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8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83화(583/675)
설룡의 크기는 거대하다.
애초에 드래곤이라는 생물 자체가 거대한 덩치를 지녔으니까.
세운이 처음 마주쳤을 때는 아우터에 저항하느라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나이에 비해 덩치가 작은 편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성장한 모양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의 크기는 돋보이지 않았다.
‘레드 드래곤, 블루 드래곤, 골드 드래곤…… 전 속성의 드래곤이 전부 찾아온 건가?’
당연하게도, 하나의 속성을 담당하는 드래곤이 하나뿐일 리 없었다. 드래곤의 수가 아무리 적다고는 하나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거기에다 설룡처럼 늪과 안개 등, 다양한 하위 속성을 맡은 드래곤까지 합쳐지니 그 수가 오십을 거뜬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군. 저게…….”
“라피스, 어떤가? 자네 말이 틀린 것 같은데? 어린 용이 찾아와서 내뱉는 헛소리라고 하지 않았나?”
“크릉, 저딴 게 진짜 있다니. 상관없다. 이제 곧 내가 전부 불태워 버릴 테니.”
그들이 모인 것 자체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했다.
하긴, 한 마리만 나타나도 지상의 생명체 모두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절하는 게 바로 드래곤이다.
한 나라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 나라를 순식간에 불태워 버릴 수도 있는 게 드래곤이다.
이에 카이어의 병사들은 물론, 아우터들까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운이 보고 있는 건 그 모든 드래곤이 아니었다.
단 하나.
설룡의 뒤에 서서 누구보다도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드래곤이었다.
“드래곤 로드…….”
세 번째 쉼터에서 설룡과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아우터의 상황을 전하기 위해 드래곤 로드를 찾아가겠다고 했었지.
아무래도 그녀가 드래곤 로드를 성공적으로 설득한 모양이었다.
“……저게, 네가 말했던 회귀자더냐?”
“그렇습니다. 로드시여.”
세운에 대해서도 미리 말을 나눴는지, 드래곤 로드는 아우터가 아닌 세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 어떤 아우터보다도 먼저 드래곤의 위압감을 떨쳐낸 아우터, 얼음 아래 봉인되어 있던 공룡 모습의 아우터가 몸을 움직이더니 세운을 물어뜯기 위해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크라라락-!”
빈틈이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세운은 전혀 방심하지 않았다.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 아우터를 상대하려던 중, 세운과 아우터의 사이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로드께서 말씀하시는데 어딜 끼어드느냐. 더러운 것.”
레드 드래곤.
그가 인상을 구기자마자 어떠한 캐스팅이나 마법 준비 동작도 없이 엄청난 화력의 불길이 생겨난 것이다.
과연, 불의 수호자라고도 불리는 레드 드래곤.
그다음으로 그의 옆에 있던 부드러운 눈매를 지닌 골드 드래곤이 날개를 한 차례 펄럭이자.
“라피스의 말에 동의하는 건 오랜만이네요.”
콰르릉!
콰르르릉!!
쾅, 파지직!
불길 아래로 수백 다발의 번개가 아우터에게 내리꽂혔다.
아무리 높은 속성 저항력을 지닌 아우터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마법에 직격당하면 재생까지 시간이 걸린다.
아우터도 이를 깨닫고는 서둘러 수면 아래로 도망쳤다.
“그렇다고 도망가는 건 안 되죠.”
곧이어 한 드래곤의 말과 함께 얼어붙는 얼음 호수.
덕분에 아우터는 봉인이 되어 있을 때처럼 호수 안에서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위력.
역시, 마나 그 자체이자 마법의 근원이라 불리는 드래곤다운 무력이었다.
“그 말이 정말이었구나. 저 꼴이 나고서도 죽지 않다니.”
“언데드마저도 저 천재지변 안에서는 가루가 되어 흩날렸을 텐데.”
드래곤 모두 똑똑히 느꼈다.
불의 벽에 타고, 번개로 지져지고, 호숫물과 함께 얼어 버린 상태로도 아우터가 살아 있는 것을.
심지어, 드래곤이 직접 얼린 얼음 속에서 몸을 떨며 빠르게 얼음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빠직!
