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9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90화(590/675)
81층을 가득 태운 하얀 불꽃, 성화(聖火).
그것은 천사가 말한 대로 죄를 불태우는 성스러운 불길이었다.
그렇다고 이 불길이 생명체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을까?
그건 또 아니었다.
“으악아아악! 뜨거워!”
“으하하하! 다들 바벨탑 안에서 다시 만나겠소!”
성화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진짜였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과 숨을 쉴 때마다 폐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는 열기.
그나마 불길 사이에 미로처럼 좁은 길이 나 있었기에 다들 불길이 약한 곳으로 이동했지만, 그런다고 불길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크아아악!”
피할 수 없는 불꽃이라니.
이건 시련이 아니라 확정된 죽음이 아닌가?
“스켈! 얼른 물을!”
푸화아앗!
그사이, 청해 길드의 길드장인 제논이 빠르게 권능을 발현하였다.
아공간의 입구가 열리고, 그 안에서 백경이 물을 쏘아냈다.
스카베의 사막 위로도 물웅덩이를 만들었던 제논이었기에 불길 따위 순식간에 진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큭! 어째서!”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성화는 백경이 쏘아내는 물줄기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며 더욱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그렇게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디아블로 길드에서도 초반부터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그 누구보다 많은 탕에 들어가며 각종 저항력과 면역력을 올린 강한철과 유서아 같은 이들 말이다.
‘뜨겁긴 하지만…….’
그들이 열기를 피하는 와중에 이상함을 느꼈다.
이 정도 열기라면 눈의 수분이 날아가고 동공이 타들어 가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모두 선명하게 눈을 뜨고, 소리를 듣고,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수상한 마음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시나.
‘환상통 같은 건가?’
그들의 장비는 조금도 타지 않았다.
피부 역시 화상을 입기는커녕, 막 샤워하고 나왔을 때처럼 새하얗고 뽀송해 보였다.
이에 유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죄를 태운다는 말도 진짜일지 모르겠어.’
그녀는 처음 떠오른 81층에 관한 설명을 믿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행동은 하나다.
찬란한 빛의 길을 찾는 것.
‘역시 바벨탑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야. 바벨탑도 불길에 뒤덮여 있었어. 그렇다면, 말 그대로 길. 진짜 출구로 향하는 길을 말하는 거야.’
세운처럼 회귀의 기억을 지닌 건 아니지만, 그녀 역시 80층까지의 시련을 공략한 플레이어다.
타닷!
빠르게 주변을 탐색하였다.
눈과 귀는 물론, 피부와 전투와 함께 쌓아온 여섯 번째 감각까지 총동원하여서.
“큭…….”
하나, 살이 타지 않는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얀 불길을 통해 느껴지는 고통은 진짜였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통증 중 가장 극심한 통증이 바로 작열통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고통을 느끼며 태연하게 움직이는 건 정신력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그나마 탕에서 키운 저항력과 면역력이 도움이 되어 남들보다는 통증을 덜 느끼는 듯했다.
‘분명, 무언가 있을 거야.’
포기하지 않고 발을 놀리던 중, 그녀는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을 발견했다.
‘저기다!’
찬란한 빛.
유서아가 그곳을 향해 달렸다.
사실, 그것은 빛이 아니라 다른 곳보다도 더욱 크고 뜨거운 성화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안 그래도 고통스러웠던 작열통이 더욱 극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유서아는 멈추지 않았다.
저곳이 81층을 통과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오, 빠르구려! 81층에 처음 들어왔음에도 이리도 빨리 길을 찾아내다니. 역시나 디아블로의 부길드 마스터요!”
“브린…… 자르?”
“진정하고 숨을 고르시는 게 좋겠소. 호흡을 조절하면 통증을 조금은 누그러트릴 수 있을 거요.”
놀랍게도 그 뜨거운 불길 속에는 브린 자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차분하게 숨을 가라앉히자, 신기하게도 통증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소인은 먼저 갈 생각인데, 그쪽은 어떻소? 길드원을 기다릴 생각이오?”
브린 자르가 있다는 건, 이곳이 확실한 길이라는 뜻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디아블로 길드를 이끌어왔던 만큼, 지금도 길드원을 기다리는 게 맞았다.
전신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작열통이 느껴지지만, 호흡을 조절하니 못 버틸 정도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나아갈래요.”
“으하하하, 잘 생각했소! 도와준답시고 유아의 팔을 잡고 끌어봤자, 관절이 빠져나갈 뿐이지! 스스로 걸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도 선 자의 몫이요!”
그녀는 디아블로 길드를 믿었다.
그리고 이 길에 도달한 순간, 왜 다른 플레이어들이 시련의 내용을 말해 주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 시련은 스스로 빠져나와야만 한다.
이 시련에서도 떨어질 정도의 정신력이면 다음 시련을 버티지 못한다.
버티지 못하는 무리하게 길드원을 이끌고 올라가 봤자 목숨이 위험해질 뿐이다.
그녀는 디아블로 길드를 믿고 있으니, 그들을 두고 가야 했다.
화르륵!
갈수록 뜨거워지는 성화의 열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 정도면 섬의 외곽부터 반대편 외곽까지 걸었어도 진작에 길이 끝났을 텐데.
아니, 섬의 외곽을 한 바퀴 빙 돌았어도 진작에 어디든 도착했을 텐데.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유서아는 묵묵하게 길을 걸었다.
