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7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73화(573/675)
휴식을 끝낸 세운은 디아블로 길드와도 대화를 마쳤다.
앞으로의 방향성이나 계획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는데, 솔직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미 몇 차례나 쉼터에서 생활해 본 그들은 이미 자신이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으니까.
“저는 플라카의 약원에 찾아가 볼 생각이에요. 마계에서 얻은 독초나 약초들을 다룰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우린 여기 흙 좀 알아보려구! 여기 흙 엄청 신기해!”
“맞아, 신기해! 플라카에서는 이 흙 말고 다른 걸로 건물을 지으면 금방 부식된다더라구!”
“저희 청해는 검은 호수에서 임시 거점을 잡고 활동할 생각입니다. 디아블로의 마스터.”
“……검은 호수, 저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하하, 수창 씨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수창 씨의 수중전은 저희 청해와 비교하더라도 월등한 수준이니 말입니다.”
세운이 쉬는 그 짧은 시간에 각자 플라카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모양이다.
“세운 씨, 저희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아우터 수색이라든가…….”
“괜찮아.”
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의심 가는 몇 곳은 흑익의 전령에게 조사를 맡겨 두었고, 그중 가장 수상해 보이는 곳은 세운이 직접 찾아가 볼 생각이다.
아직 플라카에 대해 잘 모르는 디아블로를 굴리는 것보다는 이게 더욱 효율적이다.
“넌 계획 정했어?”
“플라카에 전투 지역이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좀 가 보려구요. 강철 씨도 간대요.”
“전투 지역도 여러 곳이 있을 텐데.”
“아, 그래요? 제가 찾아본 곳은 어둠 산이라는 곳이었어요. 세운 씨는요?”
“나도 일종의 전투 지역이야. 아…… 그전에.”
플라카에 존재하는 수많은 전투 지역. 그중에서도 세운이 찾아가려는 곳은 평범한 전투 지역이 아니었다.
플라카에서 가장 어려운 구역이자 가장 위험한 전투 구역.
이방인이 무엇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는 거주민들조차 말리는 금기된 장소.
그런 만큼.
“공적치 좀 쓰고 가야지.”
단련을 해 둘 생각이다.
* * *
숙소를 떠나 걷는 길.
천 자락을 푹 눌러쓰며 몸 전체를 가린 거주민들이 세운을 스쳐 지나갔다.
세운에게, 아니, 외부인에게 신경 쓰지 않으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어깨라도 부딪히게 되면.
“쳇…….”
“외부인이 왜 플라카에 들어온 거야…….”
“거슬리게…….”
거주민들의 투덜거림이 잔뜩 들려왔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시비를 거는 이는 없었다.
외부인에게 병균이라도 있는 것처럼 옷을 털고 제 갈 길을 걸을 뿐이다.
‘뭐, 어쩔 수 없나.’
플라카에 존재하는 거주민들은 전부 마족이다.
다만, 이곳은 플라카 중에서도 극히 외곽.
강한 자들일수록 중심가에 모이는 플라카의 특성상 약한 마족들은 이곳 외곽까지 밀려나게 된다.
그들이 얼마나 약하냐면, 80층까지 정상적으로 올라온 플레이어라면 별문제 없이 제압이 가능한 수준이다.
때문에 그들은 플레이어의 강함을 인정하면서도, 마족도 아닌 그들이 자신의 땅을 침범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숙소 위치도 바꿔야겠네.’
이런 자들이 디아블로 길드가 머물고 있는 숙소를 좋게 볼 리 없었다.
쌍둥이 자매가 플라카의 흙을 연구한다고 하였으니 얼마 안 가 지금 숙소보다 훨씬 좋은 숙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엘하임과 다르게 플라카에는 널린 게 땅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점점 더 플라카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멈춰라.”
거대한 덩치의 악마가 세운을 가로막았다.
근육이 아니다.
전신이 물컹한 비계로 찬 것처럼 뚱뚱한 악마.
그의 손에 창이 들려 있으니 창이 마치 이쑤시개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약자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들어오고 싶다면, 힘을 증명…….”
