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6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67화(567/675)
캉!
“무슨 짓이죠?”
흑익이 눈에 보이는 즉시 검을 빼 들고 경계하던 유서아는 세운을 향해 단검이 날아오는 즉시 막아섰다.
자객처럼 검은 천으로 전신을 가린 복장에 몸 곳곳에 수납된 무기들. 특히나 등에 새겨진 날개 문양이 그들이 흑익의 길드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는 저자에게 초대장을 전달하는 전령이자, 문지기. 과연 저자가 흑익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
캉, 카가강!
선두의 자객이 손짓하자, 뒤이어 수십 명의 자객 역시 단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다만, 세운은 혼자가 아니었다.
상황을 파악한 디아블로 길드원이 세운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는 흑익의 자객들을 막아냈다.
‘그래, 흑익은 늘 이런 식이었지.’
초대장을 건넨다고 손을 내밀면서도 초대장 아래로 단검을 숨겨 두는 놈들이었다.
손님을 환영한다면서도 잔에 독을 채우는 놈들이었다.
검은 대지, 플라카는 그 흑익의 간부들이 거주하는 영역.
이 정도 상황은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전원, 날개를 편다.”
펄럭-
자객들의 등 뒤의 흑익의 문양에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여태껏 세운이 상대해 온 흑익의 길드원이 펼친 날개보다는 작았지만, 그들은 모두 철새처럼 하나의 진을 이루고 있었다.
수십 개의 날개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디아블로가 세운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진형이 뚫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세운의 성흔이 검붉은 빛을 내뿜었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큭!”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세운에게 접근하던 자객들이 일순간 멈추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위압감.
이에 저항하기 위해, 그들의 날개에서도 신성이 흘러나왔다. 신성으로 이루어진 공격은 오로지 신성으로만 막을 수 있기에.
하지만, 녀석들이 세운의 성흔에 저항하며 첫발을 내딛기 무섭게 세운의 손에서 새로운 공격이 펼쳐졌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리버스 그래비티(Reverse Gravity)’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쿠궁!
간신히 저항하던 자객들의 몸이 일제히 무너졌다.
쥐꼬리만 한 신성으로 공포의 힘에 대응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중력이 강해지며 물리적인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르니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호기롭게 펼친 날개가 중력에 의해 바닥에 짓눌리며 부러졌다.
세운이 망설임 없이 뒤랑달을 치켜들어 가장 가까이 다가온 자객의 머리를 내려찍으려는 순간.
“늦어서 죄송합니다.”
세운의 검 앞으로 자객들과 같이 검은 천을 뒤덮은 여인이 나타났다.
새로 나타났다고는 해도 그녀에게도 역시 공포의 권능과 리버스 그래비티가 적용되고 있는 상태.
가녀린 어깨가 미약하게 떨리는 것만 보아도 그녀 또한 세운의 공포와 중력을 얼마나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걸로 초대장은 제대로 받아 든 거겠지?”
“네.”
그녀의 정체는 흑익의 깃털.
지금까지 흑익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세운을 찾아왔던 전령이었다.
“이들은?”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세운이 유서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서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공포의 권능과 리버스 그래비티를 모두 풀었다.
땅바닥에 머리까지 처박으며 괴로워하던 자객들이 당장 도망치기 위해 몸을 바둥거렸지만, 그럴 틈도 없이 디아블로 길드에 의해 몸이 속박되었다.
“정세운 플레이어. 당신을 정식으로 흑익에 초대하겠습니다. 단, 초대받는 건 디아블로가 아닌 당신 혼자입니다.”
“그러지.”
“세운 씨…….”
“유서아, 부탁한다.”
“……네.”
대답이 들려옴과 동시에 세운과 전령의 주위로 검은 깃털이 흩날렸다.
순간적으로 그들의 모습이 가려진다 싶더니, 깃털과 함께 세운과 전령 또한 사라졌다.
“서아 님, 괜찮겠습니까? 마스터 혼자서…….”
