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8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87화(587/675)
“플라카입니다.”
“감사합니다.”
“두 지역이 정리되면 저도 조금 바빠질 것 같으니,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드래곤 로드에게 받은 지원 약속.
운석이나 파멸의 힘이 없이도 아우터를 밀어붙였던 드래곤들이 도와주겠다는 말은 무척이나 큰 의지가 되었다.
서리 요새에서도 파티를 열어야 한다며 세운을 초대하였지만, 세운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곧바로 플라카에 도달했다.
‘무사하겠지?’
세운이 곧장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그래도 튜닝이 좋은 위치에 내려준 덕분에 금방 플라카의 도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투는 끝난 것 같은데.’
아우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플레이어들의 가쁜 숨소리만 연신 들려왔다.
“마스터…… 오셨습니까.”
세운을 가장 먼저 배웅한 건 역시나 해리였다.
바닥이라도 구른 것처럼 전신이 땀과 흙으로 범벅되어 있었는데, 전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상황은?”
그리고 대답이 들려온 건, 해리가 아닌 그 뒤쪽에 선 거한의 남성 쪽이었다.
“으하하하!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고 들었소! 이런 괴물들을 혼자서 처리하고 벌써 도착하다니! 과연, 대단하오!”
브린 자르.
그의 손에 들린 운석으로 만들어진 전투 망치는 한 번만 더 휘두르면 곧바로 부서질 것처럼 위태롭게 금이 가 있었다.
고창석이 운석으로 만든 장비라면 내구도만은 보장되어 있을 텐데, 그런 망치를 저 꼴로 만들다니.
저 망치로 얼마나 많은 아우터의 머리를 깨부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브린 자르의 시원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해리가 대답을 이어갔다.
“이곳 상황은 간신히 정리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공격대가 대략 한 시간 전이었습니다.”
“유서아는?”
“마스터가 말한 대로 산란장을 향했습니다. 강한철 님, 아르카나 님과 함께. 폭발음이 일어난 것을 보니 전투는 진작 시작된 것 같습니다.”
“폭발음?”
“아무래도 계획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만, 아직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습니다. 길드챗에도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 전투 중이 아닐까 싶습…….”
콰아앙-!!
해리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 위치는 당연하게도 아우터가 잠식한 산란장.
“이곳, 정리는 맡겨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마스터.”
타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운의 신형이 다시 한번 빠르게 날아올랐다.
가는 길에 누군가 지쳐서 쓰러지며 바닥에 떨어트린 운석검도 하나 주워들었다.
신성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카이어의 괴물 같은 녀석이 나타난다면 이 정도 신성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아직 싸우고 있다.’
신성이 떨어졌다지만, 감각만은 여전히 예민하다.
산란장에서는 다양한 기척이 느껴졌지만, 그중에서도 단 하나.
특히나 거대한 기척은 역시나 아우터의 것이었다.
‘카이어의 것보다는 약하지만, 충분히 강한 녀석이다.’
지금 세운에게 남은 신성으로 상대할 수 있나 의심이 들 만할 정도의 강적.
그래도 나태의 권능까지 사용하여 운석검을 휘두른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중, 거인에게 짓밟히기라도 한 듯이 납작하게 눌린 채로 죽어 가는 아우터들이 보였다.
‘강한철인가.’
그다음으로는 독에 녹은 것처럼 반쯤 허물어진 알집.
그것을 넘자, 나무 위로 거대한 아우터가 보인다.
“꾸르르르르륵-!”
도착하자마자 아우터에게 일격을 날리기 위해 남은 힘을 쥐어짜며 숲을 넘어서는 순간 세운의 눈에 보인 건, 아우터의 최후였다.
푸북.
– 플레이어 유서아가 ‘#$!?%’를 지배합니다.
여왕을 지배하고 있던 아우터의 동공이 붉게 물든다.
아우터라 하더라도 유서아의 고유 권능인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꾸르-”
저항을 멈추고 꼼짝없이 움직임을 멈추고 마는 아우터.
그래도 그녀의 검이 닿기 전, 위험을 깨닫고서 굼벵이처럼 몸을 돌돌 말아 여린 복부만큼은 철저하게 가리고 있었다.
