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7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76화(576/675)
“브린 자르?”
“이거 정말 반갑소! 플라카에 들어왔다는 말은 들었으나, 마신혈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소! 그것도 이렇게 빨리!”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호탕하게 웃으며 세운에게 다가오는 브린 자르.
누가 보면 세운이 그의 수십 년 지기 친구라고 생각할 정도다.
당연하게도,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만남이기에 세운으로서는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크큭, 서로 아는 사이였냐? 그럼 마신혈의 소개는 네가 알아서 해라. 난 이제 가서 쉬어야겠다.”
“오랜만인데 몸 한 번 안 담그고 가시오?”
“저기 저놈 때문에 요 며칠 동안 힘이 다 빠졌어. 이거 안 보여? 뼈만 앙상하게 남은 거? 가서 한 달은 문 닫고 퍼질러 잘 거야.”
히드로의 몸이 다시금 녹아내리더니 틈새를 통해 사라져 갔다.
그렇게 세운과 브린 자르, 둘만 남게 되었다.
“저 히드로에게 인정받다니, 대단하오!”
“이게 인정받은 겁니까?”
“마신혈에 데려왔다는 것 자체가 인정받은 것이오. 나도 히드로에게 인정받고 마신혈을 소개받은 건 최근이니 말이오!”
그렇게 웃더니 세운에게 손을 내미는 그.
누가 보아도 악수를 청하는 그 모습에, 세운은 브린 자르와의 첫 대면을 떠올렸다.
‘이번에도 확인인가.’
경매장에서 그를 처음 마주쳤을 때, 브린 자르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어 세운의 힘을 확인하였다.
실로 무식한 방법이지만, 브린 자르는 그 간단한 방법으로 세운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이번 역시 마찬가지.
꽈악.
그의 손을 잡자마자 어마어마한 압력이 느껴졌다.
당연하게도, 세운 역시 지지 않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오오!”
그를 처음 마주한 건 경매장. 즉, 여섯 번째 쉼터인 라일락에서였다.
그에 반해 지금 세운은 아홉 번째 쉼터인 플라카. 브린 자르와 같은 층에 도달한 상태다.
첫 만남에서는 내공과 마나, 광란의 권능까지 총동원하여 그의 힘을 버텼다면.
“대단하오! 아무리 플라카까지 올라왔다지만, 시간으로 따지면 그리 오랜 시간도 아닐 텐데 이렇게나 강해지다니 말이오!”
지금은 아니다.
세운의 힘은 어느새 브린 자르와 대등할 정도로 올라와 있었다.
“힘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던 때도 대단했는데! 순수한 근력을 여기까지 끌어올리다니! 정말 놀랍소!”
“……알고 있었나?”
“하하, 내 눈이 그리 어둡지는 않소! 자, 어서 들어오시오!”
다행히 힘 싸움은 길게 가지 않았다.
브린 자르도 최선을 다하지는 않은 모양.
치이익!
그가 마신혈에 몸을 담그자마자 접촉면에서 검붉은 연기가 뿜어나왔다.
역시, 평범한 탕이 아니다.
원래라면 히드로도 사라졌으니 탕의 위험성을 조금 더 자세히 확인했겠지만, 동맹 길드 발할라의 수장 앞에서 얕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치이익!
마신혈에 다리를 넣자마자 브린 자르 때와 똑같이 검붉은 연기가 올라왔다.
다만, 예상했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하하, 신기하지 않소? 나도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이게 뭔가 싶었소. 그렇게 고통스러운 탕을 거친 후에 도달한 최후의 관문이 이런 온탕일 줄이야.”
“설마 평범한 온탕인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소? 금방 효과가 나타날 터이니 몸 푹 담가 보시오.”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몸을 완전히 담가도 특별한 힘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따뜻한 온수가 몸을 감싸고 있으니 편안하기야 하다만, 세운은 온수나 즐기자고 이곳까지 찾아온 게 아니었으니까.
“소식은 들었소. 플라카에 올라오자마자 흑익을 쓰러트리다니. 과연, 우리 토르 님의 선견지명이 맞았소. 하하!”
