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6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61화(561/675)
‘갑자기 대악마 총집합이라니.’
세운이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킨 채 경계심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아홉 명의 대악마.
애초에 열 명뿐인 대악마 중에서 아리옥이라는 녀석을 죽였으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대악마다.
적어도 방금 상대한 아리옥보다 강할 게 분명한.
‘어째서 몰려든 거지?’
수라도의 대악마에게 협동심 같은 게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껏 해 봐야 두세 명이 뭉쳐 다닐 거로 생각했건만. 모든 대악마가 몰려들다니.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혼자서는 어렵다.’
세운이 정면의 대악마를 노려보았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놈들이라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다.
전력을 발휘해서 상대하면, 위험하기는 해도 팔 대 일의 싸움까지도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저놈은 아니다.
서열 1위로 추정되는 대악마.
저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세운이 예상한 대악마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최소한…….
‘폭식의 마수와 동급. 혹은 그 이상.’
느껴지는 격의 크기는 족히 준신에 가까울 지경이었다.
그와 반대로 힘 그 자체는 폭식의 마수보다 낮은 느낌이었는데, 격이 저렇게 높다면 힘을 숨기는 것도 간단한 일.
세운은 금방 사태를 파악했다.
‘무리다.’
정면의 악마를 일대일로 상대하거나, 나머지 악마들을 팔 대 일로 상대하거나.
두 가지 상황도 아슬아슬할 지경인데, 그 모두를 한 번에 상대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오기와 객기에 목숨을 맡길 생각은 없었기에, 세운이 곧장 발을 빼려는 순간.
“흐흐, 그건 안 되지.”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해 놓고 꽁지를 빼려 했나?”
주위로 얼음으로 이루어진 반구 모양의 결계가 생겨났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어떻게든 깨고 나가려 했을 텐데, 얼음 막 주위로 다양한 형태의 결계가 이중, 삼중으로 생겨났다.
그렇다고 해도 세운이 깨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발이 묶이기는 충분하다.
저 아홉 악마를 상대하면서 결계를 깨고 탈출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자, 그럼 이제 어쩔 텐가? 1위. 우리를 불러낸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러니까. 한창 우리 애송이들이랑 잘 놀고 있었는데. 뭐, 아리옥과 자라탄을 쓰러트린 인간이라면 충분히 관심 가지만!”
“고작 인간 하나를 상대하려고 우리 모두를 모은 건 아니겠지?”
“설마. 설마 우리 잘나신 1위께서 인간 하나 때문에? 그랬으면 내가 바로 저 자리를 뺏어 버리겠어.”
“크크, 그럴 실력도 안 되는 놈이.”
“어이, 뭐라고 했냐? 크게 말해 봐. 중얼거리지 말고.”
“안 들렸나? 크크. 크게 말해 주지. 실력도 안 되는 놈아.”
“이 자식이!”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세운은 가만히 서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보아하니 우연이 겹쳐서 한데 모이거나 투쟁심으로 달려온 건 아닌 모양이다.
‘저 녀석이…….’
세운의 정면에 선 악마.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이 다른 대악마들을 모두 불러 모은 듯했다.
‘어째서?’
대악마가, 그것도 수라도의 대악마들이 이렇게 체계적인 계급 집단이었나?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격의 차이나 힘을 차이가 나더라도 그것을 무시하고 창칼을 꼬나쥐고 덤벼드는 게 바로 이 수라도의 이치다.
실제로 대악마들이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계급 사회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서로 으르릉거리고 있었다.
“…….”
그 와중에도 전방의 악마는 변함없이 세운을 지켜보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것처럼 깊은 눈빛으로, 아무 말 없이.
도저히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럼 뭐 어떻게. 우리 맘대로 해?”
“인간 하나한테 협동 공격이라도 하자는 건가? 대악마들이 모여서? 수라도가 비웃겠군.”
“따로 공격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여기서 토너먼트라도 벌이게?”
“키킥, 그거 재밌겠네. 토너먼트면 꼴찌부터 나서야지. 안 그래, 쟛대대.”