드드득-
유서아의 힘이 강해졌다고는 해도, 저 거대한 아우터를 멈출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초.
아우터 역시 이 상황이 금방 끝날 것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몸을 떨었지만.
“한철 씨!”
아우터는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어느샌가 자신의 품속으로 들어와 두꺼운 근육을 한껏 부풀리고 있는 남자와 말이다.
–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을 사용합니다.
쾅!!
그의 주먹이 아우터의 아래턱을 강타했다.
몸을 단단히 경직시키고 있었는데도 머리가 들썩이며 돌돌 말려 있던 몸이 약간 풀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텼다는 생각에 안심하기도 전에.
– 플레이어 강한철이 ‘진군(進軍)’을 사용합니다.
강한철의 공격이.
– 플레이어 강한철이 ‘격돌(激突)’을 사용합니다.
콰콰쾅!!!
쉴 새 없이 몰아쳤다.
파멸의 힘이 깃든 주먹은 아우터의 몸을 서서히 펴내다가 이내 유서아의 지배가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 플레이어 강한철이 ‘종전(終戰)’을 사용합니다.
쿠궁!
지면을 뚫고 올라온 악어의 형상이 아우터의 아래턱을 강타했다.
애써 웅크리고 있던 아우터의 몸이 활짝 펼쳐지며 가장 연약한 부위라 할 수 있는 곳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위에서 들려오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고생했어요~”
카드를 타고 상공에 뜬 채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아르카나가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조커 카드가 낫의 형태로 바뀌고, 이어서 이미 사용한 조커 카드를 제외한 52장의 트럼프 카드가 낫에 달라붙더니.
촤르르르-
여왕을 집어삼킨 만큼 거대한 아우터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거대한 대낫이 만들어졌다.
“쿠륵-”
아우터가 눈앞까지 닥쳐온 낫을 직시하여 몸을 피할 새도 없이.
샤아악!
아우터의 몸을 두 개로 나누는 긴 실금이 그어졌다.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듯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뒹굴거리는 녀석의 눈동자.
그리고 이내, 아우터의 몸이 양옆으로 무너져내리며 플라카의 전투가 종막을 내렸다.
“하아, 하아…….”
아우터가 쓰러지자마자 덩달아 자리에서 쓰러지듯 주저앉는 세 명.
산란장에는 셋의 가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애초에 그들이 상대했던 적은 저 여왕 하나가 아니었다.
산란장을 지키던 아우터와 여왕의 주변을 지키는 근위병들.
그 모든 적을 쓰러트리고, 최후에 여왕까지 쓰러트린 게 방금까지의 일이었다.
아무리 디아블로에서 가장 강력하다 할 수 있는 셋이라고 해도 무리인 게 당연했다.
“보아하니 그쪽도 잘 끝내고 온 모양이네요?”
“네? 아, 세운 씨!”
정신없는 와중에 그나마 힘을 남기고 자세를 잡고 있던 아르카나가 가장 먼저 세운을 발견했다.
덩달아 유서아가 세운을 반겨주었고, 강한철은 세운이 아우터를 더 빨리 정리하고 도착했다는 사실에 분해하는 모습이다.
“……정말 끝낸 건가? 셋이서?”
“셋이라뇨, 모두가 도운 덕분이죠. 어쨌든, 플라카의 아우터라면 이걸로 모두 끝났어요.”
버티는 것을 넘어 정말로 아우터를 전부 쓰러트리다니. 그것도 소수의 아우터가 아니라 플라카에 숨어 있던 아우터 전부를.
세운이 파멸의 힘을 나눠주었다고는 하나, 믿기지 않는 성과였다.
“보셨죠? 제가 말했잖아요, 믿어 달라고.”
세운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플라카의 아우터를 모두 정리해 낼 줄이야.
어디까지나 ‘보조’라고 생각하고 있던 디아블로의 무위는 어느새 그 자체로서 아우터를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세운 씨.”
유서아가 힘없이 미소 지었다.
세운이 나눠준 파멸의 권능은 물론이고 바알이 나눠준 신성과 그녀 본인의 힘까지, 모든 힘을 쏟아부은 그녀는 이미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저, 신세 좀 져도 될까요?”
