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8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86화(586/675)
세운의 공격이 쏟아져 내린 후, 드래곤들이 운석으로 만들어 낸 감옥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저 새까만 연기가 끝도 없이 타오르고 있을 뿐.
아우터는 물론, 그 숙주였을 생명체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대, 엄청난 힘이로다. 아우터가 아니더라도 저 정도 크기의 생명체를 한 번의 공격으로 모조리 증발시키는 건 드래곤에게도 어려운 일일 터인데.”
“덕분입니다.”
예의상 남긴 말이 아니었다.
저 아우터가 제대로 된 컨디션을 가지고 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운의 공격을 피하든가, 수면 안으로 들어가 충격을 흡수하든가, 비늘을 이용하여 공격을 최대한 받아내는 등.
녀석이 어떠한 방법을 사용했더라도 이렇게 한 방에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운석 덕분이지.’
운석으로 만든 감옥.
이는 단순히 아우터를 속박할 뿐이 아니었다.
운석 안에 갇힌 아우터는 비늘조차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며 힘이 급속도로 약화되어 있었다.
만약 드래곤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와아아아아!”
“살았다, 살았어!”
“우리가 이겼다고!”
“제국을 지킨 거야! 가족을!”
“누님, 저희가 해 냈습니다!”
“지휘관님! 고생하셨습니다!”
“잘했다, 제군들!”
승패를 장담하기 이전에, 카이어는 확실히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즐거워하는 카이어의 병사들을 보고도 기쁘기는커녕, 이상했다.
“회귀자여, 몸은 괜찮느냐?”
“오랜만입니다.”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자네가 아니었다면 저것들은 인간들의 요새를 부수고 순식간에 북부를 빠져나갔겠지.”
맞는 말이다. 드래곤들이 등장한 타이밍은 제법 미묘했으니까.
세운이 아우터와 대치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호수에 아우터가 거의 떠나 있었을 것이다.
“하나, 어찌 자네가 이곳에 있는 것이냐? 혹여 그 시점부터 쭉 이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냐.”
“아닙니다. 소식을 듣고 찾아왔을 뿐입니다.”
“탑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들었다만, 그게 이렇게 쉽게 오갈 수 있는 구조였더냐?”
그녀의 타당한 질문에 세운이 살짝 당황했다.
대답하자면, 당연히 세운의 전담 관리인 튜닝 덕분이다.
그녀에게 이미 탑의 멸망과 회귀에 관해 말했다지만, 쉼터의 거주민이나 다름없는 그녀에게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짐작이 어려웠다.
세운이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무렵, 순서를 기다리듯이 저 뒤에서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드래곤 로드가 가까이 다가왔다.
“눈의 아이야. 잠시 이 인간과 대화할 시간을 내주겠느냐?”
“물론입니다. 로드시여. 얘기는 다음에 이어서 하자꾸나, 회귀자여.”
위기를 모면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의 눈은 차라리 설룡과 대화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깊어 보였으니까.
“얘기를 끊어서 미안하노라.”
“아닙니다.”
“하나, 그대를 돕기 위함이었노라. 대답하기 곤란해하는 듯 보였으니.”
확실히 곤란하기는 했다.
하지만, 세운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지금부터의 대화가 더욱 곤란하게 느껴질 거라는 걸.
“그러니, 지금부터는 과인이 듣도록 하겠노라.”
그 말과 함께, 주변으로 마나의 파장이 퍼져나갔다.
8서클에 도달한 세운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퍼져나가는 것이 세운과 드래곤 로드를 바깥으로부터 격리하는 일종의 결계라는 사실을.
드래곤들의 인식에서조차 벗어나 그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모습이나 소리 등, 모든 것을 감추는 결계.
그야말로 드래곤 로드만이 가능한 초월적인 마법이었다.
“무엇이 듣고 싶으신 겁니까?”
“눈의 아이와 하던 얘기를 계속하면 되노라.”
“그건…….”
“그대가 눈의 아이에게 전한 얘기는 모두 들었노라. 그러니, 그에 대해 더욱 깊게 들어보고 싶노라.”
세운이 설룡에게 했던 얘기.
아우터와 탑, 그리고 세운의 회귀에 관한 얘기였다.
“중요한 말은 다 전했다고 기억합니다.”
“아니지. 가장 중요한 얘기가 빠져 있었노라.”
“가장 중요한 얘기라면.”
“눈의 아이에게는 세상이 멸망에 다가선다고 말했다지. 그대는 그것을 막기 위해 아우터를 쓰러트리고 있다고 했고.”
