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8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88화(588/675)
그 이후, 세운은 부족한 치료 인력을 대신해 플라카를 돌아다녔다.
특히 이하늘이 마르바스의 권능을 통해 사용하는 치유는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마족까지 치료할 수 있어 크나큰 힘을 발휘했다.
덕분에 플레이어와 마족들 모두 빠르게 정신을 되찾아 갔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처참하네요.”
“절반가량은 죽은 것 같은데.”
“마족이니까요.”
아우터가 쳐들어왔을 때부터 겁도 없이 덤벼들던 마족들.
아우터의 정체를 모르던 초반에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디아블로 길드가 지시를 내리며 주의를 알렸음에도 마족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절반이나마 남은 것도 플레이어들의 대활약 덕분이었다.
“크크큭, 뇌까지 근육으로 찬 놈들. 내 그럴 줄 알았지.”
“전장에서 네 모습은 아무도 못 봤다던데.”
“딱 보기에도 수상한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몰려오는데 미쳤다고 나 죽여줍세! 하고 앞으로 나가냐? 그런 똥 멍청이들은 이미 다 죽었어.”
“그래도 마족이 너무 준 거 아닌가?”
“뭐 어때? 어차피 빈 자리는 낙오되어 있던 외곽의 마족들이 채워 놓을 텐데. 그놈들이 알 까기 시작하면 수는 금방 채워져.”
마족이 절반가량 죽은 처참한 상황에서도 별거 아니라는 투로 얘기하는 히드로.
처음에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정작 다른 마족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히드라의 말대로 눈치 보고 있던 외곽의 마족들이 기회를 노리고 중심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럼 수야 어찌 된다 치고, 건물은 어쩝니까?”
“크큭, 그건 좀 문제긴 하네. 기술자들도 거의 다 죽은 것 같고. 당분간은 맨땅에서 자야지. 뭐, 별수 있어?”
아우터가 공격한 것은 생명체만이 아니었다.
초반에 아우터의 공격으로부터 건물을 방패로 사용하며 싸웠던 탓에 상당수의 건물이 무너져 있었다.
플라카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자재는 오직 플라카의 흙뿐.
자재야 널려 있다지만 그것을 지을 마족이 없었다.
그때, 저 뒤에서 발랄한 두 목소리가 들려왔다.
“흙의 특성 파악 끝냈거든!”
“우리가 지을 수 있어!”
“근데 이게 생각보다 수작업으로 할 게 많아서 일손이 좀 많이 필요한데. 다들 바빠서 조금 곤란해.”
플라카에 도착했을 때부터 건축 양식을 궁금해하던 쌍둥이 자매가 탐구심이 빛을 발했다.
플라카에서도 이 까다로운 흙을 다루기 힘들어하는데, 그 건축법을 이리도 빨리 독학으로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런 쌍둥이 자매의 말을 들은 히드로의 눈이 반짝거렸다.
“일꾼이라면 내가 넘치도록 구해 주지.”
“정말?”
“오예!”
“크큭, 여기서 나한테 빚 안 지고 사는 놈도 드물다. 게다가 외곽에서 갓 올라온 놈들도 제집 지어준다고 하면 발 벗고 도울 거야.”
“마족들은 힘도 세니까 도와주면 금방 지어질 거야!”
“바로 모아줄 수 있어? 잔해부터 치우자!”
“그러지. 한 시간만 기다려라, 전부 불러 모을 테니.”
“솔직히 여기 건물들 너무 칙칙하고 비효율적이야!”
“우리가 훨씬 멋있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게!”
“크큭, 그거 기대되네.”
히드로의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의 소집령이 떨어지고 정확히 한 시간 뒤, 플라카의 모든 마족을 끌어모은 것처럼 마족이 우글거렸고, 쌍둥이 자매의 지시를 따라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마족은 ‘인간은 약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쌍둥이 자매의 지시를 무척이나 잘 따른다.
히드로의 지시도 지시지만, 아우터의 침략으로 인간이 가진 힘을 인정한 덕도 있었다.
그리고 쌍둥이 자매의 재건축에는 마족들만 끼어든 게 아니었다.
“혹시 저희도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이번 전투의 여파로 길드 건물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공적치는 충분히 드릴 수 있으니, 100명이 생활할 수 있는 길드 건물을 만들어 주시면…….”
“꼭 부탁드립니다.”
이번 전투로 인해 길드들의 본거지 또한 무너진 것이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더라도, 마족의 기술자에 의해 조악하게 만들어진 건물들은 그리 살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도 이참에 제대로 된 건물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곳은 플라카.