당장 얼음 위에 균열이 거칠게 일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회귀자여,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아우터가 얼어 있는 사이, 여유가 생긴 세운에게 드래곤 로드가 말을 걸어왔다.
어떠한 능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저 육성으로 말을 내뱉은 것뿐인데, 그 말에는 엄청난 무게감이 담겨 있었다.
흔히 드래곤을 준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표현하지만, 저 로드만은 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보아도 될 지경이었다.
“정세운이라고 합니다.”
세운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마신을 대면해 본 세운이었기에 상대가 아무리 드래곤 로드라고 해도 떨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금의 상황을 도우러 나타난 존재들이었기에 존대하였다.
“정세운…… 그렇느냐. 그대와 나누고 싶은 말이 많지만…….”
빠직, 빠직-
“대화는 이 사태를 진정시킨 후에 나누는 게 맞겠도다.”
세운이 기억하기로 아우터는 이미 냉동에 대한 학습을 끝냈다.
아마, 아래의 저 아우터 역시 마찬가지겠지.
당장 균열이 얼음 전체에 퍼져 있으니 얼음을 완전히 깨부수고 나오는 것도 얼마 안 걸릴 것이다.
“우리가 참고해야 할 사항이 있느냐?”
“현재까지 알아내기로 아우터와 함께 떨어진 운석이나 정령의 힘. 그리고 제 파멸의 권능을 제외하고는 아우터를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알겠도다. 아직 실험해 볼 게 많겠지만, 용언이라 하더라도 저 존재를 소멸시킬 수는 없겠지.”
“강대한 힘으로 아우터가 잠식 중인 숙주를 죽이는 건 가능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우터는 멀쩡히 남아 새로운 숙주를 찾거나 주변의 아우터에게 흡수되어 더욱 강해지겠지만 말입니다.”
“그래. 그대의 힘은 얼마나 남았느냐?”
“……이곳 말고도 아우터가 공격해 온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키기 위해 힘의 절반을 써 버렸습니다.”
“그럼 지금은 힘의 절반도 남지 않겠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간을 끌어주는 것이겠지?”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과연, 드래곤 로드.
상황 파악도 빠르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덕분에 세운이 크게 설명할 것도 없이 상황이 빠르게 호전되었다.
“모두 들었느냐?”
“네, 로드시여.”
“움직이거라. 오랜만에 우리의 본 소임을 수행할 때가 되었노라.”
펄럭-
드래곤 로드의 지시에 상공의 모든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곤 미리 짜둔 것처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더니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용이다!”
“우, 우리 편은 맞는 거겠지?”
“방금 그 괴물을 날려 보낸 거 못 봤어? 아군이라고!”
“다들 흥분하지 마라! 변하는 건 없다, 적에게 집중해라!”
용이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서리 요새였다.
혹시나 인간에게 관심이 없거나 무시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오랜만에 보는 인간들이군요.”
나타난 건 화이트 드래곤.
순백의 비늘은 설룡의 것과 비슷했지만, 그 크기나 느껴지는 아우라는 확실히 그 이상이었다.
지휘관의 말에 따라 열심히 아우터를 막아내던 병사들도 화이트 드래곤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넋 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눈보라 속에서 가치를 증명한 인간들이라면, 지켜줄 용의가 있지요.”
까드드득!
“처, 철벽이!”
화이트 드래곤이 옆의 설산에 착지하여 눈을 감았다.
그러자 카이어 전체에 거대한 마법진이 드리우더니 카이어의 파손된 철벽 위로 단단한 얼음이 뒤덮였다.
고작해야 얼음이지만, 화이트 드래곤이 만든 얼음인 만큼 그 강도는 원래의 철벽보다 더더욱 단단했다.
“과연, 작은 것들도 제 숨결을 버티나 볼까요?”
화이트 드래곤의 입에서 새하얀 서리 가루 같은 게 뿜어져 나왔다.
드래곤의 고유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브레스.
그중에서도 화이트 드래곤이 뿜어내는 브레스는 세상 모든 것을 얼게 만드는 서리 가루였다.
“꾸-”
“꾸르륵-”
카이어를 공격하던 아우터 무리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어지간한 냉동 상태에 면역이 된 그들이라도 화이트 브레스의 위력을 쉽게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은 아니다.