“괜찮아요. 세운 씨가 미리 언질을 주신 상황이거든요.”
“이렇게 될 걸 알고 계셨던 겁니까?”
“네.”
“그렇군요. 과연, 마스터입니다.”
흑익의 자객들이 공격을 해 오고, 길드 마스터가 사라져 당황스러운 사이, 유서아가 부길드장으로서 착실하게 길드를 이끌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
“해야 할 일이라면…….”
“세운 씨가 부탁하고 간 일이에요. 해리 씨?”
“준비됐습니다.”
흑익이 사라진 자리 위로 디아블로의 발걸음이 뒤덮였다.
* * *
“처음부터 네가 왔으면 됐을 거 아닌가?”
“말했잖아요. 아직 간부 중 절반은 당신을 거부하고 있다고요. 그 자객들도 반대파에서 보낸 초대장이에요.”
“초대장이라.”
“이 정도 초대장도 못 받으면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반대파인 만큼, 시험이라기에는 과도한 전력이었지만요.”
현재 세운과 흑익의 깃털은 달리는 중이었다.
마을 밖으로는 그녀의 능력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직접 발을 움직여야 했다.
다만, 주변에 흩날리는 검은 깃털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흑익의 본거지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겠지. 바깥에서도 탐지하지 못할 테고.’
깃털은 단순히 시야만 가로막는 게 아니었다. 후각과 청각, 시각을 전부 차단하여 지금의 위치를 속인다.
심지어 발걸음과 발에 닿는 감각이 미묘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아 방향 감각이나 거리감까지 속이는 듯했다.
‘뭐, 상관없지.’
세운이 여정의 지침표를 떠올렸다.
제아무리 감각을 속인다고 하여도 여정의 지침표를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꼭꼭 숨겨진 흑익의 본거지를 찾으려면 여정의 지침표로도 시간이 제법 걸렸겠지만, 이렇게 안내까지 해 준다면 길을 찾는 건 금방이다.
“흑익에 도착하면 바로 간부들을 보는 건가?”
“네. 아마, 긴장해야 할 거예요. 찬성파라 하더라도 반대파의 행동을 막아줄 정도는 아니거든요.”
“거기서 인정받으면 ‘머리’를 볼 수 있는 거겠지?”
“정확하게는 마스터의 위치를 알려드리는 거죠.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지금 마스터는 쉼터에 안 계시거든요.”
“인정받는 방법은?”
“거기까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찬성파라고는 해도 조건을 내걸 거고. 우선은 반대파의 의견부터 돌려야겠죠?”
세운이 머리를 굴렸다.
인정이고 뭐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흑익에 들어가자마자 간부들을 모두 쓰러트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한둘 정도는 흑익 길드장의 위치를 내뱉지 않겠는가?
아니면 갈수록 세운에게 우호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전령을 통해 흑익의 길드장을 찾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루시퍼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루시퍼는 일반적인 성좌가 아니었다.
수틀리거나 화가 나면 탑의 규율을 어기고 저번처럼 직접 나서서 세운을 불러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탑의 규율을 어기면 그만큼의 페널티를 받겠지만, 루시퍼는 그것을 감수하면서도 세운을 벌할지도 모른다.
‘우선은 조건대로 인정받아야겠지.’
흑익을 완전히 부수는 건 흑익의 길드장을 쓰러트린 이후여야 한다.
루시퍼에게 가장 가까운 사도인 그를 쓰러트린다면 루시퍼의 영향력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루시퍼의 목적도 알아내야 하고.’
신마대전이 일어나게 된 원초적인 이유로 판단되는 그것.
잘만 한다면 성좌들과 충돌할 것도 없이 신마대전을 사전에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여기까지 왔으니 기왕이면 성공하길 바랄게요.”
전령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말.
이쯤 되니 세운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내게 우호적으로 구는 거지?”