“소문이 났습니까? 흑익이라면 그 사실을 최대한 숨길 줄 알았는데.”
“숨겨 봤자 플라카 아니오. 플라카에 길드가 몇 개나 된다고, 그것도 모르면 장님이지. 발할라에도 그 정도 눈과 귀는 있소.”
흑익의 위치는 철저하게 숨겨져 있었다.
세운도 처음에 흑익의 본거지로 이동할 때 감각까지 차단당하지 않았는가?
해리도 세운의 지시로 곧바로 세운을 추적했기에 따라올 수 있었던 거지, 조금만 늦었다면 세운의 기척을 놓쳐 버리고 말았을 거다.
그런 흑익의 위치를 알고, 전투 결과까지 알아내다니.
속세에서는 발할라를 그저 전투광이라 표현했지만,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정보는 이것뿐만이 아니오.”
“뭐가 더 있습니까?”
“흑익이 차기 부길드장으로 그대를 받아들인다는 말이 있었소. 이번 싸움 역시 그 때문이고.”
브린 자르의 눈빛이 단번에 날카로워졌다.
과연, 탑의 랭커 안에 드는 그의 위압감은 대단했다.
하나, 아무리 랭커라고 하여도 이미 성좌의 위압감마저 버텨낸 세운에게는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오?”
흑익의 일반적으로 모든 길드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루시퍼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광신도 집단, 흑익.
그들은 쉼터에서나 시련에서나 오로지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루시퍼의 신탁을 이행하기 위해 온갖 비윤리적인 행동을 시행해 왔으니까.
시련에서 누군가를 암살하거나, 쉼터에서 거주민들을 공격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등.
플라카에서, 아니, 그들의 지부가 존재하는 가장 낮은 쉼터인 라일락에서부터 흑익의 소문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 흑익에 세운이 부길드 마스터로 들어간다면 브린 자르 역시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참고로, 이곳은 성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오.”
세운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분명 바위의 틈새로 들어왔건만,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틈새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말을 증명하듯이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는 그 어떤 성좌의 메시지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세운이 뜬금없이 탕에 들어오기 전에 걸쳐 두었던 뒤랑달을 집어 들며 말했다.
“슬슬 무기를 바꿔야 할 텐데, 뒤랑달은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음? 갑자기 무슨 소리요?”
“……성좌의 시선이 닿지 않는다는 말, 정말인가 보군요.”
“음?”
마몬이 평소에 탐내던 뒤랑달을 들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말을 내뱉었는데도 반응이 안 오다니, 성좌의 시선이 차단된 게 확실하다.
마몬이 보지 못한다면, 당연히 루시퍼 역시 보지 못할 터.
세운은 다시금 마신혈에 들어가 앉아 잠시 고민하더니 곧 차분하게 대답을 내뱉었다.
“교란입니다.”
“교란?”
“흑익의 길드장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흑익의 길드장이라. 꽤 오래전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인물 아니오? 흑익에 들어갈 것도 아니면서 그를 찾겠다는 말은, 혹시 흑익의 머리를 부수겠다는 말이오?”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지만, 흑익을 부술 생각인 건 맞습니다.”
이건 되돌릴 수 없는 조건이다.
세운이 흑익을 싫어하는 것 이전에, 애초에 레비아탄과 계약할 때 나눴던 약속이 흑익의 세력을 부수는 것이었으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브린 자르가 과연 세운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그저 호탕하게만 보여도 한 길드장인 그가 가볍게 판단을 내릴 수는 없을 거다.
……라고 생각했지만.
“으하하하하하!”
이는 세운의 오산이었다.
브린 자르는 세운의 생각 이상으로 믿고 있었다.
자신의 끌림을. 성좌의 선택을. 세운의 대답을.
“내 그럴 줄 알았소!”
“……믿어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오! 그대는 누가 뭐래도 우리 발할라가 선택한 동료지 않소!”
세운의 등까지 팡팡 두들기며 웃음을 터트리는 브린 자르.
발할라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를 설득하려던 세운은 너무나 호탕한 그의 반응에 긴장마저 풀릴 지경이었다.
