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7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78화(578/675)
플라카에는 수많은 전투 구역이 존재한다.
마계의 독충들이 모여 있는 산란장.
기괴하게 뒤틀린 괴조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드높은 절벽. 죽음을 허락받지 못한 언데드들이 끊임없이 덮쳐오는 묘지 등.
그중에서도 세운이 향하는 ‘구렁텅이’는 플라카의 거주민들 사이에서도 금역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버림받은 심연. 끝없는 저주. 멸망의 숨통.’
불리는 이름 역시 다양하다.
마계의 길고 긴 역사에서도 존재해서는 안 될 자가 버려지고, 해독할 수 없는 극독을 퍼붓고, 죽이지 못하는 이를 봉인해 둔 곳.
한 번 빠지면 그 강인한 마족들조차도 다시는 올라올 수 없다고 알려진 금역이 바로 ‘구렁텅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주워들은 소문을 종합해 보면 그곳에 아우터가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회귀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설명들 모두 아우터와 연결될 만한 것들이었다.
어쩌면, 구렁텅이 자체가 아우터를 파묻기 위해 만들어진 심연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흑익의 전령에게도 부탁할 수 없는 곳이었기에 세운이 직접 확인하려는 것이다.
“서라, 인간.”
구렁텅이에 다가가자 마족들이 세운을 불러 세웠다.
약하면 죽고, 강하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인 마족에서 전투 지역을 지킬 이유는 없지만, 구렁텅이만은 달랐다.
아주 오래전, 구렁텅이에 도전하는 마족들이 늘어나며 구렁텅이의 저주가 강해진다 판단한 마왕이 그곳을 금역으로 지정하며 마족의 출입을 금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곳은 금역.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는 모르나, 이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공적치라면 지불하겠다.”
“우리는 통행료나 받기 위해 이곳을 지키는 게 아니다. 전대 마왕님의 의지를 따라, 이곳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미 죽어 버린 전대 마왕의 충신들.
마족들에게 보기 드문 충성심이었다.
“그렇다면 마계의 법칙으로 해결해야지.”
“적응이 빠른 인간이군.”
마계에서는 힘이 법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몸을 부딪치고, 이긴 자가 곧 법이 된다.
회귀 전에 이미 플라카의 순리에 익숙해진 세운이었기에 검을 꺼내 드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를 제치고 구렁텅이로 떨어진 이는 없었다. 금역의 수호병이 얼마나 강한지…….”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서걱.
세운의 검격이 횡으로 그어졌다.
검붉은 궤적이 세상을 상하로 나누며, 그 거친 궤적이 늑대의 송곳니처럼 마족을 찢어발겼다.
‘힘 조절이 안 돼.’
감탄할 정도로 강력한 위력.
평소에 사용하던 혈랑검법으로는 절대 낼 수 없을 위력이었지만, 세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내공을 낭비해 버린 탓이다.
‘힘만이 아니라 내공 운용도 익숙지 않아.’
마신혈을 통해 강화된 힘은 생각 이상으로 다루기 어려웠다.
바로 구렁텅이를 향할 게 아니라, 혼자서 개인 수련이라도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세운은 곧 고개를 저었다.
힘에 익숙해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역시 실전이다.
그런 면에서, 구렁텅이는 최적의 수련터나 다름없었다.
“인간…… 어째서 마왕님의 힘을…….”
“마왕?”
그 말을 끝으로 금역의 수호병이 고개를 떨구었다.
무슨 말인가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대 마왕도 마신혈에 몸을 담갔던 모양이군.’
뭐, 상관없는 일이다.
세운은 쓰러진 수호병을 지나쳐, 그가 지키고 있던 구렁텅이를 내려다보았다.
“구렁텅이라……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시야를 가렸다. 안개 자체가 살아서 세운을 향해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쉼터에서 이게 웬 떡이냐며 입맛을 다십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항상 무리하는 당신의 모습에 걱정을 그치지 못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저곳에서 보물의 냄새가 난다며 눈을 반짝입니다.
이 아래는 세운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회귀 전의 세운은 구렁텅이를 공략할 만큼 강하지 않았으니까.