분명 첫 대면까지만 하더라도 세운에게 한껏 적대감을 갖고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심경이 바뀐 걸까?
잠시 대답 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그녀의 입이 작게 달싹거렸다.
“……마스터를 위해서예요.”
“흑익의 길드장에게 문제라도 있는 건가?”
자세한 답변을 기대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도착했어요. 자세한 대답은 당신이 간부들에게 인정받고 나면 해 드릴게요.”
둘을 감싸고 있던 검은 깃털이 우수수 흩날리며 사라졌다.
다만, 그런데도 시야는 밝아지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성안에 들어온 것처럼 검은 깃털이 성벽처럼 주변의 풍경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이에요.”
깃털 성벽의 중심.
그곳에는 검은 벽돌로 쌓아 올린 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루시퍼의 의견이 반영되기라도 한 것처럼 고풍스럽고 아름다워 보이는 성이었다.
“플라카의 흙으로 만든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더라구요.”
“플라카의 흙은 다른 자재를 부식시키니까. 플라카의 흙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지간한 소재는 전부 썩어 무너지고 말지.”
“잘 알고 계시네요. 보기에는 음습해도 내부는 꽤 괜찮아요.”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인상을 씁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또 쉼터냐고 투덜거리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겨울잠을 시도합니다.
경비병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문의 앞에 서자, 전령의 등에 새겨진 흑익의 문양이 반응하였다.
드르르-
자동으로 움직이는 성문.
세운이라고 해도 흑익의 본거지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기에 서클을 회전시키며 주변을 경계하였다.
“여기에 서면 돼요.”
“같이 가는 게 아닌가?”
“제 역할은 여기까지. 같이 움직였다가 제 목이 떨어질지도 모르는걸요.”
“…….”
“어쩔 수 없어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는 없잖아요? 새우는 얌전하게 기다리다가 다음 길을 안내해 줘야죠.”
성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거대한 홀이었다.
중세의 성을 똑 닮은 모습.
다만, 세운이 안내받은 곳은 계단이나 새로운 문이 아닌 맨바닥이었다.
그것도 검은 날개 문양이 새겨진 마법진의 위.
“힘내세요.”
가볍게 인사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세운은 마법진 위로 올랐다.
마나 스캔을 통해 마법진에 위험 요소가 없다는 것 정도는 확인되었다.
곧이어 마법진과 그녀의 흑익 문양이 반응하며 주변이 검은 막으로 뒤덮였다.
막이 스르르 녹아내리자, 주변의 풍경이 새롭게 바뀌었다.
공간 이동 마법진.
세운의 눈에 보인 건 성의 텅 빈 홀이 아니라, 법정이었다.
중앙에 선 세운을 중심으로 사방에 의자가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흑익의 간부들이 앉아 있었다.
“이자인가. 그분이 선택한 플레이어가.”
“으득! 저놈들이 젠과 벤을…….”
“호오, 라일락의 지부장을 쓰러트렸다더니. 기세가 남다르긴 하군.”
“라일락의 지부장이라면, 자일렌이었나. 간부의 자리로도 추천받은 자라고 기억하는데.”
“간부는 무슨. 애초에 저따위 놈에게 쓰러졌을 정도면 간부의 자격이 없는 놈이었다.”
세운이 나타나자마자 간부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누군가는 세운을 관심 있게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이까지 빠득거리며 분노를 드러냈다.
전령의 말대로 대충 우호적인 반응이 절반, 적대적인 반응이 절반.
다만, 우호적인 반응이라 하더라도 호기심 정도일 뿐이지 세운의 편을 드는 간부는 없어 보였다.
“다들 조용.”
그리고 세운의 정면.
다른 의자와는 다르게 고풍스러운 일인 석에 앉은 간부가 입을 열자 공간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진중한 목소리가.
“지금부터 그분의 신탁에 따라 흑익의 청문회를 시작하겠다.”
세운의 앞길을 결정짓는 청문회의 시작을 알렸다.
제 56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