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8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81화(581/675)
서리 요새, 카이어.
그 차디찬 얼음 호수 아래에 잠든 아우터는 세운이 처음부터 주의하고 있던 적이었다.
그도 그럴 게, 녀석은 당시에 세운이 직접 코앞까지 찾아가 벌어지는 균열을 채우고 재봉인을 해 두었으니까.
당시 세운에게 신성을 남겨 두었던 마몬이 봉인을 돕지 않았으면, 심각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세운은 스카베의 사건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튜닝에게 카이어의 감시를 부탁해 두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아우터의 공격이 시작됐다니.
“전조는 없었습니까? 관리소에서 감시하고 있던 거 아니었습니까?”
“얼음 호수의 아래는 저희 감시 영역 밖입니다.”
“그래서 그 입구를 감시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담 관리인까지 붙여 카이어의 지하에 있는 막힌 입구를 이십사 시간 감시하였으나, 아무런 전조도 없었습니다!”
튜닝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리는 없다. 세운에게 신성의 직위를 부탁하며 아우터를 쓰러트려 달라고 했던 게 바로 튜닝이었으니까.
그럼, 원인은 두 가지다.
아우터가 스스로 세운과 마몬이 새로 채운 봉인을 깨고 뛰쳐나왔든지.
‘폐왕이 간섭했든지.’
데스힐의 텅 빈 운석. 안에서, 폐왕은 몸을 녹이며 순간이동을 했었다.
도저히 원리를 짐작할 수 없지만, 그 방법으로 카이어의 입구를 거치지 않고 얼음 호수의 지하로 곧바로 이동해 아우터를 깨운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보시다시피 이곳도 위험합니다. 산란장만 처리하고 바로 찾아가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카이어는 세 번째 쉼터입니다! 요새 덕분에 그나마 시간을 끌고 있지만, 아우터를 막아낼 힘이 없습니다.”
“금방…….”
“지금도 이미 철벽 하나가 무너졌습니다. 당장 가지 않으면…… 카이어는 무너질 겁니다.”
세운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튜닝의 말대로, 카이어는 고작 세 번째 쉼터. 카이어의 지휘관이 아무리 뛰어나다고는 해도 아우터의 공격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얼음 호수 위에 바글바글한 몬스터들 모두가 아우터에게 잠식당했다면,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계획대로라면 플라카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플라카의 수비에 대한 계획은 완벽하다. 하지만, 결국 산란장을 치지 못하면 공격은 끝없이 이어진다.
지치지 않는 아우터와는 반대로 플레이어는 결국 지치게 마련이고, 수비만 하다가는 점점 밀리고 말 것이다.
‘아우터의 지능도 걱정이다.’
점점 발전해 나가는 아우터의 지능.
이대로라면 아우터가 계속해서 같은 양의 공격대를 보내지 않고 전략을 바꿀 가능성도 있었다.
그 외에도 산란장의 번식 속도가 빨라지는 등의 변수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플라카는 꼼짝없이 함락당하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세운과 함께했던 디아블로 길드와 함께.
‘어쩌지?’
상황만 본다면 우선 카이어를 지원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혹여나 디아블로 길드가 아우터에게 당할 걱정을 하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찰나의 고민이 억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튜닝이 다시 한마디를 던져 세운을 설득하려던 순간.
“세운 씨!”
전열을 지휘하며 아우터를 막아내고 있던 유서아가 찾아왔다.
이미 상황은 전부 전해 들은 모양.
“가요.”
“위험하다. 산란장을 치지 않으면 결국…….”
“산란장은 제가 맡을게요. 저와 한철 씨, 아르카나 씨가 침투할 생각이에요.”
“그럼 플라카의 수비가 불안해진다.”
“디아블로 길드가 있잖아요. 백현 씨도 수비열을 늘려주고 있고, 무엇보다 다른 길드들도 도와주고 있어요. 절대 밀리지 않을 거예요.”
