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6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65화(565/675)
“네피림?”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그래도 대도서관의 지식을 통해 성좌에 관해서는 플레이어 중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세운이었는데, 네피림이라는 이름은 전혀 생소한 이름이었다.
“모를 수밖에. 천계에서는 나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으며, 마계에서는 합심하여 나를 몰아냈으니.”
“상관없겠지. 즉, 네 존재 자체가 증거라는 건가?”
“그렇다.”
“네 힘으로 열쇠의 계약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거고?”
“그렇다.”
그야말로 명확한 증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세운은 당장 도주하는 것은 미뤄두었지만, 경계는 잠시도 늦추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넌 복수를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열쇠에 들어가면 복수를 못 할 텐데.”
확신은 아니지만, 열쇠에 다시 들어간다면 아마 다시 나오기는 불가능할 터다.
힘을 모조리 뺏기고, 육체도 잃어버린다. 그저 열쇠의 계약을 이루는 주체가 되어 미약한 자아를 유지하게 될 뿐이다.
그런데도 네피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인간에게는 그런 말이 있더군. 성공은 최고의 복수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모두의 위에 서서, 고개 숙인 자들을 내려다본다. 그야말로 최고의 복수가 아닌가?”
“자아만 남아 있는 상태라도?”
“지금 나에게 가능한 유일한 복수다. 이대로 허황한 꿈을 꾸며 수라도에 갇혀 있어봤자, 결국 저것들과 같은 탑의 노예가 될 뿐이지.”
네피림이 2위의 대악마, 텐의 시체를 내려보았다.
탑의 노예.
정확한 표현이었다.
제아무리 강하고 똑똑하다고 해도 시련에 존재하는 몬스터는 결국 탑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노예일 뿐이었으니까.
“네가 성공한다면 나는 칠십이 마왕들을 가두고, 다룰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솔로몬의 열쇠. 두 번째 장, 아르스 테우르기아-게티아.”
“그렇다.”
총 다섯 장으로 나누어진 솔로몬의 열쇠.
그중에서도 두 번째 장은 첫 번째 장과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아르스 게티아가 ‘강마술’이 담긴 마도서라면, 아르스 테우르기아-게티아는 ‘강신술’이 담긴 마도서.
즉, 아르스 테우르기아-게티아는 천사들계의 계약이 담긴 마도서였다.
“그 두 권은 어디까지나 계약의 서. 열쇠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나머지 세 권의 서가 전부 필요하다.”
“마법의 서, 아르스 포울리나. 제단의 서, 아르스 알마델. 기도의 서, 아르스 노토리얼.”
“다섯 권의 서를 모아 진정한 작은 열쇠. 레메게톤(Lemegeton)을 만드는 것. 그게 내 조건이다.”
레메게톤.
회귀 전의 세운도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존재였다.
천사와 악마. 즉, 성좌를 다루는 마도서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세운은 제 손에 들린 열쇠가 레메게톤의 첫 번째 장, 아르스 게티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네피림의 말대로 다섯 장의 서를 모아 레메게톤을 완성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한 힘을 낼 수 있다.’
아우터를 상대할 때 그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어떻게 믿을 셈이지? 계약이라도 할 텐가?”
“필요 없다. 열쇠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내 자아는 남아 있다. 만약 네가 다른 조각을 찾을 생각이 없다면, 내 의지로 열쇠의 힘을 완전히 봉인하면 그만이다.”
“내가 힘을 억지로 발현시킨다면?”
“그럴 수는 없다. 열쇠에 들어가는 순간, 내가 곧 열쇠 그 자체가 된다. 네가 그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내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위험한 페널티였다.
네피림의 의지에 거슬리면 지금까지 세운이 사용하던 ‘열쇠’로써의 힘마저도 사라지게 된다는 뜻이니.
하지만, 네피림의 제안은 그 이상으로 매혹적이었다.
“고민할 시간은 길지 않아 보인다만.”
슬슬 나태의 권능이 힘을 다해 가고 있었다.
네피림 역시 이를 알아챈 상황.
애초에, 세운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알겠다.”
“현명한 판단이다.”
구차한 설명 따위는 없었다.
네피림이 곧바로 세운이 지닌 열쇠의 위로 손을 얹었다.
안 그래도 스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던 열쇠가 한층 더 큰 기운을 내뿜었다.
그 기운은 네피림의 기운과 합쳐지며, 서서히 네피림의 거대한 몸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다.”
“계약인가?”
“아니, 부탁이다.”
