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8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89화(589/675)
한 달.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플라카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니, 원래보다 더욱 발전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 되었다.
쌍둥이 자매의 주도 아래 플라카에 존재하는 모든 마족과 플레이어가 힘을 합친 덕분이었다.
“정말 바로 떠나는 겁니까? 81층부터는 그전과 비교도 안 되게 위험합니다. 조금 더 여유롭게 준비하고 가심이…….”
“성민, 다음 쉼터로 올라간다는 분들한테 그런 말은 저주나 다름없어. 걱정이 아니라 응원을 해 드려야지!”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81층부터의 시련이 얼마나 위험한지. 저는 그저,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성민, 지금 설마 우는 거야?”
“울다니, 아닙니다!”
이제 쉼터를 떠나려는 디아블로 길드에게 플라카의 모두가 관심을 가졌다.
어찌 됐든 디아블로 길드는 플라카를 구해 주고, 게다가 플라카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켜 준 이들이었으니까.
그들에게는 디아블로 길드가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특히, 저기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최성민.
디아블로 길드를 제외하고는 탑에서 보기 힘든 한국인인 터라 특히나 더 감정이 북받친 모양이었다.
“에이, 아저씨 왜 이래!”
“하여튼 정은 많아가지고!”
쌍둥이 자매가 그를 다독여 주었다.
길드원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디아블로 길드를 안 믿는 건 아니지만, 81층부터의 난이도를 알기에 금방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왜 저러냐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그사이, 세운은 플레이어가 아닌 플라카의 거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가냐.”
“가야지.”
“고맙다고 좀 전해 줘라. 덕분에 플라카도 살 만해졌다. 네놈 덕분에 귀찮은 마신혈 관리도 안 해도 되고.”
“고맙다.”
“고맙긴 무슨. 또 안 올 거지?”
“가능하면, 바로 올라가야지.”
“가능하면은 무슨. 마신혈을 한입에 꿀꺽해 놓고 못 올라가면 목매달고 죽어야지.”
저렇게 말해도 플라카에서 가장 역할을 해 준 마족이 바로 히드로다.
마족과 플레이어를 이어주는 것을 넘어, 플라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을 해결해 주었으니까.
지금은 마족과 플레이어 모두에게 지지를 받아 폐지되었던 직책인 ‘마왕’의 자리에 히드로를 앉히겠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만약 또 보게 되면, 마왕이 되어 있겠네.”
“마왕은 무슨. 마왕이라고 해 봤자 허물뿐인 자리인데, 안 한다. 돈도 안 벌리고 귀찮은 자리.”
“그래도 탕의 입구만 지키고 있는 것보다는 더 재밌을 텐데?”
“크큭, 그럴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잘 가라. 인간 놈아.”
히드로가 인사와 함께 세운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보석이었다.
피보다 새빨간. 마치, 마신혈을 연상케 하는 붉은 보석.
“이건?”
“네놈이 마신혈을 다 빨아들이고 난 자리에서 찾아낸 거다. 아마 긴 세월 동안 마신혈이 응축되어 생겨난 거겠지.”
“이걸 나한테 줘도 괜찮나?”
“그딴 거 필요 없어. 있어봤자 애들 분란만 키운다. 삶아 먹든 씹어 먹든 네가 조용히 가져가라.”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눈을 반짝입니다.
얼떨결에 보상까지 받아서 든 세운이 감사를 표하며 자리를 나섰다.
중심에는 이미 디아블로 길드와 청해 길드, 거기에 발할라 길드까지 전부 모여 있었다.
“으하하하! 이제 오셨소! 다음 쉼터는 어떻게 생겼는지 기대돼서 벌써부터 두근거리는구려!”
“이제 막 출발하는데 과한 거 아닙니까?”
“원래 꿈은 클수록 좋다고 하지 않았소! 다음 쉼터는 어디까지나 바로 다음 걸음일 뿐, 꿈은 훨씬 더 크오!”
미리 계획한 대로 이번 공략은 발할라 길드와 함께하게 되었다.