저렇게 꽁꽁 얼어붙었는데도 얼음 안에서 눈을 데굴거리며 몸을 떨고 있는 걸 보니 깨어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럼 이대로 부숴 버린다면요?”
화이트 드래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포효.
드래곤 피어라 불리는 그 포효에는 단순히 어깨를 짓누르는 위압감만 아니라 실질적인 물리력까지 존재했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아우터들의 표면에 금이 일기 시작했고, 그 균열은 표면만이 아니라 내부의 아우터까지 가르며 수천 갈래로 깨부숴졌다.
“흐음, 과연. 그렇네요.”
“꾸륵-”
그럼에도 아우터는 죽지 않았다.
비록 숙주는 죽었지만, 아우터들은 수천 조각이 난 상태로도 꾸물거리며 한데 모여 슬라임 같은 형태를 이루었다.
그러더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숙주를 뒤덮어 거대한 형체를 이루었다.
드래곤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고도 타격 하나 없어 보인다.
“네가 너무 나약해서 그렇다! 제아무리 질긴 놈들이라 해도, 죄다 녹여 버리면 그만이다!”
콰아아아앗!
블랙 드래곤이 상공을 날아다니며 브레스를 쏘아댔다.
블랙 브레스. 새까만 산성 용액을 발사하여 생명체는 물론이고 바위조차 녹여 버리는 그 공격에 아우터가 괴로워하며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공격이 조금 먹히나 싶었지만.
“자신만만하게 뱉어낸 것치고는 힘이 부족해 보이는데요?”
“젠장! 대체 뭐냐, 저것들은!”
아우터는 산성 용액 안에서 괴로워하며 꿈틀거리다가 금방 평정을 되찾고 본래의 형체를 되찾아 갔다.
이는 다른 드래곤들의 공격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운의 말을 들었지만, 혹시나 하여 자신의 특기로 아우터를 쓰러트려 보려고 하였으나 그 모두가 실패했다.
‘저런 공격에 쓰러졌다면 회귀 전의 탑도 무너지지 않았겠지.’
드래곤이 아니라 신의 공격마저 버텨낸 아우터다. 저런 공격으로 소멸할 리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설룡이 아우터와 접촉하여 잠식당할 뻔했다는 것을 듣고 아우터와 접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저 인간은 이것들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냐!”
블랙 드래곤이 포효하듯이 외치며 세운을 노려보았다.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성질 나쁜 것들이 하나둘 섞여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이 만병지함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단검에 파멸의 힘을 실은 채로 이제 막 산성에서 탈출한 아우터를 향해 내던졌다.
푹.
“쿠르르륵-”
치이이익!
단검에 맞기 무섭게 타들어 가는 아우터.
불에 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새까만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간 아우터는 말 그대로 ‘소멸’하였다.
블랙 드래곤 말고도 모든 드래곤이 이 장면을 보았기에 모두가 세운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카라라라락!”
콰앙!
마침내 얼음을 깨트리고 거대한 아우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서 숙주를 잃고 어슬렁거리던 아우터까지 흡수하여 비늘이 더욱 단단해지고, 덩치도 더 커졌다.
“그대는 힘을 아끼고 있거라.”
세운이 대응하려던 순간, 드래곤 로드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믿음직스러운 목소리.
하지만, 그다음으로 드래곤 로드의 목에서 나온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멈추거라.”
“카락-”
허공에 떠 오른 채로 시간이 정지당한 것처럼 모든 행동을 멈춘 아우터.
실제로 목격한 것은 처음이지만, 여러 문헌으로 배우기도 하였고 마몬에게 이보다 더한 언어를 배우고 있는 세운이기에 알 수 있었다.
방금 드래곤 로드의 입에서 나온 말은 평범한 언어가 아니다.
용언(龍言).
오직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용의 격을 품고 있는 언어.
“고개를 숙이거라.”
쿠궁!!
아우터가 바닥으로 추락하며 얼음 호수 위에 머리를 처박았다.
검은 비늘이 깨져나가며, 아우터의 얼굴이 짓뭉개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
그들이 얼음 호수 위의 아우터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제 58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