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7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79화(579/675)
구렁텅이에는 수많은 방해 요소가 존재했다.
세운이라고 하더라도 고전을 면치 못할 정도로 강력한 적들.
지형 역시 날카롭고 구불거리는 것이 플레이어를 씹으려는 듯하고, 곳곳에서 치명적인 저주와 독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 마신체(魔神體)가 마수의 응혈을 저항합니다.
지금의 세운은 그 모든 것에 걸릴 게 없었다.
마신체는 어지간한 상태 이상에 전부 면역을 발휘했고, 신체 역시 월등히 강해져 있었으니까.
“인간이 어떻게 그 기운을……!”
서걱.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적들.
물론, 구렁텅이의 심부로 내려갈수록 적이 강해지긴 했다.
그중에서는 기어코 마신체의 면역을 뚫고 독을 주입하는 놈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세운은 마신체의 한계점을 파악하며 더욱 신나게 검을 휘둘렀고.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환호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의 음식들은 하나하나가 각지의 별미 같다며 찬양합니다.
덕분에 베엘제붑의 환호성 또한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구렁텅이의 최심부.
당연하게도, 전투 지역인 만큼 이곳에도 ‘보스 몬스터’가 존재했다.
“어째서 이곳에 내려왔는가, 인간이여. 이곳은 금역이라 그렇게 알렸거늘. 수호병들도 이제 수명이 다한 것인가?”
“수호병이라면…….”
세운은 구렁텅이를 지키고 있던 금역의 수호병들을 떠올렸다.
– 우리는 통행료나 받기 위해 이곳을 지키는 게 아니다. 전대 마왕님의 의지를 따라, 이곳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들이 했던 말.
즉, 저 보스 몬스터의 정체가 바로.
“전대 마왕인가?”
“전대라고 할 것까지 있는가? 이미 이 세계에서 마왕의 직위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인 것을.”
“전대 마왕이 왜 구렁텅이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거지?”
“마왕으로서의 마지막 임무였다. 이 금역의 저주를 푸는 것이, 선대 마왕들의 숙명이었지.”
“그 말은 결국 실패했다는 거군.”
“선대 마왕들은 모두 쓰러트렸지만…… 결국, 내가 그 자리를 채우고 말았지. 마계는 이미 무너졌으니, 내가 최후의 수호병이 되어 구렁텅이를 지키겠다.”
“역시, 이 아래에 있는 건가?”
하지만 조금 이상했다.
전대 마왕이 하는 말과 세운의 추리를 종합해 보자면 저주라는 게 아우터여야 하는데.
그럼 저 마왕은 이미 아우터에게 잠식당해 있어야 말이 된다.
하지만.
‘아우터는 안 느껴지는데.’
성흔이 반응하지 않았다.
최근 루인이 계속 잠잠하긴 했지만, 아우터 앞에서는 파멸의 성흔이 절로 반응하게 마련인데도 말이다.
“무엇을 찾는지는 몰라도, 이 아래에 숨겨진 건 저주뿐이다. 이미 저주에 노출된 인간은…… 죽일 수밖에 없겠지.”
전대 마왕의 말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찌 되었든, 저 마왕은 세운을 온전히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우터를 수색하는 건 녀석을 처리한 다음에 해도 그만이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여유롭게 다가오고 있는 녀석을 향해 먼저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제아무리 강한 몬스터라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던 세운의 검격을, 녀석은 너무나 손쉽게 막아냈다.
“마신혈에 몸을 담근 건가. 인간의 몸으로 마신혈을 흡수하다니, 칭찬하지. 하긴, 그게 아니었다면 이곳까지 내려오지도 못했겠지.”
전대 마왕의 무기는 손톱이었다.
평범한 손톱은 아니고, 피로 이루어진 것처럼 붉게 번들거리는 손톱. 척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피의 저주가 심겨 있는 것 같았다.
저주와 별개로 세운과 검을 맞부딪치고 있을 정도로 강도 역시 훌륭했다.
“그래봤자, 인간의 몸으로 이 몸을 상대할 수는 없다.”
촤아악!
마왕의 손톱이 쭉 늘어나더니 시야에서 벗어날 정도로 길어졌다.
핏물이 뚝뚝 흐르는 섬뜩한 손톱을 가로지르자, 기울어진 십자 모양으로 붉은 참격이 날아왔다.
카가가각!
그 참격을, 세운은 그저 평소처럼 뒤랑달을 들어 올려 막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참격의 교차점을 향해 정확하게 뒤랑달을 내질렀다.
‘이제 힘은 익숙해졌다.’
구렁텅이를 내려오며 수십, 수백의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했다.
마신체가 된 지금의 몸 상태에 적응하기 위해 일부러 다양한 기술과 전법을 사용했다.
워낙 다양한 면에서 강해졌기에 아직 확인하지 못한 저항이나 면역 등도 존재하지만, 그건 탑을 오르며 차차 확인해 가면 될 일.