“뭐지?”
네피림의 형체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그러고는 서서히 형체가 사라지며 기운으로 변해 열쇠를 향해 스며들어 갔다.
작은 열쇠는 더 이상 열쇠가 아닌 솔로몬의 마도서 ‘레메게톤’이 되어 갔다.
“모든 마도서를 모으고, 레메게톤을 완성했을 때.”
네피림의 형체가 전부 사라지고, 그 기운이 전부 열쇠로 흡수되기 직전, 네피림의 목소리가 아른거리듯이 들려왔다.
“그것을 레메게톤이 아닌, 나의 이름으로 불러 다오.”
– ‘작은 열쇠’에 새겨진 계약이 활성화합니다.
– ‘작은 열쇠’의 형질이 마도서로 전환됩니다.
– ‘작은 열쇠’가 ‘레메게톤의 첫 번째 장 – 아르스 게티아’로 변환됩니다.
– 서열 1위의 악마, ‘네피림’을 쓰러트렸습니다.
– 쓰러트린 악마의 번호가 당신에게 이전됩니다.
– 초월적인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마계를 떠날 때, 서열에 따라 추가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수라도 최고의 대악마가 되었습니다.
– 더 이상 쟁취할 서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원할 시, 남은 시간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80층의 시련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알겠다. 네피림.”
그의 의지가 아르스 게티아에 깃들었다.
* * *
세운이 대악마를 상대하던 시각.
수라도의 중앙에서는 세운이 있던 곳 못지않게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크하하하! 수라도의 한가운데 성을 세울 줄이야!”
“그럼 이제 난전이 아닌 공성전이 되는 것인가? 그야말로 전쟁! 수라도에 딱 어울리는 상황이군! 아주 마음에 들어!”
“심지어 그 이름이 마왕 성이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간들 아닌가? 대악마들조차 마왕의 이름을 빌리지는 않는데.”
“지금부터 우리가 확인해 줘야지. 과연 저 성이 ‘마왕 성’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지!”
수라도 전역에 퍼져 있던 악마들이 소문을 듣고 이곳에 몰려들고 있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싸움. 그리고 전쟁.
적과 아군 구분 없이 치고받는 자들이었으나, 마왕 성이라는 건축물에 호기심을 느낀 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즉, 수라도는 현재 마왕성의 디아블로와 청해 대 모든 악마라는 비대칭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끼에에엑!”
“아, 좀! 시끄러!”
“꼬맹이 니네들 때문에 더 심각해진 거 아니냐? 저거 봐! 미친, 지평선이 악마로 가려졌어! 우글우글, 징그러! 끼에에엑!”
마왕성에서 들려온 괴이한 비명은 박정필의 것이었다.
다만, 그것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수라도 전역의 악마들이 마왕 성을 무너트리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으니 당황스럽고 무서울 수밖에.
하지만, 이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은 박정필뿐이었다.
“해리 씨, 전황을!”
“모두 잘해 주고 계십니다! 지금은 이대로 충분합니다!”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
그 모두가 마왕 성 내부에서 바삐 움직이며 악마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당연히 박정필 역시 투정할 시간도 없이 누군가의 손에 잡혀 전장으로 이끌렸다.
“이번 웨이브까지만 막아내고 대기 인원과 교체해서 잠깐 휴식하겠습니다!”
“네, 서아 씨!”
마왕성의 성벽은 정사각형의 모습이었다. 마치, 스카베의 성벽처럼.
이는 쌍둥이 자매가 처음부터 스카베의 성벽에서 수성전을 치렀을 때를 떠올리며 만들었기 때문이었으며, 수비 방식 역시 비슷했다.
– 타란튤라의 거미줄이 전장을 덮쳐옵니다.
– 아군의 전투력이 증가하고, 적군의 이동 속도가 소폭 줄어듭니다.
동문은 유서아가 디아블로 길드원을 지휘했다.
본래는 부길드장으로서 전체적인 지휘를 담당하는 그녀였지만, 최근에는 그 역할을 해리가 대신 맡고 있었다.
해리의 스킬은 탐색뿐만 아니라 전황 파악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게다가 유서아의 실력은 지휘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던 이유도 있었다.
콰아앙!
“북쪽은 꽤 요란스럽네요.”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로 거대한 폭음을 낼 사람은 한 명뿐이다.
강한철.
북문은 강한철과 아르카나가 담당하고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간간이 들리는 포탄 소리는 북문의 성벽 위에서 투척기를 설치해 날려대고 있는 소리였다.