다음 쉼터로 향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시련의 난이도는 이전보다 당연히 높았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플라카를 벗어나 다음 쉼터에 도착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니까.
그 와중에 단 한 곳.
대세를 따르지 않고 유일하게 길드 건물을 맡기지 않는 길드가 하나 있었다.
“건물? 으하하하! 우리 발할라에게는 필요 없소!”
발할라 길드의 브린 자르.
그는 세운과 얘기한 이번 여정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다음 쉼터로 올라갈 테니 굳이 플라카의 길드 건물에 투자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브린 자르뿐만 아니라 발할라 길드원들의 생각 역시 같은지 아무도 그의 결정에 반박하지 않았다.
“히드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용혈까지 말라붙게 해 놓고 무슨 부탁이냐?”
그사이, 세운은 개인적으로 히드로를 찾아갔다.
“탕을 다시 준비해 줄 수 있겠나?”
“탕? 욕심도 많네. 이미 들어가 본 곳에 또 들어간다고 더 좋은 게 아니야. 특히나 마신혈을 전부 흡수한 네놈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다고.”
“내가 아니다.”
“응? 그럼?”
“디아블로 길드. 공적치는 제대로 지급하겠다.”
“크크큭, 안 그렇게 생겨가지고 제 것은 잘 챙기는 놈이었네. 좋다, 몇 놈이나 버틸지는 몰라도 충분히 열어주지.”
앞으로의 시련을 나아가려면 신체 강화뿐만 아니라 각종 면역이나 저항이 필요하다.
원래는 길드원들이 플라카에 적응을 마친 다음에 탕을 알려주려 하였지만, 상황이 조금 급해졌다.
기존의 공적치에 경매로 얻은 공적치, 게다가 튜닝이 두 쉼터의 아우터를 처리해 준 보상으로 내어준 공적치까지 있어 공적치는 넉넉했다.
“형님, 역시 뭘 아십니다! 온천이라니, 이게 바로 진정한 복지 아니겠습니…….”
– 선혈탕에 몸을 담갔습니다.
– 피부가 붉게 물들며 혈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 출혈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 피부 재생력이 상승합니다.
치이이이익-!
“까으아아아아악!”
그래, 복지다.
한 번 들어가는 데 무려 오백만 포인트의 공적치가 들어가는 탕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하나하나가 워낙 견디기 힘들기에 플라카를 떠나기 전까지 길드원들이 몇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플라카는 쌍둥이 자매의 설계 하에 본 모습을, 아니, 본래보다 더욱 발전한 모습이 되어갔다.
이전보다 생기가 넘쳐났고, 함께 일하면서 마족과 플레이어의 사이 역시 전보다 더욱 좋아졌다.
“이제 얼마 안 남았죠?”
“그래. 이제 곧 떠나야지.”
본래는 플라카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뒤에 떠날 생각이었다.
세운도 마신혈에서 얻은 힘에 충분히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고, 길드원들도 탕을 들리는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개인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아우터 사태로 인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폐왕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빨라. 그리고 위험하다.”
“그렇죠……. 세운 씨가 회귀하기 전에는 ‘그날’ 전까지 아우터가 이렇게 먼저 공격해 온 적은 없다고 했다고 했었죠.”
“앞으로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어쩌면 그날도 앞당겨질지 모르고. 그러니 우선은 최대한 빨리 탑을 오를 필요가 있어.”
“네. 다른 분들에게도 전달해 두었으니 모두 준비를 마치고 있을 거예요.”
“너도 고생한다. 탕에도 많이 들어갔다며?”
“세운 씨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한데요. 그래도, 저랑 상성이 제법 잘 맞더라구요.”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그 정도 독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며 우쭐거립니다.
탕과 독은 별개라고는 해도, 바알의 독을 다루는 그녀는 남들보다 탕에 쉽게 적응했다.
그와 별개로 강한철은 오직 체력과 정신력만으로 버티며 탕을 드나드는 중이라고 들었다.
세운은 그녀와 짧은 대화를 끝내고 플라카에서 멀리 떨어졌다.
다른 이들이 수련하는 만큼, 세운도 수련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지?’
저 멀리, 플라카의 외곽 중에서도 특히나 인적이 드문 외곽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플레이어 중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그렇다고 마족이 여기까지 찾아왔을 리는 없고.
누군가 싶어 살펴보니 세운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것도 디아블로 길드에서 수련이라는 단어와 가장 안 어울릴 것만 같았던 여인.