째앵!
“인간의 몸으로 내 참격을 막다니. 과연, 칭찬할 만한 무위로군.”
참격이 깨졌음에도 마왕은 당황하지 않았다.
되레 방금의 공격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수십 개의 붉은 참격을 날려왔다.
그때, 세운의 검에 탐욕의 권능이 깃들기 시작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벽사의 검, 사인참마검 ]– 인년 일월 인일 인시에 만들어진 벽사용 도검으로, 순양의 기운이 깃들어 사귀를 베고 재앙을 물리친다 알려진 보검.
위에서 갖가지 몬스터를 상대해 오며 확인해 보지 못했던 것.
바로, 마신체의 몸으로 탐욕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이다.
구렁텅이 밑바닥까지 오는 동안 마주친 몬스터들은 애초에 탐욕의 권능을 사용할 만큼 강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지금.
눈앞의 상대는 이 힘을 확인하기 최적의 상대였다.
촤악!
“……그 검은.”
분명 처음에는 참격의 틈새를 노리고도 저항이 걸렸는데, 지금은 검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참격이 사라졌다.
저 참격은 마왕이 피의 저주를 담아 구현화한 참격.
악한 기운이 담겨 있는 만큼, 벽사검인 사인참마검에게 놀라울 만큼 가볍게 베였다.
“성검이라도 지닌 모양이지만, 이미 숱한 성검이 내 앞에서 부러져 왔다.”
마왕의 망토가 펄렁이며 핏빛 물결이 일어났다.
마왕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했지만, 그의 종족은 흡혈귀라 불리는 고위 혈족.
피와 저주를 다루는 것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 백탑의 묘리에 따라 ‘샤이닝 블레이드’의 속성력이 상승합니다.
이에 세운도 지지 않고 백마법을 사용하여 마왕을 상대했다.
캉, 카앙!
샤아아앗-
구렁텅이의 최심부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했다.
마왕의 몸이 어둠으로 물들어 세운의 검을 피했지만, 모든 공격에 면역인 상태로도 사인참마검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크윽!”
“두 가지 중 하나네. 플라카의 마왕이 내 생각보다 약하든지, 진짜 마왕은 이미 죽었든지.”
보스 몬스터는 강력했다.
하지만, 세운이 좌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신체로 인해 강해졌다고는 하나, 그것을 제외하고라도 상대의 무력은 전대 마왕의 본 힘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 구렁텅이에 묶이며 내 힘은 구렁텅이에 먹혀들어 갔다. 하나…….”
마왕의 눈이 검게 물들었다.
손톱을 포함하여 그의 몸에서 일어나던 피의 물결이 전부 검게 물들더니, 구렁텅이의 최심부 땅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이 몸은 구렁텅이 그 자체가 되었다.”
구렁텅이를 내려오며 보아왔던 각양각색의 저주로 이루어진 안개가 한데 뭉쳐 수십 개의 촉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 마왕의 손발이 되어 세운을 덮쳐왔다.
“이 몸은 이미, 마왕의 힘을 초월했다.”
녀석은 이미 마왕이 아니었다.
처음에 떠들던 모습은 마왕이라는 껍데기에 남은 잔재일 뿐.
그 껍데기를 차지하고 있는 건 아마, 마왕이 처음 언급했던 구렁텅이에 담긴 ‘저주’일 것이다.
그리고 세운은 확신했다. 이 구렁텅이가 아우터와는 전혀 관련 없는 공간이라는 것을.
“제일 유력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운이 다가오는 촉수를 잘라냈다.
마왕의 몸체는 구렁텅이의 저주와 동화중인 듯, 검은 물결에 휩싸여 있었다.
“적은 변신할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아.”
– 색욕의 양막이 당신을 뒤덮습니다.
– 색욕의 양막이 분열합니다.
세운의 옆으로 분신체가 나타났다.
마신체가 되며 정신력까지 늘어난 것일까? 그 까다로운 분신체 또한 이전보다 조금 더 편히 다룰 수 있게 됐다.
“지켜라.”
촉수는 모두 분신체에게 맡긴다.
그사이, 세운은 뒤랑달에 백마법을 주입했다.
– 백탑의 묘리에 따라 ‘샤이닝 샤워’의 속성력이 상승합니다.
빛의 결정체로 이루어진 유성우를 떨어트리는 샤이닝 샤워를 검에 담자, 뒤랑달에 담겨 있던 사인참마검의 힘이 공명했다.
백마법과 벽사의 검.
두 힘이 어울리며 시너지를 이루더니,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다가오는 촉수들을 소멸시켜 나갔다.
“차라리 살아 있는 전대 마왕이었다면 더 싸우기 어려웠을 건데.”
구렁텅이.
이 저주에게는 전대 마왕이 지녔을 노련함이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생명체를 집어삼키며 자신의 저주를 키우고 싶다는 욕망뿐이다.
마치, 아우터처럼.