서걱.
세운의 검이 악마의 목을 갈랐다.
거대한 덩치와는 다르게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툭 떨어지는 악마의 머리.
플라카에 처음 진입한 플레이어가 보았다면 뭐 하는 짓이냐며 놀랄 만한 장면이었지만, 옆에서 같이 경계를 서던 악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강하군.”
놀랍게도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아래.
방금 떨어져 나간 악마의 머리였다.
목이 잘려 나간 몸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주워 들더니 나사를 끼우듯 목에 고정했다.
“통과다, 인간.”
괴이하다시피 한 플라카의 통과 방식.
다만, 세운에게는 익숙한 장면이었기에 별다른 반응 없이 두 악마를 통과하였다.
‘예전에는 이것도 까다로웠지.’
회귀 전.
모험가였던 세운이 이곳을 통과하는 방법은 여정의 지침표로 알아낸 악마의 급소에 일격을 때려 박는 형식이었다.
물론 그대도 당당하게 80층에 올라왔던 세운이었기에 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정의 지침표와 머리를 활용한 것들.
신체적인 강함은 부족했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이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외곽과는 전혀 다른 풍채의 거주민들이 보였다.
건물들은 마찬가지로 플라카의 흙으로 지어져 투박했지만, 거주민들은 전부 저마다의 강함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중에는 인간. 즉, 플레이어 역시 제법 있었다.
“이번에 들어왔다는 신규 길드인가. 생각보다 일찍 안으로 들어왔군.”
엘하임에서조차 플레이어의 수가 거주민보다 부족한 수준이었으니, 플라카는 그보다 더 위층이니 당연하게도 그 플레이어의 수가 무척이나 적었다.
그런 만큼 신규 세력에게는 자연히 눈이 가게 마련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외곽을 제외한 플라카의 거주민들은 플레이어를 차별의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
마족들은 그저 강함과 약함.
이 두 가지로 상대를 결정할 뿐이었다.
‘지금은 마주칠 필요가 없겠지.’
슬쩍 보니 기억할 만한 길드는 아니었다.
세운이 아홉 번째 쉼터에서 기억해야 할 길드는 단 두 곳.
플라카에 들어오자마자 마주한 흑익 길드와 경매장에서 처음 마주쳤던 발할라 길드.
나머지는 연관되어 봤자 귀찮기만 한 곳들이었다.
“이봐, 인간. 괜찮으면 길을 알려주지. 플라카는 처음 아닌가?”
“사양하지.”
“그러지 말고…….”
가끔 대놓고 말을 걸어오는 이들이 있었지만, 가뿐히 무시하고 길을 나아갔다.
플라카는 건축물이 단조로워 길을 찾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다만, 이는 세운과 상관없는 얘기다.
이미 회귀 전에 수십, 수백 번이나 들락날락한 곳이기도 하고 기억이 안 난다고 해도 세운에게는 여정의 지침표가 있었으니까.
기억을 따라 계속 이동하던 중.
“으윽…….”
전신이 보랏빛 액체에 절어 있는 플레이어가 하나 보였다.
피부에서는 고름이 터지고, 손톱도 절반가량 빠져 있다.
꽤나 위험한 모습이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세운 역시 간섭하는 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 왔네.’
저 앞.
먼발치에서 수상한 연기가 뿜어나오고 있었다.
붉은색 연기, 보랏빛 연기, 새까만 연기.
때로는 갖가지 색이 뒤섞이기도 하였고, 때로는 괴물이 트림이라도 하듯이 대량의 연기가 뭉텅 솟아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기감.
색과 농도가 다 달랐지만, 저 연기들 모두 극도로 위험한 무언가의 흔적이었다.
“큭큭, 오늘은 손님이 많네.”
가까이 다가가자 이곳을 담당하는 마족이 말을 걸어왔다.
저 앞에 보이는 연기를 응축시킨 것처럼 갖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마족.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신체의 색이 수시로 뒤바뀌며 형광으로 일렁거렸다.
