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9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95화(595/675)
세운과 드래곤의 합동 공격.
고작 인간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전투의 형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마법사들, 대체 뭐 하는 거냐!”
“서클의 차이는 절대적입니다! 저자가 8서클 마법사인 이상, 저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젠장, 일단은 드래곤부터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 후에 다시 저놈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드래곤 슬레이어를 준비하라!”
“네! 드래곤 슬레이어를 준비하라!”
병사들이 세운과 드래곤을 막아내는 사이, 적군은 저 뒤에서 무언가를 끌고 왔다.
무언가하고 살펴보니 용의 두개골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드래곤들의 표정이 흉악하게 구겨졌다.
“저건 뭐지?”
“보이는 대로, 용의 머리다. 저들은 선대의 유골을 개량하여…….”
두개골의 뒤에 박힌 마정석.
한 마법사가 마정석을 누르며 마나를 주입하자, 두개골이 어둡게 물들며 움푹 들어간 눈가에서 흉흉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크으윽…….”
“저것들이 또!”
드래곤들이 침음을 흘렸다.
날갯짓이 느려져 고도는 점점 낮아지고, 힘차게 뱉어내던 브레스의 위력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모으던 마나도 흩어지고, 몸을 휘청거리는 등, 왜 저게 ‘드래곤 슬레이어’라 불리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도 드래곤 로드 정도면 인간을 못 막을 정도는 아닐 것 같았는데. 저것 때문인가.’
드래곤에 한해서는 치트키에 가까운 위력을 지닌 아티펙트였다.
아마, 저런 물건을 가진 건 이들만이 아닐 거다.
현재 계곡의 사방에서 공격하고 있다는 인간 모두가 저것과 비슷한 아티펙트를 지니고 드래곤을 압박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안 통하나 보네.”
저 두개골의 힘은 어디까지나 드래곤을 약화시키는 아티펙트.
당연히 세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타앗!
“마, 막아라!”
“드래곤 슬레이어를 지켜라! 절대 뚫리면 안 된다!”
세운은 두개골을 깨부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여 전방을 향해 달렸다.
기사들이 앞을 막고, 마법사들의 마법이 길을 막았지만.
콰아앙!
세운의 돌진은 마치 불도저와 같았다.
마음먹고 길을 뚫는 데 집중하고 있는 세운의 앞길을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세운은 순식간에 드래곤 슬레이어의 앞에 다다랐고.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드래곤 슬레이어를 향해 곧장 검을 휘둘렀다.
저것만 부서지면, 세운의 도움 없이 드래곤들의 힘만으로 이곳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
그런데.
캉!
세운의 검이 튕겨 나갔다.
바위를 깬 검, 뒤랑달.
거기에 세운의 신체 능력과 무공의 힘까지 더해졌는데도 두개골을 깨부수지 못하고 되레 검이 튕겨 나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반발력에 세운의 눈이 절로 크게 떠질 정도였다.
“크하하하!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용의 두개골을 깰 수는 없다!”
용의 두개골은 용의 몸을 이루는 뼈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부분이었다.
얼마나 단단하면 가공 자체가 불가능하여 장인들도 장비로 만들기를 포기한다고 알려졌을까?
“꼼짝없이 함정에 걸려들었구나! 이걸로 네놈도 끝이다!”
“함정?”
남자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세운의 발아래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 있었다.
그리고 제 앞에서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법사.
몸이 경직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니, 기사들이 마법진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검을 놓고 기다란 창을 쥔 채 세운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마법사 중 지휘관처럼 보이는 남자가 세운이 두개골을 향해 접근할 걸 알고 미리 수작을 부려 둔 것이다.
“3초 정도인가.”
몸이 완전히 굳기까지 3초.
얼마나 강력한 속박인지 마신혈의 저항마저 뚫고 세운의 다리부터 굳혀갔기에, 이대로 도망치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세운은 다시 한번 검을 들었다.
“포기해라!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드래곤 슬레이어를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남자의 단호한 외침.
그사이, 세운의 검에는 새로운 힘이 깃들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마녀의 마법검, 바리사다 ]– 마녀 파를리나가 오르가그나의 정원에서 만들었다는 ‘사물을 통과해 벨 수 있는 마법검’으로 롤랑을 죽이기 위해 로게노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이후, 강력한 초식도 아닌 평범한 휘두르기가 펼쳐졌다.
남자는 날카로운 칼날이 두개골에 닿자마자 ‘캉!’ 소리를 내며 튕기기를 기대했지만.
스륵-
“무슨!”
세운의 검은 두개골을 베지도, 튕겨 나가지도 않았다.
그저 안개 속을 스쳐 지나가듯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갈 뿐.
이어서 세운이 손에 잠깐 힘을 주자,
째앵!
두개골의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의 두개골을 드레곤 슬레이어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두개골의 안에 심어 두었던 드래곤 하트가 깨져나간 것이다.
제국의 상징, 제국의 국보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보물이 깨져나가자마자.
“크르릉…….”
용들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콰아아아앗!!
용들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가며, 서쪽의 전장이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 * *
인간 측 진영이 전멸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세운이 강력한 것도 있었지만, 드래곤 슬레이어가 사라지자 드래곤들이 대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게 컸다.
보아하니, 드래곤이 밀리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가 저 드래곤 슬레이어라 불리는 아티펙트였던 모양이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우리의 목숨은 그렇게도 가벼이 여기고서, 자신의 목숨은 그리도 소중하더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정리된 후, 인간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며 무릎을 꿇은 채로 목숨을 빌었다.
드래곤이라 하여도 이런 상황에서는 자비로움을 보여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항복이고 뭐고, 당장 인간들을 끝장내기 위해 손톱을 들어 올리는 드래곤의 앞을 세운이 막아섰다.