“의심한 건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오! 이래 봬도 한 길드의 수장으로서 동맹 길드의 방향은 물어봐야 하지 않겠소?”
“이해합니다.”
“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지. 이거 아주 믿음직한 동맹을 얻었소! 역시 토르 님의 말이 틀릴 리가 없지!”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너무 감에 의존하는 것 같긴 하지만, 사람 보는 눈이 좋다고 해야 할까?
물론, 세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좋소! 그대라면 제안할 수 있을 것 같소!”
“제안?”
“이제 막 플라카에 들어온 그대에게는 너무 이른 제안일 수는 있다만.”
아직 듣지 않았지만, 세운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브린 자르가 어떤 제안을 해 올지.
세운의 기억이 맞다면, 이 시기에 발할라 길드는 한창 다음 쉼터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우리 발할라 길드와 함께 90층의 시련을 공략하는 게 어떻겠소?”
80층 대 시련의 난이도는 그야말로 괴랄한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다음 쉼터로 넘어가기 위한 최종 관문인 90층의 시련은 특히나 더하다.
열 번째 쉼터에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길드가 한 곳뿐인 게 괜한 게 아닌 것이다.
‘거긴 플레이어라고 보기에는 힘들겠지만.’
어쨌든 세운으로서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발할라라고 하면 이미 아홉 번째 쉼터에도 적응한 거대 길드 중 한 곳으로, 단순 무력으로 따지면 최상위권에 달했으니까.
‘90층의 시련이라면 나도 편하게 공략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길드원까지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
고민을 끝낸 세운이 이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소! 이거 듬직한 아군을 얻었구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그것보다 이제 슬슬 시작된 것 같소.”
“네?”
시작이 되었다니?
세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신혈에 몸을 담그고 있었지만, 여태까지 따뜻한 온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시작되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바라본 세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피부가…….”
마신혈의 색과 같이 검붉게 물든 피부.
눈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집중해 보니 마신혈이 피부를 넘어 근육과 뼛속까지 침투해 있었다.
어째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을까?
자각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즉시 끔찍한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신혈은 마계의 정수나 다름없소. 마기랑은 조금 다르오. 순수한 힘의 성분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
“크윽…….”
“그런 만큼 이 힘을 흡수하기는 쉽지 않소. 나도 처음 몸을 담갔을 때는 한나절이 걸리고 나서야 피부가 검붉어지기 시작했지. 그에 반해, 그대는…….”
몸이 검붉어지기까지 한나절이 걸렸다는 브린 자르. 그에 반해 세운이 마신혈에 몸을 담근 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브린 자르와 대화를 나누는 그 짧은 시간에 전신의 피부는 물론, 뼛속까지 마신혈이 침투해 가고 있었다.
내부에서부터 넘실거리는 순수한 힘에 의해 몸속의 기운이 터지려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마신혈과의 궁합이 아주 잘 맞는 듯하오.”
고통이 느껴지는 곳은 몸뿐만이 아니다.
마신혈은 뇌에까지 침범했는지 정수리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짜릿함에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견디시오. 앞선 구십구 개의 탕보다도 힘든 시련이겠지만, 이겨만 낸다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세운에게는 이미 브린 자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피부와 손톱은 물론, 머리카락과 동공까지 검붉게 물들이며 전신을 침범해 오는 마신혈에 의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위험하다.’
필사적으로 정신줄을 붙잡은 찰나의 순간, 세운은 본능적으로 뒤랑달을 붙잡았다.
그리고 성흔을 맹렬하게 빛내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탐욕의 권능을 발현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떠올려 두었던 보구를 선택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왕의 수호, 아발론 ]– 소지자를 다치지 않게 해 주는 힘을 지녔다고 알려진 엑스칼리버의 검집. 멀린은 아서왕에게 엑스칼리버보다 그 검집인 아발론이 열 배는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검집이 뒤랑달을 감쌌다.
그와 함께.
– 마신혈에 몸을 담갔습니다.
– 전신이 마신혈에 침식당합니다.
– 독에 대한 면역력이 상승합니다.
– 골밀도가 상승합니다.
– 화염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
마신혈이 본격적으로 세운의 몸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제 57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