“처음 보는 인간인 것 같으니 간단한 소개를 해 주지.”
부글-
그의 뒤에서 무언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별다른 소리도 아닌데, 듣는 순간 등골에 소름이 일 정도로 위기감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이곳은…… 크큭, 그래. ‘목욕탕’이다.”
“목욕탕이라.”
“어떤 인간이 그리 표현하더군. 물어보니 뜻이 마음에 들어 인간들한테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
“몸을 담그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는 것 같은데?”
“오, 이곳에 대해서 미리 듣고 왔나? 누군가 과장이라도 했나 본데, 똑같아. 몸을 지지고, 때도 벗기고, 물에도 익숙해지지.”
장난기 넘치는 말투.
설명을 하면서도 연신 낄낄거리는 게, 장난치는 어린아이를 보는 듯하다.
이곳에 멋모르고 처음 당도하는 플레이어들은 저 설명에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물론, 생각이 제대로 박힌 플레이어라면 입구에서 마주친 것처럼 이미 이곳을 경험한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고 경계심을 유지할 테지만 말이다.
“어때, 몸 한번 담가 보겠어?”
“무슨 탕이지?”
“그것까지 듣고 왔어? 크큭, 재미없는 놈이네. 지금은…… 그래. 선혈탕(鮮血湯)이 제일 따뜻해. 어때, 들어갈 거냐?”
“그러지.”
이곳에는 수십 가지의 각기 다른 탕이 존재한다.
회귀 전의 세운이라고 해서 그 모든 탕에 몸을 담가 보지는 못했지만, 선혈탕이라면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세운이 앞으로 나서자, 마족이 축축한 손바닥을 내밀며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백만 포인트입니다. 손님. 크크큭.”
오백만 포인트.
층을 오르며 시련을 공략할 때 얻는 공적치가 많아졌다고는 해도 무척이나 높은 수치였다.
세운처럼 히든 피스를 찾아내고 순위권으로 시련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평범하게 시련을 넘어온 자들이라면 전 재산일 수도 있는 양의 공적치.
다만, 세운에게 오백만 포인트는 그리 무거운 양이 아니었다.
바로 이전, 수라도를 공략하고 받은 공적치만 하더라도 일억 포인트에 달했으니까.
차르르-
“5번 탕이다. 제일 빨간 곳에 들어가면 되니까 착각하지 말고 잘 찾아가.”
“다음 탕도 미리 준비시켜 주지.”
“다음 탕? 크크큭, 처음 온 놈이라 그런지 아주 당돌하네. 너 같은 놈들이 한둘이었을 것 같냐? 그냥 닥치고 선혈탕이나 다녀와.”
“선불로 지급하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손님!”
마족에게 또 한 번 오백만 포인트가 들어왔다.
일시불로 천만 포인트.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벌벌 떨 만한 양의 공적치를 세운은 아무렇지 않게 지불하였다.
고작 탕에 몸을 한 번 담그는 것으로 말이다.
“선불로 지급했으니 탕은 바로 준비할 건데, 식으면 못 쓰는 거 알지? 오늘 안에 안 쓰면 못 돌려받는다? 크크큭.”
“그러든지.”
세운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미련 없이 안으로 향했다.
형형색색의 연기 속으로 보이는 수십 가지의 노천탕.
세운은 그중에서도 마족이 설명해 주었던 다섯 번째 선혈탕 앞에 섰다.
그 말대로, 어떤 탕보다 새빨간…… ‘선혈탕’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탕이었기에 헷갈리는 일은 없었다.
첨벙.
애초에 숙소에서 나올 때 방어구는 미리 정리해 두고 가볍게 입고 왔던 터라 옷을 벗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옷에는 여유분이 있으니까.
천천히 선혈탕 안으로 들어간 세운의 전신으로 새빨간 액체가 뒤덮였다.
그리고.
치이이이이익-!!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타는 소리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세운의 전신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선혈탕.
닿는 모든 것에게 지독한 출혈을 안겨주는 저주의 탕이었다.
제 57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