“……설마, 같은 종족이라고 감싸는 건가?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그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앞을 가로막는 것이지?”
“너희들의 목표는 복수인가?”
“……무슨 일이냐.”
“복수를 통해 잠깐은 즐거울 수 있겠지만, 너희의 목표는 용의 계곡을 지키는 게 아니었나?”
세운의 말에 드래곤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손톱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세운의 말을 경청했다.
“이대로 저것들을 전부 죽이면 새로운 공격대가 찾아올 뿐이다.”
“인간은 어리석다. 무서움을 모르고 덤벼들지. 지금 돌려보낸다고 해도 똑같을 거다.”
“무서움을 모른다면, 가르쳐 주면 되지.”
“우리도 해 보았다. 드래곤 피어를 일으켜 보았지만, 인간은 물러서지 않았다. 인간들의 무지는 공포마저 집어삼킨다.”
“진군하는 적에게 공포를 걸어봤자 오기만 돋을 뿐이다. 공포는…….”
세운이 인간들의 앞에 섰다.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는, 성흔을 맹렬하게 발광시켰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커, 커으으윽.”
공포의 권능이 발현했다.
남아 있던 다섯 명의 인간의 몸에 검붉은 신성이 침투하며, 가슴 속에 숨겨진 진정한 공포를 깨웠다.
머릿속이 공포로 가득 물들며, 세운은 물론이고 드래곤에 대한 이미지까지 공포로 뒤덮였다.
“상대를 굴복시키고, 그 씨앗을 극대화할 때 유용한 법이지.”
“커흐으윽. 사, 살려…… 큭. 크흐윽.”
인간들이 바닥을 기더니 몸을 움츠린 채로 게거품을 물었다.
당장 그들을 죽이려 하였던 드래곤들도 순간 안쓰러운 눈초리를 보일 정도였다.
“자, 이제 꺼져라.”
“죄, 죄송…… 크흐으윽. 흐윽. 합니다. 크흑.”
“커흐윽.”
인간들은 겁에 질린 채 바닥을 기어 제국을 향해 도망쳤다.
아마, 저들은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제국이라 부르는 쉼터까지 기어가게 될 것이다.
중간에 구조받는다고 해도, 평생 동안 이 공포만은 잊지 못하겠지.
“이대로 보내준다는 말이냐?”
“공포는 전염된다.”
“……과연 그럴까?”
“한 번으로는 힘들겠지. 하지만, 꾸준히 공포를 심어 넣으면 결국 모두 공포에 전염되고 만다.”
세운의 말을 이해한 드래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복수심에 인간들을 모두 죽이기만 한다면 새로운 공격대가 도착할 뿐이었다.
그것보다는 이렇게 공포심을 심어 다시는 덤벼들지 못하게 굴복시키는 게 현명한 방법이었다.
“다음 전장은 어디지?”
“괜찮겠나? 다른 전장도 급하지만, 우선 휴식부터 하는 게 어떻겠나.”
“우리 로드께서도 그러셨다. 우리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돌아다니시다…… 결국 목숨을 잃으셨지.”
“괜찮다. 힘이 부족하면, 내가 먼저 휴식을 요청하지.”
“……알겠다. 하다못해, 이동만이라도 우리가 돕게 해 주지 않겠나?”
“그러지.”
드래곤이 자신의 등 위에 세운을 태웠다.
세운에게는 튜리크의 날개가 있었지만, 이것도 신성을 소모해야 하는 것이기에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아주 잠시 아무 말 없이 날아가던 중, 세운을 태운 드래곤이 적막을 깨트렸다.
“실망했나?”
“실망이라니?”
“예전에는 인간의 모습으로도 유희도 나가 보았던 우리다. 그대의 표정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다.”
실망이라.
솔직히 세운이 실망할 것까지는 없었다. 드래곤이 약하다면 세운이 더 힘을 내면 그만이니까.
만약 드래곤이 너무 약해서 시련을 공략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면 정말 실망했겠지만, 지금의 세운이라면 그들의 도움이 없어도 어떻게든 시련을 공략할 수 있었다.
“이게 원래 드래곤의 무력인가?”
“아니다. 원래는 이것보다 강했지. 중간계를 위협하던 적들이 사라지고 중간계가 오염되기 시작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마나를 나누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마나를 나누다니…….”
“중간계를 관리하는 게 우리의 숙명.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었지만, 우리는 선조의 선택을 원망하지 않는다.”
드래곤과의 대화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시련만 마치고 사라질 예정인 세운에게 그들의 사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까 보았던 드래곤 슬레이어는?”
“방금 말한 선조분들의 것이다. 마나를 나누기 위해 각지에 퍼져 목숨을 희생한 그분들의…… 유골이다.”
목숨을 희생해서까지 중간계를 지킨 드래곤. 그리고 이를 기회로 삼아 드래곤을 공격하기 시작한 인간들.
이렇게만 들어보니 인간이나 악마나 다를 게 뭐가 있나 싶냐는 생각이 들어왔다.
“그래도 인간을 증오하지 않는 건가?”
“증오라……. 증오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세계의 일부. 우리는 그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직전, 잠시 말이 끊어진 부분에서 세운은 드래곤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드래곤으로서의 숙명과 개인으로서의 감정, 둘 사이의 충돌인 것이다.
뭐, 상관없다.
세운은 그저 시련을 공략할 뿐이니까. 그리고 공략에 성공하면 덩달아…… 드래곤의 고민 역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폭포 너머에서 남방의 인간들이 공격해 오고 있다.”
“얼른 정리하지.”
세운은 시련을 재개하기 위해 드래곤 등 위에 서서 보랏빛 날개를 펼쳤다.
제 59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