금역의 수호병 몰래 구렁텅이에 들어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만, 전투력이 높지 않았던 터라 ‘다시 돌아온 이가 없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구렁텅이에 들어갈 수 없었다.
타앗.
세운이 망설임 없이 구렁텅이의 아래로 뛰어내렸다.
위에서 보이던 검은 안개 같은 게 살아 있는 것만 같았던 건 착각이 아니었다.
‘저주인가.’
안개에 잠들어 있는 저주가 세운의 피부를 파고든다.
아마, 지금까지 구렁텅이 안으로 뛰어들었던 이들 중 대부분이 이 저주라는 출입문에 걸려 그 즉시 목숨을 잃었으리라.
다만.
파직-
– 마신체(魔神體)가 흑안의 저주를 저항합니다.
마신혈에서 새롭게 얻은 힘.
강화된 신체가 저주에 저항하였다.
그 어떤 저주나 속성력에 대한 저항력도, 처음 당하는 극독에 대한 면역력도, 심지어 근력이나 전체적인 방어력까지.
마신체는 그 모든 힘을 강화해 주었다.
‘편하네.’
이전 같았으면 ‘커스 디펜스’처럼 저주 방어 마법을 사용하거나 마몬의 보구를 사용하여 저주 면역을 챙겼어야 했을 텐데, 마신혈에서 얻은 힘 덕분에 걱정 없이 저주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만큼 마나나 신성을 아낄 수 있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전투 상황에서 힘을 더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피다! 피다! 피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적이 나타났다.
여러 생물의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이루어진 듯한 몬스터였는데, 녀석은 세운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시뻘건 체액을 내뱉었다.
세운이 익숙하게 방어 마법을 펼쳐보았으나.
치이익-
놀랍게도 녀석의 체액은 마나로 이루어진 실드를 녹이며 끝내 세운에게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산성이 아니다. 마나의 배열을 분해하는…… 마독(魔毒)이다.’
마독.
세운도 실제로는 처음 보는 독이다.
애초에 마나에 간섭하는 독은 그 종류가 극히 드물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마나 회로나 서클을 중독시켜 마나 운용을 방해하는 것인데, 마독은 마나 배열 그 자체를 중독시켜 버린다.
“간만에, 피다! 신선한, 피다!”
다짜고짜 머리를 들이미는 녀석.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자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녀석의 머리가 베어졌다.
푸홧!
하지만, 그 순간 녀석의 머리에서 체액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세운의 전신에 마독이 섞인 체액이 튀었고, 몸에 겨우 붙어 있는 녀석의 머리는 입처럼 크게 벌어지며 세운을 집어삼키려 하였다.
그런 녀석을 보며.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화르르륵!
세운의 손바닥에서 지옥의 불길이 뿜어나왔다.
새까맣게 익어 버린 녀석의 입에서 거칠지만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피가…… 에?”
머릿속이 타들어 갈 때까지도, 녀석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전 자신의 앞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자는 없었기에.
설령 검사나 격투가 같은 전사라고 하여도 플라카에 도달할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전부 마나를 다루고, 마족들 역시 마기를 다룬다.
마나가 사라지는 순간, 플레이어들의 전투력은 심각하게 줄고 만다. 그런 적들을 희롱하는 게 바로 녀석의 유흥이었는데.
자신의 앞에서 마법을 사용하다니. 그것도 이렇게 강한 마법을.
“마신체, 생각 이상인데.”
쿠웅.
세운은 지옥의 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녀석을 내려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아직 확장된 마나 서클과 회로에 적응하지 못해 화력 조절이 안 되기는 해도, 마법의 위력이나 독에 대한 면역력 등은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상태 이상은 무시할 수 있겠어.”
지금이라면 스카베에서 마주친 전갈 모습의 아우터가 가진 독침에 찔리더라도 전처럼 죽음의 위기에는 처하지 않지 않을까?
그렇게 만족감을 느낄 틈도 없이, 새로운 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캬르릉…….”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악마견. 덩치가 코끼리보다 큰 괴수가 세운의 등 뒤를 노리며 달려든다.