물론, 함께 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시련에서 함께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시련마다 인원수 제한이 전부 천차만별이니까.
특히나 다음 테마인 하늘. 천계라고도 불리는 그곳의 인원 제한은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운 편이다.
“이제 출발합시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힘을 합치는 건 90층이니, 무사히 올라오길 바라겠소!”
“발할라도 무사히 올라오길 바랍니다.”
“세운 씨! 이제…….”
“출발이다.”
또 어디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을지 모를 폐왕을 떠올리며, 세운과 디아블로 길드가 생각보다 빠르게 다음 시련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 * *
다음 시련을 향한 준비는 이미 끝내 두었다.
데스힐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쉼터를 넘어 다음 시련으로 도전하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했지만, 디아블로의 자격은 이미 충분했다.
덕분에 곧바로 다음 시련을 향해 이동하게 된 디아블로 길드.
촤아앗-
“윽…….”
“오랜만에 밝은 빛을 보니까 눈이 아플 정도네요.”
플라카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역시나 빛이었다.
태양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우중충했던 플라카의 하늘과 달리, 이곳에서는 사방에서 밝은 빛이 쏘아졌다.
플라카에서 머문 시간이 생각보다 짧았다고는 해도 시련과 포함하면 몇 달 동안 햇빛을 제대로 못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다들 시련에 들어와서도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으하하하!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곳도 마지막으로 보는 거겠구려!”
‘오랜만이네.’
그나마 미리 준비하고 있던 세운과 브린 자르가 가장 먼저 눈을 떴다. 뒤이어 다른 이들도 차례대로 눈을 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너무 바뀐 거 아냐?”
“플라카랑 너무 다른데.”
“뭐, 지금까지도 그래오지 않았습니까. 마계에 도달하기 전까지도 푸릇푸릇한 엘하임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큰 변화잖아?”
마계와 플라카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오직 찬란한 빛.
서 있는 곳은 넓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섬이었는데. 그 끝에는 푸른 바다 대신 하얀 구름이 뒤덮여 있었다.
무엇보다 모두의 앞, 섬의 중앙에 거대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이건…….”
“탑?”
구름 위의 구름을 뚫고 솟아 있는 바벨탑.
그 거대한 존재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침을 삼키고 긴장하게 만들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따사로운 햇살을 불쾌해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먹을 게 없어 보인다며 어깨를 축 늘어뜨립니다.
탑 안의 탑이라니.
그 찬란한 자태를 크게 뜬 눈으로 감상하던 중, 시스템 메시지가 81층에 대한 정보를 떠 올렸다.
– 81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정화의 불꽃.
– 당신은 지옥의 겁화를 뚫고 낙원으로 향하는 빛의 길을 발견하였습니다.
– 연옥이라 불리는 정화의 불꽃으로 죄를 태우고, 찬란한 빛의 길에 발을 내딛으십시오.
“정화의 불꽃?”
“불같은 건 따로 보이지 않습니다만.”
“찬란한 빛의 길은 저 바벨 탑의 입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디아블로 길드가 갖가지 추론을 내놓았다.
보통은 쉼터에서 다음 시련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오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바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플라카의 플레이어들이 81층부터는 진짜 ‘시련’에 가까우니 모르는 상태로 부딪혀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대답한 이유도 있었다.
심지어 동맹 길드인 발할라와 이미 시련을 통과한 세운 역시 자세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으하하하! 우리 처음 모습을 보는 듯하구려!”
“얼른 시련부터 시작하지.”
세운과 브린 자르가 앞장서서 탑을 향해 걸었다.
자연스럽게 그 뒤를 뒤따르는 디아블로와 청해, 발할라 길드.
차이점이 있다면 짐짓 여유로운 발할라 길드와 달리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는 경계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 무슨 시련이기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으시는 건지.”
“들어보니 단순히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궁금하네요.”
세 길드의 길드원을 합하면 이백 명을 가뿐히 넘는다. 대략 이백오십 정도.
그 수가 동시에 걸으니 그 모습이 꽤 가관이었다.