세운은 그런 적을 상대하는 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타앗!
마신체 덕분인지 8서클 마법을 인챈트하는 속도가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촉수가 거침없이 앞으로 뛰쳐나가는 세운을 막아보려 하였지만, 백마법과 벽사의 힘이 오라처럼 일렁이자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심연의 저주에 대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새까만 어둠에 잠기기 직전, 이제는 머리만 남은 마왕이 오만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세운은 순순하게 이에 답해 주었다.
“당연하지.”
– 바위를 쪼갠 검, 뒤랑달이 ‘사인참마검’에 잠든 벽사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사인참마검’을 통해 추산악 현참정(推山惡 玄斬貞)이 재현됩니다.
사인참마검에서 발현된 벽사의 기운.
압축되고 또 압축되어 강렬한 빛줄기로 변해 벽사의 기운을 떠미는 백마법, 샤이닝 샤워.
“심연은……!”
그 힘이 정확하게 어둠을 찔렀다.
마왕의 이마를 정확하게 파고들더니, 그 뒤의 어둠과 함께.
푸욱!
구렁텅이의 바닥을 파고들었다.
벽사의 기운과 함께 압축된 샤이닝 샤워의 힘이 터져나가며 구렁텅이의 바닥이 빛으로 물들었다.
“깊어질수록, 더욱 어두워진다…….”
깊어질수록 더욱 어두워진다라.
마왕은 마치 ‘다음에 두고 보자.’와도 같이 식상한 유언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니, 구렁텅이의 저주가 정화되었다.
플라카의 금역.
그 어떤 마족조차도 감히 뛰어들지 못했던 금역이 한순간에 정화되었다.
톡.
마왕이 사라진 자리 위로 검은 구슬 하나가 떨어졌다.
주워서 살펴보니 그 안에는 차마 설명하기 힘든 저주의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눈을 반짝입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이렇게 극도로 응집한 저주의 기운은 자신도 처음 본다며 입을 크게 벌립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에게 거래를 제안합니다.
‘저주의 응집체라…….’
세운도 처음 보는 아이템이다. 그도 그럴 게, 구렁텅이 자체가 회귀 전의 세운에게는 도저히 도전할 수 없는 장벽 같은 거였으니까.
‘그나저나…….’
세운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보았다.
구렁텅이의 최심부.
심연이라 불리는 곳.
가장 높은 확률로 이곳에 아우터가 잠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흑익의 전령을 기다려야 하나?’
그래도 의심되는 나머지 장소들은 전부 조사를 맡겨 두었다.
전부 구렁텅이와 비슷하게 금역으로 치부될 정도로 수색하기 어려운 곳들이지만, 그녀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조사할 수 있으리라.
그들이 조사를 하지 못한 곳들만 직접 찾아가면 되니, 아우터를 찾기에 더욱 수월해졌다.
그때.
우웅-
“……파멸의 성흔이?”
세운의 성흔이 반응했다.
분명 구렁텅이의 심부에는 아우터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설마, 여기가 최심부가 아니고 더 깊은 곳에 운석이 박혀 있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의심하고 바닥에 손을 짚어 보았지만, 성흔이 반응하는 건 아래가 아니었다.
“위?”
현재 세운이 있는 곳이 플라카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구렁텅이의 밑바닥인 터라 대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세운에게는 성흔의 힘이 전부가 아니다.
아우터에 반응하는 파멸의 성흔과 세운의 고유 스킬, 여정의 지침표가 반응하며 아우터가 나타난 위치를 어렴풋이 알려주었다.
“여긴……!”
쐐액-!
세운이 그 위치를 깨닫고 놀라기 무섭게, 하늘에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
검은 날개를 지닌 무언가.
평소였으면 곧바로 검을 꺼내 들고 경계했겠지만, 세운은 정체를 단번에 알아채 검 대신 양손을 내뻗어 그것을 붙잡았다.
추락에 가속도가 붙어 충격이 크긴 해도, 어떻게든 잘 낚아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으윽…….”
떨어진 것은 흑익의 전령.
세운의 위치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리고 급하기는 또 얼마나 급했는지, 아직 다 걷히지 않은 구렁텅이의 저주를 날개로 대충 막아내며 내려온 탓에 온갖 저주가 몸을 침범하고 있었다.
우우웅-
일단 응급처치로 그녀의 저주를 푸는데, 그녀의 손이 세운의 상의를 붙잡았다.
“나타났어요.”
“……위치는?”
“플라카. 플라카의 도심을 덮치고 있어요.”
역시나, 성흔과 여정의 지침표가 내놓은 결과는 정답이었다.
아우터가 먼저 플라카를 공격하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회귀 전에 이 시기는 아우터가 전혀 활동하지 않았던 시기였으니.
즉.
‘미래가 바뀌었다.’
원인은 분명하다.
폐왕.
그자가 아우터의 침략을 본격적으로 앞당기고 있었다.
제 58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