“그렇습니다.”
“과인 역시 그렇게 들었다만, 무언가 위기감이 느껴지더구나.”
“……위기감?”
“이래 봬도 만년의 시간을 살아온 몸이로다. 눈의 아이에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릿속이 정리되며 숨겨진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니라.”
세운이 설룡에게 설명할 때, 한 가지 빠트린 내용이 있었다.
아니, 빠트렸다기보다는 확실하지 않아 자세히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바로.
“멸망에 가까워진 게 아니라, 이미 한 차례 멸망한 게 아닐까 하는 숨겨진 진실 말이로다.”
탑의 시련과 쉼터.
그 모든 것이 이미 멸망한 차원의 잔재가 아닐까 하는 사실.
확실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플라카까지 올라오며 듣고 보아온 정보로 생각했을 때 이제는 거의 확신을 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확실하도다. 어째서 지금까지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조차도 그대가 말한 ‘탑’의 개입이겠지. 이 세계는, 이미 멸망했도다.”
드래곤 로드의 말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드래곤 로드라고 해도 결국은 쉼터의 거주민이다. 그런 자가 자신이 이미 멸망한 세계의 잔재라는 것을 자각해도 되는 것일까?
이 대답은 세운이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이, 제삼자의 개입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제가 끼어들 수밖에 없겠군요.”
시스템 메시지가 길게 늘어지며 문이 만들어진다. 그 사이로 나타나는 건 당연하게도 튜닝이었다.
원래는 거주민에게 시스템 메시지 같은 게 보일 리 없지만, 드래곤 로드는 튜닝이 나타나기 전부터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난 방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초월적인 인지 능력 때문인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 덕인지는 모른다. 드래곤 로드는 그저 차분하게 튜닝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탑’에서 나온 존재인가 보구나.”
“그렇습니다. 드래곤 로드. 튜닝이라고 합니다.”
튜닝이 나타났다는 건 탑이 정식으로 이 일에 개입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튜닝은 차분하기 인사를 마친 뒤 망설임 없이 드래곤 로드의 질문에 즉답을 내놓았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맞습니다.”
“……그런가.”
“이미 멸망한 차원의 잔재를 끼워 맞춰 이루어진 곳이 바로 탑. 그리고 그곳을 관리하는 곳이 바로 저희 관리소입니다. 정세운 플레이어에게도 제대로 설명한 적은 없었죠.”
이미 확신한 사항이지만, 직접 들으니 드래곤 로드라고 하여도 여파가 큰 모양이다.
다만, 이를 들은 드래곤 로드의 표정이 짐짓 어두워졌다.
“그럼, 과인은…… 우리들은 이제 기억을 잃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인가.”
튜닝은 탑의 관리자.
이상이 생긴 층을 관리할 의무가 있었다.
튜닝이야 세운의 전담 관리인이기에 예외라고 해도, 거주민이 자신의 존재와 세계의 정체를 깨달은 이상 윗선에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이 귀에 들어가면, 쉼터를 담당하는 관리소가 분명 무언가 태도를 취할 것이다.
“물론 그렇습니다.”
“…….”
“본래라면 관리소에서 어떻게든 후처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본래라면?”
설명을 이어가던 튜닝이 빙긋 웃음 지었다. 드래곤 로드를 안심시켜 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런 식으로 관리가 들어가는 이유는 차원을 멸망이라는 굴레로부터 돌이키기 위함입니다. 그래야만 차원의 잔재가 형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혹, 그 멸망의 원인이 아우터라는 말인가?”
튜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즉, 이 쉼터는 멸망의 굴레로부터 벗어났으니 굳이 굴레를 되돌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허어…….”
“거주민이 진실을 깨달은 건 분명 위험 사항이지만, 멸망을 피해 간 이상 저희가 간섭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드래곤 로드의 눈에서 온갖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할 말이 많겠지만, 이를 들은 세운도 궁금한 점이 생겨났다.
“그럼 제가 지금까지 지나쳐 온 쉼터들도 마찬가지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애초에 저희가 정세운 플레이어에게 아우터의 토벌을 의뢰한 이유도 쉼터를 멸망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 시련은…….”
“시련은 조금 다릅니다. 그 역시 멸망한 차원과 관련 있지만, 일종의 파편이라 할 수 있죠. 몇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말 그대로 시련일 뿐, 굳이 크게 간섭할 필요는 없는 곳들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그 사실을 말해 주는 겁니까?”
