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7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75화(575/675)
“하루에 열 번이라니. 기록이다, 인간 놈아.”
“조금만 쉬면 더 할 수 있는데?”
“내 상태 안 보이냐? 말라 죽게 생겼다. 내일은 더 준비해 둘 테니까 내일 다시 찾아와라.”
“그러지.”
“크큭, 괴물 놈.”
결국, 오늘은 열 개의 탕을 들어가는 데 그쳤다.
조금 아쉽기는 해도 생각해 보면 이 정도가 딱 적절한 수준인 것 같았다.
‘마나도 회복해야 하고.’
치료 마법을 연신 사용하느라 서클이 텅텅 비어 있다.
아무리 회복마법을 계속 사용했다고 해도 몸의 피로감은 계속 누적됐고, 정신적인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공적치를 많이 쓰긴 했지만…….’
오늘 사용한 공적치만 하더라도 오천만 포인트.
엄청난 양이지만, 최근에 시련을 통해 벌어 둔 공적치가 꽤 많았으니, 괜찮았다.
게다가 시련에서 얻은 아이템들 역시 경매장에서 싹 정리할 생각이니 공적치는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
“크큭, 왔냐.”
“준비는?”
“당연히 해 놨지. 오늘은 다른 손님도 안 받아.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달려보자고!”
세운은 역시나 탕에 들렀다.
하루 정도 쉬었으니 살이 오를 만도 한데, ‘준비’라는 말처럼 이미 한차례 몸의 저주를 빼낸 탓인지 홀쭉 말라 있는 히드로.
과연, 안에서 탕이 끓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하늘로는 어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 한데 뒤엉키는 중이었다.
“가지.”
“따라와라. 첫 번째로 생각해 놓은 게 있으니. 여기서는 너도 정신을 못 차릴 거야. 크크큭.”
히드로가 처음 안내한 탕은 보랏빛 탕이었다.
점액질도 없이 찰랑거리면서 색도 연한 게, 겉으로만 보아서는 다른 괴이한 탕들에 비해 별거 없어 보일 지경.
‘저 자신감을 보니 만만한 탕은 아닐 거고.’
무슨 탕일지 궁금했지만, 결론은 같았다.
세운은 곧바로 보랏빛 액체 속으로 입수하였고, 그 즉시 효과가 나타났다.
‘……현기증?’
탕에 들어가자마자 머리가 핑 도는 듯했다.
두통과 함께 어지러움이 일더니, 앉아 있는 자세를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보아하니 회복에 일가견이 있는 듯한데 정신적인 공격은 회복도 어렵지. 어떠냐?”
어제 세운의 모습을 보고 준비한 듯하다.
다만, 세운은 오히려 좋았다.
‘이거라면 마나를 아낄 수 있겠는데.’
갈수록 현기증이 지독해지긴 했지만, 그래봤자 현기증이다.
마법을 써서 회복할 필요도 없으니 그저 잘 견디기만 하면 그만이다.
멀미가 일어나듯이 머리가 어지러워졌으나 세운은 튜리크의 도움으로 상공을 비행하며 멀미에는 꽤 적응된 상태.
특별한 회복마법 없이도 무사히 입욕을 끝낸 세운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히드로를 바라보았다.
“다음은?”
“마족보다 더한 놈…….”
* * *
– 석화탕에 몸을 담갔습니다.
– 전신의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 석화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 피부 재생력이 상승합니다.
들어가자마자 메두사와 눈이 마주친 것처럼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석화탕.
“크크크큭! 이건 회복한다고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지! 너도 이제 끝…….”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리무브 커스 (Remove Curse) ]– 시전자에게 퍼진 저주를 푸는 마법이나 시전자의 수준에 따라 그 효과나 속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 아니네. 이 괴물 마족 놈.”
리커버리로도 회복이 안 되었지만, 저주라면 다른 마법으로 회복하면 그만이다.
백탑의 마법도, 흑탑의 마법도 8서클의 수준에 오른 세운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치료는 가능하면 천천히.’
가능하면 자연 회복에 집중해야만 한다. 그래야 탕을 나갔을 때 더욱 많은 걸 얻을 수 있으니까.
몸이 위험 수준이 이르기 직전에 저주를 풀고 몸을 회복시키는 식으로 정신을 붙잡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 예창탕에 몸을 담갔습니다.
– 암천탕에 몸을 담갔습니다.
– 뇌전탕에 몸을 담갔습니다.
…….
세운은 이곳의 탕을 모조리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매일 쉬지도 않고 탕 수십 개를 적셔 나가냐…….”
“다음은?”
“내 꼴 안 보이냐? 말라 죽겠어, 진짜!”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달려보자고 하지 않았나?”
“썩을…… 가자, 가!”
공적치가 엄청난 속도로 소모되었다.
세운이라고 하더라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공적치로는 버티기 힘들 정도.
뭐, 그래도 딱히 문제는 없었다.
“형니임! 다 팔렸습니다!”
“가격은?”
“흐흐, 제가 누굽니까? 시세 동향 보고 기가 막히게 내놨죠! 경매품 중에 괜찮은 것들은 제가 몰래 참여해서 가격도 더 높였다니까요?”
“그러다 걸리면 쫓겨난다, 조심해.”
“에이, 제가 누굽니까? 형님의 오른팔 아닙니까! 진작에 쓸모 있는 놈들 주머니에 간식거리 좀 찔러넣어 뒀죠!”
여태까지 세운이 시련에서 얻어 온 아이템들이 착실하게 팔리고 있었으니까.
다른 플레이어라면 시련을 돌파해도 얻는 아이템이 그리 많지 않겠지만, 세운이 누구인가?
온갖 히든 던전을 꿰고 있는 것을 넘어 아공간 주머니를 통해 아이템을 무제한에 가깝게 쓸어 담았다.