확실히, 그럴 것이다.
디아블로의 실력은 언제나 세운의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디아블로 길드에 정을 붙이는 만큼, 혹시나, 라는 가설이 지워지지 않았다.
“믿어주세요.”
“…….”
“저희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이럴 때 남아서 세운 씨의 일을 덜어주기 위해 저희도 힘을 기른 거예요.”
유서아와 세운이 눈을 마주쳤다.
믿음.
그래, 믿기로 하지 않았던가?
세운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손목시계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튜닝을 향해 발을 옮겼다.
“부탁한다.”
“맡겨주세요.”
플라카를 떠나기 전, 해야 할 일 역시 잊지 않았다.
– 검은 대지, 플라카에 분노의 함성이 울려 퍼집니다.
–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아우터에 대한 적의가 대폭 늘어납니다.
–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분노의 권능.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탄의 전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흔의 힘을 길드원에게 퍼트렸다.
–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에게 파멸의 권능이 깃듭니다.
성흔에서 신성이 뭉텅 빠져나갔다.
안 그래도 세운이 지닌 세 가지 권능 중에서 가장 많은 신성을 요구하는 게 파멸의 권능인데, 그걸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 모두에 퍼트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갑시다. 튜닝.”
“모시겠습니다.”
시스템 창이 길게 벌어지며 새로운 문이 만들어졌다.
문틈에서 눈송이와 함께 차가운 한기가 흘러나온다.
서리 요새, 카이어.
멸망의 징조가 들이닥친 곳으로 세운이 몸을 옮겼다.
* * *
그 시각, 서리 요새 ‘카이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얼음 호수와 북부의 입구라 할 수 있는 경계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카이어에서는 항상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
그만큼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익숙한 병사들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쿠궁!
“F-12번 철벽이 무너졌습니다!”
“정문도 위험합니다!”
호수 위의 몬스터들이 검은 슬라임 같은 액체에 뒤덮였다.
그 순간부터 몬스터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원래대로라면 정처 없이 떠돌다가 우연히 성벽을 들이박거나 주변에서 영역 다툼이 일어날 때 정도만 상대하면 됐었는데, 지금은 몬스터들 모두 한 몸이 된 것처럼 카이어를 공격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지휘를 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문은 봉인한다! 어차피 나갈 일도 없으니 꽉 막아 버려!”
“네!”
“F-12번은 옆에 절벽을 무너트려서 바위로 막아라!”
“그, 그러면 다시 수복하기가 불가능할 겁니다! 자칫하면 잔해가 기지에 닿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어차피 여기서 무너지면 전부 의미 없다! 무너트려!”
“큭! 알겠습니다!”
서리 요새의 지휘관, 세리 버캐니어. 그녀의 지휘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몬스터들의 돌진에 성벽이 쿵쿵 울려대고, 성벽 위에서는 대포가 쉴 새 없이 쏘아졌다.
펑! 퍼엉!
“아, 안 죽어! 저놈들, 대체…….”
제국에서 공수받은 대포.
북부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대량의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포알이 연신 쏘아졌지만, 몬스터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대포알에 직접 맞아 얼음 위를 나뒹굴어도, 폭발에 휩쓸려 불꽃에 잡아먹히더라도 녀석들은 일어섰다.
정체 모를 검은 액체. 그것에 뒤집힌 순간, 몬스터들은 불사신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결정을 해야 합니다! 대포알도 이제 슬슬 한계입니다! 저희 힘으로는 저것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사기를 불태우며 몬스터들을 막아내던 카이어의 용맹한 병사들. 그들의 손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쓰러지지 않는 몬스터.
무너지고 있는 철벽.
북부 전체에 울려 퍼지는 기괴한 울음소리까지.
이런 상황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되레 이상한 일이었다.
“막는다!”
“지휘관님!”
“우리가 이곳에 있는 목표가 무엇인가! 제국을 지키기 위해,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우리가 있는 것이다!”