“아르카나?”
그녀의 주위로 트럼프 카드를 이루는 52장의 기본 카드와 두 장의 조커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카드들은 저마다 의식을 지닌 것처럼 가지각색으로 비행하다가.
화륵!
그녀의 손짓에 따라 뜨거운 불길이 되기도 하고.
콰광!
무거운 철퇴가 되어 휘둘러지기도 했다.
어느 때는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지기도 하고, 최후에는 모든 카드가 합쳐지더니 이전이 보았던 거대한 대낫으로 변해 횡으로, 횡으로 연신 휘둘러졌다.
그 반경이 어찌나 넓었던지 세운에게도 영향을 미칠 정도.
카앙-
“어머, 역시 막히나요? 나름 신경 써서 휘두른 건데.”
“일부로 그런 건가?”
“일부로 그랬으면 뭐 어때요~ 어차피 막았을 텐데. 그리고 엿보기는 나쁜 짓이랍니다?”
세운이 얼얼한 손바닥을 훌훌 털며 대답했다.
어지간한 타격은 가볍게 흘려보내는 세운인데, 그녀의 공격은 도저히 흘려보내기가 어려웠다.
가볍게 휘두른 것치고는 위력도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과연, 뛰어난 실력자다.
“이제 페널티는 사라졌나 보군.”
“플라카까지 올라오니까 페널티는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워낙 실력 발휘를 못 했던 터라 오랜만에 역량 좀 파악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쉼터인 라일락까지 내려와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었던 아르카나.
그녀의 힘이 대부분 돌아왔다는 건 하나의 사실을 의미했다.
“과거에 여기까지 올라왔던 건가?”
페널티가 필요 없을 정도의 층까지 도달했다는 뜻.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고개가 저어졌다.
“플라카는 넘었죠~ 다음 쉼터로 가다가 포기하고 내려왔거든요.”
“포기라면, 벽에 부딪힌 건가?”
“실력의 벽은 아니지만…… 그것도 벽이라면 벽이겠죠?”
조금 이해하기 힘든 대답.
하지만, 결국 그녀 역시 다음 쉼터까지는 오르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하긴, 회귀 전의 내가 오를 때까지도 다음 쉼터에 있던 건 그녀뿐이었으니까.’
레드 드래곤, 카샬락카스.
다음 쉼터에 유일하게 정착해 이는 길드의 수장이었다. 사실, 드래곤인 그녀를 플레이어라 부르는 게 맞을까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아르카나라고 하더라도 거기까지 도달하기는 힘들었으리라.
“이제는 긴장 좀 해야 하겠는데?”
“긴장은 잘 모르겠고, 제대로 힘을 써 보긴 해야겠죠?”
평소 여유로워 보이던 아르카나도 이다음부터는 쉽지 않을 거다. 81층부터 90층까지의 시련은 그만큼이나 어려웠으니까.
괜히 다음 쉼터까지 도달한 플레이어가 카샬락카스 밖에 없는 게 아니었다.
“금방 실력을 되찾길 바라지. 한 달 후에는 플라카를 떠날 생각이니까.”
“급하기도 하네요~ 이제 막 플라카에 도착한 플레이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요. 역시 회귀자라는 거가요?”
“너도 봤잖아? 속도를 낼 필요가 생겼거든.”
“아우터 말이죠? 정말, 언제 봐도 적응 안 되게 더럽다니까요? 어쩜 그리 볼 때마다 불쾌한지.”
적응 안 되는 모습이긴 해도, 그녀의 모습은 충분히 긍정적이었다.
적어도 이다음 시련부터는 제대로 된 마음가짐으로 도전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니까.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그녀가 붙잡았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부탁?”
“다음 시련의 테마…… 하늘에서 같이 가 줬으면 하는 곳이 있거든요.”
“그게 어딘데?”
아르카나가 이렇게 무언가 부탁하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세운과 디아블로 길드를 도와준 것들이 많았기에 어지간하면 도와줄 생각이었다.
“지금 말하기는 조금 그렇고…… 나중에. 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이 정도 부탁은 괜찮겠죠?”
“그러지.”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떠났다.
그 이후, 카드를 추스르던 그녀의 손에 하얀 백합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복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꽃 한 송이 정도는 두러 가도 괜찮겠죠?”
어쩐지 애틋함이 가득한 말을 남긴 그녀는, 백합을 카드의 모습으로 돌려 품에 넣은 후 수련을 계속하였다.
오직, 티케만이 그녀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 58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