“시끄러! 말 잘했다, 이참에 서열 한 번 바꿔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세운이 대악마가 내뱉은 단어 하나에 집중했다.
‘토너먼트라.’
가능만 하다면, 그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 세운에게는 그 토너먼트라는 상황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스슷-
세운의 성흔에서 다시 한번 모래폭풍이 빠져나왔다.
“어? 저 인간, 뭔가 하는데?”
“자기가 뭐 어쩌겠어. 어떻게 발악해도 여기서 멀쩡하게 도망치는 건 무리야.”
“근데 저 모래바람…….”
다행히도 대악마들이 도착한 시점은 아리옥이 쓰러진 이후.
녀석들 전부 모래폭풍의 힘을 알지 못했다.
그 방심의 틈새를 이용해 세운이 첫 번째로 끌어들인 건.
“크악, 퉷! 이게 무슨 짓이냐, 인간!”
“네가 꼴찌라는 말을 들어서.”
“뭐? 하, 나 지금 인간 따위에게 무시당한 거야? 어이가 없어서.”
대악마들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꼴찌. 즉, 서열 9위의 대악마 ‘쟛대대’.
꼴찌라고는 하나 아리옥과 비교하기는 힘들었다.
비록 자라탄의 성향 때문에 그 힘이 다른 대악마보다 강했다고는 해도, 서열만으로 따지면 저 대악마가 엄연히 자라탄보다 한 수 위.
즉, 세운의 서열보다도 한 수 위라는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세운이 찾아 나서려 했던 대악마이기도 했다.
“아리옥 따위를 쓰러트렸다고 기고만장해진 모양인데. 진짜 대악마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인간아.”
츄르륵.
쟛대대의 몸이 녹아내렸다.
그 몸은 대지 위로 넓게 퍼지더니, 마치 호수처럼 모래폭풍 내부의 모든 지면을 뒤덮었다.
“내가 바로 파도의 대악마, 쟛대대다.”
작은 파동이 일어나던 녀석의 몸에서 거친 파도와 함께 용오름이 치솟기 시작했다.
* * *
“어…… 쟛대대가 먹혀 버렸는데?”
“크하하하하학! 웃겨 죽겠네. 설마 저 인간이 먼저 싸움을 걸어올 줄이야.”
“안 보여.”
“궁금하니까 저거부터 좀 걷어볼까?”
대악마들이 각자의 장기로 모래폭풍을 공격해 보았다.
우직하게 몸으로 돌진해 모래폭풍을 찢으려는 자도 있었고, 날개를 펄럭이며 같은 바람으로 모래폭풍을 멈추려는 자도 있었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라 하더라도 대악마들이 마음먹고 찢으려 들자면 버틸 수 없는 법.
……이어야 하지만.
“어?”
“뭐냐, 이 폭풍은.”
“……이상하군.”
그 어떤 대악마도 모래폭풍을 찢지 못했다.
몇몇 대악마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본 힘까지 발휘해 보며 모래폭풍을 파고들었으나, 역시나 불가능.
모래폭풍은 여전히 건재했다.
“대체 뭐지?”
“어이, 케넨. 네가 해 봐라. 이쪽은 네 전문 아니냐.”
“쳇, 쓸모없는 것들.”
케넨이라 불린 대악마가 악마의 눈이 번들거리는 지팡이를 들고 모래폭풍 앞에 섰다.
그는 세운이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을 때 가장 먼저 얼음 경계를 만들어 낸 대악마이자, 혹한의 대악마라 불리는 자였다.
한기를 다룬다고는 하지만, 그 본질은 마법.
대악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바로 그였다.
“그래봤자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거늘.”
그의 지팡이가 모래폭풍에 맞닿았다.
지팡이 끝자락의 눈알이 살아 있는 것처럼 뒤룩거리며 마기를 한껏 내뿜었다. 모래폭풍의 구조를 파악하고, 마법 자체를 파훼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수식이 변하고 있어?’
수식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1초라도 수식이 멈춰 있다면 그의 뛰어난 두뇌로 수식을 파악하고 마법을 파훼할 수 있을 텐데.