“제국은 저희를 버렸습니다! 식량 보급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사냥을 나서야 했고, 포탄조차 재활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희가 왜!”
“한슨! 제국에는 제군의 하나뿐인 아내가 있지 않나!”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럼, 버릴 수 있나!”
“…….”
한슨이라 불린 자가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떨었다.
이는 비단 한슨에게만 향한 말이 아니었다.
지휘관의 우렁찬 목소리는 포탄이 떨리고 몬스터가 울부짖는 소음을 뛰어넘어 카이어의 병사들에게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소중한 가족이 살고 있는 우리 집의 문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올리바, 라언, 루카스, 레비! 너희는!”
그녀가 부른 네 명의 병사.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혼자라는 점.
애초에 고아인 상태로 징집됐든지, 카이어에서 근무하는 동안 가족이 전부 죽어 혼자가 되었든지, 그들은 제국에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있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세리 버캐니어가 외쳤다.
“나를! 이 세리 버캐니어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가족이라 생각하고 카이어를 지켜다오!”
일순간, 몬스터의 포효가 전부 지워지는 듯했다.
대포가 불길을 뿜어대고 있음에도 병사들의 귀에는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 직후.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까지 울리며 사라져간 후에는.
“카이어를 지켜라!”
“가족을 지켜라!”
“그래, 한번 해 보자! 안 그래도 한동안 잠잠해서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고!”
“들이박아 보자고!”
병사들의 함성이 얼음 호수를 울렸다.
병사와 몬스터.
두 세력이 누가 더 목소리가 큰지 대결이라도 하듯이 소리를 내지르고, 병사들의 열기로 인해 카이어의 냉기가 식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꾸르르륵-”
카이어의 병사들은 훌륭했다.
저 많은 몬스터. 그것도 아우터에게 잠식당한 몬스터들을 상대로 이렇게나 잘 버텨내고 있다니.
카이어의 병사들이 아니었다면 제국의 그 어떤 군단이 왔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쿠궁!
지치지 않고 밀려드는 몬스터를 막아내기에 인간의 몸은 너무나도 나약했다.
그나마 카이어가 아우터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도 두꺼운 철벽 덕분이었다.
철벽 덕분에 아우터에게 잠식당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카라라라라락-!!”
드넓은 얼음 호수의 중앙.
포탄이 박혔을 때도 뚫린 적 없었던 두꺼운 얼음이 깨져 나가며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이 검은 액체로 뒤덮인 괴물.
녀석은 공룡을 닮은 머리를 얼음 밖으로 내밀고는 파충류 특유의 번들거리는 동공으로 카이어를 직시하였다.
“……지휘관님.”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저건 노력이나 끈기, 열정 같은 걸로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다.
저 괴물이 철벽을 들이박는다면 철벽이 무너지는 건 물론이고 카이어의 기지까지 짓뭉개질 게 분명하다.
“쿠륵.”
“꾸르륵-”
철벽을 공격해 오던 몬스터들 역시 일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치 주인을 만난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길을 넓히며 괴물이 철벽을 으스러뜨려 주길 기다렸다.
“카라라라락-!!”
호수의 두꺼운 얼음을 살얼음처럼 부수며 헤엄쳐 오는 괴물.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세리 버캐니어가 낮게 중얼거렸다.
“……제군.”
카이어의 병사들을 보고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눈보라로 인해 꽉 막힌 하늘은 버캐니어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 흑탑의 묘리에 따라 ‘다크 플레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르르릉-!!
하늘에서 검붉은 뇌전이 얼음 호수에 내리꽂혔다.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괴물의 움직임이 멈추고, 얼음 호수의 모든 몬스터가 저도 모르게 벼락이 내려친 하늘을 올려보았다.
“도착입니다. 정세운 플레이어님.”
“……역시, 봉인이 풀린 건가.”
탑의 세 번째 쉼터, 서리 요새 ‘카이어’.
그곳에 세운이 돌아왔다.
제 58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