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6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60화(560/675)
방금까지 긴장했던 게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11위라니.’
분명 10위권 안의 대악마를 노리고 있었는데.
자라탄이 쓰러지고 세운이 서열 10위를 먹었으니, 9위 안의 대악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껏 찾아온 게 11위의 악마라니.
기껏 대악마를 부르기 위해 날뛰었던 세운으로서는 허탈할 지경이었다.
“뭐냐, 인간. 그 눈빛은.”
“대악마는 10위까지의 악마를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
“뭐?”
“11위까지 대악마라고 칭할 정도로 대악마라는 호칭이 가벼운 건가?”
11위의 악마를 잡아봤자 세운의 순위는 변함없다.
그래도 베엘제붑의 먹이로 던져주거나 지니고 있는 장비를 수거할 수도 있으니 나쁘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상대 악마 역시 세운의 반응을 알아차리곤 얼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감히…… 인간 따위가 뭐라? 이 아리옥 님이 직접 찾아온 것에 고개를 숙이지는 못할망정!”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네놈을 쓰러트리면 진짜 대악마가 찾아오는 건가?”
“이 몸이 바로 진짜 대악마다! 네놈이 쓰러트린 그 자라탄이 서열 10위를 먹는 바람에 수라도의 서열은…….”
“시끄러워.”
“이놈이……!”
무슨 말인지는 대충 이해된다.
자라탄으로 인해 수라도에 10위가 존재하지 않으니 11위인 자신이 대악마라는 뜻이겠지. 지금 세운의 눈앞에 나타난 것도 10위라는 서열이 탐나서 그런 것이겠고.
무슨 말인지는 다 알겠지만.
‘나랑은 상관없지.’
그게 세운과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안 싸워준다고 해서 포기할 놈도 아닌 것 같고, 계획대로 힘을 아끼며 녀석을 쓰러트리면 될 일이다.
“이 몸이 바로! 칼날의 대악마, 아리옥 님이시다!”
칼날의 대악마.
그 이명을 증명하듯 아리옥의 전신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생겨났다.
거기에 가장 날카로운 뿔을 앞으로 들이밀고 날아든 모습은 말 그대로 칼날 쇄도.
세운이 뒤랑달을 들어 공격을 막아보았으나.
“무기에 의존하는 나약한 인간이 이 몸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깡!
아리옥이 머리를 꺾으며 머리의 두 뿔로 세운의 뒤랑달을 비틀었다.
그 상태로 이어지는 공격.
녀석의 몸 전신에 칼날이 돋아나 있었기에 세운은 어쩔 수 없이 뒤랑달을 놓고 다음 무기를 꺼내 들어야만 했다.
“과연 네놈의 무기가 몇 개나 있는지 기대하지!”
녀석의 몸에 난 칼날은 위쪽으로 날카롭게 휘어 있어 낚싯바늘처럼 세운의 무기를 낚아챘다.
심지어 칼날의 모양을 변화할 수도 있는 모양이라 대처하기도 어려웠다.
거리를 벌리고 둔기를 휘둘러 보았지만, 녀석은 한쪽 팔을 거대한 대검으로 만들어 세운의 공격에 반격하더니 끝을 낫처럼 구부려 세운의 둔기마저 찍어 내렸다.
‘그래도 대악마는 대악마라는 건가.’
힘을 아끼며 상대하는 중이라지만,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운 상대다.
무기를 통한 공격을 완전히 차단하는 능력이라니.
그렇다고 맨손으로 공격해도 칼날로 이루어진 몸을 피해 없이 타격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 자탑의 묘리에 따라 ‘라이트닝 스피어’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세운의 주위로 번개로 이루어진 창이 떠올랐다.
다만, 예전에 사용했을 때와는 그 숫자부터가 달랐다.
한 번에 떠오른 여덟 개의 뇌창.
그것들이 한 번에 아리옥을 향해 쇄도했다.
“마법이라면 통할 줄 알았느냐!”
아리옥의 칼날이 뇌창을 갈랐다.
칼날이라고는 해도 신체의 일부가 변형된 칼날이니 뇌창을 갈라봤자 전기가 통하며 피해를 입는 게 정상인데.
녀석의 공격은 뇌창을 이루는 마나의 연결을 파괴하여 전기라는 성질 자체를 갈라 버렸다.
“약해빠졌구나! 이런 놈이 자라탄을 제대로 쓰러트렸을 리가 없지! 인간답게 잔머리를 굴린 모양이구나!”
