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6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64화(564/675)
‘뭐지?’
부정의 대악마, 텐이 세운의 눈앞에서 피를 토하며 무너져 내렸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대악마에게 도움을 받을 줄이야.
“쿨럭. 나는, 나는…… 부정한다.”
텐은 피를 토하며, 팔을 떨면서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간으로 치자면 심장에 구멍을 난 것을 넘어서 가슴이 통째로 뚫려버린 상태.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지만, 텐은 일어났다.
자신의 죽음마저 부정하는 그의 힘은 심장에 난 구멍에 언령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를 덧씌웠다.
“나는, 내 패배를 부정하고.”
비록 죽음은 벗어났지만, 텐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이성이 사라지고, 죽는 순간에 가졌던 마지막 의지만이 그 몸을 조종하고 있었다.
텐이 죽는 순간까지 바랬던 최후의 열망.
그것은.
“나는, 네놈을 부정한다.”
1위의 대악마를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본래 1위가 수라도에 나타나기 전까지, 그는 수라도에서 1위로 군림하던 ‘왕’이었다.
하지만, 저 1위가 나타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꼼짝없이 2위로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 그의 마지막 부정이 바로 저 1위였다.
지금의 1위를 부정하고, 자신이 1위로 돌아가 예전의 휘광을 되찾는 것이었다.
스으으-
1위의 대악마.
그의 주위로 죽음의 기운이 몰려왔다.
창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텐의 힘은 그저 저렇게 말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상대 존재를 부정하며 그 힘을 앗아간다.
그 이기적으로 강력한 힘 때문에 후유증 역시 만만찮았지만, 후유증을 감당할 만큼 그의 능력은 뛰어났다.
하나…….
“네놈 따위가 뭐라고 나를 부정한다는 거지?”
1위를 향해 몰려오던 죽음의 기운은 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먼지처럼 흩어졌다.
당당한 발걸음.
텐이 계속 부정을 외치고 있었지만, 부정의 힘은 더 이상 발현되지 않았다.
“나는 고작 네놈 따위가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네놈을…….”
콰직.
텐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부정의 힘도 이 이상 주인의 생명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히, 히이익!”
뒤에서 고슴도치처럼 몸을 말아 가시를 내세우고 있던 대악마, 펜드에일.
그는 1위가 텐을 죽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몸에 돋친 가시도 제대로 풀지 않아 가시가 땅에 걸리며 퉁퉁한 몸을 뒤뚱거리며 도망쳤다.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일 텐데도 1위는 펜드에일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 대신 텐의 시체를 넘어, 그 앞에서 무기를 잡고 경계 중인 세운에게 시선을 옮겼다.
“무슨 속셈이지?”
검을 들고 있지만, 세운이 당장 노리는 건 전투가 아닌 도주였다.
그 까다로운 능력을 지닌 부정의 대악마를 별 감흥도 없이 쓰러트린 놈이다.
완벽한 컨디션도 아닌 지금의 상태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경계였다.”
“경계?”
“너에게서 풍겨오는 일곱 마신의 냄새. 그리고 칠십이 마왕의 냄새에 대한 경계였다.”
대악마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일곱 마신과 칠십이 마왕이라니.
갑자기 성좌에 관한 얘기가 나올 줄이야.
혹시나 마신들에게서 무언가 반응이 나타날까 싶었지만, 아무런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세운은 언제부턴가 마신들의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다른 성좌라면 몰라도, 베엘제붑이라면 반응을 보일 법도 한데.
게다가, 세운은 지금까지 폭식의 권능으로 여러 대악마를 집어삼켰지 않은가?
보스 몬스터라도 삼키면 곧바로 반응을 보이는 베엘제붑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아리옥. 녀석이 나타난 후로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어.’
대악마가 나타났던 시점.
정확하게 그때부터였다.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세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대악마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성좌의 간섭은 이미 전부 차단했다.”
“네가?”
“지금은 한 줌의 신성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나도 한때 성좌였던 몸. 남은 힘을 쥐어짜면 시선을 가로막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즉, 지금 이곳에는 세운과 1위의 대악마 둘뿐이라는 것이다.
이미 죽은 대악마들이 쳐둔 결계는 사라졌지만, 1위의 기세 때문인지 수라도의 악마들은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한때 성좌였다고?’
성좌. 즉, 신이었던 자.
아무래도 세운이 저 대악마를 보았을 때 느꼈던 격과 힘의 불균형은 그 때문인 모양이었다.
성좌라는 드높은 격을 가지고 있다가, 탑에 내려왔으니 그 격은 한없이 크게 추락했을 터. 당연히 지닌 힘에도 페널티를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떨어진 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럼, 저 대악마가 세운에게 접근한 이유가 무엇일까?
세운은 가장 먼저 떠오른 추리를 내뱉어 보았다.
“마신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원한이라…… 방관이 죄라면, 마신들에게도 원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말은, 마신이 아닌 마왕들과 문제가 있었다는 거겠군.”
“과연, 마신들이 지켜보고 있는 인간이라는 건가. 말귀가 빠르군.”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세운은 나태의 권능을 사용하여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
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지속시간이 제법 여유 있는 편이라지만, 이대로 시간을 끌었다가 권능이 힘을 다하고 저 대악마와의 전투가 일어나면?
아무런 반항도 못 하고 꼼짝없이 당할 게 분명하다.
마신에 대해 알고 있으니, 어쩌면 저 대악마가 세운이 조금 있으면 힘이 다할 걸 알고 시간을 끌고 있을 가능성마저 존재했다.