“슬슬 다 와 가는데 아무 일도 없네요.”
“이대로 탑에 들어가고 82층이 시작되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없을 거 같은데요.”
너무나도 평화로운 시간.
오랜만에 광합성이라도 하는 기분이라 모두의 마음이 절로 평온해졌다.
그러다 세운과 브린 자르가 바벨탑의 앞에 서고.
81층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이변이 생겨났다.
촤아앗-!
머리 위의 상공에서 구름을 뚫고 흘러나온 빛줄기가 모두의 앞으로 쏘아졌다.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가 곧바로 무기를 쥐며 경계하는 사이, 빛줄기를 따라 하나의 존재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새하얀 피부에 순백의 날개.
거기에 눈부신 광채까지 더해지니, 모두의 머리에 절로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천사?”
하늘의 사자.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내려온 자.
특히나 그녀의 머리 위에 둘린 금색의 고리는 모두가 생각하는 천사의 외양을 똑같이 재현하고 있는 듯했다.
“오늘은 특히나 많은 분이 찾아오셨네요!”
한없이 온화해 보이던 천사의 입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미 아는 이들은 피식거릴 뿐이었지만,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는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보았던 분들도 있고. 처음 보는 분들도 있고. 이렇게 많은 분이 죄를 태우러 오셨다니! 저는 너무 기뻐요!”
빛줄기를 따라 내려오던 그녀는 모두의 시선이 닿을 정도의 높이에서 멈춰 모두를 둘러보았다.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웃으며 얘기하는 게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세운 씨, 저거. 보스 몬스터……는 아니겠죠?”
“아니야. 일종의 진행 역할이랄까.”
“거주민 같은 개념인가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이런 적은 처음이네요. 신기하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시련과는 다르게, 81층부터 90층까지의 시련은 모두 천사에 의해 진행된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감시받는 건 아니다.
진행은 철저하게 플레이어의 개인행동.
천사는 어디까지나 시작을 알려주고, 그 결과를 판단할 뿐이었다.
“다들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이곳은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죄를 태우고,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곳일 뿐이니까요!”
“어?”
“뭐야, 괜찮은 건가?”
“이래서 다들 말해 주지 않은 건가? 별거 아니라고?”
천사의 발랄한 태도에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경계가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유서아와 해리. 그 둘만큼은 경계를 놓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발할라 길드, 많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몇 명은 식은땀을 흘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싸움을 경계하고 있는 건 아니고, 무언가를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둘은 깨달았다.
이제 곧, 본격적인 시련이 시작된다고.
플레이어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사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비록 바벨탑의 밖이라 해도 죄가 남아 있는 건 불쾌하니, 얼른 시작할게요!”
도대체 무엇을 시작한다는 말일까?
누군가 묻기도 전에, 섬의 끝에서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화륵!
“어?”
“부, 불이다!”
드넓은 섬의 외곽.
구름으로 뒤덮여 있던 그곳에서 새하얀 불꽃이 일어났다.
불꽃은 순식간에 섬의 외곽을 뒤덮더니, 이내 외곽에서부터 중심으로 서서히 번져오기 시작했다.
“얼른 탑으로!”
화륵!
“으악!”
박정필이 누구보다 빨리 뛰쳐나가 탑에 들어가려 하였지만, 그 앞 역시 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벨탑이 전부 하얀 불길로 뒤덮였다.
디아블로와 청해 길드의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정답은 애초에 시스템 메시지에 적혀 있었다는 것을.
‘연옥이라 불리는 정화의 불꽃으로 죄를 태우고, 찬란한 빛의 길에 발을 내딛으십시오.’
그 말은 비유 같은 게 아니었다.
정화의 불길, 연옥.
그곳에 죄를 태우고 자격을 획득하여 바벨탑에 들어가는 게 바로 이번 시련의 내용이었다.
무척이나 짧고도 간결한, 그러면서도 절대 피할 수 없는 거룩하고도 괴로운 길.
“으아아아악!”
그것이 바로 81층의 시련이었다.
제 59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