“당연하지.”
그 말을 끝으로 조용히 눈을 감는 유서아를 바라보며, 세운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부축해 주었다.
* * *
“꾸륵, 꾸륵-”
“허어, 결국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고 카이어를 지켜냈군.”
어두운 방, 검은 의자 위에 앉아 아우터의 보고를 듣던 폐왕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서리 요새, 카이어.
이미 플라카와 카이어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한 폐왕은 카이어에서 다시 한번 세운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카이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낭비할 것이냐, 카이어를 포기하고 아우터를 쓰러트릴 것이냐.
그런데, 세운은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니, 선택의 코앞에서 새로운 선택지가 나타났다.
“그 콧대 높은 용들이 인간의 말을 믿고 힘을 거들다니.”
드래곤.
멸망의 굴레 앞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던 드래곤을 움직이다니.
아우터를 움직이기에 앞서 거의 모든 수를 떠올렸던 폐왕으로서도 당황스러웠던 경우의 수였다.
“꾸륵, 구르륵-”
“플라카마저 당했다는 건가? 역행자가 떠났는데도, 고작 평범한 플레이어들끼리 힘을 합쳐서?”
그런데 그다음으로 들어온 소식은 더욱 가관이었다.
기껏 세운을 떨어트려 두었는데, 플라카의 아우터까지 전부 쓰러졌다니.
평범한 아우터도 아니고, 폐왕이 직접 선별한 산란장에서 학습한 지식을 극대화한 아우터들인데.
차선책을 몇 가지나 떠올려 두었는데, 그 모든 수가 빗나가고 최악의 수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꾸륵, 꾸륵.”
“꾸르륵, 꾸륵.”
“위험하지 않냐고? 분명 기분은 나쁘지. 기분은 나쁘다만…….”
폐왕이 음침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된 것이 없지만,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번 계획에서 세운을 쓰러트린다는 사항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본보기로 탑의 쉼터 하나를 무너트리고 싶었을 뿐.
그런데.
“크나큰 수확이 있지 않았나?”
폐왕이 보고받은 사항 중 하나를 떠올렸다.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 낸 아우터의 외각, 비늘.
파멸의 권능으로 공격받고도 비늘을 떨쳐 보내는 것으로 그 타격을 놀랍도록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혹여나 세운이 더욱 크게 성장하며 큰 대적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게 그의 유일한 걱정이었는데.
“결국 예상치 못하게 귀찮은 녀석이 나타났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나 강해질 수 있지 않았는가?”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비늘만 잘 사용하면, 그 귀찮던 파멸의 힘을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다.
이전에 데스힐의 텅 빈 운석 안에서 낫을 든 여자에게 당했던 일격 또한 이 비늘만 잘 활용한다면 앞으로 그런 기습을 당해도 이전과 같은 타격을 입지는 않으리라.
“어차피 이 모두는 발전을 위한 걸음일 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결국 붕천(崩天)의 순간이니.”
붕천.
세운이 앞서 경험했던, 본격적인 아우터의 침략.
아무런 학습도 하지 못했던 아우터들만으로도 탑이 무너졌는데, 온갖 힘과 지능을 학습한 지금이라면 어떨까?
첫 번째 역행자와 마신의 역행자.
고작 두 명의 플레이어가 날갯짓한다고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불가능하다.
아우터에게 학습 능력이 없었다면 몰라도, 폐왕이 있기에 그들이 미래를 바꾸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마신의 역행자라고 하여도 과연 첫 번째 역행자가 버티고 있는 시련을 극복할 수는 있을지도 의문이다.”
열 번째 쉼터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첫 번째 역행자.
역행을 거치며 얻은 힘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그것도 이제 곧 한계다.
첫 번째 역행자가 무너진다면, 열 번째 쉼터는 폐왕이 나설 필요도 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마신의 역행자가 그전에 도착한다고 하여도, 판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기꺼운 마음으로 예정된 종말을 향해 걸을 뿐이다.”
폐왕의 사방에서 쥐 죽은 듯이 깔려 있던 아우터들이 박수 치듯 꿈틀거렸다.
제 58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