춤을 추듯이 맹렬하게 회전하는 아리옥.
전신에 돋아난 칼날이 회전하며 여덟 개의 뇌창이 모조리 찢겼다.
하지만, 뇌창을 전부 갈라낸 그의 눈앞에 보인 건 세운의 목이 아니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 수많은 묘리가 합쳐지며 인피니티 서클(Infinity circle)이 발현합니다.
– 인피니티 서클에 의해 두 마법이 융합되어 더욱 강력한 성능을 발휘합니다.
지옥겁화.
그 뜨거운 불길이 녀석의 바로 눈앞까지 치달아 있었다.
“이놈이……!”
이미 피하기는 무리.
아리옥이 전신의 칼날을 검게 물들이더니 화염을 가르기 위해 몸을 회전시키려 하였지만.
콰직.
세운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나타난 폭식의 어금니가 녀석의 팔을 물어 움직임을 봉쇄한 것이다.
분명 그 자리에도 날카로운 칼날이 가득했지만, 폭식의 어금니는 칼날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깨물며 아리옥을 물고 늘어졌다.
“크아아아악!”
콰르르륵!!
지옥의 불길이 작열했다.
그나마 폭식의 어금니가 무한히 지속되는 게 아니라 구속은 금방 풀렸지만, 이미 전신에 불길이 옮겨붙은 상태.
칼날을 휘두르며 발버둥을 쳐보았으나,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 틈을 이용해 휘두른 세운의 검이 녀석의 옆구리를 갈랐고, 화염 속에서 더욱 큰 비명이 들려왔다.
“뭐 하는 거냐! 수라도의 인간들이 인간 따위에게 겁먹고 가만히 있는 거냐!”
아리옥이 화염 속에서 가까스로 목소리를 끌어 올려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악마들이 아리옥을 향해 조소를 흘렸다.
“그래도 대악마라고 싸움 구경 좀 하고 있었더니, 결국 팔을 벌리는군.”
“11위가 괜히 11위가 아니지.”
“불타고 있는 와중에도 입은 잘만 놀리네.”
아리옥은 안 그래도 11위라는 서열 때문에 대악마로 치냐 안 치냐 논쟁이 많은 악마였다.
그런 와중에 인간에게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저런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들 역시 갈려 나가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고 아리옥을 무시하느냐?
그건 아니었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난전, 난전이다!”
“인간도 인간이지만, 아리옥을 쓰러트리고 11위를 쟁취하는 것도 좋겠군!”
“크하하하! 가 보자고!”
이곳의 악마들은 모두 전쟁광.
비록 자신들이 낄 자리도 아니고, 불꽃에 뛰어드는 불나방 꼴이 될지라도 그 싸움을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운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나중에 상대해 주지.”
세운의 성흔에서 모래알이 흘러나왔다.
모래알이 회전하며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나고, 이는 순식간에 거대한 폭풍으로 변하였다.
모래폭풍이 허락한 존재는 오직 세운과 아리옥뿐.
“뚫어!”
“아, 안 뚫리는데?”
“마법인가?”
“마법이 아니다. 디스펠이 되지 않아.”
“페길의 디스펠이 통하지 않는다니, 실력이 죽은 거 아냐?”
“마나 수식 자체가 느껴지지 않아. 마법과는 전혀 다른 계열이다.”
“젠장, 다들 쳐! 치다 보면 깨지겠지!”
다른 악마들은 모래폭풍에서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도 날려보고 검도 휘둘러 보았지만, 모래폭풍에 그런 공격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수괴의 모래폭풍.
아우터를 상대하는 중이 아니더라도, 그 힘은 충분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대체 뭐냐! 인간 따위가 어찌 이런 힘을!”
“그 대사는 너무 식상한데.”
서걱.
“크아아악!”
세운이 휘두른 검에 아리옥의 어깨가 잘려 나가며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그 와중에 고개를 비틀어 목이 베이는 건 피한 모양이지만, 그래봤자 다음 공격을 피하기는 무리였다.
서걱.
연이어 떨어진 반대쪽 어깨.
신체가 절단되자마자 불길이 상처 부위를 지져대는 바람에 악마 특유의 재생조차 불가능했다.
그래도 다행히 역할을 다한 불길이 점차 옅어지는 순간.
“결국, 승리는 내 차지다!”
아리옥이 자리에서 도약했다.
잘린 팔을 포기하고 모든 힘을 다리에 집중한 덕분에, 그가 다리를 튕기자마자 일대에 충격파가 생겨났다.