비록 머릿수는 적었지만, 정예 병력이 모인 만큼 다른 곳 못지않게 악마들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남문에서 몬스터가 빠져나갑니다! 제논 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남문을 담당하는 건 제논을 주축으로 한 청해 길드였다.
백경이 뿜어낸 물줄기로 인해 남문의 앞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는데, 악마들도 수중전이라는 낯선 환경에서는 적응을 잘 못 하고 있었다.
‘마왕 성이라, 이렇게 든든하다니.’
푸른 창을 휘두르던 제논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전에 청해 길드가 수라도를 넘지 못했던 이유는 밀려드는 악마들 때문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중전은커녕 당장 밀려드는 악마들을 상대하기에 급급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마왕 성이라는 든든한 성벽이 등 뒤를 막아준 덕분에 수월하게 지형을 바꿀 수 있었다.
수라도의 악마라 허더라도 수중전이라면 청해 길드도 악마들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하나, 네 개의 성벽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이라고 하면 역시나 북문이었다.
성벽 중에서도 유일하게 단 한 명이서 수성전을 펼치고 있는 곳.
그곳에는 지금 백골과 시체, 키메라와 악마들이 뒤엉키고 있는…… 말 그대로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좋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실험체가 한 필드에 뭉쳐 있다니!”
“언데드 따위에게 우리 악마가…….”
“오, 거인형 악마! 마침 딱 필요한 실험체였습니다! 만티, 저 실험체는 저희가 직접 잡겠습니다!”
“……자, 잠깐!”
백현.
얼마 전의 깨달음으로 그의 전술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무작정 소모전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유서아에게서 배운 전술을 이용하여 적을 밀어붙인다.
적재적소에 흑마법을 사용하며 병력을 최대한 보존한다.
그렇다고 병력에게 정을 붙여 과하게 병력을 싸고도는 건 또 아니었다.
병력을 소중히 대하되, 버릴 병력은 철저하게 버리고 이용한다.
특히, 이번에 살려낸 만티코어는 백현을 이은 부지휘관이 되어 병력을 다스림은 물론이고 장군으로서 적진을 휩쓸기까지 하였으니, 그의 전투력은 한창 전성기를 달리는 중이었다.
“남문에 지원 요청 바랍니다!”
“캬하하하! 내가 바로 서열 15위의 악마, 라크니트트다! 마왕 성이라니. 재밌구나, 인간들아! 이 몸이 직접 네놈들의 성을 무너트려 주마!”
당연하게도 전쟁에는 변수가 끊임없이 존재했다.
일반적인 악마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력한 악마들이 수시로 튀어나오고, 저 멀리에서 시종일관 장거리 공격으로 마왕 성을 깎아 먹으려는 악마까지.
그럴 때면 강한철이나 유서아 같은 핵심 인력이 정예 악마를 상대하거나, 저 멀리까지 직접 출동하기까지 하며 힘든 전쟁을 이어갔다.
대체 언제까지 악마들의 공격이 이어지는 것일까?
끊임없는 전쟁에 수라도의 악랄함을 사무치게 느껴가던 중.
디아블로와 청해, 그리고 악마들까지 움직임을 뚝 멈출 만한 메시지가 허공에 떠올랐다.
– 수라도의 서열 1위. 배반의 대악마 ‘네피림’이 쓰러졌습니다.
– 정세운 플레이어가 수라도의 새로운 서열 1위의 대악마 직위를 내려받습니다.
수라도의 서열.
그중에서도 수십 년 동안. 아니,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1위의 자리가 바뀌었다.
그것도 새로운 대악마가 아닌, 이제 막 수라도에 들어온 인간으로.
“마스터!”
“하하, 자라탄 때만 해도 충분히 놀라울 지경이었는데, 1위라니. 정말이지 끝을 모르겠습니다.”
악마들이 당황한 틈을 타,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가 더욱 기세를 올렸다.
“디아블로의 마스터가 왕을 쓰러트렸으니, 저희가 영토를 다듬어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라도의 1위 자리에 오른 세운은 수라도의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건드릴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왕성에 돌아온 세운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드린 건 시련의 남은 시간이었다.
당장 남은 시간을 0으로 만들어 쉼터에 오르는 것?
아니다.
“세운 씨, 쉬고 계세요. 회복하실 때쯤에는 저희가 전부 정리해 둘게요.”
시련의 남은 시간을 늘려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에게 본격적인 전쟁의 막을 올려주는 것이었다.
제 56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