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9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91화(591/675)
바벨탑의 문지기.
당시에는 싸우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회귀 전의 세운은 그대로 문지기를 지나쳐 바벨탑 안으로 들어갔었다.
하지만 여정의 지침표로 문지기에 대해 파악하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다만, 당시에는 여정의 지침표로도 문지기의 약점을 알아낼 수 없었다.
녀석은 애초에 생명체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성화 그 자체.
죽이라고 만들어진 보스 몬스터도 아니었고, 몬스터라는 개념 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도 회귀 전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여정의 지침표는 여전히 녀석의 약점을 찾지 못했고, 머리 역시 녀석을 죽이지 못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어째서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회귀 전과 지금의 나. 둘의 차이.’
그게 바로 최고의 힌트다.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보자면 회귀 전과 현재의 세운은 여정의 지침표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무력, 장비, 동료 등, 회귀 전과 지금은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세운은 회귀 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신성.’
바로 이거다.
실제로 문지기는 성화 그 자체로, 공격이 통하지 않음에도 세운이 그를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광란의 권능을 이용한 공격.
성흔이 빛을 흘려댈 때마다 문지기의 불꽃이 일렁이며 움직임이 잠깐이나마 멈추곤 했다.
“유서아, 괜찮아?”
“네! 그냥 공격은 안 통해도 검에 신성을 담으면 불길을 흔드는 것 정도는 가능한 것 같아요.”
“그렇군! 이런 식으로 문지기를 상대했던 것이오?”
신성이 해답이라는 추측은 유서아와 브린 자르의 참전으로 확실해졌다.
둘 역시 평범한 공격으로는 문지기에게 닿지 못했지만, 신성을 사용하자마자 문지기를 멈칫거리게 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 추리가 끝나자마자.
“순백의 영혼이여. 지금부터 그대는 찬란한 빛의 길을 걸을 생각이 없다고 판단하고 공격하겠다.”
문지기가 본격적으로 세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히 유서아와 브린 자르는 아직까지 적으로 인식하지 않은 모양.
“세운 씨!”
문지기의 불길이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며 세운에게 쏘아졌다.
성화의 작열통에는 익숙해졌으니 피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받아내고 반격을 하려던 찰나.
치이익!
세운은 문지기가 말한 ‘공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뜨겁더라도 직접적인 상처는 입히지 않고 오로지 환상통처럼 작열통만 안겨주던 하얀 불꽃이 세운에게만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 화력이 어찌나 강했던지 플라카에서 화상의 면역을 극도로 높인 세운의 피부에도 화상이 생겨나고 있었다.
“저희가 도울게요!”
세운이 화상을 입기 시작했단 걸 알아챈 유서아가 즉시 앞으로 나서서 문지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신성이 둘린 쌍검으로 발목이 베이자 발목을 구성하고 있는 불길이 흔들리며 무게 중심이 흔들렸다.
덕분에 세운이 불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아니, 먼저 가라.”
“네? 그런, 너무 위험해요!”
“이제 괜찮아.”
신성을 사용한 공격이라 해도 움직임을 약간 막을 수 있을 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건 불가능하다.
순식간에 균형을 되찾은 문지기가 세운에게 다시 한번 공격을 날리려는 순간, 세운의 장비 위로 새하얀 털옷이 뒤덮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화완포(火浣布) ]– 화산의 불 속에서 산다는 불 쥐, 화광수의 털가죽으로 만든 털옷. 그 어떤 불길 속에서도 주인을 지켜내는 절대 방화복이다.
불 쥐의 털옷, 화완포.
그 위로 문지기의 불꽃이 들이닥쳤다.
화아아악!
세운의 장비를 태우고 피부를 녹이던 하얀 불꽃에 직격으로 당했는데도 세운의 몸에는 작은 그을림 하나 생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불꽃을 맞고 나자마자 흰옷의 털이 일어나며 더욱 아름답게 윤기가 생겨났다.
‘그래도 작열통은 막지 못하나.’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것일 뿐. 직접적인 타격은 없다지만, 통증만은 이전보다 더욱 극심하게 느껴졌다.
플라카에서 각종 탕을 거치며 어지간한 통증에는 정신적으로도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한 세운이 이를 꽉 물며 주먹을 떨 정도.
결코 오래 버틸 만한 고통이 아니었기에, 세운이 바로 행동에 나섰다.
“순백의 영혼이여, 겉치장은 허울일 뿐이로다.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길을 되찾거라.”
문지기가 불 쥐의 털옷을 녹일 기세로 불꽃을 쏘아댔다.
녀석은 지금까지 그 어떤 공격도 피하거나 막아내지 않았다.
신성을 담은 공격이라 해 봤자 녀석을 잠깐 움찔거리게 만들 뿐, 타격을 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녀석에게 방어나 회피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녀석에게.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시뻘건 검격이 닿았다.
그래봤자 이 역시 찰나.
곧바로 회복이 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문지기는 그 직후에 느껴진 생소한 감각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아아아아아아악!”
통증.
그것도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통증.
처음으로 그것을 느낀 문지기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떨어진 팔뚝을 주워 붙이려 하였지만, 바닥으로 떨어진 성화는 더 이상 그의 신체가 아니었다.
“아프다- 아니다, 아플 리가 없다. 하지만, 아프다. 아프다-!!”
이성이 사라진 듯한 움직임.
자기가 신이라도 된 듯이 거들먹거리던 태도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어떻게 그의 팔이 절단될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파멸의 힘.
본래 아우터를 쓰러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힘은 신을 공격할 때도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녀석의 몸은 신성이라기에는 현상에 가까웠지만, 파멸의 힘은 기어코 현상으로 이루어진 몸을 찢어발기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녀석이 느끼게 될 공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그렇게 권위적으로 굴더니, 이것도 못 참나?”
