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6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68화(568/675)
“먼저, 그분에게 내려온 신탁을 다시 한번 읽도록 하겠다.”
탁상의 간부가 검은 깃털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는 깃털을 반대로 잡더니 깃펜을 쓰듯이 허공에 줄을 그었고, 허공에 먹이 풀리듯이 검은 글자를 만들어 냈다.
– 새로운 날개다.
– 날려 한다면 받아들이고, 기려 한다면 부러트려라.
세운도 처음 보는 루시퍼의 신탁.
그러나 대충 보기에도 그 뜻은 명확했다.
‘역시, 대답하라는 건가.’
심상 세계에서 루시퍼는 세운에게 결정을 독촉했다.
자신의 편이 될지, 아니면 죽을지.
세운은 그 대답을 뒤로 미뤄 두었고, 루시퍼는 더 이상 기다려 주지 못하겠다는 뜻을 신탁으로 내린 것이다.
“이번 청문회의 결론은 두 가지다. 새로운 날개를 받아들이든가, 부러트리든가.”
탁상의 간부 역시 신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이것으로 자신의 말은 끝났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간부들의 입이 열렸다.
“그분께서도 저놈을 받아들이는 건 우리에게 맡긴다는 거군.”
“멍청한 놈. 아직도 신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냐?”
“뭐? 어딜…….”
“날려 한다면 받아들여라. 우리에게 저자를 시험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저자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면 될 뿐이다.”
“그럴 리가! 신탁을 내려주셨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이 일을 맡기셨다는 뜻이다!”
“자기 멋대로 신탁을 해석하는 건 여전하군.”
사실, 루시퍼의 신탁대로라면 간부들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세운이 흑익에 들어오느냐, 마느냐. 선택하는 것에 따라 모든 것이 정해진다.
당연하게도 이것을 곧이곧대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간부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갑자기 굴러온 돌이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게 생겼는데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선은 수습으로 받아들인 후에 실적을 보고 직위를 올리면 되지 않겠나? 단, 성과 비율을 올려 진급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헛소리하지 마라, 에테인.”
“그럼 흑익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이를 간부 자리로 올리기라도 하자는 말인가?”
“착각하지 마라. 나도 저런 놈이 우리 옆에 앉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왜 거부하는 건가?”
“에테인. 너는 한 번이라도 그분께 ‘날개’라고 불린 적이 있는가?”
세운의 사방에서 침음성이 들려왔다.
날개.
세운은 흑익의 속사정까지 자세히 아는 게 아니었기에 그저 자신을 칭하는 말이려니 생각했지만, 간부들의 반응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날개라는 말은 흑익에게 더욱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아래를 깃털이라 칭하고 있지만, 그분에게 날개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즉, 그분의 신탁은 저이를 우리 위로 보내자는 뜻이라는 것이더냐.”
“말했듯이, 나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간부보다 높은 자리가 뭐가 있을까?
흑익에는 다양한 직급이 존재하지만, 간부보다 높은 자리는 딱 하나뿐이다.
바로, 길드 마스터.
하지만 루시퍼라고 해서 세운을 갑자기 길드 마스터로 앉힐 생각은 없을 것이다.
즉, 저 말은 세운을 흑익의 부길드 마스터로 앉히겠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길드장이라니.”
“갑자기 굴러 들어온 외부인을 그 자리에 앉히자는 건가?”
“비약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신탁에 다른 뜻이 숨겨진 거 아닙니까? 그분께서 그럴 리가…….”
웅성거림이 커져만 갔다.
반쯤은 세운의 합류에 동의한다고 들었는데, 부길드장이라는 말이 나오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팔십 퍼센트 이상. 아니, 구십 퍼센트 이상은 세운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하지.’
하긴, 디아블로 길드에 빗대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바알이나 아가레스가 갑자기 플레이어 한 명을 지목해 그를 디아블로의 부길드 마스터로 삼으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조용.”
“무언가 잘못 해석한 게 틀림없습니다.”