세운이 녀석의 머리를 쳐내자마자 바닥이 한 차례 꿈틀거리며 전신이 새까만, 섬유질로 이루어진 뱀 같은 괴수가 튀어나온다.
“이 녀석은…….”
살짝 스쳤다고 생각했는데, 스쳤던 피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녀석의 몸을 이루는 섬유질에 정체 모를 독이 발린 가시가 무수히 돋아 있던 탓이다.
탈피탕에서 얻은 찰과상 저항력과 마신체로 인해 신체가 강화되지 않았더라면 심각한 상처가 되었으리라.
“히드로의 탕을 안 거쳤으면, 아니, 마신혈을 안 거쳤으면 진짜 위험했겠는데.”
이 녀석들은 80층에서 마주한 악마들과 비교도 안 되게 강했다.
물론 10위권까지의 대악마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플라카에 어울리지 않는 비정상적인 강자들이다.
‘무엇보다, 상태 이상이 생각 이상으로 위협적이다.’
독, 저주, 변칙적인 신체를 이용한 각종 물리 공격과 속성 마법 등.
녀석들은 개성 넘치는 공격으로 침입자를 공격했다.
지금까지 탑을 올라오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상태 이상들이 이곳에서는 일상과도 같았다.
새삼 구렁텅이에 빠진 이들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이해되었다.
– 폭식의 권능으로 ‘플라카의 금역, 구렁텅이’ 전체를 지정하였습니다.
–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를 덮쳐옵니다!
쓰러진 몬스터들은 여지없이 베엘제붑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쉼터에서는 사냥을 거의 하지 않는 세운이었기에 베엘제붑은 이번에도 숨을 죽인 채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가 폭식의 어금니를 사용하자마자 이게 웬 횡재냐 싶어 빠르게 식사를 시작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의 먹잇감들은 맛과 식감이 무척이나 개성적이라며 즐거워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건 톡 튀는 맛이 일품이라며 외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건 새콤한 맛이 일품이라며 감탄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신나서 떠드는 베엘제붑과 별개로, 세운 역시 신난 건 마찬가지였다.
‘무공도, 마법도, 기본적인 움직임도, 전부 강해졌다.’
마신혈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기연 때문에 기대 이상으로 강해진 신체.
그 덕분에 구렁텅이의 공략이 너무나도 쉬워졌다.
다만, 이곳의 몬스터들 전부가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구렁텅이를 내려갈수록 생각지도 못한 강적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드디어, 이곳까지 산 자가 나타났도다.”
후두둑.
전신을 감싸던 딱딱한 석재를 부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외뿔 마족.
부서진 잔해를 보아하니 일종의 봉인인 것 같았다.
아마, 누군가가 이곳에 도달해야만 봉인이 풀리는 구조가 아니었을까?
“아, 배고프도다. 봉인을 풀어준 답례로…… 고통 없이 삼켜주마.”
다른 곳도 아니고 구렁텅이에 봉인되어 있던 마족이다.
봉인되어 있는 동안 약해졌겠지만, 죽이지 못하고 봉인해 둔 마족인 만큼 여전히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을 거다.
까앙!!
“그래, 이 정도는 돼야 힘을 확인하지.”
마음먹고 날린 공격을 맞고 쓰러지지 않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부러 약하게 힘 조절을 하느라 고생했는데, 드디어 제힘을 발휘할 만한 적이 나타났다.
“으히히…… 전란의 소음이 나를 깨우리라.”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 구렁텅이 곳곳에서 적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더욱더 강한 저주가 구렁텅이를 가득 메우고, 뜨거운 열기와 차가운 냉기가 뒤섞여 비이상적인 재앙을 일으켰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다음 음식을 기대하며 당신을 응원합니다.
세운은 생각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구렁텅이를 공략해 나갔다.
본래 며칠, 아니, 보름을 넘게 예상했던 구렁텅이의 공략이 빨라지며 어느새 구렁텅이의 심연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플라카에서 아우터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
구렁텅이의 최심부가 말이다.
제 57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