서걱-
세운의 검이 녀석의 머리를 갈랐다.
마음 같아서는 일격에 보내고 싶었지만, 통증을 깨달아 버린 녀석은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몸부림을 치며 불꽃을 뿜어 세운을 밀어낸 바람에 공격이 약간 빗나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전부는 아니다.
세운의 검격과 함께 녀석의 왼쪽 눈을 포함한 머리가 대각선으로 갈라지며 재가 되어 흩날렸다.
“그아아아아아아악!!”
81층이 다 울리도록 터져 나오는 문지기의 비명.
순백의 영혼이니, 찬란한 빛의 길이니 할 때가 바로 전이었는데.
플레이어들에게 작열통을 일으켜 시험받게 하면서, 정작 자신은 몸이 잘리는 통증 하나 못 참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세운 씨!”
“피해!”
“하지만…….”
“여기서는 빼는 게 맞겠소. 보아하니 우리가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으니,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이들을 통제하는 게 맞지 않겠소?”
“……네. 알겠어요.”
폭주하기 시작한 문지기.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하얀 불꽃은 더 이상 세운이 막아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죄를 태운다는 명목으로 상처를 내지 않는 불꽃만 일으키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당장 불에 닿은 브린 자르의 장비가 붉게 달아오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감히! 찬란한 길을 지키는 성화에게 검을 휘두르다니! 용서하지 않겠다아아!”
문지기는 태도를 바꾸고 본격적으로 공격을 쏘아냈다.
지금까지처럼 단순하게 손을 뻗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
세운을 깔아뭉개겠다는 듯이 팔을 벌린 채로 돌진하며 입으로 불덩이를 마구 내뱉었다.
불꽃이 하얀색만 아니었다면 악마라 해도 믿을 모습이다.
‘아니, 진짜 이상한데?’
문지기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성화.
그 순백의 불길이 점점 탁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주변에 일렁이고 있는 불길 역시 조금씩 탁해지는 중이었다.
‘뭐, 나랑은 상관없지.’
이상하긴 했지만, 어차피 쓰러트릴 대상이다.
타격이 먹힌다는 것을 알았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씨 블라스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아아!
세운이 만병지함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더니 파멸의 힘을 담은 마법을 내뿜었다.
거대한 대양의 해일을 불러일으키는 씨 블라스트.
본래 물 마법이라 해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는 문지기지만, 파멸의 힘이 깃든 만큼 이번에는 물세례를 가뿐히 맞이할 수 없었고.
“그아아아악! 그만하라! 그만하라! 감히 나에게! 순백의 성화에 찬물을 들이붓다니! 그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서 불태워 주마!”
문지기의 몸이 점점 밀려 나갔다.
몸이 점점 탁해지고, 불길이 사그라들면서도 그 입은 쉴 새 없이 나불거리며 세운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냈다.
‘강하긴 해도, 멍청하다.’
마치 보검을 든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분명 위험하긴 하지만, 상대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당할 이유가 없는 상대다.
‘하긴, 그럴 수밖에.’
문지기는 불사.
죽지 않는다. 아니, 죽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존재.
가만히만 서 있어도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기었을 것이다.
그러니 싸우는 방법 따위 알 리가 없다.
“그대에게 찬란한 빛의 길을 허용할 수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찬란한 빛의 길을 부숴서라도! 그대의 앞길을 막겠도다!”
이 물길을 헤치고 세운에게 접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걸까?
문지기가 돌연 세운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성화로 휩싸여 있는 바벨탑을 향해 내달렸다.
어이가 없을 정도의 행동. 하지만, 문지기의 몸을 이루고 있던 성화는 극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특히나 왼쪽 다리의 불길은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는 수준이어서 절뚝거리며 나아가는 꼴이 가관이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판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낀 천사가 시련에 개입했다.
본래 천사가 시련의 시작과 끝 이외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비이상적이었지만, 문지기의 행동은 그만큼 정도를 벗어나 있었다.
“당장 멈추세요! 성화가 어떻게 바벨탑을 부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성화이기에! 저 영혼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 그러니! 찬란한 빛의 길을 부숴서라도! 막아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어디 있어요! 당장 멈추라구요!”
천사가 애써 외쳐보지만, 문지기의 움직임은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극이라도 받은 것처럼 더욱 빠르게 다리를 절뚝인다.
순식간에 바벨탑의 코앞에 도착한 녀석이 팔을 높이 치켜든다.
이제는 혼탁한 수준을 넘어, 탁기로 인해 회색빛으로 물든 팔을 바벨탑을 향해 휘두른다.
“안 돼요! 막아야…….”
문지기의 앞길을 가로막는 대담한 행동과는 다르게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천사.
그 활발하던 성격은 어디 가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덜덜 떠는 그녀의 위로 문지기의 팔뚝이 닿으려던 찰나.
– 내공을 통해 북해검결의 제일 초식, 북해동절(北海冬節)이 강화됩니다.
서걱.
혼탁해진 문지기의 어깨에 긴 빗금이 새겨지고.
푸화아아앗!!
빗금으로부터 차가운 바닷물이 뿜어져 나와 성화를 잠재운다.
휘두르던 팔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반대쪽 팔을 들어 올리는 녀석의 몸에, 이번에는 거대한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 내공을 통해 북해검결의 제삼 초식, 북해와류(北海渦流)가 강화됩니다.
콰아아앗!
이내, 구멍을 통해 터져나가는 소용돌이.
“그아아아아-”
결국, 문지기의 몸을 이루고 있던 성화가 모조리 흩어졌다.
그 앞에는 일 초만 늦었어도 잿더미가 되어 문지기와 함께 죽었을 천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을 구해 준 플레이어, 세운을 올려보고 있었다.
제 59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