 본격적으로 서클을 회전시켰다.
사실, 세운에게는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련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아. 그 연약한 몸으로 11위의 대악마, 이 아리옥 님을 마주한 것에 경외하라.”
그 위엄 넘치는 목소리에 다른 악마들이 절로 몸을 떨고 있을 무렵, 세운이 저도 모르게 겨누었던 검을 살짝 아래로 내리며 허무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11위?”
제 56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