그 즉시 녀석의 모든 힘이 날카로운 뿔에 집중되었다.
칼날의 대악마, 아리옥.
그의 모든 힘이 담긴 돌진은 제아무리 단단한 바위나 강철이라 해도 막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일격필살.
제아무리 그보다 서열이 높은 대악마라 할지라도 이 뿔에 급소를 찍힌다면 살아남지 못 하리라.
비록 그만큼 맞히기 힘든 기술이지만, 불길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고 상대가 방심하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맞힐 수 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정도가 대악마라면 실망인데.”
서걱.
– 서열 11위의 악마, ‘아리옥’을 쓰러트렸습니다.
–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마계를 떠날 때, 서열에 따라 추가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세운의 검이 아리옥의 목을 갈랐다.
허무하게 떨어져 내리는 녀석의 머리는 아직도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였다.
악마답게 끈질긴 생명력은 그 상태로도 혈액을 꿈틀거리며 재귀를 노렸지만.
– ‘칼날의 대악마, 아리옥’을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근력이 2, 민첩이 3 상승합니다.
폭식의 권능 앞에 부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능력치 상승량도 미미하고.’
사실, 미미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한 번의 전투로 무려 다섯 개의 능력치가 올라갔으니까.
다만, 세운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라탄과의 전투 때문이었다.
서열 10위였던 자라탄을 상대했을 때는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원 모두의 도움을 받고도 큰 힘을 쏟아부었었다.
그런데 서열이 하나밖에 차이 나지 않는 11위의 대악마가 이렇게 약하다니.
‘내가 과대평가한 건가?’
이렇게 되니 그 위의 대악마라고 해도 그리 강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휘이이-
모래폭풍이 가라앉고, 바깥의 시선이 세운에게 집중되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리옥의 모습에 모두가 조금은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아리옥을 쓰러트린 건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어도, 쉽게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자라탄을 쓰러트렸다는 게 진짜인가 보군.”
“크하하하! 못 참겠다! 얼른 나와 칼을 섞어보자꾸나!”
하나, 그들 모두 금세 정신을 차리고 세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본래 여기서 힘을 아껴야 했겠지만, 세운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렇게는 불러내기 힘든가.’
수라도의 대악마라고 해서 높은 호승심을 기대해 벌인 짓이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이 나타날 이유는 없었다.
이번에 세운이 아리옥을 상대할 때 느꼈던 것처럼, 그들 입장에서는 굳이 세운을 상대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겨봤자 서열에는 변함이 없고 지면 서열을 잃게 되는, 잘해 봐야 본전이 고작인 승부이니 말이다.
계획을 바꾸리라 생각한 세운이 마나를 집중하여 아래의 악마들을 내려보았다.
“다른 대악마가 어디 있는지 아는 놈, 있나?”
“그따위 관심 없다!”
“얼른 우리와 춤을!”
“덤벼라, 인간아!”
말이 통하지 않는 악마들을 내려보며 세운이 마나를 모았다. 수식이 정립되며 주변에 날카로운 바람이 일렁였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프로즌 템페스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프로즌 템페스트’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차가운 한기가 악마들을 얼리기 시작했다.
세운을 중심으로, 주변에 악마 형상의 얼음 동상이 생겨났다.
이것으로 모두를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싸움을 이어가기는 불가능할 터다.
세운이 얼어 버린 녀석들을 바라보며 계획을 변경하려던 순간.
“우와, 이 인간 대단한데?”
상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운은 그 즉시 반응하여 회수한 뒤랑달을 바로 잡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세운이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라니.
고민할 필요도 없이 대악마의 출현이 분명했다.
하지만, 상황은 세운의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케넨. 이 정도면 네 한기보다 대단하지 않나?”
“닥쳐라. 내가 다루는 지옥한빙은 저따위 것과 비교조차 불허하니.”
“아리옥, 저 멍청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애초에 그놈은 대악마의 축에 낄 실력이 아니었지.”
상공에 나타난 대악마의 숫자가 점점 늘어갔다.
세운을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며 나타난 녀석들의 숫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여덟이 되었고.
마지막 순간, 세운의 성흔이 절로 반응하며 저항할 만큼 강렬한 기운과 함께.
“…….”
과묵한 아홉 번째 악마가 근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세운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1위.’
저자가 바로 수라도 최강. 아니, 마계 최강의 대악마라는 사실을 말이다.
제 56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