“사정은 대충 알겠지만, 왜 나를 찾은 거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만 한다.
나태의 권능이 끝나고 후유증이 찾아오기 전에,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내가 마왕들하고 접점이 있다지만, 나를 찾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 내 목표가 복수든, 지위의 회복이든. 탑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그렇기에 여태까지 수라도에서 힘을 아끼고 있었다.”
“그럼 어째서?”
“네가 나타났을 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네 몸에서 나는 계약의 잔향을.”
“……착각한 것 같은데. 나는 마왕과 계약한 적이 없다.”
“마왕과의 계약을 말한 게 아니다. 계약과 계약이 얽힌 계약의 총체. 이제는 모든 힘을 잃고 작은 열쇠가 되어 버린 솔로몬의 마도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마왕과의 계약이라니.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세운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작은 열쇠를 뜻함을 알았다.
‘작은 열쇠.’
튜토리얼의 보상으로 받은 열쇠.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져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있으며, 그 어떠한 문도 열 수 있는 만능열쇠.
그리고 세운은 이 열쇠를 받았을 때 마몬이 보였던 의문의 반응을 떠올렸다.
‘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열쇠의 정체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뜹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저 열쇠가 튜토리얼의 보상이라는 사실에 크게 의아해합니다. ’
그 이후에도 이 열쇠를 꺼낼 때마다 마신들에게서 의외의 반응이 돌아올 때가 종종 있었다.
때문에 의문을 가졌지만, 마신들 모두. 심지어 레비아탄마저 대답해 주지 않았기에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던 의문이었는데.
‘이게 솔로몬의 열쇠라고?’
솔로몬의 열쇠라니.
애초에 이름이 열쇠이긴 해도 솔로몬의 열쇠는 열쇠가 아닌 마도서다.
그게 어째서 이런 열쇠의 형태로, 그것도 튜토리얼의 보상으로 존재했던 것일까?
이에 1위의 대악마가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도서의 첫 번째 장, ‘아르스 게티아’다. 본래 마왕들을 가두고 있던 마도서였지만, 일말의 사고로 인해 그 힘이 사라지고 마왕들이 탈출했다.”
“그게 지금의 칠십이 마왕인가?”
“그렇다. 마왕들이 탈출함과 동시에 아르스 게티아는 힘을 잃고 분실되었다.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지금 네 손에 돌아간 거다.”
“그럼 이 열쇠로 칠십이 마왕을…….”
“아니, 말했다시피 그 열쇠는 힘을 잃었다. 힘을 회복하지 않는 이상, 그저 ‘열쇠’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겠지.”
“힘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마왕들을 놓친 시점에서 아르스 게티아는 완전히 힘을 잃었다. 하지만.”
1위의 대악마가 몸을 숙여 세운과 얼굴을 마주했다.
과연, 한때 성좌였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처럼 붉은 눈동자에서 근엄한 격이 느껴졌다.
“계약을 기억하는 자가 열쇠로 되돌아간다면 어떤가?”
“……칠십이 마왕을 말하는 건가?”
“그들의 몸에 남아 있는 계약의 흔적이라면, 열쇠의 계약을 일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말이 안 되는 소리군. 칠십이 마왕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계약서를 일깨울 리가 없다.”
“당연하다.”
허무맹랑한 소리에 세운이 고개를 저었지만, 대악마는 오히려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하나, 계약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왕이 칠십이 마왕이 다가 아니라면?”
“그게 무슨…….”
“애초에 솔로몬의 열쇠에 계약되어 있던 마왕의 수는 일흔둘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솔로몬의 열쇠에 대해서라면 나도 알고 있다.”
그리 깊은 지식은 아니었지만, 마몬의 창고에도 존재하지 않는 솔로몬의 열쇠에 대한 사실은 엘 아르브의 대도서관에 적혀 있었다. 바로, 칠십이 마왕과의 계약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또 다른 마왕이 존재했다니?
그런 중요한 사실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을 리가 있는가?
“증거가 있다.”
1위의 대악마가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세운이 보랏빛 날개와 함께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이제 나태의 권능을 유지하는 것도 한계다.
제대로 된 증거가 아니거나, 시간을 더 끌려 한다거나, 불순한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곧바로 도망칠 생각이다.
추진력으로 사용할 일격을 남기면서.
‘1위의 대악마라 하더라도 발을 잠깐 묶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이후에는 탐욕의 권능으로 몸을 숨기고 80층의 시련이 끝날 때까지 버티면 된다.
다행히도, 80층의 남은 시간을 그리 길지 않았다.
“증거에 앞서 내 소개부터 해야겠다.”
대악마가 날개를 펼쳐보았다.
일반적인 악마들이 지니고 있는 붉은 박쥐 날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날개.
그것은 천사의 날개 같기도, 악마의 날개 같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루시퍼가 지닌 타락의 느낌과는 달랐다.
“나는 타천사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
그의 몸에서 숨겨 두었던 신성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럴 때마다 세운의 손에 들린 열쇠가 작게 진동하며 반응을 보였다.
“천사에게도, 악마에게도, 인간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자.”
이내 작은 열쇠는 세운이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그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만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마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끝내 마왕들에게조차 배반당하고 추락한 자.”
다만, 그 빛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찬란한 무지개색이 아니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기운이 열쇠를 통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역사에서조차, 솔로몬의 열쇠에서조차 잊힌 자…….”
대악마가 설명한 ‘아르스 게티아’의 형태를 되찾은 것처럼.
“배반의 대악마, 네피림이다.”
네피림에게서 역시, 그 칠흑처럼 어두운 빛이 흘러나왔다.
제 56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