“새로운 날개라 하셨으니, 새로운 부서를 개편하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자리에 저자를 앉히라는.”
“뭐가 어찌 되었든 저런 놈에게 부길드장의 자리를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조용!”
파아앗!
한 간부의 노성에, 검은 깃털이 사방에 흩날리며 일순간 소란이 잦아들었다.
아무래도 간부 중에서도 위치가 높은 사람인 듯,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의 간부들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다들 순서부터 지키세.”
“순서라 하면…….”
“우선은 대답부터 들어야 하지 않겠나? 저자가 흑천을 날려 하는지, 흙바닥을 기려 하는지 말일세.”
“하, 하지만 그분께서 정말로 저자를 날개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만. 자세한 얘기는 저자의 대답을 듣고 난 다음에 하여도 늦지 않다.”
나이 든 간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운에게로 천천히 다가오는데, 몸집에 비해 위압감이 상당하다.
‘강하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간부 중에서도 최상위권.
흑익의 간부들이 한꺼번에 덤벼도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세운의 머릿속에 경고등이 울렸다.
흑익의 간부.
그저 나이 든 여우나 잔머리나 굴리는 너구리들만 가득한 줄 알았는데, 이런 호랑이가 몸을 숙이고 있었을 줄이야.
“자, 젊은이. 대답하시게.”
그가 세운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검버섯이 핀 얼굴에는 정체 모를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간부들조차도 그의 위압감을 견디기 위해 주먹을 꽉 쥔 채로 몸을 경직시키고 있었다.
“날고 싶은가, 기고 싶은가?”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세운을 바라보았다.
만약 정말 루시퍼의 뜻대로 세운이 흑익의 날개가 된다면, 세운의 대답 하나로 흑익의 세력 구도 자체가 뒤바뀔 수도 있으니까.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세운을 깎아내릴 궁리를 하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거스를 수 없다면 세운의 아래에 들어가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어지는 정적.
그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세운이 내뱉은 건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봉황이 아닌 닭의 날개로 비상할 될 바에는 이무기가 되어 지상을 호령하는 게 나아 보이는데.”
“……무슨 뜻인가?”
“너희들이 말한 날개가 봉황의 날개라면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아무리 봐도 그 정도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
세운의 태도는 일관됐다.
흑익의 깃털이 찾아와 물었을 때도, 루시퍼의 독촉으로 신탁까지 내려와 흑익의 본거지에 들어온 지금조차도, 자신보다 약한 곳에 몸을 담글 생각은 없다.
그게 바로 세운이 겉으로 고수하고 있는 태도였다.
물론, 흑익의 간부들은 이 얘기를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말은 우리 흑익을 닭대가리 따위에 비유했다고 알아들으면 되는 것이냐?”
“그럴지도 모르지. 벤과 젠…… 그리고, 자일렌이라고 했었나? 나한테는 도저히 수리로 보이지 않았거든.”
“이놈이!”
참다못한 간부 몇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 하나는 자리를 뛰쳐나와 세운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기까지 하였다.
“감히 흑익을 닭에 비유해? 그분의 선택을 받았다고 기가 구름까지 치달았구나!”
세운에 우호적인 간부는 사라졌다.
이 자리의 모두가 세운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한껏 드러내며 당장에라도 무기를 뽑아 들 것만 같았다.
만약, 이대로 청문회가 끝난다면 세운뿐만 아니라 디아블로 길드나 세운을 여기까지 데려온 전령까지 해코지당하리라.
당장에라도 터질 듯한 위기일발의 상황.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침착을 유지하고 있던 늙은 간부가 세운에게 물어왔다.
“그 말인즉슨 흑익의 부름을 거부하겠다고 알아들어도 되겠는가?”
“말했듯이 흑익의 힘을 증명하면 고민해 볼 생각은 있다.”
“우리에게 자격을 증명하라는 건가?”
“너희에게는 관심 없다. 흑익의 마스터. 그 사람을 만나서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다.”
