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59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599화(599/675)
‘이게 두 번째 깃털.’
세운의 손에 새하얀 깃털이 잡혔다.
모든 깃털을 모으라니.
솔직히 세운이라 하여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정작 모든 깃털을 모은 다음 얻는 보상이 세운에게 어울릴지도 모르고, 깃털을 얻을 방법조차 모른다면 굳이 시간 낭비까지 하면서 얻을 생각은 없었다.
– 82층의 시련 ‘선행’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시련은 훌륭하게 막을 내렸다.
예상대로 그 결과는 공적치 총합 1등.
18개의 황금 문을 최고의 성적으로 공략한 덕분에, 시련 완수로 인한 공적치 집계 역시 일반적인 플레이어의 20배가량 되었다.
“어떤가요? 저와 티타임이라도 가지시는 게.”
“바로 다음 층으로 올라가지.”
“천사와의 티타임은 결코 흔치 않은 기회랍니다?”
“관심 없다.”
천사와의 티타임이라.
회귀 전의 세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분명 제법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녀에게 들을 만한 정보는 다 세운이 알고 있는 정보일 것 같았다.
그러니 괜히 시간 낭비하지 않고 다음 층으로 향하겠다 말했다.
천사가 살짝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세운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 83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고행
– 선행을 쌓는 데 성공한 당신은 바벨탑의 더 높은 곳으로 올랐습니다.
– 당신은 성스러운 고행길을 통해 아래에서 쌓아온 선행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야만 합니다.
바벨탑의 2층.
이곳 역시 바벨탑의 홀이었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문이 두 개뿐이라는 것.
세운이 들어왔던 문과 그 반대편에 있는 문.
너무나도 간단한 구조였기에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도 싶었지만, 이번에 역시 시련을 알려주기 위해 순백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나타났다.
“아, 안녕하세요.”
어쩐지 낯을 가리는 듯한 모습.
아마, 저 성격 때문에 가장 설명할 게 없는 이 83층의 시련에 배정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이번 시련은 고행. 고행이에요. 그, 간단해요. 저 문을 따라서 쭉…… 올라가면 돼요. 후…….”
긴 설명을 끝낸 것처럼 안도의 숨을 내쉬는 천사.
스스로도 뿌듯한지 주먹을 불끈 쥐고 사라지려는 천사를 세운이 붙잡았다.
“어떻게 하면 깃털을 줄 거지?”
“네, 네?”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인 질문.
어쩔 수 없다. 이미 회귀 전에도 83층을 공략했었으니, 이곳에는 딱히 무언가 더 하거나 할 만한 게 없는 걸 알고 있다.
여정의 지침표로 찾아낸 숨겨진 방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거의 다 공략하고서도 과거의 세운은 깃털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천사에게 어떻게 하면 깃털을 줄 건지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 그러니까. 깃털을 알고 있다는 건…….”
“앞에서도 받았지.”
“아! 이미 두 개나 얻으셨네요. 시, 신기하네요. 누나들이 깃털을 함부로 주고 다닐 리는 없는데.”
“그래서, 대답은?”
천사가 말까지 더듬으며 허우적거렸다.
심히 고민이 되는 모양.
솔직히 저런 반응을 보이니 조금 더 밀어붙이면 금방 조건을 알려주리라 생각했지만.
“죄, 죄송해요! 전 좀 무서워서!”
그는 세운에게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며 사과하더니 말릴 틈도 없이 도망가고 말았다.
어이없는 상황.
‘세 번째 깃털은 무리인가.’
뭐, 어쩔 수 없다.
애초에 깃털을 모두 모으는 게 목표도 아니었고, 아쉽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밖에.
품 안의 깃털이 아깝긴 했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고행길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기이이-
문이 열리고 처음으로 마주한 곳은 곳곳에 불길이 이글거리는 불의 고행길이었다.
‘고행길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지.’
뜨거운 불길을 헤쳐 나가거나, 날카로운 가시 산을 통과하거나, 차가운 얼음장을 기어가는 등.
고행길은 전투가 아닌 말 그대로 ‘고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미 81층에서 불꽃을 넘겨 본 플레이어들은 별것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고행의 첫 길을 통과하지만…….
‘오히려 이 불의 길은 쉬운 수준이지.’
고행길의 진짜 고행은 이게 아니었다.
고행길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힘들다.
‘그리고, 여기서 마신혈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플라카에 괜히 ‘탕’이 있는 게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은 그곳에서 각종 면역과 저항력을 길러야만 이 고행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통과할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그 대부분이 결국 고행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쉽게도 목숨을 잃었다.
화르륵-
뜨거운 불길이 세운의 몸을 휘감았다.
81층에서의 성화와 달리, 이 불길은 실질적인 상처를 남긴다.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고, 숨을 들이켜면 폐가 녹아내린다.
‘견딜 만하다.’
하지만, 세운에게 해를 입힐 정도는 아니었다.
불길에 휩싸여도 모든 탕을 견디고, 심지어 숨겨진 마신혈을 모조리 흡수한 세운의 화염 저항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와중에 미로라니.’
불의 길은 일직선이 아니었다.
시련은 안 그래도 뜨거움에 몸부림치며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플레이어들을 미로로 인도하였다.
고통 속에서 미로를 헤매다 보면,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시련을 포기하게 마련이다.
세운이야 여정의 지침표 덕분에 불의 길을 가뿐히 넘었지만 말이다.
‘다음은…….’
83층의 시련은 금방 넘길 수 있겠다 생각하며 불의 길을 완전히 넘겼을 때, 세운의 눈앞에 익숙한 인영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조금 늦었네요~”
“아나?”
아르카나.