이 모래폭풍의 수식은 0.1초 단위로. 아니, 그 이하의 단위로 수식이 뒤바뀌고 있었다.
솔직히 이쯤 되자 이게 마법이 맞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모래폭풍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의 계산을 피해 가고 있었으니까.
‘그래봤자 이 몸의 앞에서는……!’
으드드득-
케넨이 마기를 한껏 끌어내어 지팡이 끝으로 한기를 모아 뿜어냈다.
지팡이의 눈알이 시리도록 파랗게 물들더니 모래폭풍이 서리가 끼고, 이내 모래폭풍 전체가 꽁꽁 얼어갔다.
“오, 역시 케넨이…… 음?”
다만, 케넨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대고, 지팡이의 눈알 역시 핏줄이 붉게 일며 괴롭다는 듯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대악마들이 긴장할 정도로 그 힘이 한계까지 치들던 중.
펑!
결국, 흰자가 사라지다시피 까뒤집히고 충혈된 눈동자가 터져나가고 말았다.
비록 장비라고는 하지만, 그의 지팡이는 자신의 마기로 회로가 이어진 그의 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지팡이의 눈동자가 터지자, 당연히 케넨까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큭…….”
케넨은 입에서 새까맣게 죽은 피를 흘리며 물러났다.
지팡이가 시들고, 모래폭풍을 얼려가던 얼음 역시 거짓말처럼 일제히 사라졌다.
“크크큭. 케넨, 저놈. 거드름이나 피우고 있더니 꼴사납군.”
“지팡이가 터져 버려서 어쩌나? 복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서열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어?”
이에 비웃는 대악마들도 있었지만, 절반은 그러지 않았다.
전체적인 전투력이라면 몰라도, 마법적인 요소에 한해서는 케넨이 이 중에서 최고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케넨은 그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채 입을 열었다.
“마법이 아니다.”
“그럼?”
“저건…… 신성이다.”
케넨의 대답에 대악마들이 일순간 경직됐다.
비웃고 있던 악마들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악마들도 모두.
심지어는 중간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1위의 대악마 역시 작지만 분명한 반응이 일어났다.
“그럴 리가. 인간 놈이 어떻게.”
“사도였나? 그렇다고 해도 네놈이 깨트리지 못할 정도의 신성을 끌어오다니. 성좌가 미쳐 가지고 신성을 퍼주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게 아니다.”
“뭐?”
“저건, 저 인간의 고유 신성이다.”
“……그럼, 저 인간이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지금은 아니다.”
악마들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방금, 케넨의 대답은 지금은 아니라도 시간이 지나면 저 인간이 성좌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심각한 상황에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크하하하하핫!”
전신이 터질 듯한 근육으로 가득 찬 대악마 하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가 호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얼마나 재밌는가! 신의 자리에 도전하는 인간이라니! 1위가 들어온 이후로 서열 경쟁이 멈춘 거나 다름없었는데, 이거야말로 새로운 바람이 아닌가?”
“진정해. 아리옥처럼 찢어지기 싫으면.”
“크하하핫, 다들 겁에 질리기라도 한 것인가? 수라도의 대악마라는 이름이 울겠군!”
“뭐? 겁을 먹다니, 누가……!”
“그렇다면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닌가! 1위, 저놈이 불렀으니 오랜만에 본 힘을 발휘해도 막아서지는 않겠지! 간만에 근육을 수축할 생각에 기대가 되는구나!”
“그래, 한껏 기대해 봐. 그래봤자 인간이지. 쟛대대가 아무리 9위라고 해도, 인간 하나 못 잡을까 봐?”
그 질문에 대답한 건 근육의 악마가 아니라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고 있던 케넨이었다.
“분명한 건 저 안에 들어간 쟛대대가 모래폭풍에서 도망치지 못한다는 거지.”
모두의 시선이 다시금 모래폭풍을 향해 움직였다.
“두고 보면 알겠지. 안 그래, 1위?”
그 순간까지도, 1위의 대악마는 아무 말 없이 모래폭풍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 5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