앞서가는 브린 자르에게 그 어떤 의심이 담긴 질문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정신력이 대단하오! 처음이면 재촉하거나 끝을 물어볼 법도 한데 말이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낫죠. 발할라의 수장님이 앞에서 걷고 있는걸요.”
“이 길은 강함에 따라 길이 역시 길어지지. 이미 81층을 넘어본 내가 선두에 서니, 오히려 길이 더 길고 힘들게 느껴졌을 것이오. 그래도…….”
브린 자르가 걸음을 멈췄다.
유서아가 고개를 갸웃하던 중, 그가 커튼을 걷듯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곤 양쪽으로 쫙 벌렸다.
“고생했소. 이제 다 도착했다오.”
불길이 활짝 벌어졌다.
도착한 곳은 처음 보았던 바벨탑의 앞.
다만, 바벨탑의 앞에는 천사 외에도 처음 보는 존재가 일어서 있었다.
“저건…….”
“문지기요. 이곳의 성화를 지배하며 영혼의 죄가 전부 사라졌는지 판단하는 심판자이기도 하오.”
전신이 새하얀 불꽃으로 이루어진 괴물은 마치 정령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곳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브린 자르와 유서아가 아닌 모양이다.
지금, 저 문지기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존재가 있었으니 말이다.
“세운 씨?”
“하하, 역시 대단하오. 실력이 대단한 건 알았어도 81층에 처음 도전한 건 똑같았을 텐데. 이리도 빨리 도착하다니.”
“얼른 돕죠!”
“아니, 소용없소.”
“네?”
“저 문지기는 보스 몬스터가 아니오. 정령과는 다른…… 비유하자면 무생물에 가까운 적이오. 쓰러트릴 수는 없소.”
“그런데 세운 씨는 어째서 싸우는 건가요?”
유서아는 알고 있다.
세운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그런 세운이 저 문지기가 쓰러트릴 수 없는 적이라는 걸 모를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그녀의 예상에 적중하듯, 브린 자르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대들의 수장도 길드를 끔찍이 사랑하나 보오.”
“무슨 소리죠?”
“말한 대로, 문지기는 이곳의 성화를 지배하고 있소. 가만히 놔두면 끊임없이 불을 키우며 도전자들을 괴롭히오.”
“그럼, 세운 씨는 지금 문지기가 불길을 더 키우지 못하도록 싸우고 있다는 뜻인가요?”
“소인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오. 그게 아니면 문지기와 싸울 이유가 뭐가 있겠소?”
디아블로 길드를 아끼는 건 유서아만이 아니었다.
무심해 보이는 세운도 이제는 그 누구보다 디아블로 길드를 아끼고 있었다.
“저도 합류하겠어요.”
“으하하하, 재밌구려! 좋소, 소인도 함께하겠소!”
유서아가 쌍검을 빼 들었다.
세운과 동등한 길을 걸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세운을 외롭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 뒤를 따르며, 그 등을 받쳐주고 싶었다.
타앗!
그 이후로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문지기를 향해 덤벼드는 플레이어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 * *
“모든 죄를 불태운 순백의 영혼이여. 어찌하여 발을 멈추고 괴로움을 택하는가?”
바벨탑의 문지기가 세운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녀석은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크나 오우거 같은 생명체의 심장, 정령의 정령핵.
심지어 드래곤에게도 역린이라는 약점이 있으나 녀석에게는 약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새하얀 불길, 성화로 이루어져 이글거릴 뿐.
물을 부어도 사그라지지 않고, 공기를 없애도 스스로를 불태우며 형태를 유지하는 녀석은 진정한 불사(不死)의 존재였다.
‘뭐, 생명체가 아니니 불사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세운이 녀석을 공격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녀석이 성화를 더욱 불태우는 것을 막기 위해.
성화는 기본적으로 참가하는 플레이어의 수가 많을수록, 참가하는 플레이어가 강할수록 더욱 강하게 불타오른다.
그렇기에 과도한 난이도 상향을 막기 위해 녀석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성화. 저항력과 면역력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
회귀 전에는 몰랐는데, 이 불길은 수련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
고통은 느껴지지만, 상처는 생기지 않는 불길.
그 특유의 성질은 저항력과 면역력을 자극하면서도 상처만은 입지 않게 했다.
그러니 마신혈로 강화된 신체에 익숙해져야 하는 세운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세운 씨! 저도 돕겠어요!”
“조심해. 실질적인 타격은 입지 않겠지만, 정신적인 통증은 진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공격해도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공격당해도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야말로 유령을 상대하는 기분.
그런데, 어째서일까? 세운의 머릿속에 조그만 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정의 지침표는 반응하지 않지만…….’
어쩌면,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줄곧 떠오른다.
회귀 전의 세운도 불가능하다 생각했고, 81층을 지나친 수많은 플레이어도 불가능하다 생각했고, 지금의 세운이 가진 여정의 지침표마저 불가능이라 판단하는 가능성.
세운은 지금 그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순백의 영혼이여. 한 번만 더 공격을 이어간다면, 찬란한 빛의 길을 걸을 생각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대를 공격하겠다.”
문지기의 말에 세운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 말은, 지금까지는 세운을 제대로 상대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저런 괴물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하면 얼마나 강력할까?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빛의 길이야 녀석이 가려도 여정의 지침표로 되찾을 수 있으니까.’
도전을 피한다면 강해질 수 없었다.
그러니, 세운은 문지기의 경고에도 다시 한번 뒤랑달을 높게 들었다.
“길은 내가 직접 찾는다.”
세운의 몸이 문지기가 내뿜는 강렬한 섬광에 뒤덮였다.
제 59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