그러니 벌리는 포인트 역시 엄청났고.
“남은 탕, 몇 개라고 했지?”
“……열네 개.”
“선금으로 지급하지.”
“빼도 박도 못하게 해 두겠다는 거냐? 이 사악한 괴물 마족보다 더한 놈.”
“받기 싫으면 말고.”
“다음 탕으로 모시겠습니다. 손님.”
남은 탕 전부를 일시불로 지급할 정도로 공적치가 몰려들었다.
박정필, 잘 팔기만 하면 수수료를 챙겨주겠다고 해 두었더니 생각 이상으로 물건을 잘 팔고 있다.
의외의 재능이랄까?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나고.
“……이제 마지막 탕이다, 이놈아.”
“99개? 생각보다 애매한 숫자네.”
세운은 드디어 마지막 탕이 입수하게 되었다.
마지막이라고 해서 특별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마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어지간한 속성 저항력, 상태 이상 면역력, 물리적인 방어력이나 신체의 재생력 등, 모든 게 높아진 세운이었기에 그 지독한 통증을 견디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진마탕에 몸을 담갔습니다.
– 전신의 피부가 마기에 침식당합니다.
–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 피부 재생력이 상승합니다.
세운의 몸에 진마탕의 마기가 전부 흡수되었다.
단순히 저항력이나 면역력, 재생력 같은 방어적 수단뿐만 아니라 몸에 퍼진 기운이나 근육까지 강화된 기분이었다.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확인해야 하겠지만, 당장 가만히 있어도 체감이 될 정도.
세운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주먹을 쥐었다 펴보았다.
“지금까지 모든 탕에 몸을 담근 놈들은 여럿 있었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모든 탕을 정복한 놈은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고마웠다.”
이제 이곳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면역력까지 높아졌으니, 다음으로 이동할 전투 지역에서의 혹시 모를 사태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그러니 당장 이동하려던 중.
“혹시…… 다음 단계에 관심 있냐?”
“다음? 이게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여기서는 이게 마지막이지. 하지만, 딱 한 곳 있어. 애초에 이 탕들의 모태가 된 곳이.”
세운이 귀를 쫑긋했다.
이 탕들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나, 그 모태가 된 곳이 존재한다는 건 세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모험가였던 세운조차 모르는 다음 단계라니.
혹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지?”
“크큭, 관심 가질 줄 알았지. 따라와라.”
“가격은?”
“필요 없어. 애초에 거기는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니까. 뭐, 포인트는 이미 한동안 놀고먹어도 될 정도로 벌었고.”
예상치 못한 호의.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히드로는 입구에 ‘휴업’ 팻말까지 달아 놓고 앞장섰다.
플라카의 거주 구역을 빠져나가더니 점점 더 외곽으로 이동했다.
“저 앞에는 돌산밖에 없을 텐데.”
“오, 플라카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그건 어떻게 아는 거냐? 딱히 유명한 곳도 아닌데.”
모를 리가.
딱 보아도 무언가 있을 듯한 돌산이기에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이런 곳에 탕의 모태가 되는 곳이 존재한다니.
“그곳도 탕이라면 연기 같은 걸 숨기기 어려울 텐데.”
“연기 안 나. 숨길 필요도 없고. 그냥 얌전히 따라와.”
그렇게 도착한 곳은 수많은 돌산중에서도 가장 높은 돌산의 정상.
꼭대기라기에는 바닥이 평평하여 인위적인 느낌이 났지만, 특별히 무언가 보이지는 않았다.
여정의 지침표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보이지 않았고.
“잡아라.”
“너를?”
“나도 인간 손이나 잡는 취미는 없어. 안 그러면 못 들어가니까 일단 잡아.”
각종 저주로 번들거리는 히드로의 손.
잡는 것만으로도 온갖 저주가 몸에 침투하겠지만, 이미 모든 탕을 거치며 면역력을 키워왔으니 걱정할 필요 없을 것이다.
걱정 없이 그의 손을 잡자마자 저주 특유의 불길한 기운이 느껴짐과 동시에.
“토하지 마라.”
세운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히드로와 함께.
당황하며 손을 바로 빼내려 하였지만, 이 현상이 특별히 몸에 위해를 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종의 이동기인가?’
몸이 녹아내리는 이동기라니.
기분이 꽤나 이상하다.
액체로 변한 둘의 몸이 돌산의 정상에서 꿀렁거리더니 눈에도 보이지 않는 틈새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이게 무슨…….’
돌산의 정상에 틈새가 있었다니.
몸이 녹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흐물거리는 시야를 통해 보이는 돌산 내부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돌산 내부가 전부 텅 비어 있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벽의 사이사이에 보이는 미세한 틈새를 통해 히드로가 흘리는 것과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의 정체 모를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밑바닥.
모든 액체가 바닥에 모여들어 뒤섞여 이루어진 검붉은 탕이 넓게 퍼져 있었다.
“여기다. 마계에서도 극히 드물게 형성되는 ‘마신혈(魔神血)’이라는 곳이지. 플라카에는 여기 한 곳밖에 남지 않았고.”
척 보아도 평범한 곳이 아니다.
마신혈.
거기에는 세운이 지금까지 몸을 담가왔던 탕들과 비교도 힘들 정도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 맞다. 잊고 있었네. 상관없긴 한데, 여기 선객이 하나 있어.”
탕의 외곽.
그곳에 한 남자의 넓은 등판이 보였다.
강한철이 연상될 정도로 우락부락한 근육에 거대한 덩치.
어쩐지 익숙한 풍채를 지닌 남자.
그 역시 세운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오! 이거, 정세운 플레이어 아니오!”
브린 자르.
발할라 길드의 수장이었다.
제 57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