“흘흘, 그렇군. 애초에 우리는 길드장을 만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게야.”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당장 이 버릇없는 놈의 사지를 찢어발겨야 합니다.”
“흘흘, 그래. 그렇단 말이지…….”
분위기가 과격해지기 시작한다.
세운 역시 언제라도 간부들의 공격에 대처할 수 있도록 검을 붙잡았다.
그때, 처음 신탁을 공개했을 때 이후로는 쭉 상황을 방관하고만 있던 탁상의 간부가 탁상을 내려쳤다.
쿵!
다시금 찾아온 침묵.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춘 간부들 사이로, 늙은 간부가 탁상 앞으로 찾아간다.
“결정되었나?”
“흘흘,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네.”
“무엇이지?”
“저 창창한 간부들의 마음도 풀고, 저 젊은이가 원하는 자격도 보여주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라네.”
노인이 뒤로 돌아 세운을 바라보았다.
쿵.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찧자, 주변의 의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은 건 텅 빈 방.
아니, 이곳이 과연 세운이 보았던 성의 내부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바로, 우리의 힘을 보여주는 거지.”
“싸움을 붙이자는 건가?”
“그렇다네. 저 젊은이는 우리의 자격을 확인할 수 있어 좋고, 우리 간부들은 원하는 대로 저 젊은이의 버릇을 고쳐줄 수 있을 테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모순이다.”
탁상의 간부가 표정을 굳혔다.
모순.
그 말대로 노인의 제안은 서로에게 좋은 것 같으면서도 말이 되지 않았다.
버릇을 고쳐준다고는 하지만, 저 간부들이 세운을 상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겠는가?
절대 아니다.
자신들의 자리를, 흑익의 세력 구조를 뒤흔들지도 모르는 세운을 짓밟기 위해 일부러라도 세운을 죽일 것이다.
“자격을 증명한다는 건 곧 그분이 지목한 날개가 죽는다는 뜻이지 않은가.”
사실, 경우의 수는 하나가 더 있었다.
세운이 이길 경우.
그 경우에는 이 전투로 인해 흑익은 자신들이 세운이 말한 ‘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만다.
그러면 꼼짝없이 고개를 숙이고 길드장에게 안내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누구도 세운의 승리를 고려하는 이는 없었다.
“좋네.”
“……어리석군.”
“대신, 내가 이기면 확실히 수준을 인정하고 그쪽의 길드장을 볼 수 있는 거겠지?”
“흑익의 간부를 대표하여 탁상에 앉은 나 헥센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처음에는 혹여나 루시퍼의 신탁이 잘못 해석될까 걱정하던 탁상의 간부도 더 이상 세운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걸리자, 대화를 듣고 있던 간부들이 하나둘 세운의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흘흘, 헥센의 이름이 걸린 이상 물리기는 늦었다네. 젊은이.”
“약속은 꼭 지켜야 할 거야.”
가장 먼저 세운의 앞으로 나선 건 거한의 남자였다.
분명, 처음 이 청문회가 시작되었을 때 벤과 젠의 이름을 대며 세운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남자였다.
“내가 아끼던 깃털들을 떨어트린 죄를 물어주마.”
펄럭.
남자의 뒤에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흑익의 날개라 해서 모두 같은 날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날개는 날개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육이 한가득 붙어 있어 두꺼웠다.
흑익에게 날개란 자신의 본 힘이나 마찬가지.
시작부터 물렁물렁하게 나오지 않고 본격적으로 나오는 남자를 보며 세운 역시 신성을 검붉게 빛냈다.
그리고, 둘의 발이 동시에 떨어지며 서로의 무기가 교차했다.
서걱.
“데케가…….”
몸에 상처 하나 없이 뒤랑달을 쥐고 있는 세운.
그와 반대로, 검은 날개 한쪽이 잘려 나간 남자.
“이제는 닭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인 것 같은데.”
일순간 흑익의 간부 여럿이 동시에 세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 56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