최근까지만 해도 튜닝은 관리소에 관한 얘기를 거의 해 주지 않았다.
세운과 가깝다고 해도 그는 결국 관리소의 사람이라 플레이어인 자신과의 거리는 철저하게 조절하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정보를 듣게 되어서 세운도 놀랄 지경이었다.
“정세운 플레이어님의 위치가 벌써 아홉 번째 쉼터입니다. 그곳까지의 아우터를 모두 정리해 주셨지 않습니까.”
“일종의 성과급인 겁니까?”
“하하, 그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애초에 탑이 멸망의 굴레에 다다르지 않도록 차원의 잔재를 관리하는 게 저희의 주 역할이었는데 그것을 이렇게나 도와주셨으니, 저희 모두가 정세운 플레이어의 공로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탑의 역할까지 들어 버렸다.
짧은 대화였지만,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많은 비밀이 풀린 기분.
세운도 그렇게 느낄 정도인데, 갑작스럽게 이러한 정보를 들은 거주민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허허, 놀랍도다…….”
드래곤 로드 정도가 되면 세상의 거의 모든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런 존재가 저렇게 당황하며 헛웃음을 흘리다니, 이는 그 누구도 쉽게 보지 못할 모습일 것이다.
하나, 그래도 드래곤 로드는 드래곤 로드.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튜닝에게 질문을 해 왔다.
자신의 세계를 관리하고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가 눈앞에 있으니 이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보낼 수 없는 것일 터다.
“멸망의 굴레로부터 벗어났다고 해도 결국 이 세계는 ‘잔재’일 뿐. 그럼…… 앞으로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것이느냐?”
“저희도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가장 먼저 정상화된 쉼터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다만…….”
드래곤 로드를 안심시키듯이 줄곧 미소 짓고 있던 튜닝의 표정이 처음으로 조금 어두워졌다.
“굴레를 벗어났다고 해도, 결국 이곳은 잔재.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는 건 무리일 겁니다.”
“……그렇구나.”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다만, 튜닝도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혼란스러우시겠지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는 희망을 품으셔도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곳을 잘 조율해 주시길 바랍니다.”
“조율은 드래곤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이미 한 번 실패했었다니 자신은 없지만, 더더욱 노력해 보겠노라.”
“감사합니다.”
대화가 끝나간다.
무척이나 관심이 생기는 대화였지만, 아쉽게도 세운은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대화를 끊고 튜닝에게 말을 걸었다.
“튜닝, 플라카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저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네, 바로.”
디아블로 길드를 믿는다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혹시 모를 위기를 대비해서라도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비록 신성이 바닥난 상태여서 돌아가도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운석으로 된 무기를 쥐고 싸우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환호하는 카이어의 병사들과 드래곤 로드가 결계를 펼친 것을 깨닫고 차분히 숨을 죽이고 있는 드래곤들을 뒤로 하고 플라카로 돌아가려던 중.
“그대, 회귀자여.”
뒤에서 드래곤 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우리를 구해 주었도다. 중간계의 조율자인 우리의 역할을 대신하여, 우리가 구하지 못했던 차원을 구해 주었도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드래곤은 은혜를 입고도 방관하는 존재가 아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를 갚아야겠지.”
드래곤 로드가 손톱을 까딱거렸다.
세운의 품에서 아주 오래전에 받은 물건이 하나 떠 올랐다.
‘설룡의 역린.’
그 순백의 비늘이 세운과 드래곤 로드의 중간에서 멈췄다.
“그대 덕분에 우리 세상은 멸망을 피했지만, 아직 멸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상 역시 존재하겠지.”
드래곤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증거, 역린.
거기에 드래곤 로드의 힘이 깃들기 시작했다.
역린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모든 드래곤들에게 신뢰를 사는데, 드래곤 로드의 힘이 깃든 역린이라니.
아마, 저것을 내미는 순간 드래곤들의 호의를 사는 것을 넘어 존경심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자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노라. 단순히 멸망의 굴레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탑이라는 곳에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설룡의 역린에 드래곤 로드의 힘이 완전히 깃들었다.
역린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결코 심상치 않았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이 비늘은 이미 절세의 보물이나 다름없다며 눈을 반짝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마몬이 눈을 반짝일 정도의 보물. 그 위로 8서클에 도달한 세운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마법진과 용언으로 추정되는 언어가 새겨졌다.
“과인을 포함한 모든 드래곤이 그대를 도우러 가겠노라.”
그렇게, 세운은 카이어의 드래곤이라는 듬직한 지원군을 얻게 되었다.
제 58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