그녀가 세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설마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그럼요. 얘기는 들었어요. 82층의 황금 문을 전부 공략했다면서요? 역시 늑대 씨다운 발상이라니까요.”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 이유를 떠올리고 있자니, 쉼터를 떠나기 직전에 그녀가 남겼던 말이 떠올렸다.
‘다음 시련의 테마…… 하늘에서 같이 가 줬으면 하는 곳이 있거든요.’
때가 되면 말해 주겠다고 하더니, 그게 지금인가 보다.
“그게 83층일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됐어요. 우선, 걸으면서 얘기할까요?”
앞서 나아가는 그녀의 붉은 드레스 치맛자락이 열풍에 나풀거렸다.
그녀의 등에는 카드 한 장이 붙어 있었는데,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저 카드로 열에 저항하며 불의 길을 건너온 모양이다.
“그래서, 무슨 부탁이지?”
“급하기도 하셔라. 하긴, 늑대 씨는 항상 그랬었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여유로운 모습.
아니,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어쩐지…… 조금 울적해 보였다.
데스힐. 그리고 플라카에서도 아주 잠깐 보았던 모습이었다.
“제가 탑을 몇 층까지 등반했는지 말 안 했었죠?”
“설마 그게 83층인가?”
“에이, 그럴 리가요. 뭐…… 반은 맞아요. 제대로 등반한 건 여기까지라고 할 수 있거든요.”
“제대로?”
“이 위부터는 혼자였어요. 반쯤 이성이 나간 채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층을 나아갔어요.”
그녀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나저나, 그녀가 혼자가 아니었다니?
평소의 전투 스타일이나 성향을 생각했을 때, 영락없이 솔로 플레이를 지향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긴, 간혹 그런 모습이 보이긴 했지.’
길드원을 도와줄 때나 아우터를 사냥할 때 등,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합을 맞추는 것에도 꽤 익숙해 보였다.
아마 그 모습들이 바로 그녀가 ‘함께’했던 증거였지 않을까 싶었다.
“동료가 죽은 건가.”
“네. 튜토리얼부터 83층까지 쭉 함께해 온 파티가 있었거든요. 그 수도 83층에 도착할 때까지 점차 줄어들었지만.”
“83층도 어렵기는 하지만, 꼼짝없이 전멸할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83층의 시련, 고행은 분명 어려운 시련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쉽게 포기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곳이다.
플라카로 돌아와 공적치를 모으고 탕을 거치며 면역과 저항력을 쌓아가다 보면 어떻게든 83층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파티 하나가 전부 전멸하다니?
차라리 다른 층이었다면 몰라도, 여기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세운 씨라면 알지도 모르겠네요. ‘오행의 길’을요.”
“……오행의 길?”
세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오행의 길이라면 83층에 숨겨진 히든 던전이었다.
들어가는 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로워 세운도 입구에 다다른 게 끝이었고, 끝내 공략을 포기했던 던전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공략이 가능할 것 같았지만, 그 공략법이 힘들다기보다는 무척이나 귀찮아서 무시하고 넘어가려 했던 곳이다.
그런 곳의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그곳이었어요. 저희 파티가 전멸한 게.”
“……오행의 길은 도중에 도망갈 수가 없으니까.”
“네. 귀환서도 먹통이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세운과 아르카나는 자연스럽게 오행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83층의 시련은 어려웠지만, 둘의 앞길을 막을 수준은 아니었다.
그녀는 여정의 지침표처럼 길을 안내해 주는 스킬이 없음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오행의 길 앞에 다다랐다.
“잠시, 얘기 좀 들어줄 수 있겠어요?”
“상관없다.”
“그 파티에 있을 때도, 저는 운이 좋았어요. 숨겨진 던전을 찾아내는 일도 자주 있었죠. 그럴 때마다 파티원 모두 환호했어요.”
그녀의 고유 권능, 행운.
처음에는 그녀의 성좌인 행운의 여신 ‘티케’의 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티케의 힘은 그녀의 힘을 부풀려 줄 뿐, 행운 그 자체는 순수한 그녀의 권능이었다.
티케가 있었기에 행운이 있는 게 아니라, 행운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티케가 찾아온 셈이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제 행운은 오행의 길을 찾아냈고, 길드원 모두 환호했어요. 히든 피스를 찾아낼 때마다 강한 힘과 장비를 얻어왔거든요.”
“그런가.”
“그런데 그때는 기분이 조금 이상했어요. 들어가기가 싫었어요. 조금 찜찜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결국 들어가게 되었어요. 모두가 말했거든요. 네가 있으니 괜찮다고. 너와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저도 기분이 좋았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어요.”
아르카나의 행운을 믿고 던전에 들어간 파티.
세운은 어쩐지, 그 파티의 미래를 떠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히든 던전, ‘오행의 길’에 입장하였습니다.
그녀와의 대화가 이어지며 둘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따라 발을 움직였다.
마치,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오행의 길에 들어섰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가지 속성으로 이루어진 오행의 길.
그 시작은 목의 시련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거든요. 저는 제 행운을 믿었고, 제 파티도 저의 행운을 믿었어요. 이번에도 역시 모든 게 잘될 거라 생각했어요.”
목의 던전에는 푸른 풀과 나무가 가득했다.
문제라면, 저 수풀 모두에 강한 독이 심겨 있다는 것.
조금이라도 독에 당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 할 정도로 끔찍한 극독에 감염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아르카나는 그러한 극독이 뚝뚝 흘러내리는 날카로운 잎사귀 하나를 들쳐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진정한 고행이 열렸어요.”
어쩐지, 더욱 슬퍼 보이는 얼굴로.
제 600화